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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Oct 06. 2021

대만에 사는 악녀 - 20

한국 시사프로그램에서 연락이 오다. -1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323


      한국 시사프로그램에서 연락이 오다.

                            2017년 6월 30일 SBC 시사 119

 

경찰 조사를 막 받고 돌아와 연구실에서 조금 속을 삭히고 있는데 뜬금없이 핸드폰이 울렸다. 한국의 번호였다. 기다리고 있던 전화.

경찰 조사를 받고 막 돌아왔는데, SBC의 시사 프로그램 기자라면서 통화를 하고 싶다고 연락이 온 것에 대해 바로 핸드폰 연락처를 남기고 기다리던 터였다.

 

“여보세요. 교수님. 안녕하세요.”

“네. SBC 한연수 기자입니까?”

“네. 한연수라고 합니다.”

“일단 통화 전에 확인 좀 몇 가지 할게요. 아까 이메일에 누군가에게 제보를 받았다고 했잖아요? 그 제보자가 누구예요?”

박 교수의 마음이 급했다. 다짜고짜 욱하는 감정이 튀어나왔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그나마 여기자가 완곡하게 표현을 하기는 했지만 분명히 선의의 제보가 아닌 악성 제보임이 확신이 들었다.

“네?”

“왜냐면 의도가 불순한 것 같아서...”

“아니, 저기...”

여기자가 감정이 앞서 공격적으로 말이 딱딱해진 박 교수의 질문에 당황해했다.

“아니, 누군지 알고 싶은 게 아니라... 후우! 한 기자! 내가 알기로 시사 2580 소속 기자인 걸로 알아요.”

“네. 맞습니다.”

“조사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서울대에서 공부만 하다가 이제 여기 온 지 한 학기도 채 안되었어요.”

“네. 얼마 안 되신 걸로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 제보를 한 애들의 목적이, 한국에 알려서 이 사람을 정말로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리자는 건데. 대만 언론에 대해... 한 기자는 잘 모르겠지만, 나도 와서 알게 되었는데...”

“그렇죠. 아무래도... 네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오늘 조사받으러 경찰서를 다녀온 길인데, 경찰에서는 모든 흐름을 다 알고 있더라구요.”

“이 사안에 대해서요?”

“아니요. 이게 여학생들이 꾸민 짓이라는 걸요. 오히려 저에게 미안하다 우리나라가 조금 그렇다고 사과까지 하더라구요.”

“아! 그래요? 저희는 회사의 제보창구가 있거든요.”

“내 말이요. 근데 제보를 한 아이들이...”

“네네.”

“‘이 분이 억울하게 누명을 썼으니 진실을 밝혀주세요.’가 아니라, ‘이런 심각한 일이 터졌으니 퍼트려주세요.’라고 제보한 거라는 거잖아요. 맞죠?”

“뭐, 네. 그렇죠.”

“걔네가 한국어 전공이라 한국어를 할 줄 안단 말이에요.”

“으음.”

“그런데 다른 언론에서 이 일이 터지자마자 사실 나에게 이런 식으로 연락이 왔었어요. 그런데 그쪽에서 내 얘기를 다 듣고 나서는, ‘교수님 말씀을 듣고 저희도 나름대로 다 조사를 해봤더니 감 잡았다’며, ‘저희는 여기에서 손을 떼겠습니다.’라고 하고 끝난 적이 있어요. 그런데 한 기자와 내가 연락을 바로 했던 이유는 단 하나예요. 한 기자가 나에게 취재를 하기 위해 호감을 얻기 위해 그랬던 건지 아니면 진실된 마음에서 그랬던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이메일에 쓴 한 기자의, ‘도통 교수님의 목소리가 확인되지 않는데, 혹시라도 누명을 쓰시고 억울함에 처해있으시다면’이라는 글을 보고, ‘기자로서의 감이 있는 친구구나!’라고 생각해서 연락을 한 겁니다.”

