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고발자인 왕윈한에 대한 부분을 읽겠습니다. 4월 12일에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한국 정부 장학금에 관한 일을 얘기하던 중이었는데 교수님이 아주 강렬한 말투로, ‘너는 포기하고 싶냐? 공부하고 싶지 않냐? 이렇게 하면 되겠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학생이 울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일어나서 제 자리 옆에 와서 일어나라고 해서 안아주었습니다. 울지 말라고도 위로해줬습니다.”
“안아주지는 않고 울지 말라고 위로를 하며 툭툭 두드려줬습니다.”
“어디를 두들겼습니까?”
“어깨입니다.”
“4월 28일 금요일에 점심에 연구대로 앞에서 우연히 만나서 원한이 ‘어디 가세요?’라고 물었고, ‘나는 언어중심에 간다. 넌 어디 가니?’라고 했고, ‘사무실에 물건 가지러 가요.’라고 하자 어깨에 손을 올리고 ‘그럼 우리 같이 가자.’라고 했습니다. 어깨에 손을 올리고 간 행동은 사무실에 가서야 헤어지며 끝이 났습니다.”
“그렇게 만난 것은 기억이 나지만 무슨 껴안고 간 것처럼 행동한 적은 없습니다.”
“만약 손을 감지는 않고 어깨에 손을 올렸나요?”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5월 8일 월요일에 오후 연구실에서 원한이 일하는데 다른 여학생이 교수님의 딸과 언어교환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위치를 좀 바꾸었는데 원한이 전화를 옮기려고 할 때, 교수님이 저의 허리를 터치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참! 왜 내가 갑자기 그 학생의 허리를 터치합니까? 아니, 내 딸아이가 같이 있었다고 설명한 것이 맞습니까? 정말 너무 과장이 심하네요.”
박 교수를 비아냥거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페미니즘 강사가 그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며 ‘ 내가 생각해도 심하군요.’라면서 비아냥거렸다.
“5월 17일 수요일 오후 6시에서 10분 정도 연구대루 주차장 출구에서 누군가가 왼쪽 어깨를 감싸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놀라서 보니 교수님이었습니다. 연구대루까지 같이 걸어갔습니다.”
“그런 사실 없습니다.”
“윈한에게 ‘난 너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까?”
“츠리엔이 라인에서 이상한 그 말을 해서 ‘니가 중문과니까 묻는데 이게 그렇게 애인이나 부부 사이에 애교를 떨면서 하는 말이야?’라고 물은 적은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또 말을 했습니다. 학생에게, ‘이 말은 우리 둘만의 비밀’이라고 말하셨습니다.”
“그 얘기 자체가 츠리엔의 이야기이니까 우리끼리 비밀로 하자라고 한 것입니다. 심지어 물어볼 당시에도 당사자가 츠리엔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한 여학생이 이런 얘기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주동적으로 윈한의 성 경향을 물어본 적이 있습니까?”
“아까 이미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물어보셨지요?”
“그건 물어본 게 아니지요. ‘물어보는 것은 실례지?’ 라고 말한 거지요.”
“만약 물어보지 않았다면 아니라고 말하면 그만인데 이런 내용을 토론했다면 당시에 윈한과 어떻게 얘기했는지 설명해주십시오.”
“아니 몇 번을 설명하라는 겁니까?”
“다시 설명해주시지요.”
“학생이 먼저 물었습니다. ‘교수님은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라고 물었고, ‘그것은 섹스가 아니라 젠더의 문제이다. 나는 그 부분에 대해 편견은 없어.’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얘기를 물어?’ 그랬더니, ‘외교대 학생들은 그런 것에 관심이 많거든요.’ 라고 해서, ‘내가 너에게 너의 성 경향을 물으면 실례인거지?’ 라고 하자, ‘네. 묻지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예를 드는 말투로 말한 겁니까?”
취조하는 형사처럼 집요한 부분까지 남자 위원장이 파고들 듯 물고 늘어졌다.
“‘먼저 묻고, ’이렇게 물으면 잘못이지?‘ 라고 말했는지, 아니면 정말로 ’묻는 것 자체가 실례니?‘ 라고 한 겁니까?”
