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사는 악녀 - 69

타이완 법조계에 낚시대를 드리우다.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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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사건이 터지고 정신없는 선제공격으로 입법위원의 기자회견이라는 공격을 받은 지 1년 하고도 몇 달이나 훌쩍 시간이 지났다. 박 교수의 입장에서는 처음 6월부터 여름방학이 끝나는 8월까지 라면 충분히 그 허술한 거짓말을 모두 반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고 허술한 거짓말에는 수많은 반증이 있었지만 그가 한국인이라는, 그리고 그곳이 대만이라는, 그리고 무엇보다 저마다의 이익을 위해 뭉쳐 이 사건을 활용하겠다는 욕심들이 뭉쳐 박 교수를 잡아먹겠다는 괴물이 되어 아가리를 크게 벌리며 계속해서 그를 물어뜯어버리려고, 먹히지 않으려면 벼랑까지 뛰어서 떨어져 버리라고 밀고 있었다.

핵심적인 증거를 모두 들이댔음에도 타이완 교육부에서는 외교대 측에 사실관계와 그들의 변호를 들어야 한다며 몇 달째 시간을 끌고 있었고, 그 사이에 박 교수는 스승의 조언에 맞춰 타이완의 법조계에 밑밥을 던져 타이완의 랭킹 1위에서 40위까지의 모든 로펌의 대표 변호사들을 만나 미팅 아닌 미팅이라는 이름의 낚시질을 하게 되었다.

스승의 조언은 간략하지만 대만 사회의 흐름을 저격한 주요한 조언이었다.


대만인들은 무조건 이익에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법조계는 특히나 그렇다. 아무래도 경제의 규모가 적어지고 그들로서는 새 시장을 열고 싶어 할 것이다. 중국 본토의 관광객들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봉쇄해버린 차이 정권의 몰지각한 정책으로 지금 대만의 가장 많은 해외 관광객은 ‘한국’이다.


그런데 한국의 관광객층을 분석한 자료를 검토해보면, 서울에 사는 사람과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지방, 비수도권의 돈이 넉넉해서 일본이나 중국 본토로 여행을 가지 못하는 이들이 주류이다. 특히 워킹 홀리데이로 몰리는 30세 이하의 젊은이들을 보면,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고 학력이 떨어지는 지방출신자들이 압도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워킹홀리데이가 상호 조약임에도 불구하고 대만에서 한국에 오려는 젊은이들은 1월 1일 접수를 하면 12월 31일부터 장사진을 이룰 정도로 인기가 치솟아 당일 선착순 인원이 모두 마감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고학력의 수도권 학생들은 거의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선착순이라고는 하지만 반년이 지나도 T/O는 소진되지 않는 극심한 온도차를 드러낸다. 그런 아이들과 지방 관광객이나 여성 동료 간의 배낭여행객이 대부분인지라 당연히 대만의 한국 관광객에 대한 법제적 처우는 굉장히 열악하다.


예컨대, 가장 흔한 교통사고를 보더라도, 한국인 관광객은 물론이고 워킹홀리데이의 지방 아이들은 대만에서 운전면허증을 소지하고 운전을 할 수 없게 되어있다.


거류증 문제도 있지만, 차를 운전할만한 경제적 여력도 없을뿐더러 외국에 나와서 운전을 할만한 수준의 관광객이나 거주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인이 대만에서 당하는 교통사고는 99% 한국인이 피해자이다. 내가 관련 자료들을 모아서 검토한 결과는 보면 그 실상은 더욱 참혹하다.


대만에서 약하든 심각하든 교통사고를 당한 한국인들은 대개 도보 중에 대만인이 운전하는 오토바이나 차에 치이는 경우인데, 보상을 제대로 받는 것은 고사하고, 대만 법률에 의거하여 형사처벌이 진행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인이 피해자일 경우, 경찰은 뒷돈을 받는 것으로 대만인들을 처벌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사실 교통사고의 경우, 특히, 피해자가 모두 한국 국적인 것과 오토바이나 자동차 등을 운행한 것이 아니라 도보로 사고를 당했을 경우, 교통사고를 담당하는 변호사 측에서는 형사처벌을 압박의 수단으로 해서 돈을 버는 일은 대만인들끼리의 사고에서는 이미 비일비재한 사안으로 생계형 변호사들이 달려들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어마어마한 수의 관광객 1위의 한국인들이 당하는 교통사고를 전담하는 로펌이 그 시장을 새로 개척하고 장악할 수 있다는 비전을 데이터와 함께 제시하면 그것들이 벌떼처럼 달겨들 것이다.


