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역습(명예훼손 재판) - 1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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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100% 실화에 근거한 이야기임을 밝혀둡니다.
“그 사람이 심각한 아동학대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가지고 있는 피의자였는데 혐의를 축소하고 왜곡해서 가정법원에 보호처분으로 경찰에서 그 의견으로 넘겨버렸고, 검찰에서 제대로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그냥 넘겨버렸고, 무엇보다 진술조서의 말미에 직접 육필로 적어 나는 참고인이 아니고 이 사건은 인지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고소 고발인이다,라고 적시를 했는데도 그 부분을 검토 안 하고 연락조차 안 했다는 것, 그게 핵심이거든요?”
교육기관 이야기를 하며 공문을 보냈다는 쪽으로 대화를 유도하여 대강 뭉개고 전화를 끊으려던 검사의 속내를 아이스케키 하듯 교수가 한꺼번에 확 들춰버렸다.
“그러니까 지금 단계에서 제가 확인을 좀 해보고, 시간을 저한테 조금 주실 수 있을까요?”
“얼마나 드릴까요?”
너무 다그치지 말고 시간을 갖자는 의미로 내놓은 말에 바로 교수가 치고 들어왔다.
“최대한 빨리 제가 확인을 해보고 연락을 드릴게요.”
“다시 정리를 해드릴게요. 교육청에서 공문 오는 거 말고, 제가 지금 핵심이라고 말씀드렸던 그 내용과 관련하여 검사님이 지금 답변할 수 있는 거니까 왜 일이 그렇게 되었는지 확인하신 다음에, 모르겠습니다. 요즘 검사들은 6시에 퇴근하고 6시 이후에 일을 안 하니까 연락을 못하겠다고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상당히 생소한 내용인데 만약 그 말이 맞으면 내일 점심 전까지 피드백 콜을 주세요. 됐나요?”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여 검사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그렇게 도망치듯 얼른 전화를 끊은 여자 검사에게서는 그 이후 단 한 번의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녀의 속내는 너무 명확했다. 지금 교수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이라는 선배들의 조언과 경험에서 묻어나는 이른바 ‘배 째라 전략’이었다.
검찰에서 잘못한 부분이 명확하게 있어도 결국 부장검사가 그 부분에 대해서 문제 삼지 않고 머리 한번 쥐어박고 조인트 한번 차는 걸로 넘어가 주면 그걸로 그만인 일이었다. 물론 정말 재수가 없어서 언론에서 들고일어나면 어떨지 모른다는 부담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 검찰에 상주하는 기자들은 판사는 몰라도 검사와는 악어와 악어새 관계를 결코 깨뜨리지 않는다.
어지간한 명확한 범죄사실을 덮어준 것이 아닌 이상 그녀의 얼굴이 언론을 타고 검찰의 개망신이 될 일은 없을 것이라는 약속을 부장에게 받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으로 다였다.
그녀의 전화만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건이 벌어지고 1년이 훌쩍 지나 벌써 여름을 향하고 있었다. 이른 더위로 30도를 넘어서기 시작한 6월에 검찰을 통해 법원으로 정식 재판을 청구했던 소식이 교수에게 도착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법원이나 검찰에서 날아오는 통지는 일반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불쾌함을 선사한다. 더군다나 말도 안 되는 사건을 유죄로 만들어 약식기소로 70만 원이나 되는 벌금형을 버젓이 도장 찍어준 그 검찰이라는 것들에게 선전포고를 선고한 정식재판은 그렇게 2021년 여름에 열리게 되었다.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하는 것은 변호사였다. 대놓고 선후배들에게 떠들어대며 그 라인을 불러 전투를 치를 마음은 애초부터 없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일이 이지경으로 꿇어 박기 전까지 조언을 얻었던 현직 판검사를 비롯하여 30여 년이나 판사를 지내온 선배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도 모두의 답은 한결같았다.
“그건 명예훼손 건으로 기소될 일은 없다. 기소할 건이 쎄고 쎘는데 그건 건도 못된다.”
하지만 결론은 기어코 명예훼손이 인정된다며 그들의 법상식과 경험을 뒤집어엎었다. 대단한 내용이 달라서이거나 교수가 자신에게 불리한 어떤 정보를 빼놓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언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법을 공부했던 교수가 잘 알았다.
그래서 교수는 전혀 알지 못하는 재판이 치러질 수원지법의 인근에서 가장 무난한 젊고 말귀를 알아들을만한 사람이라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전혀 모르는 이들 후보군에서 몇 명에게 전화를 걸어서 대강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단히 심각한 건이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교수를 어리숙한 일반인으로 생각하며 덤텅이를 씌우겠다는 변호사도 있었고, 대단한 변호사라며 사무장이 대부분 전화를 받아서 이리저리 상담해준다면서 결국은 어려운 소송이라며 수임료를 조정하려는 장사치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연결된 여자 변호사의 반응이 교수에게는 신선했다. 이제 막 법조경력 10년 차가 되는 그녀는 국선변호인 경력이 자신의 법조 경력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말 그대로 생계형 변호사였다. 대단한 ‘로펌’이라는 겉치레는 아예 내놓지도 않고 SKY 출신도 아닌, 하지만 로스쿨은 아닌 당당한(?) 사법고시 출신의 싸움닭과였다. 그녀는 처음부터 반응이 심드렁했다.
