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잘 보이지도 않게 앞으로 내밀었다가 다시 자신의 앞으로 가져가서는 읽으면서 그가 설명을 시작했다.
“이 학생은 교수님의 교수 방식에 대해서 굉장히 훌륭하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한국어 프로그램과 유료 앱도 무료로 제공해주었고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개인 시간도 굉장히 많이 투자하셨다고 하고 있습니다. 내가 다시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이 여학생의 몸에 닿은 적이 있습니까?”
“네.”
“어떻게 접촉이 있었습니까?”
“얘기할 때 무릎을 치거나 머리를 쓰다듬거나 등을 두들기거나 어깨를 두들겨 주거나 등등 일반적인 것이었고, 손이나 팔이 닿은 적도 있을 겁니다.”
앞서 단순한 신체접촉에 대한 것까지도 거짓말을 했다는 식의 매도를 당한 터라, 박 교수의 대답은 아주 건조하지만 명확하고 세세해졌다. 특별히 트집 잡을 것이 없다고 느꼈는지 남자 위원장이 다시 원고에 시선을 돌렸다.
“계속 읽겠습니다. 그녀의 이메일에도 보면 ‘교수님은 몸이 접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수님이 저의 몸을 가볍게 접촉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교수님은 학생들을 자신의 아이처럼 대하는 것과 똑같이 행동하셨던 것이라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희롱이라고 고소를 한 사실을 들었을 때 경악했습니다.’라고 적고 있는데요. 그 내용이 세 가지 사실로 정리됩니다. 첫째, 학생들은 당신을 굉장히 존경하고 있습니다. 둘째, 몸의 접촉이 가볍게 있었다. 셋째, 그 이유를 교수님이 학생들을 자신의 아이처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메일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사안은, 친밀하게 가벼운 몸의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친밀하기 때문에 성희롱이라고 느끼지 않았지만 이 학생은 접촉이 있었다고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친밀한 사이에 그런 행동이 있었다는 게 이상한 일입니까?”
“여기까지 얘기했는데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이제까지 많은 학생들이 일단 몸의 접촉이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문제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떤 학생들은 불편하다고 말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학생들의 의견을 내가 무시해야 합니까?”
갑자기 남자 위원장은 이제까지 전혀 논리적이지 않았던 자신의 캐릭터를 무시하고 새롭게 날카로운 논리로 무장한 셜록 홈즈쯤이나 되는 탐정으로 보여지길 원하는 듯했다.
“우리는 신체 접촉이 있었는가에 대해서 확인을 했고 신체접촉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당신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저도 이 조사의 목적에 대해 다시 한번 환기시켜 드리도록 하지요. 지금 여기에서 조사하려는 것은 내가 학생들과 몸이 닿았는지 안 닿았는지를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성희롱이 있었는지 아닌지에 대해 조사하는 것입니다.”
박 교수의 갑작스러운 논리 공격에, 남자 위원장은 논리에서 결코 밀려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하지만 박 교수의 공격은 그리 녹녹한 편이 아니었다.
“성희롱은 지금 아주 명확한 기준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기준이 정해져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부분입니다. 내가 한 가지 예를 들도록 하지요. 증인도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나에게 학생들의 감정을 생각해봤냐고 물었습니다. 나 역시 당연히 그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의 학생이 나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인격체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강의 중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남자 위원장이 한껏 자신이 멋을 내며 논리를 펼치려는데 무시를 당한 것 같아 짜증을 내면서 말을 막았다.
“우리는 지금 다른 예를 듣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아니요. 이건 학생들에 대해 내가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알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사례입니다. 3학년 중에 말레이시아에서 온 학생이 있었습니다. 강의 중에 저는 책을 들고 학생들 사이를 걸어 다니면서 수업을 합니다. 내가 그 학생에게 다가가면, 그 학생이 위압감을 느껴 겁이 난다고 해서 그 얘기를 듣고 알겠다고 하고 아예 그 근처로 다가가지 않는 행동을 보였던 저입니다. 이것이 내가 평상시 내가 학생들에게 어떻게 대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내가 한 질문은 학생들이 당신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지 물었습니다.”
