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간의 단오제 연휴가 끝나고 무더위가 슬슬 시작될 6월의 첫 주말이 시작되는 토요일 밤이었다. 나는 특별한 기사가 없어 어떤 기사를 한국에 송고해야 할지를 뭉기적거리던 터였다.
“류 기자님, 외교대학교 교류 게시판에 이상한 글이 올라왔어요.”
“네?”
평소 알고 지내는 외교대학교에서 중국어 교육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이명희에게서 연락이 왔다. 허울 좋아 말이 기자지, 특파원조차 나와 있지 않은 이 곳 대만에서 나를 ‘기자’라고 불러주는 사람들은 한정적이었다. 정확한 내 신분은 명색만 통신원인 대만에서 비리비리한 대학원 석사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는 돌아갈 자신이 없어 놀고먹는 룸팬이었다. 그나마 나를 ‘기자’라고 불러주는 이들은 연초에 택시 기사 성폭행 사건 때, 나 혼자만 스쿠프(scoop)를 터뜨렸다는 이유로 대만의 언론에게 린치를 당한 이후 내가 대만의 기사를 유일하게 송고하는 통신원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우리 대학에 한국인 교수가 학생을 성추행했다는 식의 글이 올라왔는데, 얘들이, ‘좋아요’부터 시작해서 공유하고, 글을 퍼다가 나르고 ptt에서 얘기가 퍼지는 것까지 아주 짧은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난리가 났어요. 그런데 정작 피해 당사자도 아니고, 글 내용이 좀 이상해요.”
“네? 한국인 교수가요? 저도 한번 들어가서 볼 수 있나요?”
“아니요. 외교대학교 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는 교류 게시판이에요. 제가 지금 내용 전부 캡처 해서 보내드릴게요.”
이명희 씨는 대만 남자와 결혼해서 대만에 산지 10년이 넘은 유학 잔류생인 여자였다. 우연히 알게 되긴 했지만, 나름 주변의 괜찮은 뉴스거리나 한국의 본사에 송고(送稿)할만한 이야깃거리들을 이런 식으로 가끔 내게 먼저 알려주곤 했다. 대개는 그저 ‘카더라 통신’이거나 가십성의 기사가 많긴 했지만 이번만큼은 자신이 다니고 있는 국립대학교에 대한 제보인만큼 약간은 흥분된 듯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는 것이 내 아드레날린에도 약간이지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소위 냄새가 났다.
흥분으로 인한 떨림이 조금씩 느낌과 파동으로 커져갈 즈음, 바로 그녀가 캡처 한 문제의 글이 카톡으로 날아왔다. 글을 올린 학생은 페이스북 아이디 검색을 통해, 외교대학교의 통계학과 3학년 남학생이라는 사실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특이한 점은, 그 문제의 글을 올린 학생이 남학생이라는 사실이었다.
‘성희롱 사건의 고발자가 남학생이라고…?’
이상한 상황에 만들어낸 고발자의 성별에서부터 눈에 걸려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고발대상자가 한국인 교수이고, 대만의 탑 3안에 드는 국립대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에서 만약 대어(大漁)라면 절대 놓칠 수 없었다. 누구보다 재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내 느낌은 내 손을 재촉했다. 하지만 재빨리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 장문의 글은 내 어색하고 불안한 느낌을 더욱 거북한 쪽으로 몰아갔다.
‘제가 알고 있는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아는 사람의 친구 이야기입니다.’로 시작하는 이 글은 처음부터 자신은 당사자가 아니고, ‘카더라 통신’에 의해서 이 글을 쓴다는 내용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어설프긴 했지만 ‘기자’라는 명함을 뿌리며 7년 이상 대만 땅을 돌아다닌 내 감은 거북하기만 했던 내 감이 이리저리 꿈틀대기 시작했다.
‘누군가 뒤에 있구나!’
