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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Oct 02. 2021

대만에 사는 악녀 - 13

성별평등위원회 조사위원회의 세 번째 조사 - 1

이전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314


성별평등위원회 조사위원회의 세 번째 조사

                                              - 2017년 6월 23일

                         외교대학교 행정대루 5층 회의실

 

며칠 전도 아니고 하루 전에 성평회 여자 직원으로부터 느닷없는 조사 참석 요구 전화가 온 것은 저녁이 다 되어서의 일이었다. 화요일과 수요일에 조사를 하고 지쳐있던 그에게 목요일 저녁에 금요일 점심 12시까지 조사에 참석하라는 연락이 온 것이었다.

낮에 부르는 것도 이례적이긴 했지만, 두 번째 조사의 말미에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줄 수 있는 학생들의 이름을 적어갔고, 그렇게 이틀이 지났기 때문에 나름 기대를 할 만도 했다. 하지만 먼저 연락이 온 병선과 영후에게서 들은 소식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았다.

병선에게는 금요일 오전에 잠시 들르라는 식으로 통보가 왔고, 그 통보가 오자마자 학과장이 따로 만나자고까지 불러서 ‘가급적이면 네가 이 사태에 밀접하게 개입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식의 간접 협박까지 있었다는 말을 들은 박 교수는 기운이 빠졌다. 그렇게 애타게 찾아도 단 한번 자신을 불러서 영문을 묻지도 않은 학과장이 증인조사를 앞둔 남학생을 불러한다는 말이 공정하게 들은 그대로 전달하는 것도 아니고 가급적이면 이 사태에 밀접하게 개입하지 말라니.

이후 영후에게서 온 연락이 더 가관이었다.

“교수님. 아예 저한테는 연락이 오지 않아요.”

이 사태가 터지고 나서 박 교수의 연구실에 직접 찾아와 걱정하며 거짓말하는 츠리엔과 위지에, 윈한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서 함께 상의하고 기도해주겠다며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녀준 학생들이었다. 공통점이라면 그들은 기독교 신자였다. 정작 그렇게 친한 척을 하고 최측근이라고 하던 학생은 직접 등에 칼을 꽂고, 친하다고 아양을 떨던 학생들은 저마다 모른 척을 하고 연락을 끊어버렸다. 어쩌면 직접 일을 꾸민 여학생보다 박 교수에게 있어 더 아픈 손가락은 아무 말도 없이 연락을 끊어버린 여타의 학생들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조사를 받는 내내 정신이 없었고, 아무 영문도 모르고 아빠가 힘들어하고 녹취된 내용을 충혈된 눈으로 들으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초등학생인 아이들에게 있어 불안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했다. 박 교수의 아내가 중간에서 아이들이 신경 쓰이지 않도록 케어한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동요하고 힘들어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는 아이들이 그 변화와 불안감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아이들이 그것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박 교수는 초주검 상태였다.

 

12시에 도착해도 저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공금으로 점심 도시락을 시켜서 회의실에서 키득거리며 먹고 있었고, 도시락 제공도 없이 불러서 창고 공간에 30여분을 가둬뒀다가 부르는 패턴은 세 번 만이지만 이미 익숙해진 것만 같았다.

이전의 큰 회의실이 아닌 작은 간의 회의실 공간으로 안내되어 문을 열자 역한 도시락 냄새가 여지없이 박 교수를 맞았다. 도시락 멤버에는 경상도 통역 여자도 함께였다.

“오늘은 뭔가 특별한 일이 있어서 부른 것은 아니고 간단하게 공지할 것이 있어서 부른 겁니다.”

다짜고짜 공문이라며 종이를 내밀었다. 특별한 전달사항이라도 싶어 얼른 봉투를 뜯고 내용을 꺼냈다.

“공문을 줄 게 있다는 건가요? 이건가요? 어떤 내용이지요?”

잔뜩 긴장한 박 교수의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결국 특별한 내용도 하나 없이 오늘 공식 회의가 있어서 부른 거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회의비 청구나 도시락 비용의 처리를 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과정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뭐, 새로운 상황이나 다시 물어볼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신이 추천했던 학생들의 조사를 했습니다.”

남자 위원장이, ‘깜짝쇼에 놀랐냐?’ 하며 비웃는 듯한 어조로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박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부터 확인하려 들었다.