“당연히 후자입니다.”
“한국에서는 성 경향을 묻는 것은 보편적인 일인가요?”
“저는 그런 경험이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는 동성애자를 본 적이 없으니까요.”
“교수님도 누가 묻거나 하는 경험이 없으신 거지요?”
“네.”
“다른 여학생에게 윈함을 ‘고집이 센 동성애자’라고 말했습니까?”
“나는 윈한을 ‘동성애자’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위지에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3월 31일 금요일에 저녁 7시에 연구대루 공공장소에서 언어교환을 해보지 않겠니?라고 제안했었죠?”
“아니요. 위지에가 먼저 제안했습니다.”
“그때 학생이 누구와 함께 언어교환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까?”
“누구든 상관없다고 했습니다.”
“위지에게 ‘수고 많았다.’라고 하면서 팔을 벌려 안아주었나요?”
“아닙니다.”
“5월 18일 목요일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위지에가 교수님 옆에서 노트북을 쓰는데 갑자기 손을 내밀어서 쇄골을 만졌습니다.”
“아니요. 그런 적 없습니다.”
“같은 날 음료를 사 왔는데 동의 없이 한 모금 마신 사실이 있습니까?”
“아까 나온 얘긴데 설명을 다시 해야겠네요. ‘이거 아주 향이 좋은데 한번 마셔보실래요?’라고 권해서 마신 적이 있습니다.”
“같은 날에 교수님이, ‘너무 피곤하다.’라고 하면서 머리를 위지에에게 기댔습니다.”
“그런 사실 없습니다.”
“같은 날 시간이 지나고 나서 위지에에게, ‘어깨나 가슴 중에 하나 나에게 빌려줘라.’라고 얘기했나요?”
“그런 사실 없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베개 문제로 상반신이 아프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그날 일이 아닙니다. 5월 초의 일입니다.”
“학생의 가슴을 만졌습니까?”
“아무리 남자 역할을 하는 동성애자라고 하더라도 그런 행동은 없었습니다.”
“형제 같은 친밀한 관계는 뭐지요?”
“등이 아프다고 하면 제 등을 스스럼없이 주먹으로 쳐준다거나 내가 너무 힘들어하면 ‘힘들어하지 마세요.’하면서 위로하듯 안아주고. ‘나무아미타불’도 해주는 등의 행동을 말합니다.”
“학생이 안아주면 좋았나요?”
그 와중에 여권운동가가 던진 질문에 박 교수의 눈이 휘둥그레 커져서는 대답 대신 노려보듯 그녀를 째려보았다.
“5월 25일 연구실에 와서 오방떡을 가지고 와서는 그 아이가 먹는 것을 빼앗았습니까?”
“아니요. ‘너 혼자 먹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 더 사 왔어요.’ 하면서 하나를 줬습니다.”
“드신 것이 새 겁니까? 먹던 겁니까?”
“자기가 먹던 것을 주면서, ‘이럴 줄 알고 내 것도 사 왔지요.’ 하면서 자신이 새 거를 먹었습니다.”
“학생이 먹던 것을 드셨다는 거지요?”
“‘이럴 줄 알고 하나 더 사 왔지요.’라고 해서 그냥 주는 것을 먹었습니다.”
남자 위원장이 마치 결론을 내리듯이 뒤로 몸을 젖히며 말했다.
“이건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네?”
“만약 선생님을 위해 사 왔다면 새 거를 주지, 먹던 것을 줬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뜬금없는 논리를 펼치는 것이 한두 번도 아니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박 교수는 그의 엉터리 논리가 맥락이 없다고 느꼈다.
“여학생이 남자 교수에게 ‘이건 달지 않은데 한번 마셔볼래요?’라고 먹던 차를 권하는 것은 합리적입니까?”
“합리적이지요.”
너무도 당당하게 자신의 논리가 일관성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듯 남자가 강한 어조로 대답했다.
