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까지 오라고 했던 학교의 통지 메일의 내용대로 박 교수는 긴장하고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겨우 연구대루 5층에 도착했다. 목사의 딸이자 역사학과 4학년의 판판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번이나 박 교수의 결백을 자신이 증명하는 중요한 증인이라며 성평회에 직접 이메일을 보내고 한국어학과장에게까지 메시지를 보냈던 여학생이었다. 이 사건이 터지고 나서 박 교수의 연구실에 스스럼없이 찾아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돕겠다고 했던 단 두 명의 학생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교수님. 어디로 가면 돼요?”
“응. 일단 직원을 찾아가 보자.”
‘부학장실’이라고 되어 있는 옆에서 성평회 직원이라고 소개했던 나이가 40대쯤으로 보이는 눈매가 날카로운 여자가 나왔다.
“이쪽으로 오세요. 그런데 이 학생은 뭐죠?”
그녀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판판이 먼저 대답했다.
“저는 메일 드렸던 역사학과 판판이라고 하는데요. 오늘 교수님이 조사를 받으신다고 하셔서 제가 먼저 증언하려고 같이 왔는데요.”
아주 짧은 찰나 여자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가 돌아왔다.
“오늘은 교수님이 조사를 받는 날이니까 학생은 나중에 부르면 그때 찾아오세요. 오늘은 학생의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네? 여태 메일 보내도 아무런 답장이 없었잖아요?”
판판이 짜증 나는 듯이 다시 물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단호했다.
“안 되는 거니까 다음에 조사위원회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부를 겁니다.”
당황한 판판의 얼굴을 보면서 박 교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먼저 보냈다.
간이 회의실 같은 빈 공간에 보리차 한잔을 주고 그녀는 들어오지 않았다. 6시부터 7시 5분 전이 될 때까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빈 공간에서 박 교수는 자신의 심장 박동을 오롯이 들으며 흥분감을 가라앉히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이제 들어오시랍니다.”
안내하는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며 박 교수는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의 녹음 버튼을 재빨리, 그리고 자연스럽게 터치했다.
회의실로 들어가자 도시락으로 보이는 쓰레기가 보이고 음식 냄새가 진동을 했다. 가운데 늙은 남자가 한 명 앉아 있었고, 그의 오른쪽으로 목이 길쭉한 늙은 여자가 점잖을 빼면서 앉아 눈을 내리 깔며 쳐다봤다. 남자의 왼쪽에는 뚱뚱하고 성깔이 있어 보이는 여자가 특유의 거만한 태도로 앉아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교수의 옆에는 이제 막 도시락을 먹었는지 도시락을 정리하며 물을 마시는 한국인스럽게 생긴 여자가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박 교수가 먼저 인사를 건네자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엉성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들은 박 교수를 불러놓고 여유 있게 1시간가량 도시락을 먹는 시간을 가진 듯해 보였다.
가운데 앉아 위원장인 듯해 보이는 남자가 말문을 열었다.
“우리는 한국어를 하나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 통역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옆에 앉아 계신 배 선생님은 한국인이자 대만에 와서 사신지 이미 10년이 넘은 분이십니다.”
소개를 받은 여자가 다시 고개를 까닥하며 인사를 건넸다. 정작 남자가 하는 말은 이미 알아듣고 있지 않으냐는 듯 통역이라는 여자는 자기소개에 대한 통역은 시작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안녕하세요.”
단지 인사말이긴 했지만 강한 경상도 사투리가 물씬 묻어났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이런 자리가 처음이어서 무척 긴장이 되네요.”
박 교수도 예의를 갖춰 그녀에게 다시 인사를 건넸다.
“아 그러십니까?”
그들의 인사가 어정쩡하게 끝나기 무섭게 다시 위원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말을 이어갔다.
