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파리가 꼬이는 데는 단 한 가지 이유가 있을 뿐이다.

당신의 그 똥. 덩. 어. 리. 는 언제 치울 것이란 말인가?

by 발검무적
子曰: "君子懷德, 小人懷土; 君子懷刑, 小人懷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처하는 곳을 생각하며, 군자는 형법을 생각하고 소인은 은혜를 생각한다.

앞서 다른 장에서 설명하면서, 앞으로 <논어>에서, 군자와 소인에 대한 비교가 다양하게 나올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었다.

이 장에서는 군자와 소인에 대해 두 가지 형태의 큰 차이를 한 가지의 덕목으로, '懷, 생각하다'라는 동사를 가지고 풀어나가고 있다.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이 장에서도 군자와 소인의 비교를 하는 것에서 주안점을 두고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그 기준을 무엇으로 삼고 비교하는가 하는 것.

둘째는, 그렇게 생긴 차이가 어떤 격의 차이를 만들며 어떤 것을 하지 말고 어떤 것을 지향하라고 제시하는가 하는 것.

덕을 생각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처하는 곳을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형법은 왜 생각하고, 은혜는 또 갑자기 무엇인가?

조금은 선문답처럼 느껴질 수 있다.

먼저, 힌트를 좀 얻기 위해 주자는 이 장에 대해 어떻게 해석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懷德은 고유의 선함을 보존함을 이르고, 懷土는 처하는 바의 편안함에 빠진 것을 이른다. 懷刑은 법을 두려워함이요, 懷惠는 이익을 탐함을 이른다. 군자와 소인이 나아가는 방향이 같지 않은 것은 公과 私의 사이일 뿐이다."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이 장에서 화두로 사용하는 단어는, '懷, 생각하다'라는 동사이다.

품다, 혹은 생각하다로 해석되는 '懷'라는 글자는 계속 생각하고 품으니, '소중하게 여긴다'라는 의미로 전성된다.

소인이 허구한 날 땅 생각을 하는 것은, 땅에서 나오는 곡식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은 돈이며 겉으로 보이는 경제적인 부분이다. 그래서 결국 처하는 곳, 주거환경, 집에 대한 것까지 모든 의미를 함축하여 담아내고 있다.

중요한 것은 '덕을 생각한다.'라고 한 것의 풀이이다. '고유의 선함을 보존한다'라 하였다.

성선설에서 말하는 기본적으로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었던, 고유의 선을 보존하는 것을, '덕을 소중히 여기고 생각한다.'라는 의미의 본뜻으로 본 것이다. 이 의미를 충분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또 이상한 것이 있다. 법을 생각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 왜 법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란 말인가? 주자는 이 '법'을 법도로 보았다. 즉, 객관적으로 정한 법도와 법률로 보아, 개인적인 사사로움에 얽매어 왔다 갔다 하지 않고 확실한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판단하기 때문에 그것을 더욱 어렵고 두려워하였다고 본 것이다. 그것은 뒷 문장의 소인이 그것과 반대로 사사로운 은혜나 혜택을 바라고 그것과 엮여서 무언가를 해보려는 성향과 반대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 이상하게 매끄럽지 못한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다산(정약용) 선생은, 법을 '전범이 되는 본보기'라고 이해하였다. 사실 궁극적으로는 주자나 다산 선생이나 같은 맥락으로 풀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본다.

왜냐하면 비교의 대상이 너무도 명확하게 있기 때문이다.

사사로운 은혜와 인간관계를 걸고넘어져 그것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는 것은, 결국 은혜를 주고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혜택을 바란다는 의미로 귀결된다. 즉, 자신의 이익만을 탐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윤 씨(尹焞)는 이 장에 대해 조금 더 나아가 이렇게 부연 설명하였다.

"善을 즐거워하고 不善을 싫어함은 군자가 되는 까닭이요, 구차히 편안하려 하고 얻기를 힘씀은 소인이 되는 까닭이다."

이것이 앞서 설명한, 그럼 군자를 목표로 삼는 자는 어디를 향할 것인가에 대한 실마리가 되시겠다.

앞서 고유한 선을 보존하는 것이 덕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한 것에 외연의 확장이자, 부연설명이다.

편안한 것이 있는데도 굳이 불편한 것을 택하는 것이 군자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보면 명확히 아니라고 윤 씨는 말한다. 다만, 부러 불편한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편안하려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에 우선시하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제까지의 가르침과 연장선상에서 조금씩 제대로 진도를 빼고 있는 모습에 다름 아니다.

어딘가에서 꽤 공부 좀 했다고 자부하는 양반인지, 다음과 같은 해석을 책에 버젓이 달아놓았더라.


통치자가 덕으로 다스리려고 들면 백성은 설사 다른 방면에서 약간의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자신이 오랫동안 살아온 정든 땅에 눌러살려고 하지만, 통치자가 형벌로 다스리려고 들면 백성은 설사 정든 땅을 떠나는 고통을 감수하는 한이 있을지라도 보다 은혜로운 곳을 찾아 떠나간다는 말이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해석인지 나는 잘 알지 못하겠다.

