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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n 10. 2021

대만에 사는 악녀 -2

과연 누가 배후인가?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30

  “기자입니까? 아니면 투잡으로 통신원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까?”

  다짜고짜 내 신분부터 묻는 그의 드라이한 말투가 질문을 준비하던 내 말문을 틀어막았다.

  “네?”

  연락을 확인하기 전에 간략하게 확인한 프로필이긴 했지만, 그랬다, 상대는 서울대학교 출신의 어엿한 중견 교수였다. 나처럼 적당히 지방대를 나와 유학이라는 이름으로 대만에 눌러앉아 인터넷 기사를 송고하는 것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대하기에는 조금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만만치 않은 능력을 가지고 있을 그였다.

  “다시 정확하게 묻지요. 내 연락처는 어떻게 알고 연락을 취한 겁니까? 그리고 연합뉴스의 기자라고 지칭했는데, 내가 아는 바로는 대만에는 어느 언론도 특파원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다른 일을 하면서 가십성 기사를 송고하는 통신원 아닌가요?”

  “연락처는 저도 정보원이 있으니까 알게 되었고요. 네. 맞습니다. 저는 기자가 아니고 통신원입니다. 하지만 가십성 기사를 송고하는 사람은 아니고요. 교수님의 사건 소식을 접하고 한국에 기사를 보내기 전에 무엇보다 교수님의 입장을 들어보고 싶어서,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뭔가 이상한 부분이 있어서 확인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연락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약간 흥분된 어조로 언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느꼈지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솔직하게 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객관적이지 못한 경험에서 나온 터무니없는 자신감이었다. 오히려 그의 말투가 약간 경계심이 틀어졌다.

  “미안합니다. 나 역시 이런 일을 처음 겪어 조금 날카로워져 있었나 보네요. 아무래도 대만의 쓰레기 언론들이 이렇게까지 확인 없이 기사를 써젯길 줄은 몰랐습니다. 한국의 언론사라고 카톡을 보내와서 내가 더 날카로왔나 봅니다. 기분 상하게 했다면 사과하죠.”

  오히려 정중한 사과가 돌아왔다. 목소리와 단어 선택을 보건대, 이 사람은 분명히 상당한 교육과 교양을 갖춘 학자였다. 다시 말해, 이제까지 대했던 대만 애들이나 한국의 여행객들과는 다른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했다. 솔직함만이 진실을 알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자신감을 그대로 밀고 나가기로 하고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다 물으면 끝이 없을 것 같고요. 학교에서 무슨 연락이나 조치가 있었나요? 일단 그게 가장 궁금합니다.”

  기사상으로 보면 학교 총장의 비서실장이 매스컴에 바로 진상조사를 한다고 밝혔고, 그 말이 맞다면 교수에게 뭔가 연락이 가고 조치가 진행 중일 터였다.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감정을 상하지 않는 꼭 필요한 과정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아니요. 학과장에게서 일방적으로 휴가로 처리할 테니 당분간 하던 강의는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만 들었고, 학교 측에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습니다.”

  불길한 예감은 맞았다. 학교 측은 일단 언론에 마치 진상조사를 바로 들어간 것처럼 말해놓고 졸지에 가해자가 된 교수에게는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고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지에 대해 밑그림을 그리고 불리하게 될지도 모를 퍼즐을 어떻게 맞출지 계산중이었던 것이었다.

  “내가 묻고 싶은 게 많은데요. 먼저 한 가지 확인하지요. 한국에 이 쓰레기 같은 대만 기사를 송고할 생각입니까?”

  “사실이라면 충분히 제가 먼저 송고해야 하는데, 지금 제가 보기에도 교수님의 실명이 드러난 것도 아니고 조사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한국에 송고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럼 한국에 기사화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지켜진다면 당신과 계속 이야기할 용의가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나는 이 곳 사정을 잘 몰라요. 이번 학기에 부임해서 아직 넉 달도 되지 않았어요.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 쪽은 오히려 내 쪽입니다.”