“따로 사온 차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잔밖에 없다면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 학생은 나를 위해 오방떡 새 거를 사 온 게 아니라 학생이 직접 말했던 것처럼 내가 먹는 것을 빼앗길 것 같아서 새 거를 사 왔다고 했던 겁니다.”
박 교수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옆에 있던 두 여자 위원들을 포함해서 세 사람이 흥분하며 기가 막히다는 듯이 벌떡 몸을 세우고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학생의 오방떡을 빼앗은 적이 있습니까? 그게 불합리하지 않습니까?”
“오히려 그런 논리라면 선생님이 한 개를 가져갈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를 더 샀다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나요?”
“먹던 것을 빼앗은 적이 있습니까?”
“네?”
“선생님께 드리려고 했다면 새 거를 주지, 먹던 것을 주겠습니까?”
박 교수 역시 그들이 뭔가 대단한 결함을 발견한 것처럼 난리를 피고 대드는 꼴에 역정이 났다.
“‘선생님한테는 안 주고 저만 먹냐?’라고 물었었고, ‘너 혼자만 먹을 거냐?라고 했더니 ’그럼 드실래요?‘라고 내밀고 메롱 하면서, ’ 이럴 줄 알고 새 거가 또 하나 사 왔지요.‘라고 한 겁니다.”
“합리적이지 않아요.”
도대체 남자 위원장이 노래하는 ‘합리’라는 것이 박 교수가 이제까지 알고 있던 그 뜻과 전혀 괴리된 것인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오방떡을 자진해서 새 거를 줬는지 아니면 빼앗아 먹었는지에 대한 논쟁이 성희롱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쓸모없는 몽니는 지속되었다. 박 교수는 점점 더 화가 났다. 이들은 어차피 그저 그가 가해자라고 우길만한 트집거리가필요할뿐이었다.
박 교수가 기억하는 위지에는 철저하게 이기적인 행동이 익숙한 아이였다. 교수의 연구실에 공부하러 오면서도 단 한 번도 교수의 음료수까지 두 잔을 사 오는 일이 없던 아이였다. 혼자서 다 먹을 생각만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 아이가 새 걸 내놓지 않을 리가 없다는, 이 소모적이고 무의미한 논쟁이 얼른 끝나기를 박 교수는 바랬다.
그 와중에도 페미니즘 강사는 자신의 일관된 우기기를 잊지 않고 되뇌었다.
“나 같으면 절대 먹던 것을 선생님에게 안 내밀 겁니다.”
“우리 외교대 학생들은 그렇게 예의가 없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내가 잘못 들었나?’
박 교수는 남자 위원장의 입에서 튀어나온 ‘우리 외교대’라는 말이 거슬리면서도 확 꽂혔다. 그랬다. 그는 자신과 그 학생들을 ‘우리’라고 여기고, 박 교수를 외부자라고 분명히 선을 긋고 있음을 언어적 표현을 통해 실수로나마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우리 외교대의 아이들은 교수님이 아니라 친구들끼리도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미 자신이 어떤 말실수를 하고 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만약 이 일이 외교대에서 퍼진다면 이 학생은 엄청난 왕따가 될 겁니다.”
그가 생각하는 ‘우리 외교대 학생’이 어떤 존재인지는 몰랐지만, 그는 나름대로 자기네에 대한 자존감이 상당한 것처럼 들렸다.
‘그렇다면 교수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있지도 않은 거짓말을 꾸며 이런 엄청난 사건을 만들어 내는 행동은 너희 외교대 학생들의 예의 바른 행동이란 말인가?’
그가 ‘우리 외교대’어쩌구 하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내뱉는 것을 들으며, 박 교수는 이미 위원장을 비롯해 조사위원이라는 대학 내부 인물들이 자신을 철저한 외부자이자 가해자로 희생양을 삼겠다고 결정하고 밀어붙인다는 사실을 재삼 확인했다고 확신했다.
“위지에의 머리를 만졌습니까?”
“네.”
“위지에는 당신의 그 행동이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웠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런 학생이 그 엘리베이터에서 나와서 그 교수의 집에 함께 놀러 가서 밥 먹고 웃고 떠들고 늦은 시간까지 어울려 놉니까? 도대체 어떤 게 객관적인 증명인 겁니까?”
