목사의 역습(명예훼손 재판) - 2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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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100% 실화에 근거한 이야기임을 밝혀둡니다.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강 변호사가 이 사건 수임을 맡으면 이길 수 있을까요?”
교수가 단도직입적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제가 아직 사건 서류들을 모두 검토한 것도 아니고, 선생님의 말씀만 들은 상태라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선생님의 스타일을 보건대, 품은 많이 들고 빛은 안 나는 전형적인 사건이긴 하네요.”
“그래도 명예훼손 사건을 많이 맡아서 처리해봤을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하죠. 하지만 아시는 것처럼 사건이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지라 선생님이야 좀 덜하신 편이지만 일반인들은 처음에 얘기하고 막상 수임하고 들어가서 사건 기록을 봤을 때 완전히 다른 경우도 많이 있거든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번 사건을 좀 부탁해도 될까요?”
“일단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습니다. 괜찮다면 사건기록을 좀 보고 나서 결정해도 괜찮을까요?”
“네. 그렇게 하세요. 그런데 사건기록을 보려면 수임을 해야 하잖아요.”
“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만약 수임을 하는 걸로 하고 시작하되 계약금을 받기 전에 제가 자료 검토를 하고 나서 선생님의 설명에서 감춘 게 있어서 무슨 반전이 나오고나 하면 저는 맡기 어렵다는 조건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다른 이상이 없다면 그렇게 제가 그대로 진행하겠습니다.”
다소 괴팍한 조건이긴 했지만, 아직 젊은 여자 변호사가 당차게 그런 조건을 다는 것도 교수는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정도 배포라면 충분히 이 정도 간단한 건에 대해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그렇게 바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자료를 모두 받아 살펴본 강 변호사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저녁이었다.
“선생님. 저 강 변호사입니다.”
“네. 자료를 잘 보셨나요?”
“네. 정말 휘황찬란하게 경찰과 검찰을 협박하고 겁박하셨더군요.”
“그렇게까지 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게 비꼬는 것 보니 내가 말한 것에 사실이 아닌 것은 없었던가 보군요.”
“네. 예상대로 너무 극사실적으로 말씀하신 그대로여서, 심지어 저와 통화하실 때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문건들이 중간중간에 나와서 조금 소름도 돋았습니다.”
“농담도 하는 거 보니 사안에 대한 핵심을 잡은 것 같군요.”
“사실 지난번 통화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이 건이 정말 말도 안 되게 꼬였다고 생각하시고 억울해하시는 선생님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사실 그렇게 보면 자기가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 때문에 감옥까지 가서 몇 년을 보내다가 진범이 밝혀져도 제대로 보상도 받지 못한 정말로 억울한 사람들도 많이 봤거든요.”
“더 억울한 케이스가 있다고 해서 덜 억울한 케이스가 있는 건 아니지요.”
교수가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맞습니다. 법조계가 특히 경찰과 검찰이 이따위로 대강 짜서 맞추는 기소 건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인데, 선생님처럼 초동 수사관부터 심지어 그 팀장까지 모아놓고 청문감사관실에서 진상규명을 하고 그들을 박살내기까지 하는 일반인은 드물죠.”
“그게 잘못이라고 얘기하시는 것 같습니다?”
“결국 그렇게 경찰을 조지고 검찰에 수차례 진정서에 탄원서까지 제출하셨는데 저들이 어떻게 했는지 보셨잖아요?”
“으음.”
강 변호사는 거지 같은 현실을 계속해서 직시하라고 말하는 실리파였다.
“그러면 내가 넙죽 엎드려 빌거나 돈이라도 찔려줬어야 하나요?”
교수가 빈정이 상한 티를 내며 발끈하며 그녀의 지적을 비꼬았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일이 달라졌을 건 아니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그 사람들 목에 칼을 들이대시는 게 일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별로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래서 전략은 섰습니까? 수임료를 보내면 되겠군요.”
교수가 실질적인 재판 전략을 위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네. 꼼꼼히 살펴보느라 시간이 좀 걸리긴 했는데, 워낙 중간에 민원이니 탄원서니 진정서까지 다른 사건들이 많아서 복잡했습니다. 결국 명예훼손 건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맞는데, 저는 방향을 이게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고 가는 것보다 더 빠른 효과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이 낫겠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더 빠른 방법이 있었나요?”
