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위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지위에 설 것을 걱정하며,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알려질 만하기를 구해야 한다."
공부를 하고 수양을 하려는 자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묻고 방향을 제시해주는 글이다.
여기서, 설 바를 걱정한다는 말은, 자신이 그 지위에 설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걱정한다는 뜻이고, 알려질 만하기를 구해야 한다는 말은, 그 명성에 합당한 실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所以立이란, 그 지위에 설 수 있는 것을 말하고, 可知란 남에게 인정을 받을 만한 실제를 이른다.
정자(伊川)는 이 장에 대해 단 한마디로 공자의 메시지를 요약한다.
君子는 자신에게 있는 것을 구할 뿐이다.
<논어>를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처럼, 공자는 높은 정치적 이상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일환으로 제자를 직접 가르치고 양성하였다. 공자에게 배우겠다고 모여든 제자들은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라기보다 기본적으로 훌륭한 벼슬아치에 등용되기 위해 학문을 익혔다. 공자는 그들이 제대로 된 공부를 통해 벼슬아치로 높게 등용되어 자신의 이상이 실현되는 것을 꿈꾸고 기대했다.
그렇게 기본적인 인품과 정치 응용능력까지 공부를 하고 벼슬아치로 등용된 공자 제자 중에는 상당히 높은 지위와 명성을 얻게 된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전 공부에서도 출세한 제자의 비참한 현타를 듣는 공자의 탄식을 본 것처럼, 현실과 수양 공부의 성과는 반드시 일치하지만은 않는다. 수양의 정도나 공부가 언제 어디서나 인정을 받고 올바른 자만이 중용되고 인정받아야 함에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뜻이다.
매번 사고를 치고 제대로 자기 업무를 소화해내지도 못하는 무능한 소인배이면서도 높은 지위와 명성을 누리는 자가 있는가 하면 군자의 덕성과 능력을 지녔음에도 발탁되지 못하고 초야에 묻혀 무명으로 지내는 사람도 많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내실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먼저 어떻게해서든 줄을 잘 서고 옳든 그르든 그들이 시키는 일을 묻고 따지지도 않고 처리하면서 그들의 뒤를 따라 올라가려고만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 장은 바로 그런, '현실적'이라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변명이라며 입에 올리는 정신 나간 것들에 대한 호된 질책이다.
이 혼탁한 현실에서 흑백을 가릴 수 있겠는가?
오늘날도 그런 경우와 그런 자들은 많았지만, 수천 년 전에도 그런 자들은 여전히 있었기에 공자는 그들에게 가르침을 제시한다. 특이할 점은, 오히려 잘못된 것을 질책하는 내용임에도 이번에는 금기로 커트라인과 아웃라인을 제시하는 방식이 아닌, 나아갈 지향점을 직접 적어주는 친절을 보여주고 계시다.
그저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니 이런 스타일도 있다고?
택도 없는 소리 하고 있다.
공자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일반인처럼 얘기하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내 수차례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굴지 말고, 이렇게 해보는 것이 어떻겠는가?'라는 방식의 어법은 완곡한 권유의 방식이다.
'그 따위로 살지 마라'는 방식의 어법은 강한 질책일 뿐 실질적인 대안은 생략해버려 난감할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군자이다.'라는 방식의 어법은, 나와는 유리된 별세계의 이야기라고 여기기 쉽다.
<논어>를 편집한 제자들은 그 다양한 방식의 공자의 가르침을 직접 듣고 배우고 공부한 자들이다.자신의 선생님이 어떤 패턴을 가지고 있는지 너무도 잘 안다.
이 장의 가르침이 갖는 방식은, 질책보다는 위로가 더 크다. 그리고 그 위로하는 대상이 이제까지의 질책을 받아야 할 대상들과 다르다.
제대로 말귀를 못 알아들은 제자나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대부들을 향한 질책은 호되고 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 공부를 시작한 초심자나 자신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좌절하고 갈 길을 잃고 힘겨워하는 제자를 향해 회초리를 드는 것은 어리석은 교사나 하는 짓이다. 선생님은 다르다.
수양이랍시고 공부도 열심히 해왔는데 변변한 지위도 하나 없고,
제법 공부를 하고 인정도 받을만하다고 기대하고 있는데 능력을 인정해주고 불러주는 이 하나 없는,
그래서 내가 뭐하러 이렇게까지 공부하고 수양하겠다고 달려왔던가 하며 어깨가 축 늘어져 앞으로 어떻게 살지 막막해진 제자에게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저 실망하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을 찾아서, 정작 발탁되었을 때는 늦으니 지금 그 부분들을 보완하고 준비하라고.
내가 정말로 그 자리에 설만한 자격과 능력을 갖춘 자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그 자리에 서게 되면 어떤 것이 필요한지를 파악하고 미리 준비하라는 것이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데는 이유가 다 있으니 그 이유를 찾아 정말로 그들이 나를 찾을 수 있게 확실하게 준비하여 제대로 알리라는 것이다.
이 부분은, 수천 년 전의 당시에도 중요하지만, 현재에는 더더욱 중요한 부분을 집어 일러준 부분이라 하겠다.
능력과 자격을 갖춘 자라 할지라도 그저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그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 자인지 알리가 없다. 능력이 출중하면 자신이 나서지 않더라도 주머니의 송곳처럼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는 고사성어 '낭중지추(囊中之錐)'의 주인공 모수(毛遂)마저도 평원군에게 나가 스스로 천거하였기에 같은 뜻임에도 '모수자천(毛遂自薦)'이라는 글도 함께 쓰이는 것이다.
