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검무적 Oct 02. 2021

대만에 사는 악녀 - 15

주타이베이 한국대표부 부대표와의 면담 -1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316


주타이베이 한국대표부 부대표와의 면담

          

                                    2017년 6월 22일 오후 4시

 

박교수가 본래 요청했던 내용영사직을 맡고 있던 노윤경 과장과의 통화를 통한 대표와의 정식 면담이었다. 외교부 유럽국장 출신의 대표는 박근혜 정부 시절에 임명을 받아 낙하산 부임을 한 인물이었다. 외부 공식행사에 히카리를 내기 위해 나타나는 것 외에 실질적인 업무를 하지 않는 것으로 타이베이에서는 이미 유명했다. 이미 1월에 터진 택시투어 성폭행 사건의 충격에도 전혀 징계를 먹지 않았고 타이베이 거주 한국인들은 모두 아는 크고 작은 언론에 나지 않은 사건들에도 그는 방탄조끼를 입고 있는 람보처럼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사건이 터지고 진작부터 요청을 했던 면담임에도 불구하고 대표는 등장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대놓고 밝혔다. 3월에 부임한 외교부 재외국민 보호과장 출신의 부대표가 면담에 응하겠다고 그것도 요청하던 날로부터 4일이나 지나서 겨우 시간이 하나 빈다면서 오후 4시까지 대표부 사무실로 오라고 통보가 왔다.

이전에 딱히 대표부를 찾을 일이 없었기 때문에 대표부를 찾는 길도 처음이었다. 외교대 앞에서 버스를 타고 30여분이 걸리는 101 타워의 앞 정류장에서 내려 번화한 호텔가가 있는 비싼 건물의 고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신분증으로 체크하고 문이 열리는 곳으로 안내를 받아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가 희끗해 보이는 키가 작은 남자와 통통해 보이는 여자 직원이 함께 들어왔다.

“아, 부대표님?”

박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부대표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가 여기 온 지 3개월 됐습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본부에서 재외국민 보호과장이셨다고... 기사 찾아보니까 뭐 과장하시면서도 그렇고 중동의 재외국민 보호 건도 그렇고 미담들이 많더라구요.”

예의상 그의 기사 중에서 외교부에서 홍보성으로 뿌린 것들에 대해 칭찬을 시작했다.

“아 그거 뭐, 외교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뭐 히히히히.”

왜소한 체구의 그는 직위에 어울리지 않게 가볍게 웃으며 칭찬을 넙죽 받아먹으며 좋아라 했다.

“박 교수님. 대표부까지 어려운 발걸음 해주신 것 감사하구요. 상황이 예상보다 안 좋아서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지혜롭게, 슬기롭게, 원만하게 일을 해결했으면 좋겠구요. 이런 일은 각자 그쪽의 입장이 있으니까요.”

누가 외교부 미꾸라지 집단 출신이 아니랄지 말이 청산유수처럼 거침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학교에서 뭔가 처리를 하는 중인 것 같은데 그것에 잘 따라서 처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지금 제 입장이 한국 같은 경우라면 저는 이미 9시 뉴스까지 탄 거 아닙니까?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주영희’라고 친한파를 가장한 그 인사가 한국대표부의 대표님과는 아주 잘 아는 사이라고 얘기하고 다닌다고 하던데... 여기 노 과장도 잘 안다고 떠들고 다니면서 자기가 대표부에서 지원도 받고 행사마다 초대도 받는다고 거들먹거린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천천히 들어간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이 급했는지 주영희의 얘기부터 툭하고 터져 나와 버렸다.

“저도 이름은 들어봤습니다.”

‘주영희’라는 단어에서 울컥하고 올라온 것이 박 교수의 차분하자는 전략을 한 방에 날려버리고 말았다.

“한국에서 서울대 수학과 강석진 교수라고 성폭행으로 3년인가 징역을 산 일이 몇 년 전에 있었습니다.”

“아, 한국에서 그런 일이 있었나요? 저는 잘 몰랐었네요.”

