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 행정조교로부터 개인 업무 조교를 추천하라고 메일로 연락이 온 것은 3월의 첫날을 지나서였다. 개강을 2월 20일에 했으니 개강하고 갓 열흘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아주 친절하게 중국어로 쓰인 메일에는, 일주일 내에 교수가 신청을 하고 학생이 직접 교수의 허가를 받아서 따로 학과 사무실에 가서 등록까지 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시간도 촉박하긴 했지만 가장 문제는 업무 조교로 고용할 학생의 조건에 가급적 대학원생을 쓰라고 하는 문구였다. 강의가 시작된 지 열흘밖에 안된 것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대학원 강의를 애초부터 배정받지 못해서 대학원생을 만난 적도 없고 만날 수도 없는데 어떻게 대학원생을 조교로 지정하라는 말인지 어이가 없고 답답했다. 바로 학과장에게 연락을 해서 학과 사무실로 찾아가겠다고 했다.
학과 사무실 안쪽에 큰 사무실을 쓰고 있던 학과장은 늘 특유의 생글거리는 얼굴로 박 교수를 맞이했다.
“무슨 일이세요? 뭐 도와드릴 일이 있나요?”
한국인 부인과 결혼했고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아왔다고는 하지만 그의 발음은 심하게 어눌했고 억양은 심하게 마치 고장 난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했다.
“업무 조교를 신청하는 일 때문에 도움을 청하러 왔는데요.”
“아! 그거요. 그거 그냥 학과 돈으로 지원하는 건데요. 한 학기에 몇 시간 안되는데 그냥 선생님 심부름하고 그러는 거 하게 하고, 돈 지급하는 건데 몇 시간 안되고 의미도 없는데...”
그의 반응이 황당하긴 했지만 고지식한 박 교수는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다시 또박또박 읽듯이 확인했다.
“학과 행정조교가 보내온 공문에는 한 학기에 40시간이고 시간당 150원씩 학생들에게 지급하는 거라서 왠 만한 알바비보다 쎄다고 하던데요.”
실제로 대만의 학생들은 거의 알바를 하는데 시간당 150원은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금액 축에 속한다는 얘기를 다른 학생들에게 들은 터였다. 박 교수의 설명에 학과장의 얼굴에서 미소가 이내 사라졌다.
“음. 그랬던가요? 그래서 어떤 부분이 궁금하신 거죠?”
“내용에 보면 대학원생을 조교로 추천하라고 하는데 저는 대학원 수업을 배정받지도 못했고 아는 대학원생도 없는데요. 당장 3월 8일까지 등록하라고 왔는데, 저는 이제 막 와서 그렇지 않아도 도우미 학생이 필요하던 참이었거든요. 아무래도 학과장님이 가장 적합할만한 학생을 추천해주셨으면 해서요.”
“아, 그래요. 그거 그냥 선생님이 알아서 하시죠.”
“네?”
학과장의 답변이 박 교수를 패닉의 절벽으로 밀어붙였다.
“그냥 선생님이 알아서 아무나 대충 한 명 골라서 하세요.”
“네? 알아서 라니요.”
“다른 선생님들도 다 그렇게 하세요. 너무 그렇게 진지하게 접근하시지 말고요. 40시간이라고 적혀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거 별로 많지도 않은 거예요. 아, 저는 다른 바쁜 일이 있어서 먼저 나가 볼게요.”
도망치듯 자기 방을 먼저 나가버리는 학과장을 보면서 박 교수는 허탈함에 기운이 빠져버렸다. 그렇다고 이곳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학교 일이나 여러 가지 학교 관련 업무부터 중국어로 이메일을 쓰는 것에 이르기까지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20년 전에 중국어를 대륙에서 배운 박 교수에게는 ‘주음 부호’라는 독특한 체계를 사용하는 대만의 타이핑 시스템도 중국어를 원활하게 칠 수 없게 만드는 요인 중에 하나였다. 학과나 학교에서 오는 다양한 공적인 메일뿐만 아니라 논문을 작성하거나 도서관의 자료를 검색하는 등 이 학교에서 적응하고 안착하기 위해 현지 도우미의 도움은 그에게 절실한 것이었다.
