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검무적 Oct 04. 2021

대만에 사는 악녀 - 19

고소와 무고에 대한 피고소인 신분 경찰 조사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320


고소와 무고에 대한 피고소인 신분 경찰 조사

                           2017년 6월 31일 오전 9시 30분

 

긴장한 마음을 억누르며 들어선 외교대학교 옆문 길 건너의 쯔난 파출소에서는 박 교수의 예상과는 다른 의문의 시선들이 느껴졌다. 환대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조사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현관에 서 있던 경찰에서부터 여기에 왜 왔냐는 표정으로 의아하게 쳐다봤다.

“뭣 때문에 오셨죠?”

“아, 오늘 고소건으로 조사받으러 오라고 해서...여기 이 문서인데요.”

박 교수는 가방에서 꾸깃해진 조사 소환 명령서를 내밀었다. 문서를 받은 경찰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안쪽 사무실로 들어 들어가서는 이내 바로 나와서는 웃으며 말했다.

“이거 여기로 오시면 안돼요. 원산 1번지 경찰서로 가셔야 하는 거예요.”

“어 어제 담당 경찰이랑 통화했는데 이쪽에서 조사받기로...”

그의 말에 경찰은 마지못해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상대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후에 수화기를 박 교수에게 내밀었다.

“여보세요.”

“네. 나 담당 수사관인데요. 왜 거기로 갔어요? 이쪽으로 오세요.”

다짜고짜 거친 목소리의 그의 요구가 박 교수는 떨리면서도 불쾌했다.

“어제 분명히 지난번 내가 고소했던 파출소에서 조사를 받기로 했잖아요!”

“아니에요. 뭔가 오해를 했나 본데 이쪽으로 바로 오세요.”

“어떻게 지금 그쪽으로 가요?”

“안 오면 당신의 권리를 당신이 포기하는 걸로 알고 조사가 그냥 넘어갈 수가 있어요. 알아요? 얼른 오세요.”

“일단 알았어요.”

조사를 종결시켜 송치해버린다는 식의 협박에 박 교수는 다시 전화를 끊는 경찰에게 물었다.

“원산 1번지 경찰서가 어디인지도 난 잘 몰라요. 이 사람이 뭔가 오해를 했나 본데, 그쪽으로 데려다줄 수 있어요?”

“네?”

황당하고 짜증스러운 반응을 내는 그의 뒤로 사무실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누군가가 나왔다. 아마도 계급이 조금 높은 책임자 같아 보였다.

“니가 지금 순찰차로 모셔다 드리고 와. 외교대 교수님이시라잖아.”

그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 박 교수는 난생처음 타이완 패트롤카에 올랐다. 차로 5분 정도 걸려 큰길 쪽으로 가자, 경찰서 건물이 보였다.

“여기 1층에서 왼쪽으로 바로 들어가시면 수사계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파출소와 달리 경찰서라 그런지 규모도 크고 사람들이 이리저리 많이 움직이고 있었다. 조심스레 ‘수사계’라는 곳에 들어가니 큰 회의실 같은 사무실에 온통 형사들과 조사를 받으러 온 사람들이 뒤섞여 장터판처럼 왁자지껄했다. 맨 안쪽에 덩치가 다부져 보이는 우락부락해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박 교수를 알아보고는 손을 번쩍 들어 보였다.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로 박 교수를 알아보고 불렀다.

“외교대 교수님이시죠? 통화했던 수사관입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아 왜 오해를 해가지고는...”

“나는 지금 당신과 통화하고 나서야 경찰서인 줄 알았어요. 쯔난 파출소에 다녀온 거예요.”

“상관없어요. 내가 어제 제대로 설명을 못했나 봐요. 서로 오해가 있었던 거니까 어쨌거나 이제 여기 왔으니까 괜찮아요.”

호탕한 스타일처럼 이제 서로 만났으니 이전에 오해는 크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식으로 그는 크게 껄껄하고 웃었다.

“오해할까 봐 그렇잖아요. 내가 잘못 알아들은 게 아닌데...”

“아, 확실히 무슨 말씀이신지 알아들었으니까 괜찮아요.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두 명의 여학생이 당신을 고소했습니다.”

갑자기 훅 본 건으로 들어가는 그의 모습에 옆에 앉아 있던 어리숙해 보이는 어린 여자의 모습이 뒤늦게 들어왔다. 그녀와 서로 의아해 보이는 시선을 교환하면서 박 교수가 다시 되물었다.

“두 명의 여학생이 누구죠?”

“에? 그게 그러니까....”