  냉정하고 담담한 듯하던 교수의 목소리가 졸지에 무너지며 힘겨운 한숨을 토해냈다.

  “교수님이 대만에 처음 오셔서 잘 모르실 거예요. 그런데 제가 보니까 이번 사건은 뭔가 이상합니다. 얘네들이 한국인과 관련되어서 뭔가 얽히면 사정없이 물어뜯고 벌써 교수님 연구실에 찾아가고 난리를 부렸을 텐데, 아무런 소식도 없지요?”

  “네. 그렇지 않아도 학과장이 학교에 기자들이 찾아갈지도 모르니까 연구실에도 피하라고 하던데요.”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세요. 그거 다 뻥입니다. 만약 그럴 정도의 사건이었으면 연구실이 아니라 교수님의 댁까지 찾아갈 놈들이에요.”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큰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런데 지금 기사가 나온 게 교수님이 중심이 아니라 입법위원이 그냥 자기 법안을 띄우려고 기자회견에서 이런 제보가 들어왔다는 정도만 떠든 거예요. 실제로 무슨 조사가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경찰에 신고조차도 안 되었고, 제가 보기에는 엉성한 부분이 많아요. 최근에 대만에서 성희롱 사건 같은 경우가 많이 터지고 했지만 직접적인 증거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없는 증거도 기자라는 것들이 돈을 써서라도 확보해서 언론에 난리를 치기 마련이거든요. 그런데 지금 기자회견 소식 나간 거 이외에 아무런 소식이 없어요. 조금 지켜봐야 알겠지만, 대만 애들 스타일상 이건 그냥 한번 푹 찔러보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아요.”

  “나한테는 학자 생명이 달린 일이잖아요. 그런데 한번 찔러보고 아님 말구로 끝난다고요?”

  교수는 적잖이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대만의 언론이라는 것이 이제까지 보였던 성향에 대해 도무지 적응하지 못한 듯해 보였다. 무엇보다 그에게 대만의 정서나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조언을 해줄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은 명확해 보였다.

  “지금 기사를 보면, 외교대학교가 국립대잖아요. 그래서 교육부에서 직접 성평등 위원회인가 하는 위원회가 구성이 될 겁니다. 학생들이 거기 가서 신고를 했다니까 뭔가 학교에서 조만간 조사를 한다고 부르고 할 겁니다. 그때 가서 교수님의 입장이나 그런 걸 잘 말씀하시면 되는데, 으음, 무엇보다 지금 문제를 일으킨 학생들의 움직임이 이상해요.”

  내가 내내 의문을 가지고 있던 부분을 묻자마자 교수에게서는 내가 예상치도 못했던 충격적인 대답이 터져 나왔다.

  “맞아요. 사실 이 일을 누가 뒤에서 꾸몄는지 나는 알고 있어요. 한 명이예요. 바로 내 개인 조교를 했던 학부생 학생입니다.”

  “네? 학생이 꾸민 일이라고요?”

  ‘설마, 외교대학교에서, 학생이?’

  듣는 내 귀를 의심했다. 대만에서 사귀던 남자나 외국 주재원들을 대상으로 대만 여자들이 돈을 뜯어내기 위해서나 치정에 얽힌 복수를 하기 위해 성희롱이나 성추행으로 형사 고소를 하는 사건은 이제 대만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명문 대학을 자부하고 있던 국립대에서 버젓이 공부를 할 만큼 한 학생이 그런 짓을 했다는 말을 막상 들으니 조금은 황당하고 다음 말을 잇기가 당황스러웠다.

  “저기, 그럼 뭔가 그 학생이 이 모든 일을 꾸몄다는 증거 같은 거라도 가지고 계신가요?”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것이 부담스러웠는지 교수가 약간 주저하는 것이 느껴졌다.