“왜 가장 중요한 증인이 나에게까지 연락을 해서 ‘왜 자신은 안 부르냐?’고 계속 묻는데...”

경상도 여자 통역이 통역은 고사하고 남자 위원장의 말을 막지 말라고 제지했다.

“일단 위원장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기로 하지요.”

마치 박 교수가 큰 결례라고 범한 것인 양 경상도 통역 여자가 이야기를 계속하라며 위원장에게 손을 뻗으며 웃어 보였다.

“단 병선, 정우영, 진아진, 무안제, 임우문, 진영후 등이 당신이 알려준 증인들이었습니다. 무안제, 진영후 이 두 사람은 우리가 부르지 않았습니다.”

또 말을 제지한다고 할까 봐 말은 못 하고 잔뜩 의아하고 마뜩잖은 눈초리로 박 교수가 위원장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왜 안 불렀는지 말하죠. 진영후는 성평회에 이미 이메일을 보냈기 때문에 그녀의 의사는 우리가 충분히 들었다고 생각해서 부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얘기는 전에도 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5월 24일의 여학생과 저의 주장이 완전히 상반된 특별한 상황이라던가 확실하게 누구의 말이 맞는지를 증명할 수 있음에도 왜 안 불렀습니까? 성평회에 보낸 이 메일에 쓴 내용은 일반적인 내용일 텐데요?”

“어쨌거나 중요한 내용은 이메일에 다 있어요. 나중에 보여드리도록 하지요.”

박 교수가 다시 뭐라고 따지려고 들자 저지하듯 여권운동가 여자 교수가 제지하듯 다시 한번 말했다.

“우리는 그녀가 보낸 이메일에 필요한 내용이 모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안제는, 굳이 바로 옆에 있던 임우문을 불렀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거리가 임우문이 훨씬 더 가까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남자 위원장의 설명을 다시 한번 보충하려는 듯 여권운동가 여자 교수가 굳이 다시 말을 덧붙였다.

“굳이 더 멀리 있었던 학생을 부를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뭔가 그녀의 반복된 설명이 오히려 이상하고 불길한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이 학생들을 불러달라고 교수님이 요청했던 이유는, 단 병선의 경우 5월 25일의 파티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정우영은 원래 우리가 원래 인터뷰하려고 했던 우리 측 증인입니다.”

‘우리 측?’

그의 의도하지 않은 실수는 이제 의도적인 실수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가 말하는 우리에 최소한 박 교수 자신은 들어있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박 교수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이 그렇게 가깝다고 믿었던 정우형이 이미 츠리엔에게 넘어가 그쪽 측의 수많은 거짓 증언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사실 정우영은 교수님을 조사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불러서 조사했었습니다.”

다시 한번 여권운동가 여교수가 부연설명인지 반복인지 모를 군더더기를 붙였다. 이전 두 번의 조사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그녀의 이상스러운 패턴은 그들이 뭔가를 감추고 있거나 뭔가 그들의 의도가 다른 곳에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박 교수로 하여금 갖게 할 만했다.

“그리고 진영후를 부르려고 했던 것은 평상시에 교수님에 대한 평가 때문이 아닙니까?”

갑자기 훅 들어와 슬쩍 넘어가려던 남자 위원장의 발언이 박 교수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걸렸다.

“아니지요. 진영후는 5월 24일에 누가 주동적으로 연구실에 남았는지를 듣고 본 증인이기 때문에 중요하지요. 이미 보냈다는 메일에 5월 24일의 상황에 대한 증언은 없는데 왜 안 부른 거죠?”

뭔가 뒤흔들고 복잡하게 하다가 슬쩍 넘어가려고 했던 설명이 여지없이 걸렸다는 느낌의 표정으로 세 사람의 입이 붙어 버렸다. 그들의 표정도 일제히 동시에 굳어버렸다.

“당신이 증명하고 싶은 것이 뭐라는 거죠?”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슬쩍 화제를 전화하듯 남자 위원장이 물었다.

“누가 그렇게 밤늦은 시간까지 주동적으로 남으려고 했는가에 대해 상반된 주장이 있었고 그 부분에 대해 누구의 진술이 맞는지에 대한 진실 여부입니다.”

남자 위원장은 큰 맘을 먹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며 이제까지 했던 질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황당한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그날 누가 주동적으로 남겠다고 한 것이 우리 성희롱 조사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죠?”