“일단 이번 성평회 조사위원회에 들어온 안건은 교수님에 대해 성희롱을 당했다며 4명의 학생이 고발을 하였습니다. 으음, 먼저 조사위원들을 소개하자면, 이쪽에 앉아 계신 분은 우리 외교대학교의 국제관계 연구소의 전임 강사를 하고 계신 바이 선생님이십니다. 또 이쪽에 앉아 계신 분은 노동연구소의 교수로 계신 리우 선생님이십니다. 저 역시 우리 외교대학교에서 주임비서를 맡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세 사람은 성평회의 구성 멤버이고 필요하시다면 아마도 타이완 교육부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우리의 정보에 대해서는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아 여기 이 문건은 우리의 조사과정을 모두 녹음하게 되는 데 그에 동의한다는 동의서입니다. 먼저 사인을 해주십시오.”
싸인이 끝나고 다시 약간의 정적이 흐르고 남자가 말을 이어갔다.
“아까 4명이 고발했다고 했는데요.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4명 중에 한 명은 다시 성희롱이 아니었다고 하면서 자신의 고발을 취하하였습니다. 그렇다면 3명이 어떤 내용으로 고발했는지 그 행위에 대해 먼저 들어보시겠습니까? 아니면 자신을 변호하는 얘기를 먼저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네. 일단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먼저 ‘츠리엔’이라는 여학생의 고발 내용입니다. 106년(2017년) 3월 15일에 연구실에서 교수님께서 오후 6시 30분 이후에 머리를 3-4차례 만지고, 3월 24일에는 아침 10시 넘어서 무릎과 허벅지를 만졌다고 합니다. 4월 12일 연구실에서 학생의 등을 두들겼다고 합니다. 4월 17일이 오전에 연구실에서 학생의 어깨와 팔을 만졌다고 합니다. 5월 3일 수요일에 ‘아이스’라는 식당에 가서 머리를 어깨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손으로 얼굴을 만졌다고 합니다. 5월 24일 수요일에 저녁 8시 30분부터 학생을 다음날 아침 1시 35분까지 있게 하면서, ‘선생님을 좋아하지 않느냐?’, ‘사랑하지 않느냐?’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손을 잡고 학생의 맥박을 직접 느끼도록 했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 ‘나는 나이가 많은데 중년의 아저씨를 좋아하게 된 것을 후회하느냐?’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유부남인 것이 너의 손과 발을 묶는 일이냐?’라고도 물었다고 합니다. 계약서를 써서 나와 조건을 얘기하자고도 했다고 합니다. 학생의 손을 선생님의 허벅지에 대고 눌렀다고 합니다. ‘머리를 만져도 되겠느냐?’라고 물어서 싫다고 했지만 머리를 돌려서 올려 보였다고 합니다. 1시 35분에 연구소를 떠났는데, 밖으로 나오면서 새끼손가락을 잡고 산보하겠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위원장이 계속 여학생의 진술서를 읽는 내내 박 교수는 한 부분이라도 놓칠까 싶어 그의 말을 계속해서 번역해서 한국어로 메모했다.
“그 여학생은 교수님의 업무 조교였는데 사직서를 6월 1일에 이메일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 이메일을 받으셨습니까?”
“네. 받았습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는 자신의 머리를 학생에게 가까이 댔다고 합니다. 또 허리를 찌르기도 했고, 뺨을 귀엽다고 하며 꼬집기도 했다고 합니다. 학생의 손바닥을 들어 손바닥과 마주치기도 하고 손바닥에 땀이 많다며 입으로 바람을 불기도 했다고 합니다. 두 번가량 학생의 몸매에 대해 교수님께서 ‘나는 너의 몸매 구조를 알 수 있다. 그게 부끄럽니?’라고 토론한 적이 있으며 컴퓨터에서 영화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학생에게 마우스로 여주인공의 몸을 더듬으며, ‘정말 귀엽지 않니?’라고 했다고 합니다. 학생이 몸을 터치하는 게 싫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터치했다고 합니다.”
위원장이 신나서 진술서를 계속 읽던 것을 마치자 바로 박 교수가 반발하듯이 물었다.
“이 무고 사건의 주동인물이라고 생각돼서 이 조사 전에 문건을 작성해서 제출했는데 다들 보셨나요?”