대만에 ‘유학’이라는 명분으로 몇 년을 뭉개고 대만인들 틈에서 살아가면서 한국인으로서 내게 위화감을 주는, 작지만 여러 가지 것들에 익숙해져 가고 그것을 다시 걸러 기사에 반영하거나 한국에 기사를 송고하면서 정식 기자는 아니지만 나름 언론사의 기자들이 갖는 감이라는 것이 내 속에서도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건의 배후가 어렴풋하게 느껴지거나 대만의 정치인들이 시들어져 가는 자신의 인기를 위해 뜬금없이 반한감정을 이용한다던지, 한국 연예인들이 뭔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국내의 언론보다 훨씬 크게 보도하며 그동안 배가 아팠던 이들에게 안식을 전해준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조회수를 높이는 쓰레기 언론들의 보도 방식은 누가 뒤에서 어떤 오더를 내렸는지조차 쉽게 읽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길러진 내 어설픈 기자로서의 본의 아니게 교육되어온 내 감각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토요일 새벽 12시 막 넘긴 시간에 첫 번째 올린 엉성한 글을 봤을 때까지도 긴가민가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워낙 제멋대로 자기들의 목소리를 내는 대만의 대학생들이 어떤 이들인지 나 역시 함께 공부하면서 충분히 겪어 알고 있기에 그 정도는 있을 수도 있는 해프닝이라고 접어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내용의 후속타인 것처럼 이어서 토요일 저녁 6시에 올린 글을 보면서 이건 철저히 준비되어, 작정하고 화제를 만들거나 최소한 해당 교수를 확실하게 매장하기 위한 목적을 누군가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올린 글의 내용인즉은, 한 외국어 학과(사실 외국어 K학과라고 했으니 한국어 학과 이외의 학과는 다른 어느 학과를 상상할 필요도 없었다.)의 외국 국적을 가진 교수가 여학생들에게 성희롱을 했다는 것이다. 웃기는 것은 대만 옐로 페이퍼에서 최근에 많이 떠들어대고 있는 여러 가지 성희롱의 사례라고 하기에는 조금 약하다고 할 만한 자신이 겪은 일들을, 마치 여학생이 카톡이나 LINE상으로 남학생에게 하소연한 것을 그대로 따다 붙인 듯한 인상이 강했다. 다만, 특이했던 것은, 그 글을 올린 학생이 남학생이라는 것, 즉, 당사자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듣고 나서 자신이 너무 흥분해서 쓴다는 사실을 글의 맨 앞에 밝힌 것이다. 내 감이 움직인 것은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이렇게 허술하고 허접하게 하필 토요일, 거의 놀러 나가고 학생들이라면 핸드폰을 붙잡고 이런 글을 올리기에는 어울리지 않을 타이밍이 절묘했던 것이다. 원래 자신이 잃어버린 물건을 찾겠다고 급하게 올리는 글이 올라오는 학교 교류 게시판에 뜬금없이 이런 글을 올렸다는 사실이 내 감을 자극한 것이었다.
나름 대만에서는 랭킹 3위안에 드는 명문 국립대학교의 학교 게시판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는 것, 특히 너무 급하게 금요일 저녁부터 준비되어 새벽에 글이 올라온 후에 하루 종일 아무 일이 없는 듯이 기다렸다가 그날 저녁에 다시 글을 정리해서 2탄을 올렸다는 것은 의도성이 다분해 보였다. 그것은 대만의 뉴스 제공 시스템에 대해 조금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빤한 의도였다.
대만은 땅이 좁고 이슈가 적은 나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소 언론사랍시고 이름을 달고 있는 황색 언론사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어, 무엇이 되었든 간에 기사라는 이름으로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자극적이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을만한 기사를 찾아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말에는 너도나도 밖으로 쉬고 놀러 나가기 때문에 마땅히 뉴스거리가 없어 외신 소식을 준비해야 하는 대만의 기레기 언론들은 대개 페이스북의 조회수가 높은 글을 하이에나처럼 찾는 것이 공식화되어 있었다. 그런 기레기 하이에나에게 있어 외교대학교의 교류 게시판에 한국인 교수의 성희롱이라는 먹거리는 눈이 확 띄는 모든 흥행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반한감정, 성적 자극성, 여권 인식을 자극할만한 내용 등.