그러니 자네는 지금 카페에 내가 정리해서 올려둔 데이터를 토대로 길지 않게 이 사안을 정리하여 제안서의 형태로 잡아둔 내 초고를 적당히 윤문하여 대만의 1위 로펌부터 인터넷에 홈페이지 정보를 취합하여 쫙 부려라.


아마 모르긴 몰라도 바로 이 미기를 물고 달려들기 시작할 것이다. 사실 그 다음부터가 더 중요하다. 현재 대만은 타이베이를 중심으로 전국에 한국어를 할 줄 아는 변호사가 단 한 명도 없다. 한국인 국제 변호사마저도 단 한 명도 없다.


그렇다는 것은 한국인과의 소통서부터 한국인 전담 케이스를 맡을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 자네처럼 중국어에 능통하면서 지금 이런 전체적인 상황을 읽을 수 있고, 좋든 나쁘든 대표부와도 안면이 있으니 자네를 전담자로 추천해라.


그렇게 되면 당장 자네의 일자리도 해결할 수 있을뿐더러, 자네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사안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쉽게 자네를 받아들이지는 않겠지만, 그다음으로 진행하는 것은 천천히 진행하면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그들이 한국인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법률시장을 개척한다는 것이고 먼저 개척하는 자가 그 시장을 독점한다는 것을 부각하여 미팅하도록 하거라. 중간중간 내 조언이 필요한 경우에는 다시 카페를 이용하여 묻도록 하거라.


스승이 업로드해준 프로젝트 제안서는 윤문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깔끔했다. 그 지시를 확인한 대로 밤을 새워 타이완의 법률 사이트를 뒤져 랭킹 1위부터 50위까지의 로펌에 하나같이 메일을 보냈다.


낮은 순위의 로펌에서부터 메일을 보낸 지 두 시간도 되지 않아 연락이 쇄도하기 시작하여,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에는 드디어 미국계 비즈니스 소송 외에는 하지 않는다는 한국의 김앤장 파트너 로펌에게서도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정말로 다양한 이들이었다. 자신들의 세를 보여주기 위해 큰 로펌의 경우는 자신들의 사무실로 불렀고, 그다지 큰 사무실도 아니고 로펌의 대표가 다급해서 박 교수의 집 근처로 직접 밤늦게라도 괜찮으니 자신이 직접 달려오겠다고 한 로펌의 대표까지, 본의 아니게 타이완의 로펌 50위까지의 40여 명의 대표들과 파트너급 변호사들을 모두 만나보았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법률용어를 설명해야 했고, 말로 먹고사는 법률전문가들에게 이 계획에 대해 확실하게 설명하고 사로잡기 위해서는 그만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10군데가 지나면서부터는 이제 거의 기계적으로 설명이 튀어나왔다.


제안도 다양하기 그지없었다.

먼저 월급을 바로 줄 수는 없으니 자신들의 버젓한 사무실의 파트너급 사무실 하나를 제공하는 것에서부터 협업을 시작하자는 늙고 낡은 마인드로 접근하는 로펌 대표에서부터, 내용을 모두 듣고 자료도 모두 달라고 한 후에, 그 내용과 자료로 박 교수에게 따로 투자를 하지 않고 몰래 자신들이 그대로 운용할 수 없는지를 시뮬레이션하는 작태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판사 출신에서부터, 한국의 법률구조공단에 해당하는 변호사협회의 운영단체 이사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그중 10위권 안에 드는 로펌은 박 교수에게 제공할 사무실이라며 타이베이 시내가 훤하게 보이는 사무실을 구경하라며 거들먹거리고 자신들에게 독점권을 줄 경우 이 사무실은 당신이 쓰게 될 것이라는 유치한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늙은 아버지 대표에, 제대로 된 대만의 법대도 입학하지 못해 해외의 적당한 대학을 나와 대만의 변호사 자격도 없어 미국의 바(BAR)를 가지고 활동하는 2인자 딸은 혼자서 똑똑한 채를 하며 박 교수의 뒷조사까지 해서 아는 척을 하는 오버 행태까지 보였다.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 박 교수는 2차 미팅 즈음부터 자신의 현재 진행상황을 정리한 자료를 들고 그들에게 이런 케이스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1차 미팅까지만 하더라도 눈이 뻘겋게 한국인을 위한 법률시장을 개척하겠다고 하던 이들이 동시에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좌장 역할을 하는 로펌의 대표가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정치권과 줄이 바로 맞닿아 있다는 그의 공지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고 나중에서야 듣게 되었는데 그 내용이 어이가 없었다.