그제야 조사위원들이 박 교수가 냈다는 문건을 찾으려는 것인지 자신들의 앞에 놓은 문건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박 교수가 진술을 이어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친구는 계속해서 저에게 이상한 행동을 해왔습니다. 처음 106년 3월 15일에 연구실에 와서 제 아내와 언어교환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때 마침 원래 저의 업무 조교를 하기로 했던 대학원생이 돈 때문에 그만두겠다고 했던 사건을 아내와 얘기 중이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는 자기가 조교를 해도 괜찮겠냐고 먼저 물어왔습니다. 그날 업무 조교를 하기로 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조교를 원래 하기로 했던 여학생의 아버지가 사업을 한다고 해서 그런지 돈에 대해 너무 집착이 강하더라.’라는 얘기가 나왔는데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며 아빠에 대한 이야기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 사실도 있었습니다. 황당하긴 했지만 그저 아버지가 돌아가셨거나 무슨 말 못 할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말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결국 그 학생이 업무 조교를 대신해주기로 했고 그래서 학과 규정대로 일주일에 3시간을 공식적으로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으음”
박 교수가 중국어로 설명하고 통역이 약간만 도와주는 방식으로 진행하다가 이야기가 복잡하게 길어지자 박 교수는 한국어로 설명하기 시작했고 경상도 억양이 강한 여자 통역이 바쁘게 중국어로 설명했다.
“3월 24일은 정말 창피해서 얘기하고 싶지 않은데, 사실 아내가 한국에서 임신한 상태에서 왔었습니다. 늦둥이를 임신했었는데 이 곳에 와서 너무 스트레스가 심해서 결국 유산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날이 바로 유산 수술을 하기로 예약된 날이었습니다. 저는 대만에 올 때부터 가족들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아이들 두 명과 아내가 중국어를 하나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 곳에 부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도 국제학교나 한국학교에 보낸 것이 아니라 대학 옆에 있는 로컬 학교에 보냈기 때문에 상당히 신경을 써야만 했습니다. 아침에 아이들이 등교하는 것을 도와주고, 7시 40분에 연구실에 오면 8시부터 시작하는 아내의 언어중심 중국어 수업을 하기 위해 아내를 배웅하고 오전 일과가 끝나기가 무섭게 12시에 아내가 돌아오면 아이들을 학교까지 가서 데려오거나 큰 아이의 도시락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의가 있는 시간을 제외하면 아이들과 아내가 계속해서 저녁 9시 반까지 저의 연구실에 같이 있었습니다.”
박 교수가 설명 중에 울컥했는지 잠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3월 24일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그 여학생은 꾸며대고 있습니다. 일단 그 여학생은 오전에 저의 연구실에 찾아온 적이 없습니다. 아내의 불가피한 유산 수술 날까지 아이들이 그 수술을 보게 하러 가는 것이 미안해서 원래 당일 오전에 4학년 학생이 공부를 하러 오는데 그 학생에게 부탁을 하고 잠시만이라도 아이들과 연구실에 있어달라고 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학생도 그날 면접을 보러 간다고 자기소개서를 고쳐달라고 늦게 찾아와서는 그것만 고쳐가지고는 면접을 한다고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부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업무 조교를 아이들을 봐달라고 개인적으로 부탁하는 것은 안될 것 같아서 결국은 아이들을 맡기지도 못하고 12시에 학교가 끝나고 아내와 함께 네 식구가 같이 수술하러 갔습니다. 그날 오후에도 사실은 그다음 주에 있을 한국어 말하기를 위해 교정해달라고 하는 공부 약속을 한 학생이 오기로 해서 아내가 하혈을 하는데도 약속을 지키러 택시를 타고 급하게 돌아온 바 있습니다. 그런 날에 무슨 여학생의 허벅지를 만지고 무릎을 만진단 말입니까?”
“네? 그럼 안 되는데... 오전에 이 학생이 온 적이 없다는 말입니까?”
“다른 얘기를 하기 전에 이 자료를 좀 함께 봐주십시오.”