“선생님이 교단에 전화하신 이유죠. 공공의 이익이라는 목적성을 중시하는 것은 밑에 깔고 구체적인 부분으로 들어가서 아예 밝히는 거죠. 그들의 녹취 증거나 다른 것들도 들어봤는데, 결국 선생님은 그들에게 이런 사안이 있으니 제대로 조사하고 그것이 사실로 밝혀지면 징계해달라는 거였지, 다짜고짜 추 목사라는 사람을 비난하거나 그 사람을 잘라버리라고 비난한 게 아니라는 걸 발견했어요.”
“결국 같은 말 아닌가요? 내가 교단의 목사들에게 요구한 게, 현역 목사라는 사람이 일반인에게 저주의 기도를 하고 자기 분을 못 이겨서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돌 갓 지난 아기를 들고 나와 던지려고 하는 등의 행위를 했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 조사해서 사실로 밝혀지면 징계를 해서라도 다른 피해자가 또 발생하지 않게 해 달라는 거였잖아요?”
“네.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대맥이 같은 것일지 몰라도 판사나 저 같은 사람들에게는 세부화해서 꼭 집어줘야 해요. 판결문에 그렇게 쓸 수 있게. 그런데 공공의 이익을 위한 조각성 사유로 범위를 크게 하기보다, 아예 콕 집어서 비난하거나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 거기 목사가 정말 맞는지, 그리고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 조사해달라고 상담을 요청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이걸 명예훼손으로 끌고 가는 것 자체가 방향이 한참 잘못 맞춰진 거다, 이렇게 가는 게 가장 편한 것 같아요.”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사실 그 부분으로 가는 게 맞기도 한데, 아마 검찰에서는 기계적으로 그 통화하셨다는 두 명의 목사를 끌고 나올 거예요, 증인으로.”
“아니, 그 목사라는 사람들이 증인으로 나온다구요?”
“네. 기록에 보면,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선생님과의 통화 녹취도 아니고, 추 목사가 두 목사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선생님과 그런 전화를 한 적이 있느냐는 식으로 말한 녹취록을 증거랍시고 냈어요.”
“그게 무슨 증거가 되나요?”
“안돼요. 그런데 증거가 없으니 그렇게라도 꾸며서 낸 거고, 그걸 경찰이 시키는 대로 기소의견으로 성사시켜서 검찰에 송치했잖아요.”
“어휴! 그러니까 어이가 없다는 거잖아요.”
“하여간 그래서 증인 심문이 한번 정도 있을 거니까 3번 정도의 변론기일로 끝날만한 재판입니다.”
“네. 복잡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도 이해가 안 됩니다.”
“그렇다고 쉽다고는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행여 거저먹는 재판이라는 인식을 받고 싶지 않았는지 딱 자르듯 말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런 코미디 같은 재판을 내가 피고인의 입장에서 치를 거라고는 법을 공부할 때도 아니 머리털 나고서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습니다.”
“일단 제가 이 방향으로 변론을 문건으로 초안 제출하고서 선생님에게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2021년 여름의 형사 재판은 기어코 벌어졌다. 약식기소의 벌금형을 받은 것에 대해 불복하여 정식 재판을 청구한 것이었기에 단독심, 즉 한 명의 판사가 굉장히 여러 건을 진행하는 재판이었다. 서울에서 수원지법까지의 거리도 거리였지만, 폭염이 작렬하는 그 여름에 재판 시간에 넉넉히 시간을 맞춰 출발했음에도 재판시간에 맞춰 주차장 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차들을 법원 앞에 쭉 늘여세워놓는 탓이 시간이 촉박해졌다.
바로 옆에 있는 검찰청에 들어가 차를 세워두고 법원으로 뛰어들어가려고 하는데 경비로 보이는 자가 뒤를 따라오며 교수를 불러 세웠다.
“저기요! 저기요!”
“무슨 일이시죠?”
“법원 쪽으로 가시는 거죠?”
“네. 그런데요?”
“그러면 차를 여기 대시면 안 됩니다. 법원 주차장 쪽으로 다시 가서 대세요.”