그는 궁여지책으로 자신의 강의에 청강하러 들어오던 대학원생을 통해 소개를 받기로 했고, 어렵사리 가오슝의 다른 대학 출신인데 대학원을 외교대로 올라왔다는 여학생을 한 명 소개받게 되었다. 주문정이라고 학생이 업무 조교를 맡기로 라인으로 대화를 나누고 연구실로 직접 찾아온 것은 마감 기한이라고 공문에 적혀 있던 3월 8일이었다. 원래 7일에 만나기로 했다가 학생이 다시 가오슝에 내려가는 기차표를 예매했다면서 약속을 다시 미루고 자기가 차가 있으니 3월 8일까지는 학교로 꼭 찾아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해서 극적으로 이루어진 면접이었다.
“안녕하세요. 왕니람 학생에게 소개받은 주문정이라고 합니다.”
“아, 혹시 업무 조교를 전에도 맡아본 적이 있나요?”
“네. 지난 학기에 장상훈 교수님의 조교를 했었어요.”
“아 그랬구나. 다행이네. 한국어 실력도 나쁘지 않은 것 같네요.”
“네 한국에 자주 놀러 갔고, 반년 정도 한국에서 한국어학원도 다녔었거든요.”
“그런데 본교 출신이 아니네?”
“네. 사실 외교대는 대만에서 일류대라서 여기 한국어과 나온 학생들 중에서는 대학원을 진학하려는 학생들은 모두 한국으로 유학 가구요. 지금 대학원생들은 거의 지방대를 나와서 학력을 세탁하려고 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고 심지어 한국 유학생까지 있어요.”
“한국 학생이 여기 대학원을?”
“네. 한국어과니까 공부하기 편하기도 하고 여기에서 한국어 선생님을 할 수 있으니까 한국의 이름 없는 지방대를 나온 학생들이 이쪽으로 와서 공부를 해서 명문대 석사 출신이라고 타이틀을 가지고 나가면 한국어 강사로 취직이 쉽거든요.”
“아 그렇구나. 그나저나 다른 교수들은 모르겠는데 나는 매일 연구실에 출근하고, 논문도 한 달에 한 편 정도씩 쓰는 편이라 도와줘야 할 일이 많은 것 같거든요? 괜찮겠어요?”
“네? 지난 학기에 장 상훈 교수님은 그냥 이름만 걸어놓고 집에서 뭐 해가지고 오거나 그 정도만 하고 40 시간 해서 돈을 받았는데.... 으음...”
박 교수의 설명이 계속될수록 그녀의 표정이 곤란함으로 일그러져갔다. 본래 지방대에서 플롯을 전공했다는 그녀는 화장도 진하게 하고 온 탓에 표정이 아주 또렷하게 드러나 보였다.
“그래서 일단은 내가 계산을 해보니까 일주일에 3시간 정도 연구실에 와서 그때그때 도와주면 될 것 같아요. 집에서 뭔가 준비해오거나 숙제하거나 그런 건 필요 없고, 아무래도 우리가 처음이고 그러니까 이번 학기에 신뢰가 쌓이고 그러면 다음 학기부터는 집에서 해와도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처음이니까 아무래도 공식적으로 학교에서도 그걸 권장하니까 일주일에 3시간 와서 근무하면 될 것 같은데... 언제 언제가 시간이 괜찮죠?”
“어, 그러면 제가 차를 가지고 다니는데, 강의가 없는 날 교수님 일 때문에 학교를 나오는 건 기름값이 너무 아깝고 그러니까 학교에 강의가 있어서 오는 날에 모두 맞춰서 잡아주실 수는 있나요?”
“어? 아, 그래요. 그럼. 어느 요일에 오지?”
“음. 수요일 아침 8시에 한 시간 되고요. 목요일 4시 반부터 두 시간 하면 될 것 같은데요.”
당당한 그녀의 스케줄 조정방식이 당혹스럽기는 했지만 그것이 타이완 여학생들의 방식일 수도 있겠구나 싶어 박 교수는 그렇게 수긍했다.
“그러면 바로 가서 학과 사무실에 사인하고 등재하면 될 거 같아요.”
“네.”
그렇게 시작된 그녀의 조교 생활은 일주일 만에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강좌의 숙제를 인터넷으로 받는 개정을 학교에 확인하고 다른 여타 교수들은 잘 사용하지도 않는다는 투정을 들으며 사이버 강좌 공간도 마련하고, 숙제를 받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하도록 전산실에 알아보게 시켜 막 등록을 마친 즈음의 저녁에 일이 터졌다. 그녀에게서 만나자고 연락이 온 것이었다. 그것도 전화가 아닌 3월 19일의 라인에서였다.