  “혹시 그 여학생과 정말로 뭔가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혹시나 넘겨짚었는데 오히려 교수의 대답은 조심스럽고 진중했다.

  “당연히 그런 건 아니고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이 여학생이 나에게 사랑한다고 고백을 했어요.”

  “네?”

  ‘사랑 고백이라니? 둘이 내연관계라도 된다는 거야 뭐야?’

  “그 말씀은 교수님이 그 여학생과....”

  “아니요. 내가 그녀에 대해서 뭔가 어떻게 했거나 한 것은 없어요. 심지어 나는 키스는 고사하고 손도 안 잡았어요. 그 학생이 나에게 계속해서 집착을 보이다가 5월 24일 새벽 1시가 넘도록 내 연구실에 남아 있으면서 나에게 사랑한다고 고백을 해왔어요. 그래서 나는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는데, 일단 그 학생이 아내와 언어교환을 일주일에 두 번씩 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내 일을 도와주는 조교였기 때문에 함부로 확 잘라버리거나 화를 내지 못하고 타일렀어요. 그런데 그다음 날 우리 집에 다른 학생들과 아내의 기말고사 뒤풀이 겸 한국 요리를 해서 같이 밥 먹기로 했던 날, 다른 여학생들에게 똑같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얘가 눈이 확 돌아버린 거예요.”

  “아...”

  다 듣기도 전에 내가 알고 싶어 했던 궁금함에 한꺼번에 맥없이 풀려버렸다. 대만에서 수없이 보아왔던, 좋아했던 남자가 자신을 받아주지 않을 경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대만의 인터넷에 공공연하게 등장하는 그 방법을 그녀 역시 사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여쭤봐야 할지 모르겠는데요. 왜 기사에는 피해자가 7-8명이라고 나왔던데요. 그 말대로라면 그렇게 많은 아이들과 정말 그런 문제가 있으셨던 건가요?”

  “기사에 증거랍시고 사진이나 녹취 등이 나왔던가요?”

  “아, 그건...”

  사실 그의 질문이 핵심을 찌른 것이 아니라 나 역시 그 부분에 대한 당연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기에 뭐라고 딱히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 학생은 정말로 머리가 좋은 약삭빠른 아이였어요.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자신이 혼자서 그러면 안 될 걸 아니까 시간을 두고 여러 가지 작전과 함정을 꾸몄어요.”

  “작전이요? 함정까지요?”

  그의 표현이 다소 자극적인 단어들로 점철되는 것 같아 다시 환기시키려고 되뇌었다.

  “5월 24일에, 25일 새벽까지 고백을 하고 나서 25일 저녁 오후 6시 반에 우리 집에서 파티를 했어요. 파티라고 해봐야 내 연구실에 와서 공부하는 여학생 3명과 남학생 한 명 이렇게 4명의 학생들이 와서 집사람이 해주는 한국요리 먹고, 아이들하고 한국어 게임하고 차 마시고 그렇게 10시가 넘어서까지 놀다가 돌아갔어요. 그런데 그날 집사람이 같이 왔던 동성애자인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 여학생에게 유독 이상하게 달라붙고 팔짱을 끼고 친한 척을 하더래요. 그래서 이상했었는데 그 동성애 여학생을 선동해서 자신이 피해를 당한 것처럼 꾸미고, 6월 1일 새벽에 단오제 연휴가 끝나고 나서 바로 이상한 메일을 보내왔어요.”

  “메일이요?”

  “네. 자기가 3월 말에 조교를 시작하면서부터 이미 성희롱을 수차례 당했고, 자기는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내가 계속 그랬다는 둥, 24일 밤에 사랑고백을 한 건 결코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라 교수님이 유도하고 하라는 대로 따라 하다 보니까 말이 나온 거지 그저 사람 대 사람으로 좋아하는 감정을 말한 거라는 둥, 그러면서 조교를 사직하겠다는 억지 증거를 만들려는 듯 한 이메일이었어요.”