“내가 계속 얘기하지 않습니까? 교수님은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권력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 앞에서는 학생은 싫어도 도저히 그렇게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와서야 자신의 느낌이 그랬다고 진술한 겁니다.”
‘우리 외교대 학생’ 어쩌고라는 언급이 나오고부터 남자 위원장의 표현이나 공격의 수위가 점차 강해짐을 박 교수는 체감할 수 있었다.
“만약 나를 직접 가르치지 않는 교수인데 내 머리를 만졌다면 바로 싫다고 반응했겠지만, 내 수업을 하는 교수라면 바로 반응하지 못할 것입니다.”
박 교수가 자신의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는 식의 표정을 지으며 남자 위원장은 학생을 가르치듯 자신의 논리를 신나는 표정으로 펼쳤다.
“그게 말이 됩니까? 머리를 만지던 엘리베이터 안의 그 화면이 우리 집에 파티를 가려고 연구실에서 내려오던 그때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구역질 날 정도로 역겨운 감정을 느낀 학생이 그 교수와 함께 그의 집에 가서 놀고 그럽니까?”
“교수의 집에 가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미안할 수도 있고 그런 겁니다.”
“내가 가지고 한 게 아니라 그 학생이 자기가 오고 싶다고 의향을 먼저 비췄다고 설명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권력관계가 성립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정상적인 응대로는 그들의 억지 궤변을 꺾기 어렵다는 것을 박 교수도 슬슬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면 내가 제기한 문제가 또 생깁니다. 2주만 있으면 그녀는 이제 평생 나를 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 갑자기 지금 이런 문제를 일으킵니까?”
“그 학생이 무슨 생각에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저야 모르지요.”
남자 위원장이 마치 약 올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 들어 보이며 말을 돌렸다.
“이 학생들이 그러면 그냥 졸업하면 되는 겁니까?”
오히려 의도를 알 수 없는 뜬금없는 반문까지 던졌다.
“계속 두 달 넘게 이런 성희롱을 지속적으로 당해왔다고 주장했다면서요?”
“네. 맞습니다.”
“만약 교수님이 직접 가슴을 만졌거나 하면 모르겠지만 계속적으로 성희롱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완전 다릅니다. 직접 가슴을 만졌다면 바로 터트렸겠지요.”
박 교수는 남자 위원장의 궤변을 들으며 그 역시 성희롱에 해당하는 결정적인 행위 같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확인했다.
결정적인 뭔가가 없었기 때문에 고발하지 않았다고 흥분해서 떠들던 위원장이 뭔가 눈치챘는지 다시 사실관계 진술로 말을 돌렸다.
“위지에가 정확한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위지에를 엘리베이터를 타라고 보내줄 때, 끌어서 어깨를 안고 걸었습니까?”
“그런 사실 없습니다.”
“허벅지에 손을 올린 사실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얼굴을 꼬집고 손가락으로 배를 찔렀습니까?”
“누가 남자 역할을 하는 동성애자에게 그런 행동을 합니까?”
“손가락으로 몸을 찌르면서 ‘도망갈 거야?’라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남자 위원장을 조금 쉬게 하려는 듯 자연스럽게 페미니즘 강사가 바통을 이어받고 질문을 하겠다고 나섰다.
“‘부인하지 마라. 너는 나 좋아하잖아.’라고 말한 적 없습니까?”
“없습니다.”
“‘너는 몸에 지방이 너무 많다.’라고 했나요?”
“아니요.”
“‘다른 여학생에 대해 언급할 때, 너의 얼굴색이 변하는 걸 보니 질투하는 거니?’라고 말한 적 있습니까?”
“츠리엔이 남자인 단 병선 군이 부럽다고 했을 때, 비슷한 얘기가 나왔던 것입니다.”