막상 훅 들어오며 말을 시작하고는 정작 그제서야 학생들의 이름을 찾는 그의 모습을 보며 어눌한 한국어 발음으로 어린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어, 나는 오늘 통역이에요. 한국어 통역할 거니까 내가 도와줄 거예요.”

누가 봐도 이제 막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정도의 수준인 것 같은 여자의 어눌한 한국어에 박 교수는 눈살이 찌푸려졌다. 어제 그렇게 대표부의 부대표라는 자와 통화하고 확인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려했던 걱정은 현실이 되어 버렸다.

“알았어요. 수사관한테 조사는 천천히 해도 괜찮으니까 정확하게만 해달라고 전해주세요. 나한테는 이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거든요.”

“네. 알겠어요.”

“여기 찾았어요. 당신을 고소한 여학생 두 명의 이름은 리아오츠리엔과 천위지에입니다. 하지만 대만의 법률 규정상 이제 조서에는 이 여학생들의 이름은 실명이 아니라 숫자로 표기할 것입니다.”

박 교수는 대강 그의 중국어는 알아들었지만 혹시 놓치는 게 있지 않나 싶어 다시 통역이라는 여자를 쳐다봤다.

“이름이 숫자로 표시해요.”

그녀의 도통 미덥지 못한 수준의 통역은 굳이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지 않다는 불안함을 가중시켰다.

“알았으니까 시작하죠.”

“여기 보면 당신과 여학생의 대화를 녹음한 거라면서 이 여학생이 증거로 냈어요. 한국어로 나눈 대화라서 중국어로 번역해서 냈구요.”

조사위원회에서 언뜻 본 적이 있는 5월 26일 라인 통화 대화를 결정적인 증거랍시고 낸 듯해 보였다.

“한국어로 적은 것을 내가 좀 보도록 하겠습니다.”

차분하게 살펴보긴 했지만 중국어로 번역한 내용도 작위적인 것이 많았지만 기술적인 부분일 뿐 그걸 여기서 논쟁할 필요는 없다고 박 교수는 판단했다.

“자, 다 봤습니다.”

“저의 조사는 아주 간단합니다. 내가 묻는 사실에 대해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만 말하면 됩니다. 사실이면 왜 그런 것인지 사실이 아니면 그냥 아니라고 말하면 됩니다. 경찰은 당신의 유죄를 가리는 곳이 아닙니다.”

‘경찰에서 유무죄를 가리지 않는다고?’

무슨 의미인지 모를 그 말에 박교수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우직한 수사관은 계속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참! 주영희도 당신을 무고죄로 고소했습니다. 명예훼손으로 당신이 고소한 것에 대해서 무고로 대응한 겁니다.”

“네? 하! 나 이거 참!”

어이없어하는 박 교수의 모습을 보면서 눈치로 알아차렸는지 수사관이 바로 맞장구를 치듯 대답했다.

“아 이건 뭐 어차피 상관없어요. 내가 살펴봤는데 이건 어차피 성립도 안 됩니다. 이건 소송 중이기 때문에 어차피 기소될 수도 없는 건입니다. 중요한 건 이 여학생들의 고소 건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는 다시 통역 여자에게 서류를 내밀며 서류를 손가락으로 집어가며 상세히 설명했다.

“당신 신분증하고 이름을 여기에 적으세요. 통역을 하는 사람도 여기 다 기록을 해야 해요.”

이제까지의 내용도 통역은 아무런 통역도 시작하지도 않았고 그저 옆에서 구경하다 말고 자신의 인적사항을 적는 것부터 일을 시작했다.

“여기에 녹음하는 것에 대해 동의한다고 이름 쓰시구요.”

“이름은요? 남성인가요? 생년월일은요? 직업은 교수지요? 거류증 번호는 이거 맞나요? 주소는요? 학위는요? 전화번호는요?”

기본적인 인적사항에 대한 확인과 기재가 끝나자 본격적인 질문에 들어가는 듯했다.

“당신은 성희롱 방지법안에 의해서 고소당했습니다. 묵비권을 쓸 수 있구요.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구요. 조사 중에 언제든 당신에게 유리한 증거를 제출할 수 있습니다. 이거 이해하셨지요?”

“네.”

“앞에 개인적인 인적사항 다 정확하지요?”

“네.”

“전과가 있습니까?”

“아니요.”

“당신은 한국 국적이지요?”

“네.”

“지금 내가 하는 말은 어차피 내가 한국어를 하나도 못 하니 중국어로 진행할 텐데 모두 알아듣지요?”

“뭐 조금 대강 알아듣습니다. 완벽한 건 아니구요.”

“아아, 알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통역하는 사람도 이렇게 준비했습니다.”