“연전에 한국에서 시끄러웠던 사건입니다. 서울대 사람들에게는 특히 아주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죠. 그런데 이번 사건이 터지면서 뜬금없이 그 사람 사건을 언급하면서 ‘주영희’라는 놈이 페이스북에 제 실명을 공개하고 대학 교수진 홈페이지의 제 사진까지 공개하고 서울대 출신 교수 어쩌고 하면서 아예 공개적으로 오픈해서 떠들어댔습니다. 그래서 이곳의 경찰에 명예훼손과 개인정보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고소를 한 상태입니다.”

“아, 여기 경찰에 말씀이십니까?”

“네.”

“구체적으로 여기 어느 경찰서에 고소를 하신 거죠?”

고소했다는 말을 영사인 노 과장과도 통화 과정에서 몇 번이나 얘기를 했었는데, 사안을 파악하고 도와주는 것은 고사하고, 진위여부에 대한 제대로 된 파악조차 부대표에게 보고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황당한 반문이라고 박 교수는 생각했다.

“여기 확인증입니다. 대만은 고소를 하면 이렇게 확인증을 끊어준답니다.”

“아, 이런 확인증 같은 게 있나 보죠?”

신기해하며 문건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부대표의 모습이 어이가 없었지만 박 교수는 다시 차분이 설명했다.

“한국으로 치면 고소사실 확인 증명서인가 봅니다.”

부대표가 민망했는지, 아니면 실습시간으로 착각을 한 것인지 옆에 앉아 쓸데없는 대화 내용까지 메모를 하고 있던 행정직원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 이런 걸 여기서는 주나 보지?”

“네. 진술하고 조서 작성했고, 정식으로 고소를 했다는 접수증 같은 겁니다.”

당황한 듯한 여직원이 얼른 대답했다.

“여기 원산 1번지 경찰서라고 적혀 있는데, 여기서 상대방도 불러서 조사를 하겠지요?”

자기가 중국어를 읽을 줄 안다는 것을 박 교수가 알아줬으면 한다는 식으로 문서에 적혀 있던 경찰서 이름을 한국식으로 읽으며 부대표가 아는 척 거들먹거렸다.

“상식적으로는 그렇겠지요. 일단 정신 나간 여자 국회의원이 떠들고 그런 건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근거랍시고 저를 전혀 모르는 남학생이, ‘나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어쩌고’ 페이스북에 쓴 것을 증거랍시고 그걸 근거로 기자회견을 했다는 사실에도 저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하여간 그건 뭐 이미 벌어진 일이고요. 그 글을 올린 남학생과...”

“그런데 그 남학생이 누군지 정확히 알고 계신가요?”

“네.”

“학과나 이름을 알고 계시다는 거죠?”

“이름은 정확하게 페이스북의 계정과 이름이 있으니 문건을 보시면 알구요. 통계학과 3학년이라고 합니다. 그 친구하고 주영희를 명예훼손으로 형사고소를 한 상태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 면담이 잡혔는데도 그는 아직까지 그 학생이 올린 글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여자 기자회견의 기사글조차도 분석하고 이 자리에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박 교수의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아, 수사당국이 수사를 해야 하겠네요.”

“정확하게 말하면 이 성희롱 해프닝에 대해서 수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사건이 조사되기도 전에 실명을 공개하고 이러한 사실을 공개적으로 떠들어대서 명예를 훼손한 그 사안에 대해서만 조사한답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성희롱이 있었는지 등의 여부를 수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너무 증거가 명백하기 때문에 엄중하게 처리할 것이라는 말은 고소장을 접수할 때 수사관에게 들었습니다.”

“타이완 경찰이 직접 그렇게 말하던가요? 허어. 교수님이 직접 듣고 대화를 나누신 건가요?”

“네. 외사과 수사관이라고 하더군요.”

“그 원산 1번지의...”

“아니요. 그 고소는 외교대학교 옆문 길 앞에...”

“아, 쯔난파출소네요.”

아까 받은 확인증을 살펴보며 다시 중국어 능력을 확인받고 싶었는지 재빨리 박 교수보다 먼저 대답하고 나섰다.

“아. 일본에만 오래 계셨던 줄 알았는데 중국어도 좀 하시네요.”

“네. 제가 중국어를 좀 합니다.”

박 교수는 부대표가 이제까지 그 한 마디 칭찬이 듣고 싶어서 그렇게 안달이 났던 거냐 싶었지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설명을 계속 이어 나갔다.