“학생의 인격에 대해, ‘너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눈을 회피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직접 보는 습관이 있구나.’라고 말한 적 있습니까?”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지도를 할 때, 그 학생이 상당한 집중력을 보이는 때가 간혹 있었습니다. 그러면 내가, ‘교수님이 가르쳐주는 게 쪼금은 도움이 되지?’라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그 학생이, ‘많이 도움이 돼요.’라고 합니다. 그런 상황이 연구실에서 있을 때마다 몇 번 그렇게 있어 비슷한 대화를 나눈 기억이 있습니다.”
“위지에는 교수님이 했다고 하고, 교수님은 위지에가 했다고 하는군요.”
남자 위원장이 다시 툭 던지듯 물었다.
“위지에가 교수님을 좋아했나요?”
“교수님으로서 좋아했지요.”
“‘좋아하는 거 아니냐?’라고 말하는 것은 나쁜 게 아닙니다. 합리적이고 괜찮은 겁니다.”
마치 자신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그가 웃음을 띄며 말했다.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니까 그래서는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오히려 박 교수가 단호하게 다르듯 물었다.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교수님은 이 학생이 교수님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지요?”
이미 남자 위원장은 위지에가 교수를 좋아했다는 것은 전제에 두고 질문을 하고 있다는 자신의 실수를 또다시 놓치고 있었다. 무슨 엉뚱한 의도가 있는지는 몰라도 그는 그 목표를 위해 이쯤은 괜찮다고 여기는 듯했다.
“누군가 서로 좋아하는 것을 안다면 나를 좋아하냐고 물을 필요도 없는 거 아닐까요? 이 친구에 대한 제 마음은 ‘2주만 있으면 평생 만나지 못할지도 모를 학생’이었습니다. 심지어 마지막에 이 학생은 아쉬워하며 자기가 네덜란드를 가더라도 라인과 이메일을 통해서라도 한국어 공부를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까지 했습니다.”
뭔가 자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는지 바로 포기하고 남자 위원장이 행사 진행 발언을 했다.
“교수님은 우리가 이 사안들을 확인하기 위해 어떤 학생들을 증인으로 불러 물어야 할지 알려주십시오.”
“단 병선이 츠리엔이 25일에 정말로 저에게 마지못해 끌려서 갔던 것인지 확인해줄 수 있을 겁니다.”
“어제는 우문이랑 안제만 얘기했는데요.”
새로운 증인을 내세울 것이냐는 식으로 시비를 걸며 여권운동가 여교수가 물었다.
“진영후 역사학과 3학년을 증인으로 채택해주세요.”
“그녀는 뭘 증명합니까?”
“5월 24일에 언어교환 시간이 다 끝나고 나서도 주동적으로 연구실에 남겠다고 츠리엔이 했던 말과 행동을 증명해 줄 중요한 증인입니다.”
“그 4, 5명입니까?”
“네. 맞습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교수님께서는 사전에 이 학생들과 절대로 직접 연락을 하시거나 접촉을 해서는 안됩니다.”
마치 대단한 룰을 정하는 듯 페미니즘 강사가 시비를 걸 듯 말했다.
“어제는 츠리엔과의 라인 대화만을 봤는데, 위지에와 윈한의 자료도 있어서 챙겨 왔습니다. 그리고 6월 1일 위지에가 공부하는 시간에 찾아와서 보였던 버릇없는 보인 이상한 행동에 대해서도 참고해주셨으면 합니다.”
그 자료를 보다가 마치 찔리는 구석이 있는 사람처럼 남자 위원장이 애써 변명 아닌 변명을 시작했다.
“어쩌면 위지에는 연휴가 끝나고 교수님의 연구실에 찾아가서 이상한 행동을 보인 6월 1일까지도 성희롱이라는 것에 확신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기 전에는 이상한 것을 몰랐을지도 모릅니다.”
‘이게 무슨 뜬금없는 커밍아웃인가?’
