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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 11

정의 내리기 불가능한 것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2379


헌신이야말로 사랑의 연습이다.
헌신에 의해 사랑은 자란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힘겨운 일이 있을 때,

내가 누군가의 위로를 해주다가 문득 내가 누군가의 위로를 받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을 때,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도전에 넘어져 힘에 겨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작고 너무도 쉽다고 여겼던 당연한 도전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럴 때 사람들이 누구나 그러는 것처럼 당신도 누군가를 찾을 것이고 기대고 싶을 것입니다.

누가 봐도 강하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아주 단단하고 자신만만한 선배가 한 분 있었습니다. 선배는 그런 유형의 이들이 늘 그렇듯이 자신이 하는 일만으로도 주위의 여러 사람들이거나 얼굴을 알지 못할 누군가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선배의 주변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거나 고민거리가 있으면 선배를 찾았고, 모르는 것이 있어도 선배를 찾았고, 자신이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닥쳐 힘겨울 때도, 심지어는 자신을 차버린 사람이 선배의 주변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당연하게 선배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선배에게서 새로운 힘을 얻어서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선배를 그렇게 여겼습니다.

아주 강하고 아주 단단하다고.


누구나 보일 수 있는, 사적인 술자리에서의 연약하고 힘겨운 모습을 선배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선배가 술에 취한 것을 본 사람도 주위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선배는 한번 본 사람의 성격과 그 사람의 습관을 알아맞히고, 그 사람의 현재 당면한 문제까지 한번 유심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알아내는, 생각하는 속도가 빠르고 관찰력이 뛰어나며 논리적으로 뭔가를 추론해내는 것이 마술처럼 정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선배가 우리나라의 남도 어느 바닷가쯤이라는 주소와 함께 편지가 날아든 것은 유난히도 추웠던 그해 겨울이었습니다.


예상컨대, 아마도 선배는 그런 기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편지에서 피력했던 것처럼 뭔가가 누군가가 너무도 그립고 간절한데 그것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지 않고 그저 머릿속과 감성 속을 헤매고 다닌다는 갑갑하고 모호한 느낌을 들게 만드는 그 황황한 기분말입니다.


그는 그런 느낌마저도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다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자신은 강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 역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문득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편지는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배는 그 꿈에도 예견치 못한 생각(아마도 자신이 누군가가 그리워지고 알지 못할 누군가를 그리워하게 될 줄 몰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에 혼자서 광화문 한복판에서, 제대로 책도 읽지 못한 채 서점에서 나오던 길에 피식하고 새어 나오는 자조적인 웃음에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낯설게 보였다고 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그런 감정들조차도 늘 또렷하게 떠오르며 형상화할 수 있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라고 여겼고, 그런 것을 잘하지 못하는 주변의 친구들에게 그것을 풀어주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역할을 주로 해왔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변의 말처럼 그는 쉽게 말해 그 분야에 있어 전문가였으니까요.


그런 그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싶은데···,

누군가에게 따스하게 숨결만이라도 차가운 전화기에 담아 전해주고 싶은데···,

그런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편지를 읽다가 멍해져 버리는 기분에 어느새 선배가 서있던 그 겨울 광화문 한복판에 마치 나 자신이 서 있는 느낌이 와닿아 가슴 한구석에서 시린 느낌이 온몸으로 아려왔습니다.


물론, 그 그리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자면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누구보다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그에게는 굳이 만나서 따스한 미소를 전달하지 못할 까닭이랄 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당시 선배는 몸이 아파서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글을 쓰고 사람들을 만나고 카운슬링을 통해 힘겨워하는 이들을 도와주고, 책 읽기를 누구보다 좋아하던 그가 몸이 아팠다는 것은, 그에게 도움을 받았고 받고 있던 사람들 중에서도 아무도 몰랐습니다. 눈에 보이게 아픈 것이 아니라고는 했지만, 늘 강하고 단단해 보이던 그에게서는 굳이 억지로 웃어 보이며 자신이 ‘환자’라고 말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던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저 그의 그런 모습과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문제에만 관심을 가져주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그의 문제들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물론, 선배의 병세는 심각한 정도가 아니라 차차 회복되기는 했지만 그러기까지, 그는 물리치료를 하고, 운동을 해야 했으며, 제대로 글을 쓰지도, 하고 싶은 공부를 하지도 못할 정도로 건강에 치여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건강을 위해’ 당분간 접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활동적이고 자신에게 열중하던 사람에게 그 짧지만은 않았던 시간이 그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하고 힘겨운 순간이었을까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언젠가 술잔을 기울이며 지나는 말로 내뱉던 선배의 소망은, 평생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학자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강하고 차가워 보이는 사람은 사뭇 가까이 들여다보면 누구보다 속이 여리고 뜨겁고 끈끈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든든한 누군가를 가지고 있어 그에게 기대고 쉬는 것은 좋아하지만, 자신이 기댐을 받는 상대가 되는 것은 어떤 일보다 짜증스러워하고 누구보다 힘겨워하면서 먼저 도망쳐버리고 맙니다. 자신의 강함을 가지고 결코 다른 사람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어려워한다는 것은 이전의 고통보다 더욱 큰 인내력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것은 혼자서 감내하기란 어려운, (그것이 설사 아주 작고 무시할 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에게는 큰 것입니다.


그때, 그리워하는 누군가, 그리워하고 싶은 누군가는 바로 그에게 있어 ‘사랑’ 일 것입니다.


선배는 누구보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어려운 부탁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주는 그가 자신의 작은 어려움은 다른 사람에게 부담 주길 싫어하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기본’이었습니다.


정의하기 어려운 것, 하지만 누구에게나 필수적인 것.


그 겨울 선배가 느꼈을 그 황황한 가슴이 이렇게 가까이 안에서 느껴지는 것은, 다시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다른 이들을 위해 도움을 주는 원래 이전의 그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을 보면서, ‘사랑’이라는 것을 정의 내리기에는 어려워하는 순수하고 단단하고 차가운 논리를 가진 그를 보며,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지금 당신은 남에게 기대기만을 좋아하고, 남에게 부탁하기는 쉽게 여기면서도 당신의 곁에서 힘겨움에 도움을 청하려는 이에게 혹시 냉정하지는 않나요? 그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요? 당신이 과연 사랑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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