“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남학생은 뭘 알아서 그랬겠습니까? 저와 일면식도 없는데요. 그런데 그 친구가 내 친구의 친구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어쩌고 라고 쓴 겁니다. 외국어학과의 k나라의 p교수라고 말이죠. 6월 3일 토요일 저녁에 올렸는데 마치 서로 준비하고 짜고 치는 것처럼 월요일 오전에 바로 국회의원이 기자회견을 한 겁니다. 나중에서야 저는 그 배후에 누가 이런 일을 꾸몄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 처음 글을 올린 남학생의 글에는, ‘피해자가 1,2명이 아니다.’라고 적었다가 두 번째 글을 옮긴 국회의원의 페이스북에는, ‘피해자가 7-8명이나 된다.’고 되어 있고, 주영희의 페이스북에는 ‘8-9명’이라고 점점 부풀려서 적혀 있습니다. 제가 지금 성별평등교육위원회인지 학교에서 구성된 위원회에 불려 나가서 3번이나 조사를 받았습니다.”

“아 그쪽에서 불러서 조사를 받으신 건가요?”

“네. 그쪽에서 조사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확인시켜주기를 정확하게 3명의 여학생이 문제를 제기했다고 들었습니다.”

“성평등 위원회 말이죠.”

“‘7-8명도 부풀린 것이고... 그것도 국회의원이 저렇게 기자회견에서 떠드는 것을 보면 그것은 사실일 것이다.‘라고들 생각하고 믿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에서도 도저히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지경이고 지금 기말고사가, 사건 터지고 나서 2주밖에 남지 않았었습니다. 6월 5일 기자회견을 하던 당일에 일방적으로 학과장이 전화를 해서는 공문으로 통지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휴가 처리할 테니까 자리를 피하라며 일방적으로 다른 교수로 대체한다면서 수업에서도 배제되었습니다. 저는 그것도 너무 어이없고 황당했습니다. ‘일단 학교가 난리가 났으니까 학교에서 부를 때까지 집에서 나오지 말아 주세요.’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일방적으로 멋대로 강의를 배제시킵니까? 제 얘기는 들어보지도 않습니까?’라고 하니까 여학생들이 국회의원과 기자들을 끼고 치고 들어와서 학과장이 처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었다면서 자기가 처리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으니 무조건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열흘이 넘도록 아무런 연락조차 없었습니다. 신문에서는 바로 조사를 하네, 조사에 들어갔네 하더니 열흘이 넘도록 부르지 않아서 학과장에게 직접 따지러 갔더니 마지못해서, ‘제가 학교 측에 건의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더니 바로 다음날 제 조사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겨우 시작되었습니다. 그랬더니 그제사 그쪽에서 세 명의 여학생의 이름을 거명하더군요. 저는 이미 그 세 명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3명 모두 외교대학교 학생인가요?”