박 교수는 어이가 없었지만, 멍하니 황당해해서는 결코 원하는 조사 결과를 이끌어낼 수 없는 불공평한 잣대에 서 있다는 것을 충분히 경험했기에 바로 반박에 나섰다.

“그건 당연히 중요하죠. 이미 라인 대화에 자기가 주동적으로 오겠다고 말한 증거가 있는데, 5월 24일 2시간이나 공식적으로 언어교환 대신에 같이 공부했는데도 나중에 둘이서만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자신이 주도적으로 남겠다고 한 게 성희롱과 관련이 없습니까? 게다가 그 학생은 새벽 한 시반까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압에 의해 붙들려 있다는 주장까지 했습니다.”

경상도 통역 여자가 갑자기 빨라진 박 교수의 말귀를 못 알아듣고 엊그제 설명했던 상황을 모두 잊어버렸는지 엉뚱한 소리를 하며 끼어들었다.

“저녁에 궁금한 것들에 대해 물어봤는데 무슨 2시간 반이나 또 공부한다는 거지요?”

통역의 황당한 질문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순간, 어쩌면 통역도 이 세 조사위원들과 작당을 하고 이상한 쪽으로 생각을 굳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박 교수의 뇌리를 스쳤다.

그래서 그는 다시 태블릿을 꺼내 상황을 설명했다. 이틀에 걸쳐 8시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하며 설명했는데도 경상도 통역 여자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아니요. 먼저 공식적인 언어교환이 있었는데 아내가 안 와서 그 2시간이나 같이 공부했잖아요. 그런데 그날 물어볼 게 있다고 하며 오겠다고 대답한 대화 증거가 있잖아요. 그러면 2시간 공부시간에 이미 물어볼 게 있었다면 다 공부했을 텐데, 그게 끝나고 나서도 자기가 주동적으로 교수님과 둘이서만 할 얘기가 있다고 하는 말과 그 태도, 모두를 진영후 학생이 보고 들었기 때문에 중요한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아니요. 그게 도대체 성희롱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남자 위원장은 아예 노골적으로 계속해서 말을 돌리고 주제를 흐리려고 했다.

“우리가 이해하려고 하는 상황에서 츠리엔은 그저 한 상황일 뿐입니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인가?’

아마도 세 명의 여학생의 건이 있고, 그중에 한 건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 정도라고 박 교수는 받아들였다. 하지만 역시 동의할 수 없는 언사였다.

“맞습니다. 내 주장은 주동인물이 츠리엔이고, 그녀가 도대체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 아닙니까? 그리고 그녀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 아닙니까?

“그건 교수님의 주장이지요. 우리는 별로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젠 아예 박 교수의 의견이나 주장에 대해 자신들이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는 명명적 선언식의 말투까지 서슴지 않았다.

“결국 그것이 모두 교수님의 주장일 뿐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 주장을 위해서는 내가 증인을 통해서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고 조사를 해달라고 요청한 것 아닙니까?”

그랬더니 남자 위원장은 책상을 가볍게 탁 치며 마치 판결이라도 내리는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는 이미 일정 부분에 대해 성희롱이 인정된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굳이 그런 증언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니요. 심지어 위지에가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했던 그날, 5월 18일에 야외수업을 했던 날에도 세 명의 고발 학생 중에서 두 명이나 함께 식사자리에 있었던 증인이 단 병선과 진영후입니다. 그날 함께 동석해서 같이 밥 먹겠다고 했던 자진 해서 따라온 학생이 윈한과 위지에였습니다. 그들의 주장이 옳다면 이제까지 두 달이 넘게 성희롱을 당한 여학생들이 누가 그런 행위를 한 교수와 같이 식사를 하겠다고 일부러 따라온단 말입니까?”

페미니즘 강사가 다시 바통을 이어받아 박 교수 저지 공격에 나섰다.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상황은 5월 18일의 상황이 아닙니다. 5월 18일의 상황이 우리가 조사하는 성희롱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겁니까?”

박 교수가 너무 화가 나 벌떡 일어날 지경이 되자 남자 위원장이 손을 내밀어 페미니즘 강사의 도발을 저지하며 말했다.

“그건 나중에 우리가 설명하도록 하지요.”

