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이라 함은 있을 땐 당연한 듯하나, 없어선 안된다.

그래서 '기본'이라 부르고 반드시 갖춰야 하는 법이다.

by 발검무적


子曰: "能以禮讓爲國乎? 何有? 不能以禮讓爲國, 如禮何?"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예와 겸양으로써 할 수 있다면 나라를 다스림에 무슨 어려움이 있을 것이며, 예와 겸양으로써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면 예를 어찌하겠는가?"

이번엔 드디어 인과 덕 그리고 도를 논하다가 예까지 넘어왔다.

그런데 결론에 예를 논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 것을 대강 이해하겠는데, 예양(禮讓)이라 하여 '예와 겸양'이라고 번역하였다. 앞의 절은 그것만 가지고 있다면 나라를 다스리는데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뜻인 듯한데, 정작 뒷절이 문제이다. 그것으로 나라를 다스리지 못한다면, '예를 어찌하겠는가?' 뭘 어찌하겠다는 말인지 얼른 쉽게 와닿지가 않는다.

주자의 해설을 통해 힌트를 좀 얻어보도록 하자.

"讓은 예의 실제이다. 何有는 어렵지 않음을 말한다. 예의 실제를 두어 나라를 다스리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 예문이 비록 갖추어져 있더라도 또한 장차 어찌할 수 없는데, 하물며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이겠는가?"


讓은, '겸양'이라 번역은 하지만, '겸손'이라고 단순히 해석하고 이해할만한 개념이 아니다. 굳이 형식과 실제를 나누자면, (전에 한번 나오긴 했지만 당연히 기억하지 못할 학생들을 위해 다시 설명하자면) 고문에서는 文을 형식, 質을 내용으로 본다. 이것은 중국 고대 문학론에서도 그대로 사용된다.


다시 말해, 여기서 말하는 讓은 예의 실제적으로 담고 있는 내용에 해당하는 것으로 '실제'라고 풀어 설명한 것이고, 그에 비해,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적인 부분을 뒤에 禮文이라 칭한 것이다.

그런 주자의 힌트를 가지고 다시 본문의 의미를 제대로 풀어보자면, 예의 본질에 해당하는 禮讓을 기본으로 삼아 나라를 다스린다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으나 禮讓을 기본으로 삼지 못하게 되면 禮 자체가 형식을 갖추어 있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의미되시겠다.

즉, 위 사진에 쓴 글처럼, 마지막 문장의, '예를 어찌하겠는가?(如禮何)'라는 말의 의미는 '예는 있어서 뭐하겠는가?' 하는 탄식이고 경고이며 강한 부정의 의문을 통한 강조의 최상급인 셈이다.

그만큼 예가 중요하고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임을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비틀어서 말한 것이다.

이렇게 설명을 듣고 나니 의문이 든다.

굳이, 왜 이렇게까지 禮가 나라를 다스리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한 것일까?


그 대답은 이 장의 문법구조에 있다.

이 장의 내용이 읽고 듣는데 어색했던 이유는, 고문이라서가 아니다. 이런 화법은 <논어>의 공자의 화법에서 즐겨 사용하는 것이지 일반 유자들이 사용하는 화법이 아니다.

앞부분에서 전제로, 禮讓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하였다. 즉, 禮讓은 제대로 된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 필수 불가결한 '기본적인 것'이다. 그런데, 뒷부분에, '禮讓이 없다면 禮 자체가 쓸모가 없는 것'이라는 한 말은, 자칫 잘못 어리숙한 자가 읽으면, '禮讓을 기본으로 삼아 나라를 다스리지 않는다면 禮자체도 아무런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오독될 여지가 있다.


이것은 미묘한 듯 보이지만 큰 이해의 차이를 만들어버리는 이유가 된다.

다시 말해, 앞서 말한 것처럼 禮讓은 '禮의 실제'이기 때문에 나라를 다스림에 기준으로 삼아 지켜나가지 않으면 그저 禮의 형식만 갖춘 나라는 나라도 아니라는 준엄한 현실비판이다.

그 숨은 뜻을 제대로 읽어내는 사람에게만, 가슴에 보이지 않는 활과 대못이 박히는 공자의 무시무시한 살법이 구사된 것이다.

나라라고 다 같은 나라가 아니고,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무시무시한 혀 세치로 사람을 죽이는 살법, 알아듣지 못한 이들에게는 치명상이 없겠으나 그 행간을 읽어낸 사람에게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한 방이 터진 것이다.


'기본'이라는 말의 의미가 많이 희석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본'이 갖는 의미가 없어지거나 달라졌다고 할 수 없다.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 <논어>의 내용은 수천 년간 변화가 없었지만, 그것을 읽고 해석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바뀌어져 갔고, 이해의 폭도 저마다 다르기 마련이었다.

그렇다고 <논어>의 가르침이 갖는 '기본적인 의미'가 바뀌진 않았다. 아니, 바뀔 수 없는 노릇 아닌가?

기본을 떼지 못하고 응용이나 활용으로 넘어가는 것을, '엽등(躐等)'이라고 하여 학자들 사이에는 결코 해서는 안될 금기이자 무식하고 창피한 일로 여겼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되는 해당 장에서 다시 설명하기로 한다.)


기본은 어느 분야에나 있고,

반드시 거쳐나가야 할 것이다.


태권도의 정권 찌르기가 그러하고,

수영에서 발차기가 그러하고,

요리에서 재료 손질이 그러하며,

성악에서 발성이 그러하고,

복싱에서 줄넘기가 그러하며,

미술에서 데생이 그러하다.


기본기가 잘 닦여져 있으면 진도가 쭉쭉 나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응용과정에서 큰 어려움이 없이 레벨의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진다.

엽등이라는 것을 하게 되어버리면 처음엔 흉내라도 낼 수 있을 것 같지만 결국에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은 고사하고 그 단계를 제대로 소화하지도 못하게 되고

그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다.

기본은 그런 것이다.

예는 또 인을 갖추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단다. ^^*

그런데 이 기본은 무시되기 일쑤이다.

얼른 폼나고 멋진 완성된 것을 빨리 하고 싶은데,

기본적인 것은 시간도 많이 소요될뿐더러

무엇보다 재미가 없다.

특히 무의미하고 단순한 것을 잘할 수 있을 때까지

무한 반복해야 하는 것이 지겹고 지루하다.


예술과 운동을 배우는 것도 그러할 진데,

하물며 세상을 다스리는 것에 있어서 말해 무엇하겠는가?

자신을 다스리고 사람들을 바로잡아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드는 데 있어 기본이 없다면 어디서부터 바로잡아갈 것이란 말인가?


그래서 기본은 있으면 당연한 듯하고

없어도 별반 티가 나지 않을 듯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순간

심각하게 곤란한 상황이 발생한다.

기본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이미' 배우고 익혔어야 할 기본을 갖추었는가?

기본도 갖추지 못한 자가,

무슨 공부를 할 것이며,

무슨 대단한 포부를 가지고 꿈을 펼친다고 함부로 입을 놀린단 말인가?


나라라고 하여 똑같은 나라가 아니듯

사람이라고 다 똑같은 사람이 아니다.


기본도 갖추지 못한 자가,

'사람'이라 불릴 수 있을지

나는 그것에 대해 잘 알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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