“내 대답은, 내가 그들의 감정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라는 겁니다. 객관적으로 그 사람이 불편하다고 표현했다면, 좀 더 상황은 명확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두 달이 넘는 긴 기간 동안 지속되었다는 여학생들의 거짓말은 내가 그 학생들과 해당 기간 동안에 매우 친밀하고 가까운 사이였다는 것이 증명된 순간, 그 모든 것들은 이 사건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만 하는 수업이 아닌 개인적이고 자발적으로 연구실을 찾아오고, 교수의 집까지 놀러 올 정도의 사이였다면 이것은 그들의 주관적인 감정이 불쾌하거나 적대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증거입니다. 그 사람의 감정을 측정할 수는 없겠지만 성희롱을 당해서 이미 불쾌감이 생긴 사이라면 앞서 내가 증명해 보인 모든 일들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질투심에 복수하겠다거나 무고한다는 것은, 당신의 주장일 뿐이고 우리가 판단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결국 교수님이 학생의 몸에 손이 닿았다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남자 위원장은 오늘 자신이 정한, 혹은 그들이 담합해서 정한 신체접촉 자체가 있었다는 점만으로 밀고 나가자는 논리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교수님의 행동이 성희롱의 불쾌감을 학생에게 주었는가 아닌가를 조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여권운동가 여교수의 중복된 설명은, 아마도 이미 고발한 세 학생은 불쾌하다고 고발한 것이니 당연히 성립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듯 보였다. 페미니즘 강사의 궤변도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다.
“교수님이 위지에를 정말로 존중한다면, 위지에가 마시라고 하기 전에는 마시면 안 되는 거고 마시려면 양해를 구했어야 하는 겁니다.”
비아냥거리듯 말하는 남자 위원장에게 박 교수가 다시 위지에와 있었던 일이 떠올라 설명을 시작했다.
“위지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교수님같이 이렇게 많이 배우고 돈도 많은 사람이 이런 나라의 이런 대학에 온 것에 대해 내가 추리해 본 결과, 다음의 세 가지 정도의 추론이 가능했습니다. 첫째, 박근혜와 같은 박 씨인 것을 보니 아마도 그 인척이라서 도망쳐 온 거다. 둘째, 삼성이나 롯데 같은 큰 그룹의 사모님과 바람이 나서 총수에게 찍혀서 살해당할지도 모를 위기를 맞아서 이 나라로 도망쳐 온 거다. 셋째, 박근혜의 재산을 관리하거나 그 관계자라서 일단 국내에 있으면 위험하기 때문에 도망쳐 온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가당치도 않은 자기 분석을 신나서 떠들어댔습니다.”
어김없이 페미니즘 강사가 다시 딴지를 걸며 나섰다.
“그게 도대체 성희롱과 무슨 상관이 있지요?”
“상관이 아주 많지요. 당신들이 지금 존중이 어쩌고 하면서 상대방이 느낀 불쾌감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불쾌감을 느꼈다는 여학생이 교수에게 이런 식으로 성적 모멸감이 포함된 내용으로 떠들어대는 것은 존중이나 불쾌감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겁니까?”
페미니즘 강사는 자신이 유일하게 물고 늘어지던 항목이 또 나왔다 싶어 잘난 척 나섰다.
“교수님이 그런 말을 듣고 왜 바로 교정해주지 않았나요?”
“내가 교정해주지 않았다고 한 적 없는데요? 바로 지적하고 교정했습니다. 하지만 그 여학생은 상관없이 비웃으며 떠들어댔습니다.”
“그러면 그 얘기는 더 이상 하지 맙시다.”