“5월 25일 파티에서 위지에의 무릎이나 허벅지에 손을 댔냐고 질문했더니, 무릎에 퀴즈의 정답을 써주었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위지에와 교수님이 다른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음료를 먹은 것에 대해서 말했지요. 자, 그럼 알려드리지요. 단 병선이 교수님이 마시는 것을 봤다고 했습니다.”

남자 위원장은 마치 대단한 증거를 발견한 냥 ‘이걸 말하면 꼼짝 못 하겠지?’라는 유치한 표정으로 입술을 앙 다물어 보이기까지 했다.

“이미 그전에 연구실에 차를 가지고 왔을 때 ‘이거 굉장히 향이 좋은데 마셔보시겠습니까?’라고 이야기 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날 우리 집에서 차를 마신 것이 지금에 와서 새삼 중요하고 뭔가 대단한 내용이라도 된다는 겁니까?”

“그건 차였지요. 음료가 아닙니다.”

그 와중에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겠다고 페미니즘 강사가 다시 톡 튀어 오르듯이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시비 걸 듯 말했다. 그러자 남자 위원장은 그 문제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는 듯한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처음에 물었을 때 아니라고 했는데, 우리가 확인한 사실은 마셨다는 겁니다. 당신이 어떤 대답을 하던 우리는 당신의 대답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이전에 물었을 때 당신은 아니라고 했다가 지금 당신이 제시한 증인에 의해 사실이 밝혀진 거 아닙니까?”

마치 누명 쓴 살인사건을 뒤집을 중대한 증거를 발견한 것처럼 침소봉대하겠다는 그의 의도는 너무도 강력하게 박 교수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여전히 박 교수는 그가 말하는 내용이 와닿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의 자신만만한 태도가 더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 같아서 불편했다.

“모든 언어는 차이가 좀 있을 겁니다. 안에 뭐가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셨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게 뭐가 중요하다는 거죠?”

쓸데없는 부연 설명에 ‘그러면 페미니즘 돼지가 말할 때는 왜 그런 식으로 막지 않느냐?’라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말하는 방식을 또 바꾸시는군요.”

남자 위원장이 박 교수의 대답을 비아냥거렸다.

“뭐가 바뀌었죠?”

“5월 25일의 음료를 마셨냐고 물었지요? 그런데 오늘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안 마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단 병선 학생이 집에서 그것을 교수님이 마시는 것을 봤다고 확인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전에도 그녀가 마시라고 해서 마신 적이 있기 때문에 마셨던 것 같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뭐가 박 교수가 반박을 하기도 전에 남자 위원장은 얼른 다음 대목을 읽기 시작했다.

“다음 5월 3일 아이시 식당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단 병선 학생이 교수님이 성희롱에 해당하는 행동을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네?”

‘그런 행동을 본 적이 없다.’까지 제대로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그러니까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알 수 없다는 논리 비약이 어떻게 성립되는지 박 교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걸 보지 못했다는 것이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없다는 증거와 증인이 안된다는 말입니까?”

그때 다시 여권운동가 여교수가 끼어들었다. 그녀의 오늘 역할이 확실하게 어떤 부분인지 그제야 박 교수는 패턴 인식이 되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논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나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 감추고자 할 때, 그녀가 어김없이 중복 설명을 하거나 등장하여 부연설명을 하는 패턴을 보이고 있었다.

“여학생이 말한 그 행동이 이루어졌다고 하는 때는 메뉴를 시킬 때입니다.”

“메뉴를 시키던 밥을 먹던 공개된 탁 트인 식당이고 엄청나게 큰 식당도 아니고 좌석이 10석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식당입니다. 아이들과 아내까지 모두 함께 간 공간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 보지 못한 것은 그런 행동이 없었다는 증명 아닙니까?”

최대한 그의 논리적인 지적을 무시하려는 듯 남자 위원장이 설명을 이어갔다.

“병선과 츠리엔이 먼저 가서 메뉴를 시켰다고 합니다.”

“어차피 남학생이 그런 행동을 보지 않았으니 진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 서로 증명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게 말이 됩니까?”

“나는 뭔가 증명하려는 게 아니라 단 병선 학생이 뭐라고 증언했는지 전달할 뿐입니다. 저는 그 학생을 인터뷰한 결과를 얘기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는 이 부분에 대한 궤변을 무리 없이 소화하기 위해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한 사람처럼 보였다. 전혀 표정의 미동도 없이 책을 읽듯이 준비한 글을 읽는 사람처럼 대사를 읊었다.