“네. 조금 이상하더라구요.”

“일단 간략하게 사건에 대해 브리핑을 할게요. 혹시 조사를 좀 했어요? 나한테 연락을 하기 전에?”

“보니까 교수님이 속한 이 한국어학과의 교수가 학생들과 같이 행동을 하시더라구요.”

“네.”

“그래서 그런 부분을 보니까 제가 봤을 때 박 교수님의 목소리는 전혀 나오지가 않고...”

“네. 그런데 그런 걸 어떻게 알았어요?”

“저는 제보를 받아서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건 한 기자가 속은 거예요. 학과 교수들이 한통속으로 나를 공격하는 건 사실인데. 지금 배후에서 학생들을 조종하는 놈은 교수가 아니구요. 강사예요. 한국어로 주영희라고 하구요. 전임도 아니고 시간강사인데. 그 사람이 연초에, 혹시 한 기자도 봤는지 모르겠지만, 그... 저 한국 위안부에 대해 철저하게 일본을 옹호하는 시각으로 글을 기고한 놈이에요. 그전까지는 자기가 마치 지한파(知韓派)라고 한국에서 이래저래 지원비까지 받아 챙겼던 놈이 한국에 대해, 한국이 일본에게 위안부 배상 왈가왈부하는 것은 관을 메고 장례식장에 가서 돈 내놓으라고 삥 뜯는 짓과 같다며 대만도 그런 짓은 안 한다고 일본 우익 매체에 기고를 한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다음 날 그 일본어로 기고된 걸 전부 한국어로 번역해서 중앙일보에서 대서특필한 거예요. 바로 대만 지한파의 본모습이 친일파 행각을 하는 놈이라는 사실을 까발려진 거죠. 지금 외교대학교 한국어학과 강사로 출강하고 있는 60이 넘은 놈이에요. 나는 단 한 번도 만나본 적도 없던 놈인데 이번 사건이 터지고 알게 되었어요. 이 놈이 누구냐 하면 우리나라가 대만이랑 92년에 단교가 되었잖아요.”

“네네.”

“80년대에, 외교대학교 한국어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로 한국 특파원으로 일했던 놈인데, 광주 사태에 대해서도 대만이 228 사태로 비슷한 민주화 사태를 겪었네 어쩌네 하면서 떠들고 먹고살다가 단교가 되니까 여기 돌아와서 자기가 마치 신문사 기자 같은 것을 전전하다가 돈 얻을 데가 없으니까 한국에 제주 4.3 재단이나 이런 데에서 지원금 받아서 먹고사는 놈인데 정치적 인맥을 이용해서 지 모교랍시고 강사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한국에 오면 자기를 꼭 교수라고 소개를 하고 다니는 거예요.”

“아!”

“그런데 이놈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냐 하면, 파악하셨는지 모르겠는데 아마 조사할 겨를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는데... 한 기자가 중국어를 한국어처럼 편하게 읽고 이곳의 자료를 모두 섭렵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그렇죠. 네네.”

“사건의 전말을 얘기해 줄게요. 일단 내 주장보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기술해주는 편이 기자 입장에서는 더 편할 거 아니에요.”

“그렇죠. 그래 주시면 제가 편하죠.”

“지금처럼 똑같이 제보랍시고... 여기서는 ‘입법위원’이라고 하는데 한국으로 치면 국회의원이죠. 한 여자 국회의원을 통해서 학생 얘들이 의도적으로 터뜨린 거예요. 우리가 교수에게 성희롱을 당했다는 식으로요. 그런데 나도 여기 와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대만이 한국을 이유 없이 미워할 리가 없는데 왜 그러지?’라고 생각했는데 얘네는 반한감정이 굉장히 심해요. 한국에 대해서....”

“그래요?”