박 교수가 태블릿을 꺼내 페이스북의 캡처 화면을 조사위원들에게 내밀어 보였다.
“홍리정이라는 학생이 작성한 페이스북의 글이라고 하면서 츠리엔 학생이 페이스북의 화면을 캡처 해서 보내준 것입니다. ‘선생님을 좋게 생각하는 학생들도 이렇게 많이 있어요.’라고 하면서 보내준 자료들입니다.”
“왜 츠리엔 학생이 이런 자료를 선생님에게 보냈나요?”
위원장이 의아한 듯이 물었다.
“저를 흔들기 위한 것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츠리엔 학생은 원래대로라면 영문과 4학년이어야 하는 나이입니다. 1년 휴학을 하고 다시 전과를 해서 한국어학과로 온 학생입니다. 그래서 현재 한국어학과 2학년입니다. 이 학생이 함께 수업을 듣는 2학년 학생들이 저에 대해 욕을 하고, 그것도 심각하게 욕을 했다는 식으로 페이스북의 사진을 캡처 해서 저에게 증거라고 보내왔습니다.”
그가 내민 페이스북 댓글에는 2학년 학생들이 정말로 ‘78’ 혹은 ‘87’이라고 대놓고 욕설로 도배를 한 장면들이 있었다.
“그런데 2학년 첫 수업에 엄격한 한국 교수님이 와서 이전까지의 교수들은 대강대강 너희들 한국어 잘한다고 칭찬만 하고 넘어가던 행태를 수년간 취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까지 한국에서 온 교수들과는 달리 너무 엄격해 보이니까 학생들에게 반감이 일어났다는 증거라면서 츠리엔 학생이 저에게 보내준 겁니다. 정리하면 자기는 교수님의 강의 스타일이 좋다고 생각되고 오히려 정상인데 학생들의 반응이 이렇게 격하게 나오니 걱정된다면서 보내온 겁니다. 결국 저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이 곳에 부임해서 아직 적응하지 못한 제가 심리적으로 자신에게 많이 의지하라고 뒤흔들기 위해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으음.”
세 조사위원은 다른 대꾸 없이 그의 말을 듣기만 했다.
“여기 또 보내준 글을 보면 이런 것도 있습니다. 한 3학년 학생이 현재 한국어과에 부임해온 여러 한국 교수들을 비교해서 적어둔 것입니다. 이 글을 보시면 아마도 제가 어떤 교수였는지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실 거라고 봅니다.”
그들이 박 교수에게서 받은 자료를 펼쳤다.
3학년 여학생이 작성한 페이스북의 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양모 교수는 사람은 좋은데, 수업이 지루하다 그래서 핸드폰을 만진다.
김 모 교수는 양모 교수의 아내로 부창부수이다. 사람은 좋은데, 수업이 지루해서 핸드폰을 만진다.
교환교수로 온 교수는 사람도 안 좋고 잘 가르치지도 못한다. 그래서 핸드폰을 만진다.
정모 교수는 잘 가르치긴 하는데, 집중하기가 그래서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만지고 있다.
박모 교수는 사람이 엄격하고 수업 중에 집중하지 않으면 도저히 피해 갈 수 없기 때문에 감히 핸드폰을 만질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리고 바로 밑에 그녀가 3월에 작성한 내용도 같은 화면에 있었다.
교수 양 씨가 W라는 친구가 교실로 들어오는데 그녀의 이름을 이상한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들었다. 이미 두 학기째나 되었는데 그는 학생들의 이름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뜬금없이 박 교수님이 생각났다. 이번 학기 막 시작한 교수님의 강의는 이제 두 번째였는데 교수님이 출석을 부르면서 출석부를 보지 않고 우리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보면서 이름을 외워 부르는 것을 보았다. 박 교수님은 놀라는 우리들에게 그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모든 학생은 나에게 내 아이들과 똑같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그게 가능하기나 한가? 하고 이상한 소리를 다 하네 싶었는데 그는 확실하게 그것을 두 번째 강의 만에 해내 보였다.