“네. 제 학생들입니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한국에서는 행정 조교만이 있는데 대만의 국립대에는 교수가 개인적인 비서처럼 쓸 수 있는 업무 조교가 있는데 그걸 여기서는 ‘주리(助理)’라고 부르더군요. 저를 도와준다며 자발적으로 주리를 하겠다고 왔던 학부생이 점점 저에게, ‘교수님 좋아하는 마음이 커져가요’라고 하더니 이내 저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참고로 저는 의사인 아내와 2학년과 4학년 아이를 데리고 올 2월에 여기에 부임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 세 사람 모두 중국어를 하나도 못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마치고 밤 9시가 넘을 때까지 제가 집에 들어가는 시간까지 함께 연구실에서 있었습니다. 사실 점심을 같이 먹고 저녁까지 먹고 공부를 가르치고 했기 때문에 거의 연구실에서 함께 살았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네요. 근데 그 친구가 그렇게 고백을 해서, ‘나는 부인도 있고 아이도 있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은 좋은 것이지만 선을 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했더니 그다음 날 저의 집에서 있던 파티에서 다른 여학생들에게 제가 공평하게 사심 없이 대하는 것을 보고 자신이 특별하게 대우받은 것이 아니라는 깨닫고는 자격지심에 동성애자인 두 명의 학생을 이용해서 이런 복수극을 벌인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그 모든 일에 대해서 지금 이 자리에서 부대표님에게 진위여부를 판단해달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여기는 국립대이고 한국처럼 법인화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교육부’라는 주관기관이 버젓이 있습니다. 이번 일이 터지고 나서 ‘성별평등위원회’라는 곳에서 조사위원회를 꾸렸다며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처럼 제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증거를 제출하고 소명하면 이 말도 안 되는 해프닝이 조만간 끝나겠거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후 6시에 오라고 해서 갔더니 자기네 밥 먹는다고 기다리게 해서 7시에 시작해서 12시가 넘을 때까지 두 번의 조사를 했고 심지어 세 번째 조사는 불러서는 특별한 이유가 없이 불렀다는 말까지 대놓고 했습니다. 참고로 그들이 얘기한 조사과정을 그들이 모두 녹취하였고, 저 역시 그들이 거짓말을 할 것을 우려해서 모두 녹취를 하였습니다. 모든 과정을요. 제가 오늘 너무 힘들다 못해 이렇게 온 것은 제 하소연을 하러 온 것도 아니고 무조건 제 편을 들어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이 긴 이야기를 다 듣고 제 변호사 노릇을 해달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도 상식이 있는 사람인데 제가 그 당사자인 학생들이 저에게 무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학생들에 대해 무고로 고소를 하지 않은 이유는, 제가 국립대 소속이고 소위 그래도 자기가 가르치는 제자들이 욱해서 실수를 했다 하더라도 그들을 형사처벌을 받게 한다는 것은 결과 여부와 상관없이 좋게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로 참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조사를 받으면서 점점 느낌이 이상하고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파악을 해서 도저히 제가 수습할 수 없는 단계로 들어간다는 느낌이 들어서 대표부의 대표님에게 면담을 직접적으로 요청하고 도움을 청하게 된 겁니다. 어느 정도 심각한 단계냐하면 녹취가 모두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먼저 이렇게 말합니다. 이를테면 피해자를 주장하는 학생들은 3월 말부터 5월 말에 이르기까지 쭈욱 성희롱을 당했다고 한답니다. 그럼 상식적으로 성희롱을 한 교수에게 그런 일을 당했다고 한 날, 제 연구실 바로 앞에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그 엘리베이터에는 아주 성능 좋은 cctv가 있구요. 당일 새벽에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성희롱을 당했다고 하면 뭔가 불편하고 그 저간의 사정이 바로 얼굴에 나타날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수업 중에 그런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공부를 하겠다고 연구실에 찾아와서 둘이 공부하는 과정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는 겁니다. 저는 아무런 대가 없이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은 약속을 하고 연구실에 와라 그러면 내가 그냥 도와주겠다고 한 겁니다. 그렇게 그들이 자발적으로 공부하러 온 상황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재빨리 cctv 화면부터 경비실에 요청하고 확보해서 조사위원회에 제출을 요청했습니다. 상식적으로 그것은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증거이니까요. ‘그런 일이 정말로 있었다면 연구실을 바로 나와서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오는데 그들의 표정이 편할 리가 없지 않냐.’라고 설명했지만 그들은 그것을 제대로 받아들여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기분 나쁘고 안 좋은 성희롱을 당한 상황이라면 바로 오는 것을 중단하거나 함께 공부하는 것 자체를 그만두겠다고 해야 맞는데 왜 내 연구실을 계속해서 왔느냐? 심지어는 주동 여학생은 새벽 한 시 반까지 감금당하다시피 협박을 당했다고 주장했다는데 바로 그다음 날 실제로는 당일이죠. 그날 저녁 6시에 연구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4명을 불러서 집사람이 한국요리를 만들어준다고 초대를 한 자리에 와서는 같이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고 10시 넘어서까지 놀다가 갔습니다. 그러며 상식적으로 성평회가 저를 처벌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다음에야, 지금 부대표님이 얘기했던 것처럼 당연히 이쪽 얘기를 들었다면 저쪽 얘기도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처럼 제가 증거를 제시하면서 얘기했더니 조사위원이라는 이들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쓸데없는 얘기 하지 마시라고.’ ‘엘리베이터에서 그런 성희롱이 없었다는 증거지 연구실에서 그런 일이 없었다는 증거는 아니지 않냐?’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합니다. 제가 말로 떠들면 정신도 없고 그럴 것 같아서 오늘 부탁드리고 싶은 내용을 핵심만 정리해서 문건으로 작성해서 가지고 왔습니다.”