“의외죠? 나도 여기 오기 전까지는 몰랐어요. ‘대만이 한국을 왜 싫어하지?’ 그랬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이유라고 얘네가 변명하는 게 우리가 말했던 중국이랑 수교하면서 92년에 얘네랑 단교를 했거든요. 그런데 얘네는 자기네랑 단교를 하면 배신자라고 생각한다나 봐요.”

“네. 아....”

“그런데 그건 다 핑계죠. 미국이나 일본이 훨씬 먼저 단교를 했는데 만만한 게 한국이라고 마구 밟고 싶은 것뿐이에요. 연전에 런던올림픽인가 아시안게임에서 대만의 태권도 선수가 발에 전자 반응을 하는 테이프를 붙이고 시합했다가 실격당하는 일이 있었거든요. 나중에 인터넷 검색해보면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나도 그 얘기를 듣고 찾아봤는데, 아무 이유도 없이 한 대만 국회의원이, ‘한국이 자기네가 금메달 따려고 대만의 유망한 선수를 탈락시킨 거다.’라고 기자회견을 해버린 거예요. 그랬더니 ‘한국이 원래 쓰레기 나라네, 미친놈들이네.’ 하면서 폭동 수준까지 확 일어난 거예요.”

“아아!”

“내가 얼마나 기가 막힌 나라인지 얘기를 해줄게요. 아직 내 건에 대해서 수사가 시작도 안 했어요.”

“이 사건 말씀이시죠?”

“네. 수사가 오늘 처음 조사를 받은 거잖아요. 학생들이 그냥 인터넷에 한국에 왜 ‘일베’라고 있잖아요. 여기 그런 게시판 같은 곳에 ‘PTT’라는 곳이 있어요.”

“네네.”

“그 익명게시판에, ‘한국인 국적을 가진 교수가 여자 학생들을 만지고 껴안고 막 그랬대.’ 이런 글이 올라오기 시작한 거예요. 근데 그걸 보고 한 여자 국회의원이 지금 ‘타이난’이라고 이 나라의 한참 남쪽에 지역구 국회의원인데 이 여자가 내년 말에, ‘지역 선거’라고 하나요?”

“한국의 총선 같은...”

“네. 거기에 거기 시장으로 나오겠다고 출마 의사를 밝혔대요. 그런데 이 여자가 노이즈 마케팅으로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래요.”

“아아....”

“그래서 방송사 불러서 기자회견을 연 뒤에 무조건, ‘그 사람이 쓰레기다.’라고 욕을 한 다음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 나중에 사과 기자회견이라고 또 열고서는 눈물을 흘리면서 사죄한다고 말하면 그걸 보고 또 용서를 해주는 게 여기 대만의 문화래요.”

“어머어머!”

“그런데 그런 국회의원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당사자 학생도 아니고 글을 올린 남학생이랑 대화를 나눈 걸 판넬로 만들어서 증거랍시고 세워놓고는 ‘그 사람 쓰레기다.’라고 떠들어댄 거예요. 우리나라라면 증거도 없이 큰일 날 일이라서 할 수도 없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나중에 내 변호사한테 왜 그러는 거냐고 물어봤더니 얘네 법령 중에서 국회의원이 국회의사당 안에서 기자회견의 형태로 떠든 내용에 대해서는 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법령이 있어서 보장해주고 있다는 거예요.”

“우리나라의 면책특권과 비슷한 거군요.”

“면책특권도 아니고, 비슷하긴 한데 하여간 죄를 묻지 않는다고 보장하니까 막 떠들어 젖혀도 상관이 없는 거예요.”

“네. 제가 기자회견이라고 한 걸 찾아보니까 그냥 두 사람이 나와서 얘기한 게 다더라구요.”

“맞아요. 그런데 한 기자가 봤다는 그 두 사람, 아까 말한 그 쓰레기 혐한파 늙은이 강사와 지금 말하는 여자 국회의원이에요.”

“아아....”