다만, 굳이 사족의 평을 달자면, 맹자적 오버가 너무 지나쳤다는 것으로 내 촌평을 대신한다.

그런데 이 장을 보면서 공자가 세기를 관통하는 예언의 기운이 있다고 느끼지 않았는가?

소인의 행태 중에서 懷土(땅을 소중히 여겨 계속 생각하는 것)이 땅에서 나오는 곡식을 의미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돈과 재물을 의미하고, 또, '거처하다'라는 동사의 의미로 어디에 사는지, 어떤 지역에 사는지를 의미하기 때문에 중의적인 의미로서 외양적인 것에만 매달리는 것을 지적한다고 설명하였다.

그런데 2021년 현재의 한국을 꿰뚫어 본 공자의 표현 그 자체라고는 생각 들지 않는가?

말 그대로, 땅을 돈으로 보고 부동산으로 치부하는 자들에 대해 완곡어법도 아닌 직설화법으로 후려 새리지 않는가? 과연 세계의 곳곳에 중국인들이 사지 않는 부동산이 없다고 하더니 강남에 중국 졸부들의 묻지 마 사재기가 시작되어 무르익은지도 수년이 되어간다. 공자는 이미 이 모든 소인들의 행태를 예상하지 않았단 말인가? 그래서 대표적으로 懷土를 쓴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여당 야당 정부 인사를 막론하고 강남에 똘똘한 한 채가 없는 이를 찾아보기 어렵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는 기본이고, 상가나 개발예정지로 된 농토에 이르기까지 땅땅거리며 사는 그들의 행태가 어쩜 이리 천편일률적으로 닮아 있는지 한심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런 이들을 부러워하고 그런 정보를 나눠 받기 위해 은혜를 받겠다고 경성제국대학의 최고위과정에 등록하는 얼빠진 인간들을 숱하게 봐왔다. 하긴 그 모양새를 보고 벤치마킹을 한답시고 경성제대 이외의 대학은 물론, 지잡대까지도 지역 유지들끼리의 네트워크를 만든답시고 최고위과정을 개설해두긴 했더라.

대학에서 설치하는 최고위과정이라는 것 자체가 작명 센스부터 기가 막힌다. '최고위'란다.

조건과 기준도 명확하다. 자신의 기업체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 평균 연 매출이 얼마 이상이어야 할 것 등등

그래서, 그런 자들을 모아서, 또 그런 자들을 동경하여 그 틈에 어떻게 해서라도 끼려는 그들을 모아놓고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대학은 장사를 해서 좋고, 그들은 서로 내부 정보를 공유하고 인맥인지 네트워크인지를 해서 좋다 뭐 이런 의도인 셈인가?

이 장에서 공자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뭐 눈에는 뭐만 보이기 마련이다.

매일 생각하고 품고 소중히 여기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을, 그리고 미래를 의미한다.

돈돈하며 부자가 되고 싶은 자들을 무작정 탓하고 욕할 수만은 없다.

그에게도 그만한 사연이 있을 것이다.

다만, 돈돈하면서 학문을 하고 수양을 하는 군자를 목표로 하는 것처럼 가식을 떨지는 말라고 충고한다.

자신이 내내 생각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을 지향해나갈 뿐이다.


돈 밝혀서 돈 챙기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자신의 권력을 적당히 휘두르고, 그것을 통해 내부 정보를 얻고 또 비슷한 무리들과 어울리며 붕당을 이뤄 사익을 도모하면서 이마에 이미 '소인'이라고 찍혀 있는데, 가슴에 국회의원 배지나 변호사 배지를 달고 있다고, 검찰, 법원, 언론사 출입증을 달고 있으면서 어설프게 정의를 표방하고 군자를 목표로 하는 냥 어쭙잖은 가식을 떨지 말란 말이다.

그들이 치부하는 과정이 다른 사익을 도모하는 자들에게 걸려 뉴스에 타고 법원에 끌려 온 것을 욕하면서 당신이 그들이 알았던 정보를 미처 손에 넣지 못한 것이 아쉽고 억울하다면 그냥 배 아프다고 하지, 정의를 운운하며 당신이 군자를 목표로 수양하는 자인 양 촛불 들고 광화문에 나가서 맥주캔 따지 말란 말이다.


똥파리는 똥이 많은 곳에 꼬이기 마련이다.

냄새가 지독하고 심하기 때문에 그들이 꼬이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똥파리가 싫다고 파리약을 뿌려봐야 악취에 악취를 더할 뿐이다.

결국 근본이 되는 똥덩어리는 치워버리지 않으면 파리는 내내 꼬이고 왱왱거릴 것이다.

눈에 보이는 똥은 그나마 치우기라도 쉽다.


그들의, 그리고 당신들의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는 그 똥. 덩. 어. 리. 는 도대체 언제 당신의 머리와 마음에서 치워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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