  “그걸 받고 답장을 하셨어요?”

  “아니요. 아침에 확인하고 너무 황당해서 아내에게 보여주고 상의를 했더니 아내는 이 학생이 자신에게 와서 달래주기를 기대하고 쓴 메일이니 이참에 그냥 반응을 하지 말고 그대로 학생을 잘라버리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얘기해줘서 그 조언이 맞다고 생각해서 무반응으로 그저 메일 잘 받았다는 라인만 보내고 일절 응대하지 않았어요.”

  “잘하셨네요. 그런데 정말로 교활한 여학생이군요. 치밀하게 그렇게까지 한 걸 보면...”

  나도 모르게, 알지도 못하는 그녀에 대한 그림자가 언뜻 느껴져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 메일, 괜찮으면 제가 좀 받아볼 수 있을까요?”

  “그래요. 어차피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면, 나도 이 나라와 이들을 잘 아는 누군가가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니까요.”

  “네. 제 이메일하고 연락처 카톡으로 보내 드릴게요.”

  “그런데 사실 그녀는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나는 왜 갑자기 여자 국회의원이 기자회견을 열게 되었는지도 오늘 오후에 다른 학생들이 알려줘서 알게 되었어요.”

  “그건 또 왜죠? 그 여학생이 직접 국회의원을 접촉한 건가요?”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오늘 나를 걱정하는 남학생이 ‘주영희’라는 우리 학교 강사의 페이스북에 이상한 글이 올라왔다고 하면서 자료를 나에게 보내줬어요. 나는 SNS를 사용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그걸 보니까 너무 황당하더라고요.”

  “주영희요?”

  아차 싶었다.

  ‘그러면 그렇지.’

  산산조각 깨진 것 같았던 파편 조각들이 퍼즐의 형태에서 한 순간 하나의 완벽한 그림으로 리와인드 화면을 돌린 것처럼 맞춰졌다.

  “아! 혹시 누군지 알아요, 그 사람?”

  “교수님. 아무래도 제대로 걸리신 것 같네요. 그 여학생이 정말 어마어마한 작전을 꾸몄네요. 잠시만요. 제가 지금 바로 주영희의 페이스북 좀 확인하고 올게요.”

  잠시 교수의 통화음을 저편에 두고 페이스북 계정에 들어갔다. 아마도 내 기억에는 아직도 팔로워로 되어 있으니 금세 찾을 수 있겠다 싶어 얼른 계정을 뒤졌다.

  ‘세상에, 맙소사!’

  주영희의 페이스북은 온통 오늘 했던 기자회견에서부터 시작해서 교수를 욕하고 씹는 내용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그는 과감하게 교수의 실명은 물론이고, 학교 홈페이지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는 그의 증명사진까지 올려놓고 아주 대놓고 욕을 퍼붓고 있었다. 더 황당했던 것은 그의 어눌한 한국어로 적어 내려간 적나라한 한글 표현들이었다.

  4년여 전에 서울대학교 수학과의 강석진 교수의 성폭행 사건을 언급하며 강석진 교수의 이름 옆에 괄호를 붙여놓고 ‘나의 은사 강신항 교수의 아들’이라고 적은 것이 보였다. 도대체 동양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어느 인간이 자신의 은사 이름까지 밝혀가며 그 아들이 성폭행하여 실형을 산 것에 대해 공공연하게 언급한단 말인가? 그런데 지금 외교대학교에 온 교수와 강석진 교수는 서울대 출신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접점이 없는데도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하나로 동일시하면서 이미 외교대학교의 교수가 성폭행을 저질렀다고 단죄해놓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교수님.”

  “네. 다 확인했어요?”

  “제가 다른 건 모르겠고, 이 ‘주영희’라는 놈이 어떤 놈인지는 아주 잘 압니다. 교수님이 이번에 아주 잘못 걸리신 것 같아요. 아주 악질이에요. 이 놈.”

  “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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