조사위원들은 천천히 종이를 흔들며 그 내용을 읽는 듯하며 다시 시작된 박 교수의 진술에 시선을 모았다.
“제가 수업하는 방식이 기존의 교수들과 다른 것이, 저는 한국어로 읽고 중국어로 번역해서 읽어보라고 시킵니다. 그런 방식으로 했더니 한국어를 공부했기 때문인지 이상한 한국식 중국어 해석들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중국어로 다시 해보라고 유도한 후 일일이 고쳐줬습니다. 하지만 2학년들은 어떻게 본토인인 우리가 중국어를 외국인 선생님에게 교정을 받느냐고 반감이 일어났고, 저는 ‘모국어로 번역하고 확인하지 않으면, 너희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한국어를 말하고 있는지 가르치는 사람이 어떻게 알겠는가?’라고 하며 제 교육방식을 이해시키고자 노력했습니다. 실제로 의미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모국어로 번역을 해야 하는데 이상한 중국어로 하는 형태도 종종 발생했기 때문에 저는 그 부분이 나중에 통역이나 번역 연습도 되기 때문에 그 방식을 유지했는데 학생들은 별로 유쾌하게 받아들이지 않아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게 어떤 수업을 말하는 거죠?”
“2학년 필수 회화 수업입니다.”
“3월 29일 라인 대화를 증거로 보시면 츠리엔 학생이 이러한 자료들을 증거랍시고 보내면서 저를 걱정한다는 식으로 자신에게 의지하게 하려는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위원장인 남자가 다시 말했다.
“학생이 선생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지 않나요?”
박 교수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바로 그의 질문에 반박했다.
“만약 정말로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칩시다. 그럼 왜 갑자기 그런 학생이 선생님을 성희롱을 했다면서 고발하나요?”
그러자 기싸움이 밀리지 않으려는 듯이 성이 ‘바이’라고 불린 뚱뚱한 페미니즘 강사가 치고 나왔다.
“선생님을 걱정하고 존중하고 그러는 것은 문제가 없지 않나요?”
그러나 박 교수도 그들에 밀리지 않았다. 밀리지 않았다기보다는 순간 울컥하고 화가 치밀었다.
“그렇다면 왜 그녀의 행동이 이상한지 증거를 통해서 증명해 보이도록 하지요.”
박 교수가 제출했던 line 대화 증거 목록이 펼쳐졌다.
“3월 29일 라인 대화를 보시면 학과에서 특강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한국의 대학에서 온 교환교수가 진행하는 특강이 있었는데 아까 말했던 2학년 회화수업이 특강시간과 겹쳤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특강 2주 전부터 학생들에게 의향을 물었습니다. ‘당연히 우리는 그 시간에 수업이 있으니까 특강을 갈 수 없겠지?’라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학생들도 특강에 별로 가고 싶지 않는다고들 해서 그런 줄 알고 그냥 강의를 평상시처럼 진행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특강이 있기 전날 밤 9시가 넘어서 과대표를 한다는 학생에게서 뜬금없이 line으로 ‘얘들이 특강을 가고 싶어 합니다.’라는 메시지가 왔습니다. 그래서 너무 예의도 없고 버릇없는 행동인 것 같아서 화가 났지만, 그래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서 제 업무 조교를 하고 있었던 츠리엔 학생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대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
잘 모르겠어요.
일찍도 답해주시네요.
예의상 얘들을 보내주시는 게 좋을 건데요.
누구에게 예의상?
씻느라고 답을 늦게 했어요.
특강하시는 이 교수님께요.
으음...
과에서 하는 행사이기도 해서 과에게도요.
원래 이런 경우 강의하는 교수는 없나 보지?
네.
영어학과에서도요.
허락하는 방식도 문제 기는 하다.
부드럽게 처리하고 싶으시면 행사가 끝난 후에 과대표한테 따로 얘기하는 게 어때요?
교수님이요.
아니, 일단 지금 뭐라고 할까도 모르겠어. 중국어로 써봐.