페미니즘 강사가 더 이상 얘기가 진전되면 불리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는지 말꼬리를 돌리고 고개를 홱 돌렸다.
“당사자가 불쾌감을 느꼈는지와 존중의 문제를 당신들이 말했잖아요. 나는 몸이 닿는 것 자체가 있어서는 안 되고 학생들은 나에게 막 해도 된다는 겁니까?”
페미니즘 강사가 지치지도 않은지 다시 나섰다.
“그렇지요. 당신은 교수니까요. 그러면 안 되지요.”
그러자 다시 상황을 정리하듯 너그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남자 위원장이 자상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아무런 상관없이 어쨌거나 다른 사람의 몸에 닿는 접촉행위 자체가 안 되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존중도 없이 아무나 만지고 그랬다는 겁니까?”
“교수님께서는 심각한 고려 없이 학생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그랬습니다.”
“당신은 무슨 근거에서 내가 심각한 고려도 하지 않고 그런 행동을 했다고 단정 짓습니까?”
“고려는 당신의 머리로 해야 하는 겁니다. 손이 나와서 그런 행동을 이미 한 거 아닙니까?”
“당신이 무슨 근거로 내가 그런 고려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당신이 물어보지도 않고 음료를 마신 것 같은 행동을 말합니다. 존중하는 행동을 취했다면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되는 거지요?”
“당신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지에가 나에게 차를 마셔보라고 했던 행동은 굉장히 예의가 바른 행동이라구요. 맞습니까?”
“연구실에서 있었던 얘기는 하지 말지요. 나는 25일 파티에서 당신이 묻지 않고 그녀의 차를 마신 것을 말하는 겁니다.”
“동일한 학생이었고, 연구실에서 유사한 사안이 있었던 것도 증명이 되었습니다.”
“그건 교수님의 주관적인 생각이지요.”
“주관적이지 않은 생각이 있나요?”
“지난번에는 원했지만 지금은 원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 아무런 문제도 없이 친밀하게 지냈다는 것을 증명하는 라인 대화 증거들은 아무 증거 효력이 없나요? 그렇게 불쾌하고 그렇게 느꼈다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친밀하게 지냈다는 것은 말이 됩니까?”
“존중에 대한 기본적인 관념은 다시 얘기할 필요도 없이, 존중의 결과가 있는지 자신이 생각해보세요.”
“내가 너무 친밀하게 지내고, 너무 가까워서 매번 물어보고 행동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나의 실수라면...”
뭔가 더 설명하려는 박 교수의 말을 제지하며 남자 위원장이 말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말씀드리지요. 저 역시 딸이 둘이나 있는데 이제 서른이 다 되어 갑니다. 내가 내 딸과 신체접촉이 있을 때, 나는 지금까지도 매우 조심스러워합니다. 그들이 어떤 느낌을 갖는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함부로 내 딸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당신이 학생들을 내 자식처럼 생각한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 역시 내 아이들을 존중합니다. 학생들은 교수님의 진짜 아이들도 아닌데 훨씬 더 존중하고 주의하셔야 합니다.”
“나 역시 딸이 있습니다. 내가 그들을 존중했고 막 대하지 않았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 얘기는 이미 충분히 했고, 당신의 그런 모습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학생들의 태도도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을 터치하는 부분에서 그들이 그것을 좋아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박 교수가 다시 논리를 내밀며 논쟁을 하기 시작할까 두려워 남자 위원장을 얼른 다음 주제로 이야기를 돌렸다.
“임우문에 대해 우리가 조사했던 내용을 말하겠습니다. 당신의 집에 초대받아서 갈지 말지에 대해 얘기했던 오후 강의 쉬는 시간에 있었던 사안에 대한 부분입니다. 교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츠리엔이 자기가 먼저 가겠다고 했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교수님이 츠리엔에게 꼭 그날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츠리엔은 반드시 가겠다고 했지요.”
