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득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

공자의 말씀을 함부로 왜곡하여 이해하지 마라, 제발!

by 발검무적
子曰: "朝聞道, 夕死可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침에 도를 깨친다면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

<논어>를 읽어보지 않은 이들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다는 바로 그 유명한 문장이다.

그리고 드디어 등장하였다,

군자가 추구해야만 한다는 바로 그 道.


주자는 주석에서 道에 대해, '사물의 당연한 이치'라고 해설하며 이 장을 다음과 같이 풀었다.

"만약 그것을 얻어 듣는다면, 살면 이치에 순하고, 죽으면 편안해서 다시 여한이 없을 것이다."


또 정자(伊川)는 이 장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은 道를 알지 않으면 안 되니, 만일 道를 얻어 듣는다면 비록 죽더라도 괜찮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모두 진실한 이치니, 사람이 이것을 알아서 믿는 것이 어렵다. 죽고 사는 것은 또한 큰 일이니, 진실로 얻는 바가 있지 않다면 어찌 저녁에 죽는 것을 괜찮다고 하겠는가?"

네이버 사전에 의하면, '사람이 참된 이치(理致)를 깨달으면 당장 죽어도 한(恨)이 없다는 뜻으로 쓰이며, 짧은 인생(人生)을 값있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意味)'라고 해설이 되어 있다.

누가 해석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뒷문장이 조금 거슬린다. 朝夕을 강조하여 새기려고 한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朝夕, 그만큼 짧은 시간을 강조하려고 사용된 것이니, 인생이 짧으니 값지게 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닌데, 어느 순간 와전되어 그대로 일반인들에게 사용되어버렸다. 그런 뜻, 아니다.


이 간단하고 짧은 글에는 아주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

'도를 듣다'의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대부분의 글 좀 읽는다는 자들이 '득도'로만 이 글을 이해한다.

아니다. 틀렸다.

물론 내가 도를 깨우치는 것은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1차적 지향점이다. 그러니 위의 주자나 정자가 해석한 구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 틀리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공자가 가리키고 있는 바의 궁극적 지향점이 어디인가 하는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다.


왜 도를 '얻다'라고 쓰지 않고, '듣다'라고 했을까?

거기에서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 공자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내가 수양하여 도를 얻는 것은, 1차적으로 당연히 중요하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

나만 알고 나만 깨우치면 세상이 바뀌나?

공자가 자신이 아는 것이 부족하고 자신이 깨우친 것이 부족해서 그리도 목에 핏대를 세우며 사람들을 일깨우고자 노력하였을까?

무엇인지조차 모르던 사람들이 그것을 알게 되고 잘못된 것을 알게 되고 잘못을 깨우치고 제자들을 시작으로 그런 가르침이 퍼져 사람들이 변화하면 사회가 변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공자는 마침내 도가 세상에 퍼졌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도를 저자에서 듣게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제 알겠는가?

'도를 들으면'이라는 말의 의미는, 공자의 가르침에 깨달음을 얻은 이들이 많아지고 그들이 세상을 올바른 것으로 돌려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는 광경을 목도하게 됨을 말한다.

저자에서 사람들에게 도를 듣게 되는 그 순간, 자신이 그렇게 바라던 도가 일반상식으로 통용되는 순간을 의미한 것이다.

자신의 목표가 달성되었으니 이제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다고 역설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이 장이 말하는 궁극적인 내용은 공자의 바람이 오롯이 담긴 외침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까지 당신이 알고 있던 그 내용과 전혀 다르단 말이다.


올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가장 먼저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그러한 의도에 동의하고 함께하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그 뜻과 의도가 올바른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은 불변의 전제이다.

그 뜻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기 위해서는 똑똑하고 많이 배우고 이해가 빠른 자들이 많아야 할까?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모든 민중을 학자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민중에 영향력을 가진 위정자라고 하는 자들이 본보기로 올바름을 보여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가 가장 먼저 보고 배우는 것은 자기 집의 엄마이며 아빠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말을 배우기도 전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배우기도 전에 자연스럽게 보고 듣고 몸으로 익히게 되는 것은 함께 생활하고 자신을 먹여주고 키워주는 부모인 것이다.

사회에서의 부모가 위정자라고 본 공자는 그래서 위정자들이 올바른 본보기를 보여야 백성들이 보고 따를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다음 공자가 시도한 것은 뭇사람들의 커뮤니티가 갖는 폭발력이었다.

사람들이 모이고 그들이 말이 퍼지고 그들이 어떤 것이 올바른 것이고 어떤 것이 잘못된 것인지를 알게 되려면 일단 시비를 알려줄 올바른 지식 메신저가 필요했다. 공자가 제자를 육성한 것은 바로 그 이유였다.

그리고 그 제자들이 다시 제자들을 두고 피라미드처럼 퍼지고 퍼져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를 알고 깨우치고 최소한 공자의 무리들이 주장하는 바, 지향하는 바를 이해하고 따를 수는 있을 정도로 만들고자 했다.

자신만의 부귀영화를 위해 공부하여 가난함과 비천함을 벗어나겠다고 관악을 향해 달려 신분상승을 했다는 것들은 우리가 많이 보아왔다. 그들이 얼마나 지금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결코 사회를 올바르게 변화하는데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활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때때로 자신과 다른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과의 싸움에서 깨져서 뉴스에 나오고 감옥도 간다.

그들의 이전투구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역겹다.


자신이 알고자 하여 공부하고 끊임없이 수양하여 득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까지는 아니다.

불가능할 정도로 칭할 만큼 어려운 것은, 내가 배운 것을 통해 남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그것이 이 장에서 공자가 말한 궁극적인, '도를 듣게 된다면'의 의미이다.


당신이 이제까지 잘못 알고 있었던 공자의 의도를 알게 된 것을 축하한다.


잊지 마라.

아는 것도 어렵지만 알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모르고 있을 때보다 더 못한 것이다.


실행하라.

귀찮고 힘들고 어렵고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도 행동하라.


그것이 당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당신의 의지대로 바꿀 수 있는

위대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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