그러면 민주주의를 따라가고 싶은 사람이가고 강의 듣고 싶은 사람이 남고이렇게 하세요. 영어학과에서는 늘 그렇게 해요.
그럼 수업은 수업대로 한다고?
네.
츠리엔은 좋겠네.
재미없는 수업 안 해서...
못 듣는 사람의 손해이죠.
휴 진짜 모르겠어요.
뭘 써요?
과대표 글에 대한 답변...
飜譯: 강연에 참석하길 원하는 학생들이 많다면 강연에 참석하도록 하세요. 강연에 가고 싶지 않다고 지난 시간에 나한테 얘기했던 것 같은데... 내가 잘못 들었나 보군요.
네.
如果有很多同學想要去聽演講話,
那麼就大家都去聽演講。
我記得上次上課的時候,你們不是
說不想去聽演講的嗎?難道是我聽錯了嗎?
괜찮아?
뭐가요?
내용...
네. 괜찮아요.
올려?
이것 참 양난이네요.
올리세요....
양난?
네.
兩難嗎?
네. 아니에요?
進退兩難的?
네.
한국어에서는 그렇게 안 써요.
알아요.
어쩔 수 없어요.
아는데 알아듣겠지 하고 막 쓰는 거야?
네?
어쩔 수 없는 건 또 뭐래?
아... 네.
이제 그냥 대답도 안 하고 신경도 안 쓰면 되는 거지?
참! 다른 교수 같으면 그냥 그 김에 놀면 되는 걸 별 걸 다 신경 쓴다...
그치? 츠리엔네 교수님
뻔
으... 안 되겠는데요.
계속 답을 하셔야...
왜?
지금 애들은 가고 싶어 하잖아요.
그래. 가라고 한 거잖아.
아... 네...
아닌 거로 보이는 거야?
그럼 내일 강의 안 하시는 거죠?
아니요.
번역: 재미있게 듣고 강연 내용 한국어로 요약정리해서 다음 시간까지 제출하세요.
有趣地聽完演講之後,
請各位用韓語將演講內容概要
整理後寫下,於下次上課的時候交上。
이 내용도 문제의 소지가 또 있어?
없습니다.
그냥 가서 들어라.... 하는 게 더 낫나?
으음 별 생쇼를 다 한다.
내가 바보 같아서 그런 거잖아. 그냥 남들처럼 놀면 되는 건데… 뭐 대단한 강의라고…
마음고생 많으셨어요.
바보 교수님 땜에 덩달아 고생하셨습니다.
그러네요.ㅎㅎ
不好意思
농담입니다~
진담입니다. 나는...
麻煩你了
별말씀을요.
교수님도 안녕히 주무세요.
네.
“그런데 여기에 조교 여학생이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하는 내용이 어디 있나요?”
뚱뚱한 페미니즘 강사가 다시 한번 기다렸다는 듯이 선공을 날렸다.
“문맥을 잘 봐야 합니다. 한국어로 되어 있는 것을 번역해서 제출한 것이라 여러분들이 이해를 잘 못하실 수가 있는데. 예컨대 한국어로 본래 교수가 ‘이런 바보 같은 교수가 있다니’라고 교수가 자조적으로 말하면 보통 학생 입장에서는 ‘아닙니다.’라고 해야 하는데 교수와 대화를 하면서 학생들이 ‘ㅋㅋ’이나 ‘ㅎㅎ’ 같은 것은 쓰는 것도 한국 문화에서도 결코 있을 수 없는 경우입니다. 츠리엔 학생은 한국의 예능이나 드라마 같은 것을 많이 봐서 이미 이런 기본적인 예의에 대해서는 충분히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상식과 예절을 알고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이 내용이 3월 29일의 대화인데 이미 이 즈음부터 이 학생은 교수에게 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었다고 봅니다.”
“나중에 학생이 ‘농담입니다.’라고 했잖아요. 그럼 된 거 아닌가요?”