이번에는 여권운동가 여교수가 아니라 페미니즘 강사가 애써 중복하며 상황을 설명했다.
“이 그림은 우문 학생이 그린 그림입니다. 위치는 전날 교수님이 설명해주시며 그렸던 위치와 똑같았습니다. 먼저 우문 학생은 약속이 있어 못 간다고 했답니다. 츠리엔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문은 분명히 츠리엔이 가겠다 안 가겠다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박 교수는 설명을 들으면서도 전혀 당시 상황과 다른 말을 버젓이 하는 임우문의 증언이 왜 그렇게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교수님이 했던 설명과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츠리엔은 교수님께서 ‘너 나한테 맞고 끌려갈래?’라고 했다는데 우문 학생은 그런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상한 거짓말을 할 줄 알았더니 최소한의 양심은 있네, 그래도.’
박 교수는 임우문이 츠리엔과 단짝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진실을 은폐하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했던 부분에 자신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았던 학생이 우리 집에 올 수 있었다는 거지요?”
핵심을 콕 짚어서 묻는 박 교수의 느닷없는 질문은 언제든 조사위원 세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우문이 우리에게 어떻게 대답했는지만 알려드리는 겁니다.”
여권운동가 여교수가 당황한 남자 위원장의 지원사격에 나섰다.
“교수님의 빠른 한국어로 설명해서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수업하기 전에 그 얘기를 잠시 했고, 다시 쉬는 시간에 또 물어봤다고 합니다. 우문의 증언은 ‘츠리엔이 정말로 가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남자 위원장은 자신의 논리가 부족해서 언뜻언뜻 자신도 모르게 감추려고 했던 의도를 상대방에게 힌트를 주듯이 흘린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그들이 결국 임우문의 증언에서 주장하려는 것은 단 하나, 교수의 주장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호락호락 당할 박 교수가 아니었다. 생각할 틈도 없이 그의 반격이 시작됐다.
“최소한 객관적으로 세 가지 사실은 그 학생의 증언으로 확인이 되었네요.”
세 조사위원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박 교수가 또 무슨 논리로 자신들의 폐부를 찌를지 귀를 쫑긋 세웠다.
“오늘 와도 되고 내일 와도 된다는 점, 최소한 이 부분만 보더라도 선택권을 제시했던 사람이 끌고 가겠다고 뜬금없이 협박하는 것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남자 위원장이 황급하게 말을 막듯 대답했다.
“만약 두 사람이 다른 말이 나오면 우리가 조사를 합니다. 츠리엔과 교수님의 증언이 달라서 우리가 조사를 했는데 임우문 학생은 그런 말을 듣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교수님은 츠리엔이 가고 싶다고 했다는데 임우문은 그런 말을 듣지 못했다고 한 거란 말입니다.”
“정확히 말씀해주세요. 못 들었다는 겁니까? 아니면 못 알아들었다는 겁니까?”
오히려 호통치며 다그치듯 묻는 쪽은 박 교수였다.
“임우문 학생은 교수님이 두 번이나 물어본 것에 대해서는 말했지만 수저나 의자 등이 부족하다는 말은 나온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여권운동가 여교수가 다시 중복 설명을 하듯 박 교수에게 대답했다. 박 교수는 그들의 뻔한 거짓말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우문이가 내용이 다르다는 둥 제대로 못 들었다고 둥 했는데, 왜 무안제를 부르지 않았습니까?”
“무안제 학생은 임우문 학생보다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부를 필요가 없었지요.”
남자 위원장이 자신도 모르게 바로 황급히 박 교수의 말을 덮으려는 듯 대답했다.
“조사를 하다가 명확하지 않은 증언이 나왔다면, 좀 떨어져 앉아 있었더라도 다른 증인을 찾아야 사실 확인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자신의 차례라고 생각이 되었는지 페미니즘 강사가 다시 나서서 중언부언 설명을 부연했다.