박 교수는 듣고 있던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무리 오랜 시간 지쳐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남자 위원장은 이미 위지에가 성희롱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까지 내놓고 있다는 것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공부하기로 했던 날인 6월 1일에 와서 위지에가 찾아와서 이상한 말을 하며 저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을 분명히 기억합니다. 위지에가 뜬금없이 저에게, ‘학생들의 논문을 가지고 짜깁기를 한다면서요?’ 라던가, ‘왜 교수님 개인적인 심부름을 우리들에게 시키고 그래요?’라던가 시비를 걸었지만 거기에서도 성희롱 얘기는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특히, ‘츠리엔과 병선의 논문을 이용했잖아요.’라는 생뚱맞은 소리를 했습니다. 병선이가 곧 오기로 해서 직접 본인에게 물어보고 확인하기로 하고 그를 기다리는 해프닝까지 벌였습니다. 병선이가 와서, ‘모두 교수님이 지도해줘서 내가 연습한 건데 너 왜 갑자기 그런 식으로 구니?’라고 따졌습니다. 그래서 내가 위지에에게, ‘왜 이런 식으로 갑자기 그러는 거니?’ 라고 이해할 수 없어서 물었습니다. 그런데 의심을 지울 수 없는 것이 그날 새벽에 츠리엔이 보낸 이 메일의 내용과 똑같은 내용이라 어쩌면 츠리엔에게 속아서 선동당해 이런 짓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권운동가 여교수가 남자 위원장의 의견을 돕듯 나섰다. 그들은 이미 조사 이전에 의견의 합치를 본 듯 느껴졌다.
“둘이서 얘기를 나눴을 수도 있지요. ‘아, 너도 그런 일이 있었어? 아! 나도 있었어.’라고 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성희롱인지 깨달았을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그건 정말 억지로 짜 맞춘 모순입니다. 5월 27일의 위지에가 저와 나눈 라인 대화를 보면 이전과 다름없이 아주 친밀하게 얘기하면서 ‘더 열심히 공부하고 싶어요.’라고까지 의견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연휴가 끝나자마자 돌아와서 갑자기 반감을 표시했다는 것이 자연스럽습니까? 심지어 그녀는 6월 1일에 찾아와서 자신의 말을 둘러대면서, ‘이 모든 이야기가 교수님은 모르는 저의 룸메이트 4명과 나눈 얘기의 내용일 뿐입니다.’라고 말을 꾸몄습니다.”
조사위원들은 이미 박 교수의 주장에 대해 경청하기를 포기한 듯 딴청을 부렸다. 다시 박 교수가 시간이 더 지나가기 전에 정식 요구를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츠리엔에게 통화 녹음 내용 전체를 제공하라고 명령해주시겠습니까?”
“으음, 말은 해보겠지만, 내던 안 내던 그건 그녀의 자유입니다.”
딴청을 피우던 남자 위원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박 교수의 요청을 콧방귀 뀌듯 날려버렸다.
“사법 과정처럼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를 제출하는 것이지,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까지 모두 내놓으라고 우리가 요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유리한 증거가 있다면 그걸 내던가 하시지요.”
“저는 녹음을 하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녹음을 한 사람이 증거를 전체 제출하라고 하는 게 조사위원회에서 할 수 없는 일입니까? 그리고 내가 그런 성희롱을 했다는 증거도 어디에도 없지 않습니까?”
“당신이 츠리엔의 이메일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행위가 있었다고 보는 겁니다.”
남자 위원장의 설명에 쐐기라도 박을 듯이 페미니즘 강사가 몸을 앞으로 들이밀며 강하게 다시 외쳤다.
“당신이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증거라고 봅니다.”
여권운동가 여자 교수도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마치 지나가듯 말했다.
“우리는 그렇게 믿습니다.”
세 조사위원의 트리오 합창을 듣고 나서 다시 한번 박 교수가 일갈을 날렸다.
“학생이 있지도 않은 사실을 꾸며서 조작 이메일을 보내고 교수를 죽이겠다고 하겠다는 행위를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고 판단하는 것이 조사위원회가 말하는 ‘합리’라는 겁니까?”
“아, 됐구요. 이미 12시가 또 넘었습니다. 이제 조사할 것은 다 한 것 같으니까 다음에 필요하게 되면 부를 테니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남자 위원장의 강제적 종료 선언으로 박 교수는 더 이상 항변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며 새벽의 비릿한 공기를 맞으며 사택으로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