“저 같았어도 그렇게 빠져나가고 그렇게 공격했을 겁니다.”
간략한 교수의 사건 설명을 듣고는 목사 측의 변호사였다면 당연히 그렇게 빠져나가고 뒤통수를 쳤을 거라고 그녀가 내던진 대꾸였다. 교수는 은근히 그녀의 말투나 의견이 거슬렸다. 바로 되물었다.
“그러면 이 명예훼손 재판이 당연히 기소의견이었어야 한다는 건가요?”
“당연이요? 선생님. 이 바닥에 ‘당연히’란 없습니다. 생각해보세요. 현역 목사라는 자가 그런 짓을 한 건 정말로 몹쓸 짓이 맞아요. 그리고 지금 듣는 것만으로도 그 자가 쓰레기일 거라는 생각은 분명히 들어요. 그런데 저희는 서비스업이잖아요. 그런 작자가 자신을 무죄로 만들어달라고 돈을 내는 곳이 변호사 사무실이잖아요. 그러면 허구한 날 그게 일인 저희들 입장에서는 어떻게 빠져나가면 되는지 아주 잘 알거든요.”
“그렇겠죠.”
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논리에 수긍의 태도를 보이며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 선생님도 처음부터 고소장을 쓰실 때 아예 작정하고 형사고소를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으셨어야 해요. 지금 얘기하는 거 보니까 학식이나 경험이나 이쪽 일을 아예 모르시는 분 같지도 않은데, 문제는 선생님의 상식이나 경험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선생님의 성향이 이런 일을 당하실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는 생각밖에 안 드네요?”
“제 성격이 문제였다는 건가요?”
교수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녀에게 되물었다.
“그렇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거지 같은 꼴을 당하더라도 그저 미친놈 만난 셈 치고 넘어가지 선생님처럼 정말로 직접 경찰서까지 가서 고소하지 않거든요. 그리고 그렇게 세밀하게 녹취까지 다 하지 않거든요.”
“으음.”
그녀의 지적이 틀린 것도 아니긴 했기에 교수는 가만히 그녀의 묘한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만약 정말로 그런 놈이랑 싸울 생각이셨다면 선생님은 두 가지를 놓치신 거예요.”
“두 가지라면?”
“하나는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변호사를 통해서 고소하지 않으신 거구요.”
“반드시 변호사를 통해서 고소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교수의 질문에 수화기 너머의 그녀는 가만히 여유 있는 미소를 짓는 듯했다. 교수가 고지식한 사람이라 세상을 잘 모른다는 의미의 비아냥도 2%가량은 담겨 있을 것이라고 교수는 지레짐작했다.
“선생님처럼 법률적인 지식이 풍부하신 의뢰인들을 가끔 뵙니다. 힘들죠. 아는 것도 많으시고 주변에 법조인 지인들도 많으셔서 하나하나 비교하시거든요. 그런데 제가 지금 드리는 말씀은 선생님이 다른 일반인들처럼 법적인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변호사의 조력을 고소하는데 반드시 받으셨어야 한다고 말씀드린 게 아닙니다.”
“그러면요?”
“선생님은 너무 곧으세요. 휘지 않으시는 분이죠. 그런 분들은 경찰에 가거나 검찰에 가면 불편한 사람으로 통해요. 왜냐면 말이 하나도 틀린 구석이 없거든요. 선생님이랑 이야기를 나누면 아주 일목요연하게 사건도 잘 정리하시고 말씀도 아주 논리적이에요.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을 정도죠. 그런데 다른 나라까지는 모르겠고, 대한민국의 경찰과 검찰, 그리고 법조계는 그런 분들이 숨 쉬며 살기 힘든 공간이에요.”
법대를 때려치운 김 교수의 아픈 곳을 그녀가 바로 후벼 파고 들어왔다. 그러한 이유로 법학을 때려치우고 지금의 전공으로 갈아탄 것을 마치 그녀는 알고 있는 듯 말했다.
“경찰이 뭐 대단한 사람들이겠어요?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그 사람들 그냥 월급 받고 적당히 챙길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돈도 좀 챙기고 그렇게 사는 아주 지저분한 저 밑에 있는 삶이에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약자 앞에서는 어떤가요? 강하거든요. 그런 사람들일수록 자기 조직의 덩치를 믿고 그걸 자신의 권력이라고 생각하며 휘두르죠.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선생님 같은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느낄까요? 누구보다 선생님이 이제까지의 고소와 이번 명예훼손 사건을 진행하면서 느끼지 않으셨어요?”