박 교수는 문건을 꺼내 두 가지 참고자료와 3장짜리 ‘재조사요청서’라고 적힌 문건을 옆에 따로 놓았다. 내놓은 문건을 받아서 훑어보면서 부대표는 연필을 들어 자기 나름대로의 버릇인지 주요 단어에 동그라미를 치고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에 밑줄을 그었다.

“여기 주동학생이라는 이게, 뭘 주동한다는 건가요?”

문건을 읽던 부대표가 어눌한 목소리로 물었다.

“다른 두 학생에게 ‘너희도 성희롱을 당한 거야.’라고 설득을 해서 선동한 거죠. 나머지 두 학생은 동성애자이고 저에게 그 사실을 알려준 바 있습니다. 대만은 제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잘 모르고 부대표님도 저와 비슷한 시기에 오셔서 잘 모르시겠지만 나중에 들으니 대만이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높이자는 목소리가 크고, 특히 그들의 본부 격에 해당하는 곳이 바로 제가 있는 외교대학교라고 합니다. 그중 한 학생은 동성애 중에서 남성역할을 하는 학생인데, 그런 남성역할의 동성애자를 ‘女T’라고 한다고 합니다. 이 학생에게 주동 여학생이 자신이 피해자인 양 코스프레를 하며, ‘나도 당한 거고 너희도 다 당한 거야.’라고 선동으로 해서 이 일을 벌인 겁니다.”

“그 학생들의 이름을 저희에게 다 말씀 안 하셔도 되긴 하는데...”

“아닙니다. 다 알고 있습니다.”

“그 주동학생이라는 애의 이름이 뭔가요?”

“츠리엔 이라는 학생입니다.”

“이 해명서라는 자료는 교수님의 해명서라고 쓰신 건가요?”

“아, 이문건은 제가 한국어로 먼저 작성하고 중국어로 모두 번역해서 성평회 조사위원회의 첫 조사 때에 해명자료라고 제출한 것이고요. 이번 주 금요일 그러니까 내일까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마지막으로 작성해서 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준비한 문건이 이겁니다. 그래서 지금 이 3장짜리 문건, 이 재조사요청서를 공식적으로 대표부의 명의로 대학총장, 여기서는 ‘학장’이라고 하는데 이 문건에 적시한대로 이 성평회의 조사는 불공정하게 이루어졌다.라고 해서 발송해주셨으면 합니다. 실제로 성평회의 직원이라는 여자가 저에게 준 외교 대학 성희롱 관련 규정을 줬는 데요. 그 맨 위에도 썼지만 그 관련 규정의 26조에 보면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한국어로 이렇게 되어 있는데, ‘본교는 조사의 절차에 중대한 흠이 있거나 혹은 원래 조사를 통해 확정된 사실에 충분히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새로운 사실이나 새로운 증거를 발견했을 때는 반드시 성평회에 재조사할 것을 요구해야만 한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 앞 항목에는, ‘조사를 새롭게 진행할 경우에는 마땅히 새로운 조사팀을 만들어 조사해야만 한다.’라고 적혀 있구요. 그런데 저는 지금 조사위원회에 이 부분을 주장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지금 내가 제출한 엘리베이터 영상이 증거로 있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달이 넘는 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당했다고 한다면 그 긴 기간에 걸쳐 친밀하게 나눈 라인 대화도 증거가 된다. 그것들도 모두 번역해서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그 조사위원이라는 이들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조사위원회는 당신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 학생들이 그 일로 인해 기분이 나빴다. 당신이 그 일을 했는지 안 했는지만 밝히면 되는 것이지 우리는 진상을 모두 조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심지어는 그 학생이 라인으로 통화를 하면서 자기에게 유리한 증거를 만들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마치 자신이 피해자인 것처럼 꾸며서 대화를 유도하여 녹음을 했습니다. 대화 내내 저에게 분노를 유도하는 행위를 계속합니다.”

“아, 학생들이요?”

“아니요. 한 학생이요. 그 주동인물이라는 여학생이요. 지금 고발한 세 명의 여학생 중의 한 명이요. 그런데 라인은 통화를 하면 통화시간이 대화창에 나옵니다.”

“그렇죠. 카톡처럼.”