하지만 아무리 대만의 언론이 쓰레기라지만 이 정도 가십성 옐로페이퍼 기사를 버젓이 기사화하기에는 위험한 부분이 있었다. 무엇보다 증거가 부족했다. 아무리 외국인이라고는 하지만 국립대학교 교수가 직접 연루되어 있는 데다가, 명예로 먹고사는 대학교수를 ‘성희롱’이라는 굴레를 묶어서 내동댕이치는 일은 언론사로서도 다소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이 기사가 나가는 순간, 그는 학자이자 대학교수로서의 명예를 모두 잃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동시에 그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움을 걸어올 수 있다는 리스크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확실한 증거로 여학생의 자극적인 대화가 녹음된 녹취내용이나 교수가 보낸, 보기만 해도 육감을 자극하는 느끼한 내용의 메시지, 혹은 여학생을 건드리는 CCTV 화면이라도 있다면 이것은 스쿠프에 해당하는 상당한 구미를 자극하는 소식임에는 틀림없었다. 페이스북 조회수가 높은 글을 대강 부풀려서 기사로 옮기는 일은 허다했지만, 조회수 좀 올려서 그에 상당한 몇 푼 벌어 보겠다고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감수하면서 기사를 내보내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컸다.
그러나 이런 나의 자잘한 고민은 폭풍전야와도 같았을 일요일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바빴을) 하루 만에 허망하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월요일 아침 기레기보다 훨씬 더 심한 악취를 풍기는 것으로 유명한 여자 입법위원이 이 맛 좋은 네타를 가지고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이었다.
아침 9시가 조금 넘어 입법원(한국의 국회의사당)에서 민진당(民進黨; 현재 대만의 여당)의 여자 입법위원 천 타이페이(陳太妃)가 자기 이름 적힌 커다란 현수막을 벽에 두르고 기자회견을 연다는 소식이 들렸다. 주말 동안 특별한 뉴스거리가 없어 외신이라도 내보내야 할 판인 대만 언론들로서는 많은 기자들이 모일 수밖에 없는 타이밍을 그녀가 노린 것이었다.
“류 기자 갈 거예요? 한국인 교수 건이라는데요?”
평소 알고 지내던 대만의 양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안 가도 될 것 같은데요. 그 태비(太妃) 마마잖아요. 그 여자 찌라시 써주고 싶은 맘, 난 없는데요. 뭐, 혹시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제대로 된 증거라도 나오면 그때 가도 늦지 않을 것 같은데요.”
“류 기자가 그렇게 말하니까 나도 좀 가기 그렇네요. 한두 번도 아니고.”
내 대답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양 기자는 도리어 내 대답 때문이라며 입법원에 가는 걸 주저했다. 내가 말했던 ‘그 태비 마마’라는 말에는 대만에서 기자 짓을 하는 이들이라면 다들 알만한 그간 그녀가 벌인 모든 해프닝을 포함하고 있는 말이었다.
그녀는 타이난 지역구 출신의 여자 입법의원이었다. 10년 전에 몇 백표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입법위원이 된 이후 점차 득표수를 늘려 이제는 10여 년이나 이 지저분한 대만 정치판에서 각종 전투에서 죽지 않고 근근이 정치생명을 연장하면서 입법위원으로 먹고 산 여자였다. 문제는 그녀가 구차하게 죽지 않고 근근이 생명을 연장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젊은이들에게 인기몰이까지 하게 된 과정이 그녀의 또 다른 별명인, ‘노이즈 마케팅의 여왕’ 혹은 ‘태비 마마’라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녀는 소위 그 지저분하다는 대만 입법원에서도 자타가 공인하는 막말의 여왕이었다. 무슨 욕을 하거나 남자 입법위원과 멱살잡이를 해서 생긴 별명도 아니었다.