“무슨 말인지 대강 알 것 같아요.”
“네. 지금처럼 선생님은 몰라서 천성대로 행동하시는 분이 아니세요. 그러니까 더 힘들죠. 왜냐면 선생님이 옳은 걸 선생님이 잘 알고 계시는 것처럼 그 사람들도 알거든요. 그런데 그 바닥은 옳은 대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지들이 편한 대로 사는 방식으로 판을 짜고 살거든요. 그런데 옳은 것을 따지며 추궁하는 사람이 나타나 모든 대화와 통화를 녹취하고 그들이 잘못된 꼬락서니를 들추기 시작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사람들은 그거 잘리면 할 것도 없는 사람들이에요. 검사들은 의원면직해서 변호사 개업하면 되지만, 경찰은 결국 경찰 하다가 잘리거나 정말로 운이 안 좋아서 직무유기죄라도 성립되거나 뇌물 공여죄 같은 거라도 받고 실형이라도 받게 되면 정말로 인생 쫑나는 거거든요. 그런 사람들이니 선생님의 존재가 얼마나 두렵겠어요. 그러면 선생님이 그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무서우니까 선생님이 원하는 대로 정의를 구현하고 올바르게 살까요?”
“지금까지 보면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교수가 바로 대답하자 그녀가 마치 정답이 정해진 질문이었다는 듯이 가볍게 웃으며 말한다.
“그래서 변호사가 필요한 거예요. 변호사들은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니 알고 그 사람들도 변호사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거든요.”
“어떤 사람인지를 안다?”
“네. 자신을 해치지 않기로 무언의 약정이 맺어진 족속이라는 걸 아는 거죠. 그래서 저희 변호사는 고소하는 측이든 피고소인 측이든 경찰서에 가면 아주 낮은 자세로 부탁하는 것처럼 사정을 해요.”
“왜 사정을 하죠?”
“그 사람들이 그걸 좋아하고, 그게 익숙하거든요. 자신들이 뭔가 칼자루를 쥐고 있고, 상대가 부탁하고 청탁하는 듯 매달리는 심리적 구조를 만들어서 ‘나는 니가 부정을 하고 그렇게 먹고사는 걸 알지만 내가 원하는 걸 들어주면 나는 너에게 협조할 의향이 충분히 있어. 그러니까 내 부탁을 좀 들어줄래?’라고 하는 거죠?”
“왜 정상적인 방식으로 수사하고 요구할 걸 요구하고 잘못된 걸 지적하지 않죠?”
“그 사람들이나 그 사람들이 속한 조직이 그렇게 뛰어난 도덕성을 갖춘 조직도 아니고 그런 수준의 사람들이 경찰을 안 하죠. 아니 그 정도 수준이 되면서 뭐가 아쉬워서 경찰을 하겠어요? 차라리 공부를 좀 더해서 다른 직업을 갖지?”
“생각보다 굉장히 직설적이시네요.”
“저도 경찰 조사에 가면 지금 선생님이랑 이렇게 얘기하는 스타일로 안 해요. 완전히 저자세로 부탁하고 청탁하는 것처럼 하죠.”
“그리고 내가 놓친 두 번째는 또 뭐죠?”
“선생님의 도덕성을 뒷받침해주는 공격성이죠. 선생님은 저랑 이야기를 하면서도 단 한 번도 논리적으로나 법리적으로 그리고 심지어 감정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는 데에도 한 번도 말실수를 하거나 뭔가 지적할만한 부분이 없을 정도로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 익숙한 분이세요.”
“그게 공격적인가요?”
“부족한 사람들은 그렇게 느껴요. 일종의 콤플렉스 같은 거죠. 왜 그런 말들 하잖아요. 도둑놈이 제 발 저린다고. 그거랑 같은 거죠. 선생님처럼 증거에 의거하여 객관적인 근거와 사실관계만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들을 그 사람들은 거의 만나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찾아와서 그 방식으로 말하고 뭔가 요구를 하게 되면, 절대 선생님이 직접 ‘제대로 하지 않으면 너도 똑같은 지적을 해주고 공격하겠어.’라고 말하진 않더라도 그 소심한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죠. 그러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아까도 같은 얘기를 했었는데, 그래서 그 사람들이 내가 지적하는 대로 하지도 않고 틀어지는 이유가 뭐죠?”
“그들은 무식하고 가진 거 없고, 부조리에 찌들어있지만, 고개를 숙이거나 꼬리를 내리고 싶어 하지 않아요. 그들이 믿을 건 조직이 가진 힘, 그것을 등에 업은 권력이죠. 그래서 조직에 숨어버려요. 즉, 지금 선생님이 억울한 입장이 되신 것처럼 자신들이 무리를 지어서 선생님의 영혼을 상처 내고 할퀴고 틈만 나면 공격해서 조금씩 피를 흘리게 만들어서 죽을 때까지 괴롭히는 거죠. 하이에나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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