그때 즈음에, 주영희를 고소할 때 왔던 외사과의 젊은 형사가 들어왔다. 규정상 외국인을 조사할 때는 외사과의 형사가 입회해야 한다는 설명을 곁들이며 그도 의자를 가져다 옆에 앉았다.

“당신의 권리에 대해서 잘 알아들었습니까?”

“너의 권리 너 알았어요?”

오히려 통역하는 어린 여자의 어눌한 한국어가 웃을 수도 뭐라 할 수도 없어 걱정스러움이 앞서 박 교수가 다시 물었다.

“네. 그런데 괜찮겠어요? 지금 한국어 이 정도 수준인데 괜찮겠어요?”

“네 괜찮겠어요.”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난 안 괜찮은데요. 괜찮아요. 천천히 간단한 단어로 말해주세요.”

“랴오츠리엔을 압니까?”

“네.”

“무슨 관계입니까?”

“교수와 학생 관계입니다.”

“5월 24일 밤에 연구실에서 당신이 계속해서 학생에게 당신을 사랑하지 않냐고 압박하면서 허벅지를 만지고 한 사실이 있습니까?”

“아니요. 사실과 다릅니다. 5월 24일 밤 1시 반까지 이 친구가 자기가 주동적으로 연구실에 남아서 나에게,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좋아하는 감정이 무엇인가 가르쳐주세요.’ 하면서 1시 반까지 있었구요. 내가 뭔가 압박하거나 몸을 만지거나 한 것은 없었습니다. 나는 그걸 어떻게 이해했냐 하면 왜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자꾸 묻냐면서 짜증을 냈습니다.”

“그 학생이 주동적으로 연구실에 남았다는 거지요?”

“지속적으로, ‘제가 교수님을 좋아하는 감정에 대해 분석해주세요. 제가 당신을 좋아하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저를 위해서 분석해서 알려주세요.’라고 집요하게 저의 감정에 대한 대답을 얻어내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혹시 그 학생을 껴안았나요?”

“말도 안 되지요. 왜 뜬금없이 학생을 껴안습니까?”

“그 여학생이 하는 말이 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라는 거지요?”

“네. 그렇습니다.

“그러면 천위지에에 대해서 말해봅시다. 3월 31일부터 5월 25일까지 주 1회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교수님과 함께 연구실에서 공부를 했었는데 학생의 몸을 만진 사실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기간에 연구실로 일주일에 한 번 와서 공부한 것은 사실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4시 20분부터 6시입니다.”

나이가 지긋한 수사관이 타이핑을 치는 것에 약간 애를 먹는지 시간이 걸리자 박 교수는 통역을 하던 여자가 통역도 안 하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와 말을 걸었다.

“여기서 이렇게 통역해주면 통역 비용으로 얼마나 받아요?”

“1시간에 300원(한국 돈으로 11,000원가량) 받아요.”

“그러니까 정상적으로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고 여학생의 몸을 만진 사실은 없다는 거지요?”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다시 통역을 시작했다.

“여학생을 정상하게 대화를 맞아요? 여학생을 만지는 거 있어요?”

그녀의 기상천외한 통역에 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간단히 대답하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 여학생이 주동적으로 온 거지요?”

“이 사건에 대해 학교에서도 아나요?”

“당연히 알지요.”

“학교에서는 지금 어떻게 처리하고 있습니까?”

“이 학생들이 학교에 6월 5일에 성평회에 고발해서 처리 중에 있습니다.”

“이 학생들과 원한관계가 있습니까?”

“내가 이 일을 당하고 나서 나도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5월 24일에 사랑고백을 받았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마음은 고마운데 선을 넘지 마라. 좋아하는 마음은 좋은데 나는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는 사람이니까 뭘 어떻게 할 생각은 하지 마라. 그렇게 25일 새벽 한 시 반에 헤어지고 나서 당일 25일에 저녁에 집사람이 우리 집에 몇몇 학생들을 초대했어요. 지금 두 명의 여학생이 나를 고소를 했어요. 그런데 그 둘 다 25일에 우리 집에를 왔어요. 그중에 천위지에라는 여학생이 ‘女T’에요 그래서 오히려 나는 남학생 대하듯 아주 잘 지냈어요. 그런데 그날 파티에서 내가 아주 격의 없이 천위지에라는 학생과 어울리는 모습과 잘 대해주는 것을 보고 리아오츠리엔이라는 학생이 눈이 뒤집혀서 질투심에 휩싸여 오히려 천위지에를 선동해서 이런 일을 벌인 겁니다.”