“임우문 학생은 쉬는 시간 중에 공부도 하고 여러 가지 했기 때문에 집중해서 듣지 못했고 교수님의 말을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 정도 증언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말이 됩니까? 증언이 정확하지 않다면 다른 주변의 학생들에게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확인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우리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남자 위원장이 다시 한번 자신의 속마음을 내뱉었다.
“여기 조사위원회 아닙니까? 말이 됩니까?”
자신도 모르게 의도를 내뱉은 것이 민망했는지 그것을 덮으려는 것인지 남자 위원장이 다시 숨겨진 속내를 찬찬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교수님이 추천한 사람을 우리가 고려하고 누구를 부를지 말지를 하는 거지, 교수님이 요청한 사람을 모두 부를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판단하는 것이지 당신의 말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교수님이 100명을 추천하면 우리가 100명을 조사해야 합니까?”
너무 당당하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자신들이 모든 것을 임의로 판단한다고 말하는 것에 박 교수는 어이가 없었다.
“진영후의 메일에 5월 24일의 상황에 대해서는 안 적혀 있지 않습니까?”
남자 위원장은 아까 넘어갔다고 생각한 결정적 증인에 대한 언급이 다시 나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한 내색을 드러냈다.
“연구실에 심야까지 누가 주동적으로 남으려고 했는지는 당신이 학생의 몸에 터치를 했고 성희롱이 있었는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판단하는 겁니다.”
그의 궤변에 참고 있던 박 교수의 인내심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신의 말은 마치 조사위원회가 건드렸는지 안 건드렸는지만 따지고, 왜 그런 상황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조사를 하지 않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우리는 성희롱 관련만 조사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그 상황에 대해 거짓말이 있었는지, 상반된 주장이 나온 것에 대한 조사를 왜 안 하냐는 말입니다! 그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지에 대해서 왜 조사를 안 합니까?”
“풋!”
억지로 웃으려던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조작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대적하는 박 교수의 행동이 우스웠는지 페미니즘 강사의 웃음소리가 크게 터져 나왔다.
“지금 비웃는 겁니까?”
격양된 목소리로 정면으로 쳐다보며 따지는 박 교수에게 페미니즘 강사가 민망했는지 정면으로 발끈하고 대들며 나섰다.
“뭐요, 내가 왜 웃으면 안 됩니까?”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둥 떠드는 조사위원회가 이런 식으로 조사 중에 당사자 앞에서 피식피식 비웃으며 비아냥거립니까?”
남자 위원장이 난처한 표정으로 손가락으로 입을 조용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페미니즘 강사의 도발을 다시 한번 제지했다. 그리고 얼른 다른 사안을 물어야 넘어간다는 일념으로 질문을 이어나갔다.
“학생들에게, ‘내가 너희들을 사랑한다.’라는 말을 하신 적이 있습니까?”
“학생들 전체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은 있어도 한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그런 식으로 말한 적은 없습니다.”
“여기 임우문 학생이 제공한 라인 대화 증거가 있습니다. 이 부분을 보면, 교수님이 말씀하신 내용 중에, ‘학생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내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가르치겠느냐?’라고 하신 부분이 나옵니다.”
“네. '너희는 교수님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구나.' 라며 한탄하는 식으로 나온 말입니다.”
도대체 그 부분이 뭐가 문제가 된다는 것인지 박 교수는 바로 인식하지 못했다. 다만, 임우문이 문제가 된다는 식으로 증거까지 라인 대화를 제출했다는 것은 츠리엔이 그녀의 뒤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애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네. 그게 뭐가 잘못된 건가요?”
대답을 해놓고 보니 박 교수의 뇌리에 ‘아!’하는 탄식이 스쳐 지나갔다. 그의 불길한 예감은 최근에 거의 적중하는 듯했다. 남자 위원장이 바로 그 사실을 재확인해주었다.
“교수님은 모든 것이 애정에서 출발한다는 것이지요?”