처음 있었던 사건은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기획된 것이 아니었다. 그녀 역시 초짜 의원에서 점차 시들어져 가는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기자회견을 통해 증거가 제대로 준비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상대당인 국민당 입법의원이 연루되었는지도 확인되지 않은 저녁 식사 모임에서의 일반인과의 시비를 비난하고 추궁한 것이었다. 국민당 입법위원이 식사를 했던 식당에서 작은 시비가 일어나 싸움이 났는데, 그 와중에 일반인에 해당하는 한 아줌마가 술에 만취해서 다른 사람에게 시비를 걸다가 우연히 그 식당을 나서는 국민당 입법위원의 차를 보았고, 그에게 자신과 사진을 찍어달라고 소리를 질러댔고, 남자 입법위원은 들은 채도 하지 않고 그냥 차에 탄 것이 다였다. 그 이후 그녀는 다른 일반인들에게 똑같이 시비를 걸면서 자신을 돌아봐주지 않은 입법위원의 이름을 계속 소리 지르며 난리를 쳤다. 이 아무것도 아닌 일을 마치 보좌관들과 함께 단체로 린치를 가하고 술 취한 그녀에게 여성으로서는 입에 담을 수 없는 심한 욕을 했다고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인격 비하성의 충격의 기자회견을 한 것이다. 그렇게 막말과 기자회견을 통해 강한 고발성 이미지를 만든 그녀는, 마치 힘없는 여자를 대신해서 싸워주는 여전사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자신의 인지도를 쌓는 것에 성공적으로 데뷔하는 것 같아 보였다. 여론은 술 취한 여자를 린치한 국민당 입법위원을 쓰레기인 것처럼 욕하는 그녀의 강한 분노에 포커스를 맞췄다. 열흘 후, 경찰 조사에서 이미 술 취한 여자의 해프닝이라는 사실이 보도자료를 통해 밝혀졌지만 이미 국민당 남자 입법위원은 지울 수 없는 폭군의 이미지를 뒤집어쓴 상태였다. 물론 기자회견을 하고 책임감 없이 그저 들은 이야기만 듣고 떠들어댄 진태비의 책임감 없는 행동에 대해 지적하고 정식 사과를 요구했지만 그녀는 철저하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활용할 줄 알았다.
대만의 법률에는 한국의 국회의원이 누리는 면책특권과 같은 독특한 한 가지 보호법이 있었다. 입법원(국회의사당)에서 공식 기자회견으로 발표하거나 떠든 사실에 대해 법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희귀하기 이를 데 없는 보호막이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법률과는 상관없이 야당에 대한 공격과 사과 요구마저도 그녀는 철저히 자신의 마케팅에 이용했다. 이번에 기자 회견할 때는 달리 자신의 이름이 대문짝처럼 걸린 현수막을 뒤로하고 의도적으로 지워질 것을 감안한 진한 화장 위로 눈물을 흘리며 ‘제가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관계자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는 기자회견을 다시 한번 연 것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그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대범한 여장부로서의 모습을 다시 한번 마케팅하는 퍼포먼스에 해당했다. 마치 자신이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그 제보만 듣고서 자신은 정의감에 넘쳐 나섰을 뿐이라며 자신은 언제도 약자들이 자신에게 그런 제보를 한다면 언제고 그들을 위해 이런 위험쯤은 감수할 수 있는 정의의 화신임을 재차 강조했다. 악어의 눈물이라는 것이 누가 봐도 뻔했지만 대만인들은 그녀의 눈물을 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를 용서했다. 오히려 젊은 층에서는 그녀의 그런 행동에 지지를 보내기까지 했다. 한국인인 내 입장에서 보자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대만에 오래 살면서 대만인들의 사과와 용서는 이상한 식으로 작용한다는 것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야만 했다.
어찌 되었든 그 사건 이후, 이제 노이즈 마케팅에 익숙해져 10여 년을 보내던 그녀가 찾은 가장 자주 언론에 드러날 수 있는 이슈로 택한 것은 ‘여성폭력’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녀 혹은 그녀의 참모는 아주 단순하지만 교활한 인물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대만의 헌법재판소에서 동성애간의 결혼을 인정한다는 판결을 아시아에서 최초로 내면서 그녀는 자신이 동성애자를 포함한 ‘여성을 위한 전사’ 임을 강조하면서 ‘성폭력’과 관련된 법안을 재빨리 내놓은 것이다. 그렇게까지 노이즈의 여왕이 집착하고 발 빠르게 움직인 이유는, 사실 4월 27일에 자살한 ‘린이한(林奕含)’이라는 여류 소설가의 자살사건이 발단이었다. 2016년 그녀가 출간한 첫 장편소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이 뜨면서 그녀는 일약 스타 작가로 떠올랐다. 소설은 13살 주인공 팡쓰치가 성폭력을 당한 이후의 고통과 심리적 갈등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하지만 사실 그녀의 소설이 히트를 치게 된 배경에는, 그녀의 예쁘장한 외모와 그녀가 타이난 여고에서 유일하게 대입고사 만점의 성적으로 국립 대만대학교의 의과대학에 입학했다는 점과 우울증으로 인해 자퇴했다는 점, 그리고 외교 대학교 국문과로 재입학 후 다시 우울증이 심해져 중퇴했다는 점 등 예쁜 외모와 특이한 그녀의 이력이 특이할 것이 없는 그녀를 대만의 인기인으로 만든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소설 속 주인공이 13살의 나이에 학원강사에게 강간을 당한다는 충격적인 사건이 배경이라는 점과 혹시나 예쁜 그녀의 외모와 연관 지어 그것이 자전적인 소설이 아니냐는 점이 소설이 공전의 히트를 친 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부인했지만 일부분 그 사건의 모티브를 했다는 점이 그녀의 자살과 함께 부각되었고 그녀의 아버지와 친구라는 민진당 국회의원이 폭로 기자회견을 통해 대만 보습학원계의 유명강사가 그 해당 인물이라는 것을 가십성 기사와 함께 쏟아냈다.
