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수형 직전 스스로를 천거하였는데도 중용되지 않자...

탈영하여 도망을 치다가 대장군으로 스카우트되다.

by 발검무적

집안은 왕족과는 거리가 먼, 보잘것없고 가난한 집안에 지나지 않았다.

가난하게 자란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탓에, 품행도 그다지 단정하지 못해 어디서 추천조차 받지 못했다.

허우대는 멀쩡하여 키도 훤칠했지만 장사꾼 노릇도 변변히 하지 못해 항상 누군가에게 빌붙어서 밥을 얻어먹는 이른바, 백수 신세였다. 이 때문에 주위 사람들은 거의 그를 백수 겁쟁이 놈팽이 정도로 업신여기면서 호감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는 어머니 장례를 치를 비용조차 없었다. 그래서 본인이 직접 물기 없는 높은 곳에 어머니를 매장하여 마치 그 주위에 1만여 가를 둔 것 같이 했는데, 사마천(司馬遷)이 사실 확인을 위해 직접 회음현에 가보니 그 모양이 진짜로 그러하였다고 전한다.

어머니의 장례를 손수 치른 그때부터, 그는 상황은 막장이었을 지라도 뜻은 높은 곳에 두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당장 그가 무언가 된 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비참한 꼴로 지내던 중, 평소 알고 지내던 정장(亭長)의 신세를 지며 밥을 빌어먹었는데, 정장의 아내가 그 꼴을 지독히도 싫어해 일부러 새벽에 남편의 밥을 지어 먹여 그가 빈대 짓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한신은 그 뜻을 알고 정장과 절교하고 다시는 그 집에 가지 않았다.

그렇게 밥을 빌어먹을 수 있는 재주도 없고, 굶주린 채 낚시터를 어슬렁거렸는데, 빨래하던 아낙네가 그 모습을 불쌍히 여겨 그에게 밥을 주었고, 그는 그걸 얻어먹으면서 굶주림을 해결했다. 며칠 동안 밥을 얻어먹자, 그는 워낙 고마워서 아낙네에게 이렇게 약속하였다.

"내가 나중에 꼭 베풀어준 은덕에 보답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아낙네는 성을 내었다.

"대장부가 스스로 살아가지 못해 내가 젊은이를 불쌍히 여겨 밥을 준 것이니 어찌 보답을 바라리오!"
일반천금(一飯千金; 한 끼의 밥을 천금으로 갚다)의 고사를 그린 삽화

초한 전쟁 당시, 한나라 한고제(漢高帝) 시대의 장군이자, 제후왕.

전쟁사에서 최고의 지휘관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불세출의 명장(名將), 한신(韓信)의 이야기이다.


한신은 세계 전쟁사를 통틀어도 흔히 찾을 수 없는 전설적인 명장이다.

잡병 3만으로 시작해 위(魏), 대(代), 조(趙), 연(燕), 제(齊), 초(楚)의 6국(六國)을 멸망시키고, 당시 중국의 지배자였던 항우를 참살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워 유방에게 천하통일의 위업을 안겨준 인물로 평가된다.

그 과정에서 기동전, 배수진, 우회 공격, 전면전 등 온갖 방식의 전술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했고, 전투란 전투는 모조리 이겼던 것만 보더라도 한신의 군사적 능력과 전공 및 업적에 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런 그가 대장군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겪었던 고초는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앞서 이야기에서 본 것처럼, 동네 아낙네들에게도 무시당할 지경인데, 젊은 사람들에게는 말할 나위도 없는 백수 놈팽이 취급을 받던 나날이 이어졌다.

어느 날 회음의 젊은 사람들 중 백정 한 명이 대놓고 한신을 욕하면서 소리쳤다.

"네가 체격이 좋고 칼도 즐겨 차지만 속은 겁쟁이가 아니더냐? 네가 용기가 있으면 나를 찌르고 이 길을 지나가고, 없다면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 지나가라!"


한신은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허리를 굽혀서 가랑이 사이를 질질 지나갔다. 마침 길거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그 모습을 보고는 비웃음을 터뜨리면서 한신에게 겁쟁이라고 놀려대었다. 이 사건으로 한신은 고향에서 그야말로 웃음거리 신세로 떨어져 버렸다.


답이 없는 찌질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한신에게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진나라의 상황은 말이 아니었다. 진시황(秦始皇)의 시대부터 이어진 폭정으로 백성들은 신음했고, 이세 황제(二世皇帝)는 환관 조고(趙高)에게 모든 것을 일임한 채 사치와 방종에 빠졌다.

