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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Aug 26. 2021

마음이 있어도 실천하지 못할 수는 있다. 그러나...

惡을 행하는 우를 범하지는 마라.

子曰: "苟志於仁矣, 無惡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진실로 仁에 뜻을 두면 악한 짓을 하지 않는다."

이전 장에 이어, 역시 짧고 특별히 어려울 것 없는 문장이다.

먼저 이 문장의 핵심에 해당하는 눈깔자를 찾아보자.(눈깔자가, 무슨 해괴한 용어인가싶은 사람은 다시 이전 공부로 돌아가 무슨 뜻인지 찾아보고 다시 읽도록 하자.)


이 장의 눈깔자는, '苟(진실로)'라는 글자이다.

왜, 굳이 그 글자가 이 문장에 들어갔는가 하는 것과 그 글자가 들어가서 문장이 어떻게 강조되는가를 살펴보면 이 장을 해석하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주자는 이 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설하였다.

"그 마음이 진실로 仁에 있다면, 반드시 악을 행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


조건절의 뒷문장이 어색하게 읽힌다면 당신은 이제 고문 공부에 좀 익숙해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드시 악을 행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

뭔가 문법상 어색하게 들린다. 왜냐하면, 반드시 악을 행하는 사람은 영화에 등장하는 빌런 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을 또 틀어서 반드시 악을 행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함은 무슨 의미일까?


작정하고 악을 행하겠다는 자는, 전술한 것처럼 영화 속의 빌런 말고는 찾기 어렵다.

즉, 仁을 갖추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최소한 작정하고 악행을 하는 자는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인간으로서의 최저치를 설정한 것에 대한 해설인 것이다.

그 해설 역시 '진실로'라는 것에는 방점을 충분히 주고 있다.

그래서 위의 그림과 같은 어색하지 않은 문장으로 환치할 수 있다.

혹여 주자의 해설로 부족할까 싶었는지 양씨(楊氏)가 이렇게 풀어서 설명한다.

"진실로 仁에 뜻을 두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지나친 행동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惡을 행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仁을 갖추겠다고 마음먹더라도 그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해하고, 간혹 지나친 행동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악을 행하는, 그것도 의도적으로 행하는 일을 해서는 결코 안된다는 가르침이다.


이 장은 공자가 '진실로' 배우려는 자들을 이끌어 깨우쳐주려고 한 말이다.

그런 이유로, 눈깔자는 아니지만, 눈깔자와 호응하여 작용하는 '矣'라는 글자 역시 주의하여 새길 필요가 있다.

이는 '결정하고 반드시 그러하다.'는 뜻을 의미한다.

'정말로 너희가 그럴 의향이 있다면 仁을 갖추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니 이렇게 시작하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는 내용인 것이다.

이 글에서 '矣'자가 빠진 것은 서예는 하지만, 고문의 뜻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어떻게 仁을 갖출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의 시작을 일깨워주려는 이 장의 내용은, 역설적으로 아주 나쁜 짓만을 하지 않는 것이 그 시작일 수 있다는 논리로 구성되어 있다.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하고 서울대에 갈 수 있나요?'라는 고등학생의 질문에 당신은 여러 가지 답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국 모의고사에서 10등 안에 드는 녀석이 아니라, 서울도 아니고 지방에서 이제 반에서 10등을 하는 녀석이 그렇게 물으면 어떻게 답해줄 것인가?

질문하는 녀석의 눈에서 정말로 간절함이 느껴지고 아직 방법을 몰라 정말로 그 방법을 찾아 제대로 노력할 모습이 보인다면 더더욱 그 답변은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그 아이의 미래가 달린 일이 아닌가?


이 장에서 보인 공자의 태도가 바로 그 해답이다.

제대로 수양도 부족한 이들이 '어떻게 仁을 갖출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공자는 '정말로 그러고자 하는 마음이 자네에게 있다면, 결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인 것이다.


"서울대를 가는 것까지는 어찌 될지 잘 모르겠지만, 공부를 정말 잘하고 싶으면,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붙잡고 카톡 하고 게임하는 것부터 그만두는 것은 어떨까?"