“츠리엔은 교수님께서 그런 행동을 했다고 하고, 교수님은 아니라고 하고, 함께 있던 남학생은 못 봤다고 하니 결국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주장을 증명할 수 없다고 한 것뿐입니다. 뭐가 이상합니까?”

“아니...”

곤란한 부분에 있으면 빠르게 전혀 상관없는 다음 진도를 나가는 것은 이미 익숙해진 남자 위원장의 패턴이었다.

“진아진 학생의 경우는 교수님이 아진이의 몸을 건드린 적이 없다고 대답하셨었습니다. 하지만 진아진 학생은 교수님이 아이의 허벅지를 툭툭 치면서 ‘안쪽으로 바로 앉아라.’라고 한 적이 있었답니다. 그리고 팔을 잡고 이쪽으로 똑바로 앉으라고 지적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하지만 그 학생은 그것이 성희롱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도 밝혔습니다. 신체에 접촉이 있었다는 것만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다시 물었습니다. ‘너는 교수님의 그런 행동을 어떻게 이해했냐’ 그러자 그녀는 그냥 말로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고 대답해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터치한 적이 없다는 교수님의 말과 여학생의 증언은 정말 다릅니다.”

남자 위원장은 박 교수에게 철저하게 진술을 바꾸는 거짓말쟁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말했던 내용은, 손가락 하나 부딪힌 적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았냐는 것이지...”

박 교수의 말을 의도적으로 비아냥거리려는 듯 코웃음을 친다는 페미니즘 강사의 웃음소리가 너무 튀게 들려 대화가 끊겼다. 페미니즘 강사를 불쾌하게 쳐다보는 박 교수의 시선을 무마하려는 듯 남자 위원장이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나갔다.

“신체에 터치를 하지 않았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요. 그런데 터치를 했어도 불편한 문제가 있는지 아닌지는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미 강의 중에도 머리를 쓰다듬거나 자연스러운 터치가 있었던 사실에 대해 인정한 바 있습니다.”

박 교수의 정리에도 남자 위원장은 아직도 그가 제대로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듯 가르치듯 시비를 걸었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먼저 교수님에게 ‘신체 접촉이 있었습니까?’라고 물었고, 교수님께서는 분명히 ‘없었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물론 진아진 학생은 교수님의 행동이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권운동가 여교수와 페미니즘 강사가 동시에 박자를 맞추기라도 한 듯 외쳤다.

“건드린 것은 건드린 것이지요.”

“원래 교수님의 증언과 학생들의 증언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 우리는 중요합니다.”

남자 위원장의 오늘 주안점은 계속해서 박 교수가 거짓 진술을 하거나 사실을 부정했다는 것으로 몰고 나가는 것인 듯 느껴졌다.

“내가 학생들을 증인으로 조사해달라고 요청했던 의도는, 내가 연구실에서 학생들에게 성희롱에 해당하는 행동 따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해달라는 것이지, 서로 몸이 닿은 적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해달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몸이 닿았는지 안 닿았는지는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 교수의 정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말꼬리를 붙잡고 페미니즘 강사가 외치듯 말했다.

“몸에 닿았다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얘기해놓고도 민망했던지 옆을 힐끔 보고 다시 박 교수를 쳐다보며 입을 앙 다물며 눈을 희번덕거렸다.

‘몸이 닿았다는 걸로 몰아붙일 셈인가?’

그들이 정확하게 공격의 포커스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도 명확하게 감이 잡히질 않았다. 뜬금없이 경상도 통역 여자가 한국어로 따지고 들었다.

“몸이 닿은 것 자체가 문제라는 거 아닙니까?”

마치 한국어를 이해하기라도 한 사람처럼 남자 위원장이 가르치듯 말했다.

“아예 신체 접촉 자체가 없었다면 성희롱 자체가 성립하지도 않았겠지요.”

‘무슨 이런 하나마나한 논쟁을 설명이랍시고 하는 거지? 뭘 얘기하고 싶은 거냐구?’

계속 영문을 몰라 답답해하는 박 교수의 앞에 다시 남자 위원장이 종이 하나를 내보이며 말했다.

“이게 진영후 학생이 성평회에 보낸 이메일입니다.”


14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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