진태비는 후발주자였지만 그런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이 지역구로 있는 타이난 지역에서 벌어진 일인 만큼 대만 학원 강사가 실명이 아닌 예명을 써서는 안 된다는 다소 본건과는 상관이 없는 법안을 제청하면서 매스컴에 얼굴을 알리고자 했다. 그리고 비슷한 여성폭력이나 성추행과 관련된 건만 나오더라도 여성폭력의 잔다르크인 양 매스컴에 틈만 나면 기자회견을 열고 싶어 했다. 그러던 그녀에게 있어 이런 사건은 너무도 좋은 기회이자 자신이 전면에 드러날 수 있는 계기였던 것이다.
예상대로 기자회견은 허접하기 그지없었다. 그 흔한 녹음 자료나 사진 자료는 고사하고 글을 처음 올렸던 남학생과의 line 대화가 고작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최대한 몸을 사렸다. 외교대학교라고는 했지만 한국인 교수라고 하지 않고 외국인 국적인 교수라고 했으며 학과도 밝히지 않았다. 그렇지만 대만의 기레기들이 그것을 아랑곳할 일이 없었다. 그나마 이름이 조금이나마 알려진 언론에서는 진태비가 그런 기자회견을 했고, 해당 법안이 빨리 통과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말을 메인으로 삼기는 했지만, 지극히 자극적인 이를테면 ‘해당 교수의 출국을 금지시켜야 한다거나’, ‘교육부와 해당 국립대학에서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을 경우 당사자들이 경찰에 조사를 의뢰할 생각이라거나’하는 근거 없는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그 결과 때문이었는지 외교대학교에서는 이례적으로 바로 해당 교수의 2주 정도 남은 강의를 모두 다른 교수로 대치하고 조사에 들어갔다는 코멘트를 냈다. 아마도 처음 교류판에 올라와서 학교의 학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학교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 어느 정도는 준비를 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런 식의 기자회견이 될 줄은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않은 듯했다. 국립대에서 이런 문제를 언론에 먼저 흘릴 리는 없으니까.
다른 것은 기획의 냄새가 진하게 났으니 그러려니 할 수도 있었지만 가장 내 눈에 거슬렸던 기사는 한 줄이었다. ‘피해자가 최소한 7~8명’이라는 문구였다. 이것이 어느 출처를 통해 증명된 사실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다른 내용은 무시할 수 있어도 이것만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피해자가 한 명이면 이건 완전한 사기극이고 2~3명이라도 기획의 냄새는 짙다. 하지만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학생들이 최소한 7~8명이라는 기사가 사실이라면 이것은 정말로 사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세 사람이 없는 호랑이도 만들 수 있다면 성희롱 사건에서 7~8명의 피해자 진술은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셈이었다. 내가 별 거 아닐 것이라고 무시하려던 발걸음을 돌려, 집에 돌아가던 지하철역에서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다가 어렵사리 문제의 한국인 교수에게 연락을 취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던 까닭은 그 문제의 기사 한 줄 때문이었다.
6월 5일 월요일, 기자회견이 있던 날의 저녁 11시가 넘어 나는 한국인 교수의 전화번호를 카톡으로 입력하여 저장했다. 그리고 문자를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