페미니즘 강사는 이미 조사위원이라기보다는 박 교수의 적대적 안티임을 감추지 않겠다는 듯 공격을 해왔다. 박 교수도 감정이 격해져서 지지 않고 그녀의 질문에 맞섰다.
“한국 문화나 한국어 문화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형태입니다.”
“당시에 그런 학생에 대해서 교수님이 그러면 안 된다고 혼내거나 따끔하게 지적하셨습니까?”
“물론 했습니다. 심지어는 그 학생과 언어교환을 하는 제 아내도 지적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당시 그 상황에서 지적하지 않았지 않습니까? 라인 대화 어느 부분에 지적하거나 혼내는 부분이 나오지요?”
“어떻게 매번 그렇게 일일이 지적합니까? 이 여학생은 정말로 교활할 정도로 머리가 빠른 학생이었습니다. 이 학생은 완전히 선을 넘지는 않으면서 저에게 맞먹는 듯한 대화를 합니다. 항상 버릇없이 말하다가 제가 뭐라고 지적할 분위기가 되면, ‘농담입니다. 죄송합니다.’식으로 얼버무리거나 대강 무마하고 넘어가는 식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학생은 일주일에 금토일 3일을 제외하고는 매일같이 제 연구실에서 만날 정도로 자주 연구실을 들락거렸습니다.”
“그게 어쨌다는 거지요?”
“다른 사람들의 앞에서나 다른 사람이 들을 때는 결코 이런 식의 언행을 보이지 않습니다. 연구실에서 단 둘이 있을 때나 라인 대화를 할 때 그런 식의 버릇없는 행동을 자연스럽게 보였습니다.”
“그때 그때 얘기하면 그렇게까지 안 되었을 거 아닙니까?”
“아니요. 저희 집사람까지 나서서 직접 지적하면서, ‘너무 교수님에게 편하게 대하는 거 아니니?’라고 까지 지적했는데도 그녀의 행동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박 교수의 증거 제시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조사위원들은 계속해서 츠리엔의 행동이 정상적인 타이완 학생의 방식이라는 식으로 변호하는 대결 양상으로 변해갔다.
“자기가 직접 말하길, ‘연구실에 오는 날이 많아질수록 제가 교수님을 좋아하는 감정이 더 많아져갑니다.’라고까지 말했습니다. 무슨 권력관계가 성립한다고 우기는 것 같아서 제시하는 증거입니다. 그녀가 저에 대해서 교수라서 어려워하지 않고 만만하게 여겼다는 증거는 4월 18일에도 나옵니다.”
드라마 수업, 뭐라는 거야?
아까 밖에 있어서 제대로 못 봤는데, 정호랑 영훤이랑...등등
영훤이가 미리 나누어진 제 부분 중에서 정호의 부분이 들어가
있어요. 사람마다 맨 앞에 표시까지 해줬어요. 정호가 왜 이런지
그리고 왜 자기 이름이 중간에 나왔는지 몰라서 채팅방에서 물어본
거예요. 근데 제가 그냥 제 중간에 있길래 거슬려서 한껏 다 해놨어요.
별일 아니었어요.
알았어. 미안하다 방해해서...
아니에요!
이런 게 다 공부예요~ 쓰기 공부
바쁠 거야?
네. 바쁠 거예요.
내일 시험 두 개 있으니까요.
내가 귀찮게 하는 거지?
그리고 손발이 좀 안 맞는 것 같아요.
컴퓨터 얘기 물어보려고 했었어.
미안했다, 의도치 않게 부담 줘서... 어제 얘기는 니가 관련이 있어서 했었던 건데...
내가 실수했구나.
컴퓨터가 언제 오느냐고 홍 조교한테 물어봤을 때 홍 조교가 꼭 교체로 새 거 하나 오면 낡은 거 하나 가야 돼서 제가 멀쩡 한 거 뺏길까 봐 더 낡고 거의 고장된 거 있다고 했어요.
好的
그거로 교체하면 된다고
물어봤더니 된다고 했어요.
응. 오늘 들었어.
미안해요.
말하면 안 되는 거 까먹었어요.