“얘기가 복잡해지고 어려운 한자들이 몇 개 나오기 시작하자 형사의 타이핑 치는 속도가 더 더디어졌다. 통역에게 천천히 말하라고 하는데, 오히려 한국어 통역은 어눌했지만 모국어로 얘기하는 것은 더듬거리거나 어눌하지 않으니 말이 빨라져 수사관이 천천히 하나하나 다시 받아 들으면서 치는데 힘겨울 정도였다.

“오늘 제출하시는 이 라인 대화는 여학생과의 대화가 맞습니까?”

‘네.

“이제까지 말한 것은 모두 사실입니까?”

“네.”

“뭐 더 다른 의견 있습니까?”

“특별히 없습니다.”

“그러면 이거 출력해서 확인하고 서명하도록 하겠습니다. 한 번만 사인하면...”

그는 두툼한 손으로 종이를 뒤적이며 프린터에서 토해내는 종이를 모아서 박 교수의 앞에 내밀었다. 박 교수는 내용을 다시 한번 훑어보면서도 내내 아침에 조사 장소가 뒤바뀐 것에 대해 못내 오해를 풀고 싶었다.

“그런데 어제 분명히 통화할 때 수사관께서 여기서 조사하는 게 아니라 파출소라고 했거든요.”

“아, 우리가 오해했습니다. 오해 푸세요.”

그가 너스레를 떨며 종이를 받는데 두 사람 사이에 있던 전화벨이 시끄럽게 울렸다.

“여보세요. 네 네. 알겠습니다. 지금 조사 거의 다 끝나갑니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으며 그가 한국 대표부의 직원이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조사 시작 전도 아니고 조사가 거의 다 끝나가는 시점에 부대표도 아니고 직원이 다급하게 전화한 것은 생색내기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전화를 걸어온 것에 대해 형사가 부담을 느낄 것은 더더욱 아니라고 박 교수는 생각했다. 부대표의 느물거리는 말투가 생각나서 은근히 더 부아가 났다.

서류를 정리하고 옆에 두고 다시 수사관이 자리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이제 주영희가 한 무고 건을 간단하게 정리할게요.”

“아니, 도대체 이게 무고가 성립합니까? 이렇게 명백한 명예훼손인데 그 조사가 다 끝나지도 않았고 게다가 내 이름하고 내 사진까지 다 공개했는데 이렇게 진행이 됩니까?”

수사관은 여유 있게 씨익 웃으며 손사래를 치며 설명했다.

“당신이 이름하고 사진 하고 해서 고소를 한 건에 대해서도 내가 담당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검찰에 바로 송치했습니다. 이건 분명히 크게 죄가 성립이 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무고는 성립이 안 될 거고요. 하지만 대만의 국민이면 누구나 고소할 수 있는 자유가 있으니까요.”

“명예훼손도 그렇지만 개인 정보에 관한 법률을 어긴 사안도 있는데 그건 어떻게 됩니까?”

“음, 그건 나중에 검사에게 가서 얘기하세요. 법원에도 외국인 조사과정에서는 법적으로 통역을 안배해야 하니까 그때 가서 잘 말씀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앞서 했던 과정과 똑같은 진술조서 꾸미기 질문이 시작되었다.

이름, 성별, 주소, 교육정도, 전화번호 등에 대한 기본 인적 사항에 대한 기록이 끝나고 사안에 대한 질문이 이루어졌다.

“당신은 주영희에 의해서 무고로 고소되었습니다. 주영희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원래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이번이 터지고 제가 고소를 할 때 알게 되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인데 주영희가 자기 페이스북에 욕을 하고 사진을 공개하고 이름을 공개했다는 거지요?”

“주영희가 무고죄로 고소한 사실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까?”

멍하니 있던 통역 여자가 다시 통역을 하겠다고 한국어를 더듬거리며 말했다.

“주영희가 무고죄로 기소 알아요?”

“에휴! 압니다.”

그녀를 탓하고 싶은 맘은 없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주영희는 성희롱이 성립한다고 들었기 때문에 페이스북에 그렇게 한 건데, 만약 성희롱이 사실이라고 판단되면 명예훼손은 성립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주영희의 주장은 자기가 학생들에게 들었고, 두 여학생이 이미 이 사람을 고소했기 때문에 성희롱이 사실이라고 자신은 인지했다는 겁니다. 사실로 인지하고 그렇게 했다면 그것은 명예훼손이 성립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타이완의 법률에서는.”