“이 쓰레기 강사는 왜 기자회견에 나왔던 거냐 하면요. 내가 이 사람이 겁도 없이... 참, 나는 페이스북을 안 써요. 나는 안 쓰는데 이 일이 터지자마자 페이스북에... 왜 몇 년 전에 서울대학교 수학과 강석진 교수의 성폭행 사건 있었잖아요. 기억나요?”

“아, 네.”

“그 사람은 실제로 학생들을 건드리고 그게 드러나서 3년인가 실형 받고 징역까지 살았었는데요. 갑자기 이 혐한파 강사 놈이 자기 페이스북에 이 사건이 터지던 날, 바로 내 실명하고 심지어 내 사진까지 올리면서 서울대 교수 출신 이러면서 욕설로 도배를 해버린 거예요.”

“네네.”

“그러면서 한글로 뭐라고 썼느냐 하면, ‘제 은사 강신항 교수의 아들 강석진 교수보다 더 악질인 놈이다.’라고 썼어요.”

“아아...”

“그러면서, ‘제가 이 사실에 대해 한국의 언론에 알리고 제보를 했는데 답변이 아직 없습니다.’라고. 그런데 걔는 이미 신뢰가 없는 언론인 출신이기 때문에 한국 어느 매체에서도 걔가 하는 말을 안 믿어 주는 거예요.”

“네네.”

“아니, 한 기자만 해도 지금 이거 어중간하게 기사화하는 순간, 나에게 명예훼손으로 다 문제가 될 텐데, 이거는 나의 미래도 그렇지만 정말 책임감 없는 기사가 나오는 거잖아요.”

“그렇죠.”

“나는 너무 황당해서, 우리나라로 생각하면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터진 거니까....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조차도 몰랐어요.”

“네. 그러셨겠죠.”

“어떻게 한 나라의 국회의원이, ‘페이스북에 학생이 나에게 이렇게 알려왔다.’ 그걸 보고 어떻게 ‘이 사람 쓰레기’라고 하냐구요. 그런데 동료 교수에게 물어봤더니 대만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거예요.”

“아아!”

“왜냐면 책임을 안 져도 되니까 그렇게 한답니다. 그런데 대만의 언론이, 한 기자도 방송사 기자지만 이런 가십성 옐로 페이퍼 같은 찌라시 기사를 터뜨리는 것으로 유명해요.”

“어머어머! 그 나라 매체들 수준이 다 그런 거예요?

“대만 얘들 설명에 따르면 대만 언론은 1면 기사에 항공사의 유니폼이 바뀌었다는 걸 내보내는 나라래요.”

“으음....”

“그래서 대만 사람들은 대만 언론을 아예 믿지 않는데요. 왜냐하면 비근한 예를 하나 들어줄게요. 이 국회의원 여자가 기자 회견할 때 뭐라고 했냐 하면 피해자를 7-8명이라고 하고, 신문기사에도 그렇게 나왔어요.”

“예. 저도 그렇게 제보받았어요.”

“그런데 내가 오늘 경찰서에 다녀왔다고 했잖아요.”

“네네.”

“피해자라고 나를 고발한 애들이 2명이래요.”

“2명이요? 네.”

“그런데 그건 굉장히 차이가 크잖아요. 왜냐하면....”

“그렇죠.”

“나 같아도 피해자가 7-8명이나 된다고 하면 조사를 하기 전이라 하더라도 얘들이 복수의 얘들이 그런 건데 이건 심각한 문제 아닌가? 사실인가? 하고 의심할 수 있잖아요. 그런 분위기인 거예요.”

“그런데 그 학생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계속 듣기만 하던 여기자가 자신이 궁금하던 대목을 바로 물어왔다.

“얘기 잘하셨어요. 이제 내 얘기를 해줄게요. 내가 여기 온 지 석 달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잖아요?”

“네네.”

“간단히 얘기를 하자면, 이곳에 올 때, 가족이 모두 같이 왔어요.”