먼저 너한테 들었으면 좀 나았을 텐데... 홍 조교가 먼저 아는 척해서
어떤 상황인지 좀 불쾌했어.
말씀을 드리려고 했어요.
어제부터 날카로워져 있어서 더 그랬나 보다.
타이밍 또 놓쳤나 봐요. 교수님은 무슨 일을 다 복잡하고 심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좀 편하게 사세요.
니 말처럼 암 것도 아닌데 내가 오버했나 보네.
24살 여자애한테 좀 편하게 살라는 충고를 다 듣고…
옆에서 보는 니가 짜증 날 수도 있었겠다.
이제 그럴 일 없을 거다. 미안했다.
한 가지만 부탁할게.
말씀하세요.
이제까지 얘기한 걸 다 지워줄래?
네. 없던 일로 할게요.
謝謝你
아니에요. 별말씀도 하신다.
*별말씀을 다 하신다.
옙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온다....
한심하네...
어쨌거나 한 방 크게 먹었네... 참조할게.... 앞으로...
20년 전에 조교가 했던 말이랑 똑같네. 토씨도 하나 안 틀리고....ㅋㅋ
또또시작하신다.
편하게 사시라고요.
무슨 일이든 다 심각하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요. 좀 편하게 생각하세요... 였어.
쯧쯧.. 그러니까요.
갠 서른이었거든. 그때...
지 교수한테 쯧쯧.... 은 감히 못했었는데...
내일모레 50이신데
인생은 뭐 있다고… 편하게 사세요.
ㅋㅋㅋ
니 고등학교 선생님들처럼 나도 무시당하는 수준으로 추락했을는지도…
죄송합니다.. 장난인 것 아시죠~
그 정도인 것 같아. 어찌 보면..
또 시작하신다.
시작도 끝도 니가 하셨거든요.
내가 아니고...
교수님을 존경합니다~
됐어. 더 바보 되는 것 같으니까... 그만 가지고 놀아도 돼.
그래도 교수님을 존경합니다~
들어가세요~좋은 생각만 하시기를~
눈물 나올 것 같다며 자기감정 알고 싶다고 그룹대화에 당당하게 올리는 황당한 아이와 자기 얘기하지 말라며 비난하는 아이가 한 사람이라는 게....
시험 준비 잘해. 오늘 시험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점수가 낮더라....
오늘 밤 공부 좀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제발요. 들어가세요.
응. 공부중이야, 얘들...
열공해라.
네.
“계속해서 예의가 없다거나 버릇이 없다고 지적한 사실은 대화의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데요?”
페미니즘 강사가 특유의 썩소를 날리며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연이어 자신의 논리에 쐐기를 박듯이 물었다.
“그렇다면 왜 그녀를 계속해서 업무 조교로 썼나요?”
박 교수는 왜 페미니즘 강사가 나서서 그렇게 열을 내며 그렇게 버릇없는 학생을 왜 혼내지 않았는지 왜 잘라버리고 다시는 연구실에 오지 말라고 혼내지 않았냐고 힐난하는 것을 들으면서도 왜 조사위원들이 그렇게까지 이상한 궤변을 늘어놓으며 학생을 변호하는지 그때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다면 왜 그 내용을 지우라고 했나요?”
자신의 질문이 한쪽으로 치우쳐졌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페미니즘 강사는 질문의 각도를 바꿨다.
“대화 내용에 나온 대로입니다. 학생의 태도가 너무 뻔뻔하고 대하는 것이 어이가 없어 다 지워버리라고 자책하는 식으로 짜증을 낸 겁니다.”
“그렇게 버릇이 없으면 꾸짖고 화를 내고 그 자리에서 지적하고 그 학생을 업무 조교에서 잘라버렸으면 되지 않나요?”
왜 문제의 여학생을 바로 자르지 않았냐는 그들의 황당한 지적이 박 교수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실제로 그가 2월 18일에 학교에 부임하고 나서 황당한 사건을 많이 겪긴 했지만 조교 선임 사건은 그중에서도 가장 황당한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