“그런데 통화시간이 총 28분인데, 4분여만 악의적으로 그 부분만 편집을 해서 증거랍시고 제출했길래 ‘그 대화 앞에 이 학생이 어떤 이야기를 했고, 나에게 좋아한다고 하고 그렇게 말한 부분이 빠져있다. 악의적으로 편집이 된 거다.’라고 했더니 되레 소리를 지르면서, ‘사법부라는 것은 어느 한쪽에서 자신이 유리한 증거를 가지고 오면 그 부분을 듣고 인정하는 것이지, 당신도 억울하면 당신이 유리한 증거를 가지고 와라.’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당신은 판사가 아니고 사법기관은 더더욱 아니다. 당신은 조사위원이다. 조사위원회라면 사건의 진상을 조사해달라고 내가 요청을 하는데, 당신은 지금 당신도 유리한 증거가 있다면 가져와보라는 식의 발언은 옳지 않다’고 했더니 ‘그건 우리가 알아서 판단할 테니 당신이 그런 거 일일이 지휘하지 않아도 된다’며 제대로 된 조사 요구조차 무시당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식으로 외교대 총장은 지금 이 진상은 모르고, 지금 조사위원이라는 세 명이 싸잡아서 저를 피의자라고 뒤집어씌우려고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상태에서 제가 학생들에게 고소를 당했다면, 아니면 학교 측에서 경찰이나 검찰에 고소를 했다면 저는 차라리 당당하겠습니다. 나도 경찰에 가서 내 증거 내고 정식 수사를 받으면 되니까요. 그런데 지금 이 사람들은 학교에서 조사를 한다는 빌미 하에 뭔가 저에게 강요를 하고 심지어 저의 결백을 믿고 증명할 수 있는, 교수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는 증언을 해줄 중요한 학생들이 나섰습니다. 그래서 그 학생들이 증언을 하겠다고 하고, 성평회에 항의 이메일까지 보내고 했더니 그 학생을 여태 부르지도 않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왜 그 학생들은 증인으로 부르지 않냐’고 따졌더니 이미 그 학생이 보낸 이메일에 그녀가 하고 싶은 얘기는 다 적어 보냈으니 굳이 자기네가 그 학생을 부를 필요가 없답니다. 그 학생이 사랑을 고백했다는 당일 함께 있었던 결정적인 증인이자 주동 여학생이 당시에 자발적으로 자기가 먼저 연구실에 남겠다고 하는 것을 보고 들은 증언을 해줄 증인입니다. ‘그런 결정적인 증인인데 왜 부르지를 않냐?’며 계속 따졌더니, 당신을 지지하는 충분한 의사를 표명했기 때문에 부를 필요가 없답니다. 그게 무슨 진상조사입니까? 진상 떠는 짓이지. 저는 이미 이 사람들이 결과를 정해놓고 저를 어떻게든 처리하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학교에 최대한 흠이 안 가게 하려고 이러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미친 여자 국회의원이 그런 짓을 해서 덮으려고 했는지 도저히 모르겠는데, 변호사 얘기는 그겁니다. 교수님이...”

“변호사요? 개인적으로 알아보신 변호사입니까?”

“지금 저를 믿고 따르는 학생들의 부모님들이 저를 도와주신다고 소개해준 변호사입니다.”

“아, 그렇군요.”

변호사 얘기가 나오니 박 교수가 울컥하며 불쾌한 기억이 스멀거리고 올라왔다.