결국 그들이 포커스로 억지를 부려 맞추고 싶은 것은 ‘애정’이라는 단어 자체가 갖는 뜻을 확대 해석해서 변태적인 표현으로 인정받겠다는 의도인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한국에서 교수님이 이렇게 학생에 대해서 ‘애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까?”
마치 그런 표현을 어떻게 쓰냐는 듯한 표정으로 여권운동가 여교수가 물꼬를 텄다.
“네. 아주 자연스럽게 씁니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쓴다는 거지요? 그런데 당신은 이 글을 중국어로 썼습니다.”
“애정은 한자어입니다. 게다가 중국어로 번역해서 쓰면서 그 부분을 한글로 씁니까?”
“당신이 쓴 애정이라는 것은 아마 머리에서는 한국어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거겠지요?”
“당연하지요.”
“그렇지만 생각해보세요. 학생들은 이 단어를 중국어로 이해합니다.”
“이 대화를 다 보면 아시겠지만, 잘못 이해하는 것 같아서 나도 나중에 고쳐줬습니다.”
“‘애정’이라고 이상하다는 듯이 학생이 다시 물었을 때 교수님은 ‘응. 그거.’라고 인정합니다.”
“그래서 학생이 다시 한국어로, ‘우리는 그냥 ’愛(사랑)‘라고 합니다.’라고 대답하지요.”
박 교수는 대답을 하면서도 이게 정말로 성희롱에 해당된다고 엮으려는 그들의 부단한 노력이 한심스러워 한숨이 터져 나왔다. 어느 정도 말이 되는 것도 아닌, 정말 꺼리도 안 되는 것을 문제로 만들려니 억지와 궤변이 난무하는 상황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었다.
“대륙에서의 애정이나 대만의 애정이나 모두 남녀 간의 감정을 말하는 겁니다.”
“어찌 되었든 나는 한국어의 의미에서 사용한 거 아닙니까?”
“이런 표현을 쓴 것은 아주 이상한 겁니다.”
어떻게 몰아가려고 해도 딱히 공격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자 그제야 남자 위원장은 포기했는지 이야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보고서를 작성하여 성평회에 제출할 것입니다. 성평회는 최종 결과를 우리 보고서를 보고 결정할 겁니다. 결국은 성희롱이 성립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보고서에는 왜 성립되는지 왜 성립되지 않는지를 자세히 적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보고서를 우리가 제공하게 될 겁니다. 이 보고서를 받으시고 나서 성평회 법률에 의거하여 이 사안은 여기서 끝이 날 것입니다. 다른 이의가 없다면 그냥 끝이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설명을 한다고 하는데, 박 교수의 귀에는 이미 그들이 앞서 흘린 실언처럼 이미 성희롱이 성립한다고 단정 짓는 것을 확인했고, 심지어 노골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면 모든 과정이 끝난다는 식의 설명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남자 위원장은 너무도 친절하게 그 이후 이의제기 절차에 대해서까지 먼저 설명했다. 이미 결정되었으니 그 부분을 설명해주는 사람처럼.
“제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 말씀드리지요.”
남자 위원장이 모든 서류를 정리하며 박 교수에게 조언을 하겠다고 나섰다. 갈겨쓴 중국어로 종이에 네 글자의 성어를 써서 내밀며 그가 말했다. 종이에는 ‘入境隨俗’이라는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의 풍습을 따르라는 중국의 속담입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교수님은 대만 학생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오신 것 같습니다. 이 일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닐 겁니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삼아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이제 더 이상 부를 일은 없을 것이고, 혹여 더 내고 싶은 의견이 있으시다면 다음 주까지 서면으로 제출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치 자신을 비웃듯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이며 최후의 조언까지 하는 여유를 보이는 세 사람을 뒤로하고 나오며 박 교수는 이후에 벌어질 더욱더 파란만장한 나락이 펼쳐지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