“네네”

“후우! 무슨 얘기인지 알아요? 내가 너무 흥분을 해가지고... 천천히 얘기를 해볼게요.”

가족 얘기가 나오자 박 교수가 울컥했는지 말을 쉽게 이어나가질 못했다.

“네네. 좀 진정하시구요.

“집사람 하고 아이들은 중국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상황에서 여길 왔어요.”

“으음.”

“그런데, 여기 와서 얘들을 일부러 국제학교에 보내지 않고 로컬학교를 보냈어요.”

“아, 네.”

“그래서 내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챙기는, 올 케어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아네. 그렇죠. 사모님도 중국어를 못하시니까.”

“그래서 내 일과가 그랬어요. 아침에 아이들 일어나서 학교에 보내고 집사람을 중국어 어학센터에 보내고 아침 7시 반에 연구실에 출근하고 일주일에 13시간이나 강의를 했어요. 대만 교수들이 자기네는 7-8시간을 강의하면서 나는 외국인 교수라고 불러다 놓고 그렇게 강의를 시켰어요. 월급은 똑같이 받는데...”

“아, 네네.”

“그런데 그렇게 대우받으면서도 나는 내 나름대로, ‘그래도 어학전공에 네이티브 교수라고 왔으니까 좋게 인식을 심어주려고, 내가 좀 희생하더라도 애들의 실력을 확 키워놓자.’라고 생각을 했어요.”

“네.”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 우리나라의 카톡처럼 여기는 라인을 많이 써요. 그 라인 아이디를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공개를 하고, ‘언제든 괜찮으니까 모르는 게 있으면 거길 통해서 물어라.’ 하고 ‘내 아내와 아이들이 중국어를 한 마디도 못한다. 그러니까 저학년이라서 12시에 끝나는 아이와 고학년이라고 4시에 끝나는 아이가 있는데, 너희가 한국인과 한국어 연습을 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어서 잘 못하는 학생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와라. 여기 유학 온 한국 학생들과 언어교환을 하게 되더라도 어차피 한국 학생들은 중국어를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어 할 테니 마침 집사람과 아이 둘이 중국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데 나와 같이 연구실에서 밤 9시 반까지 거의 같이 공부하고 사니까 언제든 약속하고 와라.’라구요.”

“아아.”

“그게 내 생활이었어요. 그래서 학생들한테, ‘내 연구실은 작은 한국이다. 나 말고는 세 사람 모두 중국어를 한 마디도 못하니 와서 충분히 언어교환이든 공부든 해라.’라고 오픈을 한 거예요.”

“아아, 연구실을...”

“네네. 그래 가지고 약속을 잡아서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두 번 연구실에 오는 얘들이 생긴 거예요. 대만이 한국 얘들과 똑같지는 않으니까 학생들이 신기했나 봐요. 강의를 막상 시작하고 보니까...”

“네네.”

“두 번째 시간부터 내가 출석부를 따로 들고 들어가지 않아요. 내가 학생들의 전공과 이름 그리고 얼굴을 모두 외우는 거예요. 심지어 고향까지.”

“아아. 네.”

“그런데 얘들이 그나마 여기서 명문대랍시고 바보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얘들이 슬슬 감을 잡은 거예요.”

“네네.”

“아, 이제까지 이렇게 애정을 가지고 우리에게 이렇게 해준 교수가 없었다고.”

“으음”

“그래서 주로 머리가 빠르고 눈치가 빠른 얘들이 먼저, ‘교수님 제가 가서 공부해도 돼요?’라고 하면서 연구실에 오기 시작한 거예요.”

“으음.”

“그런데 그중에 한 학생이 내 업무 조교를 하겠다고 자원한 거예요. 여기서는 시간을 정해놓고 알바처럼 돈을 학교에서 지급받는 식으로 진행을 하는 근로장학생 개념으로 하는 게 있어요. 그런데 대학원생이 하나 왔다가 다 신청해놓고는 정작 도망을 간 거예요.”