“심지어 대표부에서 노윤경 과장이 소개해준 변호사는 참 내가 어이가 없는 것이, 그 사람은 이란 현에 사무실이 있어서 재판이 없는 경우에는 타이베이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 답니다. 대표부가 제가 물론 제가 목에 칼이 들어와서 살려달라고 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원래 무료 상담이 15분인데 저에게 특별히 5분을 더해줘서 20분 상담할 수 있게 안배해드렸습니다.’랍니다. 그래서 어찌 되었든 도움을 좀 받을까 싶어서 직접 전화했더니 그 대만 변호사가, ‘나는 사무실도 이란현이고 한국어도 전혀 할 수 없기 때문에 통역까지 두고서 대화한다면 20분이면 얘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끝나버릴 거다. 그래도 원한다면 핸드폰으로 전화하던가 내가 재판이 있을 때 타이베이에서 보자.’라고 하더군요. 저도 외교부, 지금 대만 한 나라만 외국에 나와 본 것도 아니고 여러 나라에 다녀보고 경험을 했지만 부대표님도 후쿠오카 총영사관에 있었다고 소문을 들어 알고는 있지만, 우리나라 외교부가 재외국민 보호를 얼마나 가볍게 하는지. 공교롭게도 연초에 이곳에서 터진 택시 성폭행 사건 만에도 그 비근한 예가 될 테구요. 저는 지금 외교부를 비판하거나 대표부를 비난하자는 게 아닙니다. 제가 직접 당한 일에 대해서만 얘기하자는 겁니다. 도움을 주겠다고 우리 고문변호사라고 소개를 한 사람이 이란 현에 있어서 타이베이에 바로 올 수도 없고, 15분인데 특별히 20분의 무료상담을 제공해 주겠다고 안내하는 게 대표부의 배려이고 안배입니까? 재외국민 보호과장이셨던 부대표님에게 묻겠습니다. 외교부는 제가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 아닌 겁니까?”

격양된 박 교수의 목소리가 작은 사무실 공간에 퍼졌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그 공간을 덮었다.

“그... 아마 노 과장이 연락시켜드린 고문변호사인 것 같은데. 일시적으로 지방 출장을 가 있었던 상황인 것 같습니다.”

“네? 참! 확인 다 해봤습니다. 그 사람은 주 사무실이 이란 현에 있는 게 맞구요. 이제까지 제가 말씀드린 대화들은 모두 통화 녹취까지 해두었습니다.”

“저기, 그 제가 약속시간을 잡아드렸던 것 같은데...”

옆에서 메모를 한참 하던 여자 행정직원이 자신이 직접 중계했던 입장에서 민망했던지 끼어들었다.

“네. 그때 내가 시간이 안 된다고 해서 다시 시간까지 그쪽에서 잡아줬지요.‘

“네.”

“변호사의 비서와 그 변호사의 회답이 지금 내가 얘기한 그대로입니다. ‘나는 이란 현에 주 사무실을 두고 있는 변호사이다. 그러니까 내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던가 내가 재판이 있어 타이베이에 갔을 때 따로 약속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직접 약속을 잡아줬으니 기억할 거 아닙니까? 원래 15분인데 각별히 20분으로 늘려준다고...”

“아니, 저는 ‘각별히’라는 표현까지는...”

토씨 하나까지 정확하게 복기하는 박 교수의 표현이 민망했는지 여자 직원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건 녹취되었으니까 같이 들으면 확인되는 거구요.”

“시간을 5분 더 늘려주라고 해서 전해드린 것은 사실입니다.”

녹취 얘기가 나오자 더 이상 발뺌하지 않고 냉큼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자 이번엔 민망한 이야기의 흐름을 바꾸려고 부대표가 치고 나섰다.

“알겠습니다. 고문변호사 제도가 무조건 무료일 수는 없거든요.”

“부대표님, 제가 지금 무료로 변호사를 제공해달라고 이러는 겁니까?”

“지금 이번 상황에 적시에 대응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변호사 제도를 변경하는 것에 대한 것을 포함해서, 이번 사안을 토대로 잘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나중에 알아서 반영해주시면 감사하겠구요. 오늘 미팅 전에 노윤경 과장이 그렇게 조언을 하더라고요. 오늘 부대표님을 만날 때는 구체적으로 생각을 문건으로 정리해서 핵심을 전달해주시고 정확하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이야기해달라고. 다시 한번 명확하게 요구하겠습니다. 그들이 알려준 규정에 잘못된 중대한 하자가 있으면 재조사를 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제가 지금 무슨 하자가 있었는지 설명했는데 혹시 부대표님 이해하신 겁니까?”

“아, 이해했지요.”