결국 폭탄은 터져버려 BC 209년, 진승(陳勝) 등이 처음으로 저항을 시작하여 진승오광의 난이 발발했고, 진승은 장초(張楚)를 건국한다. 이에 여러 군현의 백성들도 모두 진나라 관리를 때려죽이고 봉기에 동참했다. 이때, 오현(吳縣)에서 거병한 항량(項梁) 역시 북상하여 회수(淮水)를 건너던 참이었다.

한신은 칼을 하나 달랑 차고 그대로 항량에게 달려가 그 부하가 되었다.
그렇다고 그가 출중한 인물이라고 인정받거나 발탁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항량은 싸움에서 패해 항우(項羽)가 그 세력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한신은 겨우 '집극랑(執戟郞)'이라는 자리에 임명되었다.

상황이 조금 나아진 듯싶기도 했지만, 한신이 무슨 제안을 올릴 때마다 항우는 철저하게 무시했고, 어떤 제안도 채택해주지 않았다. 결국 참다못한 한신은 항우에게서 도망쳐 버리고 만다.

마침 그 시기는 유방이 홍문연(鴻門宴)의 일이 있은 후, 천하의 벽지, 파촉(巴蜀)으로 들어가던 때였다. 한신은 그 행렬에 합류해 한군에 귀속했다.


그러나, 한군에서도 한신의 자리는 없었고 거기서도 이름을 날리지 못한 채 곡식 창고를 관리하는 '연오'라는 낮은 직책을 맡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어떤 죄에 연루되어 한신은 참수형을 당하게 된다.

한신과 같이 있던 죄수들이 모두 끌려와 눈앞에서 차례로 처형당했다. 한신의 앞에 있던 13명이 모두 처형되고 마침내 한신의 목이 베어질 차례가 되자, 한신도 자신의 운명이 어이가 없어 하늘을 한번 바라보고는 마침 눈앞에 있는 하우영(夏侯嬰)에게 소리쳤다.

"왕께서는 천하를 취하지 않으실 것입니까? 어찌 장사를 죽이려고 하십니까!”


아무리 죽음을 앞둔 상황이긴 했지만, 그 기세나 말투가 예사롭지 않아 하후영은 그의 처형을 중지시키고 그를 불러 이야기를 듣고는 유방에게 천거하게 된다. 추천을 받은 유방은 한신에게 군량을 담당하는 치속도위(治粟都尉) 자리를 주긴 하였으나, 그를 중용하지는 않았다.


이때, 유방의 승상이었던 소하(蕭何)가 한신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고 난 후, 그가 생각보다 뛰어난 인물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 당시 한나라는 상당히 상황이 좋지 못했다. 파촉으로 걸어온 유방의 군대는 산시성 남정(南鄭)에 이를 무렵이 되자 이 벽지 생활을 견디지 못하겠다며, 하루에도 장수 수십 명이 도망가버리는 막장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머나먼 지역에 고향을 두고 온 병사들도 매일매일 동쪽의 고향에 돌아갈 생각으로 노래만을 불러댔다.
이렇게 탈영을 하던 장수들 사이에 한신도 끼어 있었다. 어차피 이 무리에 속해 있어 봐야 유방은 자기를 써주지도 않을 것이라고 여긴 끝에 탈영을 감행한 것이다. 이 사실을 들은 소하는 미처 사정을 고할 겨를도 없이 한신의 뒤를 쫓아 추격했다.

탈영하여 도망가는 한신을 쫓는 소하를 그린 그림

이때 유방은, '이제 소하마저 나를 버리고 가는구나!'라는 생각에 두 팔을 잃은 것처럼 낙담했다. 이후, 소하가 한신을 데리고 돌아오자 기쁘기도 하고 분통이 터지기도 해서 연유를 물었는데, 소하는 한신을 잡으러 갔던 것이라고 사실대로 고했다. 이에 유방은 지금껏 도망 간 장수가 그리 많았으나 소하는 직접 누군가를 다시 붙잡으러 간 적이 없었다며 한신 같은 이를 붙잡으러 갔다는 말은 거짓이라 추궁하자 소하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그를 대장으로 임명할 것을 권했다.

"여러 장수들 같으면 얻기 쉽지만, 한신 같은 자라면 나라안의 인물 중 그에 비견할 자가 없습니다. 왕께서 꼭 오래도록 한중(漢中)의 왕이 되려고만 하신다면, 한신을 쓰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반드시 천하를 다투고자 하신다면, 한신이 아니면 더불어 대사(大事)를 도모할 만한 자가 없습니다. 원컨대 왕께선 편안히 결정하십시오."