“아, 네. 학과에서 교수님이 그런 거 정하는데 도움을 안 주었나요?”

“학과 분위기가, 학과장이 대만 사람인데 한국 여자랑 결혼을 했어요. 다른 한국인 정교수도 한 명 있고, 다른 학과긴 하지만 언어학과 출신의 후배 애도 교수로 먼저 와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누구도 심지어 학과장까지도 단 한번 나에게 같이 식사를 하자는 얘기를 꺼내지 않았으니 말 다했죠.”

“응응.”

“K대 출신 교수가 하나 있는데 한국인 중에는 그 사람 하나만 정교 수직을 받았어요. 나머지는 모두 계약교수예요. 1년 계약하고 연장하는 식으로 그러니까 한국인 교수들을 소모품 대하듯 하는 거예요. 지금 정교수를 억지로 우겨서 받은 사람이 K대 출신인데... 서울대에서 누가 오니까 갑자기 거리를 두고 그러는 거예요. 아니, 새로 교수가 부임하면 최소한 식사자리라도 인사 자리를 갖잖아요. 그런데 단 한 차례도 그런 자리를 갖지 않는 거예요.

“아아...”

여기 행정을 하나도 모르는 상황에서 나한테는 행정을 처리하는데, 업무조교라는 도우미 존재가 필수적인 거였어요. 그런데 학과에서 반드시 대학원생을 조교로 쓰라고 지침이 온 거예요. 그래서 한 대학원생을 어렵게 구했는데 그 학생이 대놓고 그러는 거예요. 여기 다른 한국인 교수들은 그냥 대강 심부름 몇 개만 하는 형식적으로 운영하고 연구실에도 잘 오지도 않는데 교수님처럼 정식으로 그러는 사람이 없다고. 그런데 내가 좀 특이하다는 걸 말하는 것도 그렇지만 매일 7시 반에 출근해서 9시 반까지 아이들과 아내까지 연구실에 계속 같이 있으면서 공부하고 한 달에 한 편씩 논문 쓰고 그러는 교수가 없었고 처음 봤다는 거예요. 내가 이상한 농담이긴 하지만 나는 성희롱 같은 거 할 시간이 없었어요.”

“아, 그럼 연구실에 가족 분들도 같이 계셨던 거예요?”

“네. 얘네가 말을 꾸며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아, 따로 학생들만 있었던 시간은 없었던 거예요?”

“아니, 물론 있었죠. 그런데 대개의 시간에 아이들과 아내가 연구실에 매일 같이 있었다는 거예요.”

“아..”

“그래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대학원생애가 자기는 정식으로 일하는 방식이면 도저히 못할 것 같다고 더 돈이 되는 알바를 하러 가겠다고 도망을 쳤어요.”

“아.”

“그런데 지금 문제를 일으킨 여학생이 지금 나이로는 24살이고, 원래는 영문과로 입학했는데, 휴학했다가 한국어과로 전과한 학생이에요.”

“네.”

“내가 집사람이랑 원래 조교 하겠다고 찾아왔던 대학원생이 도망쳤다는 말을 했더니 그 학생이, ‘제가 도와드려도 돼요? 저 영문과에서 한 경험도 있는데...’라고 한 거예요.”

“아, 그 학생이.”

“너무 긴 얘기를 하고 곁가지가 퍼지면 한 기자도 처음 듣는데 이해하기가 어려울 테니까 간단히 정리하면, 그 문제의 학생이, ‘시간이 가면서 제가 선생님이 날이 갈수록 좋아지는 것 같아요.’라고 하기 시작한 거예요.”

“어? 아!”

“그러더니 두 달이 되어가던 5월 24일의 일인데 그때 갑자기...”

“네.”

“사랑한다고 고백을 한 거예요.”

“아, 학생이요?”


다음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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