첫째,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소송을 하는 것은 결국 우리 국민들을 대상으로 돈을 뜯어내서 한국인의 배를 불려주는 것이고, 한국인들의 피해보상이나 처우를 개선해주는 것은 결코 우리나라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둘째, 한국인이 입은 피해를 보상하기 시작하면, 현재 파트너 혹은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피해보상 소송과 관련하여 한국 로펌이 대만으로 진출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국 시장을 한국 로펌이 주도권을 갖게 되는 결과가 일어나 우리나라 로펌의 입지만 더욱 좁혀지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 로펌의 비공식적인 대만 상륙을 우리가 허락해주는 꼴이 될 것이다.

셋째, 현재 이 프로젝트를 제안한 서울대 출신 교수의 사안을 모두가 알고 있겠지만, 이것이 원죄라는 것이 밝혀질 경우, 좋든 싫든 우리나라의 입법위원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법제와 정치가 얼마나 기반이 취약하고 엉망인지를 우리가 증명하는 꼴이 된다. 때문에 이 프로젝트의 제안자가 이슈의 중심이 되어 이 시장이 형성되는 것은 결국 우리나라의 국익에 상당한 불이익을 줄 것이며 우리 법조인들에게도 결코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것이다.

넷째, 누군가 이 시장을 혼자서 먹고 싶다고 나설 경우, 다른 로펌들은 공조하여 해당 로펌에 대한 적절한 제재를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이 독배를 드는 것은 모두에게 권하지 않는 바이다.


이런 공식적인 문건이 돌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박 교수는 역제안을 받기 시작했다. 이미 장 변호사가 선임되었다는 것을 아는 로펌들이 이 사안은 뒤집는 것이 상당히 쉽고 너무도 당연한 건인데 이상한 특수부 출신 변호사에게 가서 재판이 꼬이는 것이라며 장 변호사가 받은 수임료의 두 배를 주면 이 사안을 뒤집어주겠다는 제안을 하는 로펌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주로 여자 변호사가 대표로 있는 로펌들이었는데 그들의 속내는 너무도 뻔한 것이었다. 특히 그들의 제안은 행정소송을 통해 절차상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것을 뒤집게 되면 형사 재판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장 변호사의 건과 무관하게 외교대와 교육부를 대상으로 한 행정소송이 꼭 필요하다며 역으로 낚싯대를 던져왔다.

그렇게 대만의 획기적인 새로운 법률시장의 출범은 그들의 콘체른에 의해 막혀버렸다. 당시에는 왜 갑자기 그런 차가운 태도로 일괄적으로 변화했는지 몰랐던 박 교수는 한참이 지나고 난 뒤에야 관련된 이야기를 변두리 변호사에게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이 이야기가 장 변호사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장 변호사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고 관심을 가진 듯 보이지도 않았다.

그 사이 대한민국 외교부에서는 더 황당한 일이 있었다.

뜬금없이 ‘사건 담당 영사’ 제도가 시행되었다며 모집공고가 났다. 이전에도 현지 직원을 뽑아 민원이나 사건 담당의 통역이나 잔심부름 등 힘겨운 일을 모두 부리며 정말 말 그대로 밑의 사람을 부리듯 하는 모습은 자주 볼 수 있었는데, 대놓고 시스템을 갖춰 그런 자리를 만들겠다고 예산을 마련하여 감행한 것이었다.