“그리고 그 사항을 다시 한번 문건으로 3페이지짜리로 정리한 것을 조사위원회 말고 학교의 책임자, 왜냐하면 지금 그 조사위원들이라는 자들이 외교대학의 교수 혹은 강사입니다, 소속이. 성평회라고 하는. 그런데 저는 이거를 정식으로 학장이 지금 이 사안을 알고서 주도를 하는 건지 시키는 건지 아니면 몰라서 그냥 저를 이 사람 외국인이니까 내쫓자는 건지 제가 지금 어느 정도까지 벼랑 끝의 상황으로 몰렸는지 한국어학과 아닙니까? 학과장이 있고 한국어 교수도 있습니다. 노윤경 과장과의 통화한 내용에 근거하자면 노 과장이 개인적으로 다른 한국인 교수와 안면이 있어서 그 교수에게도 연통을 넣었다고 합니다. 학과장을 계속 찾았더니 한국 출장 중이라 연락이 안 된다고 하면서 한국인 교수인 박선병과 연락을 취했다고 합니다. 학과장은 대만 사람입니다. 부인이 한국 사람이고요. 박선병이라는 교수는 한국인입니다. 이 사람이랑 통화를 했으니 도움을 줄 거라고 노 과장이 하더군요. 나는 이 일이 터지고 나서 단 한 번도 박선병 교수의 연락을 받아본 일이 없습니다. 한국어과의 어떤 교수도 저에게, ’이게 무슨 일입니까? 어떻게 된 상황인지 개인적으로라도 만나서 얘기를 들어봐야겠습니다.‘라고 연락을 취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저는 2월에 부임하고 나서 제가 먼저 몇 번이나 제안을 했습니다. 식사라도 한번 같이 하자고. 처음 왔는데 인사할 수 있는 자리라도... 단 한 번도 제 제안에 응해서 식사 자리를 마련하거나 식사를 했던 교수가 학과장을 포함해서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물론 이런 일이 터지면 학과 내부의 일이니까 교수들도 학과 학생들 때문에 어려울 수 있습니다. 통상 그러면 학과장이 되었든 교무처장이 되었든 중재에 나서지 않나요? 아까 부대표님이 자리에 앉으면서 얘기하셨지만, 도대체 학생들과 어떤 문제가 있었던 거냐면서 중재를 하는 사람이 나올 법도 하지 않나요? 원만하게 뭔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보자라고 하지 않나요? 저는 보직을 가지고 있는 외교대학의 어떤 교수로부터도 연락을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심지어는 저와 연구실을 쓰는 같은 층의 다른 교수들이 한국어 학과장에게, ’ 박 교수님은 그런 일을 할 분이 아니다. 아침 7시 반이면 어김없이 출근해서 9시 반까지 매일같이 심지어는 주말까지 학생들을 위해 연구실에 나오는 교수님이다. ‘라고 대변해주는 탄원 이메일을 보냈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답니다. 차라리 제가 부임한 지 꽤 된 사람이고, 무슨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틀어져서 알력 다툼이 되어서 저를 도와주지 않고 한다라면 이해라도 가겠습니다. 이제 부임한 지 채 석 달도 되지 않아 이번 학기에 와서 단 한 번도 같이 자리를 하지도 못하고 교수들끼리 인사조차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이 상황이 정상인 겁니까?”

“음...”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제가 그래도 국립대이고 상식이 있는 나라랍시고 우기더라도 저는 이제 대만 안 믿습니다. 대만의 국가의 품격도, 나라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증거도 없이 페이스북을 가지고 기자 회견하는 것을 보고 저는 이 나라의 수준 이하라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최후의 보루라고 대표부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대표가 바쁘시다고 부대표님이 나오신 걸로 압니다. 다행히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부대표님에 대해 물어봤더니 일처리를 공정하게 하시는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믿고 이 자리에 온 겁니다. 저는 지금 믿고 의지하는 것은 고사하고 말을 나눌 수 있는 사람조차 없습니다. 집사람은 제가 유서 써놓고 자살이라도 할까 싶어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에 갈 때도 일어나서 따라 나옵니다. 저를 믿고 따르던 학생들은 지금도 연구실에 와서 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교수님이 자살이라도 하시게 되면 대만 사람들은 이 사람이 쪽팔려서 죽은 거지, 자기가 결백해서 죽은 게 아닙니다’라고 하면서 성경책을 들고 와서 곁에서 힘내라며 읽어줍니다.”

처절한 박 교수의 고통스러운 생활에 대한 묘사가 이어지자 다시 분위기가 무겁고 엄숙해졌다. 그 위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16화는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318


이전 04화 대만에 사는 악녀 - 14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