“수사관님도 잘 아시겠지만, 내가 말한 것처럼, 이게 사실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그리고 아직 성희롱에 대한 수사나 사법적인 결론이 나지도 않았구요. 그런데 내 생각에 그것을 퍼뜨린 타이밍이 조사 결과도 나오기 전에 그랬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겁니다. 성희롱 또한 사실도 아니구요. 한국인 교수도 한 사람이 아니라 상당히 많구요. 이 안건도 이제 조사 중이라서 결과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주관적으로 생각해서 사실이라고 생각한 것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당신의 사진이랑 이름을 올렸다고 주영희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ppt에는 다 익명으로 쓰기 때문에 모두 고소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언론인 출신의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놈은 더더욱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만약 성희롱 관련 건이 불기소 결과가 나오기만 하면 바로 무고로 다시 주영희라는 놈을 역 무고로 고소하세요.”

수사관이 한쪽 눈을 찡긋 깜박이며 그에게 말했다.

“네. 이해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뭐 그렇게까지 고마워할 것도 없습니다. 당연한 거예요.”

출력되어 나온 문서를 고치면서 그가 이상한 부분을 수정할 거냐고 다시 박 교수에게 물었다.

“이 놈은 두 여학생이 이미 형사고소를 해서 사법처리에 들어갔다고 하지만 실제로 두 여학생이 나를 고소하기도 전에 이미 그가 내 사진을 올리고 이름을 올리고 욕을 했는데 어떻게 시작도 하지 않은 사법 과정에 의해서 사실이라고 믿었다는 겁니까? 이런 변명이 말이나 됩니까?”

“아, 그렇네요.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그렇게 고칠께요. 그러면 이제 조사 끝난 시간 적구요. 그렇게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문건을 정리하며 시간을 적었다. 실제로 두 건 모두를 조사하는데 걸린 시간은 채 50분도 걸리지 않았다. 통역하고 쓸데없는 이야기로 낭비한 시간을 빼면 실제 조사는 20분도 안 걸린 셈이었다. 여자 통역이 자리를 일어서며 박 교수에게 허리를 꾸벅 숙였다.

“아직 학생이에요?”

한국어 실력을 생각하면 나이도 그렇고 아직 학생인가 싶었다.

“아니요. 졸업했어요. 실천대학교.”

“실천대학교? 아 그렇군요. 이렇게 만나서 황당하긴 한데, 나중에 한국어 공부하다가 도움이 필요하거나 하면 나한테 연락 줘요. 여기 내 명함이에요.”

박 교수는 그녀를 배웅하며 천천히 일어섰다.

“여기서 외교대학은 어떻게 돌아가면 되지요?”

아침에 얼떨결에 패트롤카를 타고 경찰서를 찾아온 박 교수가 수사관에게 묻자, 호탕한 수사관은 벌떡 일어서며 자동차 키를 챙겼다.

“뭐 바로 5분 거리니까 제가 모셔다 드릴께요. 오해하게 해서 오시게 한 것도 미안하고 사고도 할 겸.”

“네?”

“갑시다.”

그는 자기 차를 직접 주차장에서 일부러 빼와서는 박 교수를 옆에 태우고 운전대를 잡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이 바닥에서 수사계에서만 30년째요. 내 책상 봤겠지만 내가 맨 안쪽이잖아요. 내가 팀장인데...요즘 돈 바라고 그러거나 자기 사랑고백 안받아줬다고 보복하겠다고 일을 꾸미는 얘들 사건 너무 많아요. 내가 딱 봐도 견적이 나오는 게...특히 주영희라는 놈은 내가 수사했지만 그 놈 정말 쓰레기더라구요. 대만 사람들도 언론인이나 기자들 모두 쓰레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나중에 불기소처분이 나오면 주영희라는 놈은 바로 역무고로 고소하세요. 가중처벌이 되어서 실형을 받을 겁니다. 그리고 여학생들은 아직 어리고 뭘 몰라서 그러는 걸 수도 있으니까 큰 아량으로 교수님이시니까 용서해주세요.”

그의 진심어린 충고를 듣다보니 맘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왔다.

“아니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24일에 그런 협박을 받고 성희롱을 받았다는 학생이 다음날 바로 그런 교수의 집에 와서 같이 밥 먹고 술먹고 게임하고 놉니까?”

“그랬어요? 얘들도 참 머리가 안좋네. 쯧쯧”

몇 마디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외교대의 정문이 보였다.

“여기서 그냥 세워주시면 되요. 연구실이 바로 이 바로 앞 건물입니다.”

“예. 너무 힘들어하지 마시구요. 바로 검찰에 송치해 드릴 테니까 기운내세요.”

박 교수는 그 때까지만 해도 담당 수사관의 경찰의견까지 들은 터라서 조금만 더 버티고 참으면 이제 사법절차에서 자신의 누명이 벗겨져 대 복수극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328


이전 08화 대만에 사는 악녀 - 18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