흰머리의 영어 통역을 하던 허수아비 장관이 미국과 북한 사이의 이벤트를 계속해서 진행하느라 얼굴마담을 하고 있는 사이, 그들은 그들의 딸과 아들이 외교관이면서도 불가피하게 사건 영사로 민원현장에서 힘겹게 땀을 흘리고 특히나 일반인들에게 막 대하는 처우를 받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방비책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외교부에 2세대, 그러니까 아버지와 어머니가 고위 간부인 자녀들이 늘기 시작하면서 그 논의는 슬슬 군불을 때기 시작했다고 한다. 민원현장에서 고급 인력에 해당하는 자기 아들과 딸이 직접 민원현장을 뛰는 일이 없도록 외무고시가 없어지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식 시험이나 그 과정을 거치지 않은 막 쓸만한 현지 직원들을 뽑아서 그저 심부름만 하는 수준이 아니라, 머리도 좀 있고 경력도 좀 있어서 중간 입장에서 일을 부려먹고 특히 현장의 사건사고에 뛰어다니게 할 인력을 대놓고 뽑기 시작한 것이다.

그 과정을 알게 된 박 교수는 더 황당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 일을 이지경까지 만드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박 부대표가 외교부의 ‘훌륭한 올해의 외교관’상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가 파견되기 전에 본부에서 재외국민 보호과장을 역임했고, 늦깎이로 외교관 일을 시작하여 내부에서 손바닥에 지문이 없어질 정도의 수완을 발휘하였다는 것은 들어왔지만, 2017년 2월에 대만에서 있었던 요구르트 성폭행 사건의 황당한 외교부 직원의 대응이 대서특필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리고 박 교수의 일이 뉴스를 통해 알려진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가 상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인력이 부족한 외교공관에 사건 전담 공사를 둔다고 한 외교부의 홍보자료를 살펴보니 어이가 없었다. 주로 사건사고의 처리에 기존에 외교관들이 사고를 치거나 대응이 문제 된 나라들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도록 리스트로 만들어 공고를 낸 것이었다.


경악할만한 일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훌륭한 외교관이라고 상을 받은 그 박 부대표가 뜬금없이 일본의 오베에 있는 총영사관의 총영사로 승진 발령을 받아 대만을 뜨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대한민국의 외교관은 특히나 총영사관의 총영사직은 개나 소나 다 한다. 그 가장 큰 근거가 트루킹 사건에서 본의 아니게 적나라하게 드러난 일이 있다.


트루킹은 김경수 전 도지사에게 자신이 총선에 영향력을 발휘했으니 일본의 오사카 총영사직을 달라고 요구한다. 장관직이나 차관직도 아니고 그가 일본의 오사카 총영사직을 요구했다는 것은, 그 역시 바보가 아니었기 때문에 높은 기준의 조건을 부합하지 않더라도 꽂아주는데 큰 문제가 없는 콩고물이 많이 떨어지는 꿀보직을 원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의 법정 증언에 따르면 그의 제안에, 일본의 토호쿠 지역의 센다이 총영사직을 역으로 제안받았다고 한다. 그는 당연히 그 자리는 한직(閑職)이라 꿀보직이 아니니 거절했다고 한다. 그런 자리가 바로 총영사직이다. 일본의 그리고 중국의 총영사관의 영사직을 맡고 있는 자들을 보면 의외로 외교관 출신이 아닌 자가 많이 눈에 띄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이다.


그런데, 아무리 한직이라고는 하지만, 그리고 아무리 그가 일본 후쿠오카 총영사관 부총영사직을 수행했다고는 하지만, 대만에 있었던지 2년도 채우지 않고 승진하는 형식으로 그 자리에 간다는 것은 이례적인 발령이었다.


대개 이런 경우는 두 가지 이유밖에 없다. 그가 올라가는 자리의 공석이 누군가 아주 큰 사고를 쳐서 돌려 막아야 하는 긴급한 상황이 되었거나 그가 있는 자리에서 계속 있다가는 사고에 해당하는 일이 터지게 될 경우가 그 경우에 해당한다. 박 부대표의 급작스러운 승진은 그 두 가지 모두에 해당했다.


결과적으로 외교부와 감사원, 그리고 국회까지 들썩이게 쑤셔댔던 박 교수의 사건은 도리어 그에게 전화위복의 일본 주오베 총영사직을 던져주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지옥 같은 여름은 지나갔고, 박 교수는 여름방학이 지나 다시 학기 시작을 맞이하기 위해 돌아온 가족을 위해, 새로운 일자리를 억지로라도 찾아야만 했다. 지옥에서 죽지 못해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의 아내도 사람인지라 이제 불만과 원망으로 바뀐 감정을 내놓기 시작한 탓이었다. 아내를 탓할 입장이 아니었다. 그 모든 일의 중심에 자신이 있었다는 것은 바꿀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악녀와 만날 날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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