이때 한신은 그저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던 하찮은 인물에 지나지 않았지만, 소하는 한신의 진면목을 제대로 읽어낸 유일한 인물이었다. 유방 역시 이런 벽지에 처박히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한신을 장수로 쓰겠다고 마지못해(?) 허락한다. 그러자 소하는 그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고개를 젓는다.

"비록 장수로 삼으신다 해도 한신은 머무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유방은 한신을 대장군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소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또 다른 제안을 한다.

"대왕은 평소에 오만무례하십니다. 오늘 대장군을 임명한다고 하시면서 대장 될 사람에 대한 태도가 마치 어린아이 대하듯 하십니다. 이런 자세로 인해 한신 같은 호걸들이 대왕 곁을 떠나려고 합니다. 왕께서 한신을 대장군에 임명하시려고 한다면, 필시 좋은 날을 택해 목욕재계(沐浴齋戒) 하신 다음, 단을 세우고 예를 갖추어 의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에 유방은 소하의 제안대로 단을 세우고 대장군을 임명하는 예를 갖출 준비를 한다. 그러자 번쾌나 조참같이 그동안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는 장수들이 '드디어 나를 대장군으로 승진시켜주는구나!' 하며 잔뜩 기대를 하고는 식장에 모인다. 그런데 그렇게 정작 모여 주인공 석을 보니 웬 키만 훤칠한 듣보잡이 단에 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에 장수나 병졸이나 할 것 없이 일군(一軍) 모두가 경악한다.

그렇게 한신의 전설은 이 날을 시작으로 막을 열게 된다.

한신의 그릇을 알아본 소하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유방이 단지 작은 지역의 제후만을 노리던 작은 그릇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대장군 한신의 전설은 시작도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고작 군량미와 관련된 사소한 죄에 얽혀 참수형을 당하기 직전에 스스로 천거하여 겨우 이어지고 이어진 인연 끝에 한신은 소하를 만나게 된다. 심지어 만나고 난 후에도 한신은 소하가 어느 정도의 인물이고 자신을 얼만큼 읽어내고 자신을 중용하려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낙담한 끝에 탈영을 감행하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탈영은 군법에 의거하여 사형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저 백수 놈팽이의 생활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결정을 했던 한신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이유를 막론하고, 한미하기 이를 데 없는 일개 탈영병을 대장군으로 천거하겠다고 직접 말을 끌어 다시 붙잡아오겠다고 달려 나간 소하의 생각 역시 함부로 재단하기 어렵다.

천하를 제패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인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수긍하고 미관말직의 군사를 예를 갖추어 대장군으로 모시는 식을 갖춘 유방은, 그만한 그릇이었기에 한신을 통해 천하를 얻게 된다.

당신이 지금까지 세상으로부터 받은 대접이 얼마나 한미하고 초라한지 나는 미처 알지 못한다.

당신이 이제까지 노력하고 고생한 것에 비해 당신의 노력과 능력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이 짧은 인생을 살면서

어떤 목표를 세웠다면 당신은 그것을 반드시 완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이 다른 어느 누구와도 아닌,

바로 당신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능력과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일궈낼 수 있을지 온전히 알아봐 주는 사람을 당신은 결코 알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그만한 능력을 갖추고 그만한 위업을 달성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사람이라면

당신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나타난다.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을 위해, 그리고 더 큰 목표를 가진 이들이 당신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한신이 유방에게 대장군으로 중용되고 난 뒤, 백전백승의 전설을 써나가기 전에 나눈 최초의 대화가 있다.


파촉까지 밀려 벽지에서 자신이 항우보다 못하다고 자괴감에 빠져 있던 유방에게 한신은 자신이 항우의 밑에 있으면서 분석했던 큰 그림을 설명한다. 그 이야기 하나만으로 유방은 자신이 잊고 있던, 천하를 차지하겠다는 큰 꿈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 그리고 한신을 너무 늦게 대장군에 임명했다고까지 후회하고 그의 그릇을 인정한다.


당신이 인재로 천거되고 전설을 이룰만한 자질을 가진 사람으로 읽히기 위해, 당신은, 지금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외에 할 것이 없다.

당신이 구태여 당신을 알아봐 줄 누군가를 찾는 것은 무의미하거니와, 애초부터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당신의 무궁한 가능성과 자질을 읽어내 줄 사람은 이미 당신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

시대나 상황이 준비가 안된 것이 아니다.

당신이 준비가 아직 덜 되었을 뿐이다.


운명은 당신이 준비가 다 되었을,

바로 그때,

그것이 설사 당신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망치려고 결정한 순간이라 할지라도

당신을 다시 원래의 위치로 올려놓고야 만다.

그러니 결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마라.

당신을 알아봐 줄 그가 곧 나타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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