물론 동일한 위상의 비유가 아니니, 오해는 없길 바란다. 가르침의 방식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도대체 악행을 어디까지로 봐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빌런까지는 아니어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악을 악이라고 부르지 않는 이들이 많아졌기에 이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이 장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 메시지를 공존하여 품고 있다.


하나는, '仁을 갖출 생각이 정말로 있는 자라면, 결코 자신이 악행이라고 인지하는 것을 행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


둘째는, 이전 장의 내용과 연계하여, '어떤 것을 악으로 인지하는지를 구분할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갖추는 것이 仁을 수행하는 기본적인 덕목'이라는 것.


두 번째 숨겨진 행간까지 읽어내고 수양하는데 '아!'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면 중상급은 되는 셈이다.

선과 악의 기준이 모호해졌다느니, 현실은 흑과 백의 논리로 볼 수 없고 회색으로 온통 칠해져 있다니 하는 것들은 저 기초 단계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포도가 실 것이라며 입맛만 다시는 여우들이 뿌린 찌라시일 뿐이다.


약한 빵셔틀을 괴롭히는 나쁜 일진을 막아서고 그들을 혼쭐 내주는 일은 선뜻 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그들이 무섭다고 눈치만 보며 절친의 아픔을 흘려 지나치거나 심지어 그들에게 동조해서 惡을 함께 행하는 따위의 짓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버젓이, '나는 아이까지 데리고 광화문에 가서 밤늦게까지 촛불을 들고 부정부패를 꼬집는 집회에 가서 민주주의를 실행하고 왔어요.'라며 SNS에 사진을 올린 아줌마가 자기 자식의 학폭사실에 '애들이 다 그러면서 크는 거잖아요. 뭘 이렇게까지 난리래요?'라고 하는 것은 후안무치의 수준을 넘어선 자기모순의 완성에 다름아니다.


정의를 구현하겠다고 기레기들이 설치는 언론계에서 자신만은 시대의 양심이 되겠다고 설쳐대며 제대로 취재조차 하지 않고 받아쓰기를 하는 수많은 기레기들이 이 장의 뜻을 정말로 이해하지 못할까?


국회의원에 뽑아달라며, 목이 쉬도록 지하철역 앞 삼거리 차도에 버젓이 나와 소리치던 자가, 자기 소속위의 피감대상의 비리에 대해 면담을 해달라는 국민에게 비서관도 아닌 인턴을 시켜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다 만나면 우리 일은 언제 하냐? 그냥 알았다고 하고 보내'라고 하는 상황이 어느 특정 한 국회의원실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당신은 생각하는가?


고등학교도 아닌, 중학교 교사가 그나마 강남 학군이랍시고 '좋은 고등학교를 가고 싶지? 내가 펜 한번 잘못 놀려서 생기부에 안 좋은 얘기가 나오면 많이 곤란하지 않겠니?'라며 학생들을 협박 아닌 겁박하는 행태가 과연 뉴스에 나올 정도로 특이한 단 한 명 교사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하느냔 말이다.


그냥 집에서 힘겹게 아이들 키우며 살림하는 애엄마라고, 그저 아이들에게 지쳐 시달리는 교사라고 자신을 포장하기 전에, 당신들 역시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이 사회를 제대로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는 생각한 적이 없는가?

당신이 타성에 젖어 늘 그렇게 했었다며 해버렸던 행동들이,

당신이 좀 귀찮고 힘들다고 적당히 넘겼던 그 행동들이,

당신이 당하게 되면 불쾌하고 억울하며 분통 터지는 일이 될 것이라고...

정말로 단 한 번도 반성해본 적 조차 없느냔 말이다.


그래서 공자가 이 장을 통해서 가르쳐주는 듯 하지만 수천 년 후의 당신에게 일침을 가한 것이다.

진심으로 仁을 갖추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따위 사고방식부터 당장 버리라!



이전 09화 선악을 판단할 수 있는 '자격'조차 당신에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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