- 드릴 말씀이 있는데 지금 연구실에 찾아봬도 될까요?
어차피 연구실에 있었기 때문에 급한 일이면 들르라고 했던 박 교수의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녀의 노크소리가 들렸다.
“어, 무슨 일이지?”
“어 저기요.”
말을 잇지 못하던 그녀가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어 문정 양. 왜 그러는 거지,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있어?”
“그게 아니고요. 제가 사실은 돈이 좀 많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업무 조교 알바도 하려고 했던 건데... 제가 원래 플롯을 전공했다고 했잖아요.”
“어 그랬지. 그런데?”
“다른 전공자 두 명이 세 명이 앙상블을 이뤄서 하는 알바가 생겼는데 그게 돈이 훨씬 더 크거든요, 이 조교 알바보다.”
“어? 그런데?”
황당한 말이긴 했지만 그녀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끝까지 다 들어봐야겠다고 박 교수는 생각하고 날카로워지는 감각을 애써 억제했다.
“그 앙상블 알바를 하려면 서로 악기도 맞춰보는 연습도 해야 하고 그러려면 제가 시간이 많이 안 되거든요.”
일주일에 세 시간을, 그것도 강의가 있는 날에 샌드위치처럼 시간이 비는 것을 이용해서 와서 업무를 돕는 것과 무슨 밀접한 연관이 있는지 박 교수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선뜻 가지 않았지만 일단 눈앞에서 눈물연기 투혼을 발휘하는 이 발칙한 여자 아이의 마지막 대사가 도대체 뭘 원하는 것인지 끝까지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만약 괜찮으시면 그냥 번역이나 간단한 문건 작성 같은 거를 집에서 해오라고 하시면 제가 그렇게 하는 방식으로는 할 수 있는데 매번 연구실에 와서 3시간을 직접 근무하는 건 좀...”
“내가 처음에 시작할 때도 말했지만, 나는 지금 번역이 문건 작성 같은 수준이 아니라 학교행정이나 직접적인 학교 업무나 내 수업 준비 등에 필요한 자료 준비 같은 학교 내에서 준비해야 하는 작업이 필요하니까 우리 주 3시간씩 해서 원칙대로 그렇게 하기로 한 거 아니었나?”
눈물 연기를 하던 여학생이 눈이 박 교수의 의외의 반응에 눈이 똥그래졌다.
“그러면... 저는 어쩔 수 없이 조교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어요.”
“아니 주문정 학생. 지금 시작한 지 겨우 열흘도 채 되지 않았고, 이제 내 연구실에 3번째 오는 건데, 지금 이렇게 하면 내가 중간에 다른 학생을 찾기도 그렇고...”
“그러시면 그냥 집에서 작업하는 걸로....”
“그건 안 되겠고... 그러면 다른 학생들을 대신해서 넣어주고라도 가야지. 그리고 만약 그만두게 되면 학과에 신청한 거는 어떻게 되는 건가?”
그녀는 자신이 의도했던 그림대로 되지 않은 것에 약간의 불쾌감이 얼굴 표정에 드러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주일에 3시간이나 스탠더드로 작업하는 교수의 업무를 보조하는 것은 이전 학기에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받았던 돈을 생각하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빨리 그만두고 이 자리를 빠져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지라고 생각했다.
“제가 다른 학생들을 찾아는 볼게요. 그런데 학과에 변경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만약에 정 안되면, 주문정 학생이 계속하는 걸로 되고 다른 학생이 업무는 대신하되, 본인의 계좌로 들어오는 알바비를 친구에게 주는 방식으로 해서라도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해 책임은 져야 해.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듣죠?”
“네. 그럼 그렇게 할게요. 제가 정말 돈이 급해서 그런 거니까 이해해주세요.”
그녀는 언제 눈물을 흘렸냐는 듯이 명료한 목소리로 돈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연구실에서 도망치듯 황급히 나갔다. 그녀가 남긴 싸구려 화장품 냄새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인지 처음 겪는 이런 일에 짜증이 나서 머리가 아픈 것인지 박 교수는 헷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