이 두 글이 모두 같은 의미임에도 뒤에 말이 나온 것은 현실적인 이유를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 인식해야 할 부분은, 모수(毛遂)는 준비가 된 상태에서 자신을 알리기 위해 나섰던 것이지 그저 자신을 알아달라고 나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같은 단어를 부러 계속 쓴 것에 눈치챈 독자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맞다.
이 장의 숨겨진 방점과 눈깔자는 '자천'이 아닌 '준비'이다.
우리는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준비된 사람'이라는 말을 참람되게 쓰며, 결국 준비는커녕 패가망신에 이르러 감옥으로 간 많은 전문 블랙 유머 유명 정치인들을 숱하게 봐 왔다.
그들이 말하는 준비가 그 자리에 올라 돈을 챙기고 지 가족 친지를 챙기며, 더더 높은 자리로 올라 더 많은 돈과 명예를 움켜쥐고 목 안에 욱여넣을 요량이었다면, 그들은 충실히 자신의 언행에 일치한 행동을 한 셈이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는가?
시험을 준비하는 이유가 합격을 하기 위함인 것은 굳이 묻고 답하지 않아도 아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예컨대 노량진에 젊음을 상납하고 철밥그릇이 최고라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묻는다.
당신이 그렇게 원하는 철밥그릇을 얻어내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갖게 되면 무엇을 어떻게 할 생각이며, 어떤 준비를 하느냐고.
그러면 가볍게 웃으며 첫 질문에 대답했던 이들의 입이 굳어버린다.
내가 어떤 부서에 들어가게 될 줄 알고 미리 무슨 준비를 할 수 있단 거죠?
그리고 내가 준비를 한다고 해서 그게 어떤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그건 정작 부서 배정받고 일을 익히면서 해나가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일선 현장에서 정신 나간 민원기간 연장 버튼을 누르고, 연차는 칼같이 챙기는 얼빠진 공무원들이 늘어가는 것이고, 바로 옆자리 상사에게 제대로 출근인사와 퇴근 인사조차 하지 않으면서 그것이 '쿨한 요즘 스타일'이라며 자신은 자신의 일에 매진하는 전문가라고 착각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런 이들이 많아지고 그래서는 안된다고 제대로 따끔하게 조언하고 가르쳐주는 선생님이나 선배들이 없거나 그들을 꼰대라며 등한시해버리며 키득거리는 사이, 우리 대한민국은 여기저기 좀먹는 정도를 넘어 속에서부터 곯아 터지기 시작하여 도저히 손쓸 수 없는 지경으로 전락해버리고 말게 될 것이다.
보스와 리더의 차이
당신이 직업을 갖고 일을 하는 이유가 잘 먹고 잘 사는 것, 혹은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물론 그러한 이유들이 부수적으로 따라올 수는 있다. 그리고 호구지책이라 그것이 기본적으로 갖춰져야 할 것이라는 것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종국의 목적이 되거나 본질이 된다면 당신의 삶이 너무 가치 없는 것으로 전락해버린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당신이 이 짧은 당신의 삶을 살면서, 어떻게 무엇을 하면 살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나 준비도 없이 그저 살아간다고 생각하고 대답한다면 너무 서글프지 않느냔 말이다.
소확행이 어쩌구 하면서
맛있는 거 먹으러 맛집에 다니고
주말이라 자동차 끌고 캠핑을 다니며
돈 많이 벌어 좋은 집으로 이사하고
좋은 차 끌고 다니고 싶은 것도
인간이기에, 그저 개념 없는 뻘짓이라고 폄하하지 않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당신의 삶.
어느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고
그래서는 안 되는 당신의 삶.
존중받고 인정받고 싶은 당신의 삶과 직업, 일.
그것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선택되거나 인정받은 다음에
부서 배정받고 천천히 배우는 게
가능하지 않단 말이다.
어느 정신 나간 회사에서 사람을 뽑아 돈을 줘가면서 일을 가르치겠는가?
어느 정신 나간 정부에서 당신에게 월급을 꼬박꼬박 주면서 당신을 전문가로 키워주고, 심지어 당신이 전문가가 되어 고위직 공무원이 될 즈음 돈 더 많이 주는 민간회사로 가서 '공무원+마피아'로 전직하게 두겠는가 말이다!
시대가 바뀌어 옛날과 달리,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해 제대로 된 실력을 갖추기만 하면 부와 명성이 찾아들 확률이 높아졌다고는 한다. 사실이다. 최근 재벌을 제끼고 부호 리스트에 오르는 자들이 IT계열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은 그러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음에 다름 아니긴 하다. 또 반대로, 포장된 능력과 숨겨진 인성이 한 방에 폭로되어 말 그대로 '폭망'하는 이들도 종종 발견한다. 대중적으로 인기와 명성을 누리던 정치인의 추악한 실상이 드러나면서 한순간에 주저앉아 손가락질을 받는 것이 이제 할리우드 영화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천 년이 지난 지금에 오히려 더 적확한 공자의, 위로라는 이름의 가르침은 수천 년을 거듭했기에 더 반성하게 되고 그렇기에 더 화가 난다.
정자가 정리한 한 마디의 말처럼, 결국 그 모든 원인은 나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도 문제 될 것이 아니고, 환경이 안 좋아서 내가 제대로 더 클 것을 못 큰 것도 아니다.
당신이 어떤 일로 인해 서운하고 속상하고 이게 아닌데 싶다면, 먼저 당신에게서 원인을 찾고 분석하고 다시 그걸 해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