“네? 여기 이렇게 자리가 널널하잖아요.”
“여긴 검찰청 주차장입니다.”
시간은 거의 다 되었는데 촉박하게 자신을 붙잡는 경비와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벌이고 겨우 차를 빼서 법원에 대고 들어왔더니 전화로만 만났던 강변호사로 보이는 여자 변호사가 자리를 잡고 서류를 보고 있었다. 코로나 시국인 터에 모두가 마스크를 단단히 하고 있어 얼굴을 제대로 확인할 수도 없었지만, 변호사석의 여자는 그녀 혼자였기에 헷갈릴 리는 없었다.
“안녕하세요. 김 교수입니다.”
“왜 이렇게 시간에 딱 맞춰서 오셨어요? 조금 일찍 와서 얘기를 좀 하려고 했더니. 어쩔 수 없죠. 준비하세요. 다음이 저희입니다.”
그렇게 재판이 시작되었다.
김 교수는 피고인 석에 서서 판사의 호명과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스멀거리며 치밀어 오르는 굴욕감에 몸서리를 쳤다.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불쾌한 상황이었다. 일이라고는 하지만 서류를 한 더미 자신의 얼굴이 가려질 정도로 높이 세워둔 공판 검사는 그저 기계적으로 일상을 넘기듯 피고들에게 심각한 실형이나 높은 벌금형을 선고해달라고 중얼거리는 듯했고, 곁에서 서류를 보는 강 변호사는 전화로 통화했을 때보다 훨씬 더 거리를 두고 그저 기계적으로 그 한 건의 재판을 넘기려 들었다.
“저희는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때 김 교수가 유일하게 강 변호사와 상의했던 부분을 판사에게 시도했다.
“판사님.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사실 그 의견에 대해 강 변호사는 회의적이었다. 무엇보다 국민참여재판을 하게 되면 재판부가 변경되어야 하는데 자신이 이제까지 경험상 알고 있는 이 젊은, 아니 어린 단독심의 판사는 약식 기소 따위로 정식 재판에 회부된 재판을 국민참여재판으로 넘겨주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아닌 확신이 있었다.
“왜 이 사건이 국민참여재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거죠?”
마스크에 막혀 둔탁한 듯한 판사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흘렀다.
“현역 목사의 아동학대가 관련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경찰과 검찰에서 기계적으로 명예훼손이 성립된다는 결론을 정해놓고 무조건 기소를 한 사건이기에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판단을 받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강 변호사는 애써 고개를 돌리지 않고 서류를 검토하는 척 반응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
“기각합니다.”
뭐라고 더 설명하려고 입을 떼려던 김 교수의 얼굴이 확 굳어버렸다.
“네?”
“기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가는 조건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재판장의 권한이기 때문에 제가 그럴만한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기각합니다. 그대로 진행합니다.”
“후우.”
어이가 없었지만 한숨을 쉬며 김 교수가 자리에 앉았다. 공소사실에 대해서 읽고 감히 죄를 인정하지 않고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는 이유로 괘씸 구형을 때릴 거라는 강 변호사의 예상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공판 검사는 얼른 오늘 할당된 재판들을 모두 정리하고 빨리 집에 돌아가 시원한 맥주 한 캔 했으면 하는 얼굴로 판사에게 말했다.
“저희는 증인 신청하겠습니다. 피고인과 통화했다는 두 명의 목사와 피해자 추 목사를 모두 증인 신청합니다.”
“응?”
담담하게 서류에 체크를 하고 있던 강 변호사와는 달리 김 교수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두 사람의 목사가 등장하는 것도 어이가 없었지만, 당사자인 추 목사가 증인으로 나와 뭘 증명하겠다는 건지 어이가 없었다.
나중에 강 변호사에게 들었지만, 추 목사가 강하게 자신이 증인으로 나와 얼마나 피해를 심각하게 입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한 용의가 있다고 자기 변호사를 통해 주장했다는 설명을 듣고서는 더욱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증인 심문을 잡은 하루에 세 사람의 증인 심문을 하고 그날 변론을 종결하고 그다음에 판결하는, 강 변호사가 말한 딱 세 번만에 끝날 그 어이없는 법정 블랙 코미디는 여름의 한가운데에 막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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