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사는 악녀 - 83

최종 판결이 나오다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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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이 나오는 피 말리는 한 달은 하루가 1년같이 길기만 했다. 무엇보다 성희롱이라는 재판의 특성상, 무죄가 나올 경우 여학생들의 무고죄가 성립될 가능성이 높았고, 악녀가 아직 4학년이라는 점에서 박 교수는 희망을 끈을 놓지 않았다.


뻔뻔하게 네덜란드에서 교환학생을 1년이나 지내고 돌아와 증언을 하기가 무섭게 한국의 대학으로 교환학생으로 떠난 천 위지에 역시 용서할 수가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어느 대학으로 갔는지를 묻고 스승의 말처럼 한국에서 따로 형사고소를 진행하여 한국에서 발을 묶고 똑같이 재판을 당하는 꼴을 당하게 할까도 수천번이나 생각을 했다가 접었다. 좀 더 당당하게 이곳에서 떳떳하게 무죄를 선고받고 그 모든 것들을 진행하는 것은 그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물론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얕은 잠에 들었다 싶으면 계속 머릿속에서 1년 반 전의 악몽이 다시 떠올랐고, 그럴 때 이렇게 했으면 어떨까? 협박을 했을 당시에 모르는 척 핸드폰으로 녹음이라도 해뒀더라면 회심의 일격이 되었을까? 온갖 사념들이 꿈틀거리며 정신은 오히려 더욱더 맑아졌다. 그렇게 맞은 새벽과 낮은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들어갔고, 재판의 판결을 보고서 움직이려는 듯 타이완 교육부에서는 숨을 죽이고 연락을 할 때마다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며 대답을 회피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고 크리스마스이브에 아이들과 케이크에 초를 붙이며 소원 아닌 소원을 빌었다.


‘이 지옥 같았던 18개월을 한 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답변을 내일 꼭 주세요.’


폭풍 속의 전야같이 크리스마스이브가 지나고 법원을 찾았다. 처음으로 박 교수의 아내가 박 교수를 따라나섰다. 떨리는 마음으로 막 법원에 들어서려는데, 익숙한 타이베이 대표부의 사건 담당 영사가 복도에 앉아 있다가 박 교수를 맞았다.


“교수님. 드디어 오늘이네요. 좋은 소식이 꼭 있을 겁니다.”


갑자기 친한 척을 하며, 이렇게 재킷만 입어도 훨씬 교수님스러운데 왜 8월에 자기를 만나러 왔을 때는 반바지에 가볍게 입고 왔냐는 둥 너스레를 떠는 그의 언행이 가증스럽기 그지없었지만, 월급 받고 밥값 하느라고 외교부 2세들의 뒤를 닦는 그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싶고, 그를 보낸 대표라는 대사의 속셈이 너무도 뻔하고 가증스럽기 그지없었다.


이미 박 근혜 정부의 낙하산을 타고 버티던 대표는 새로운 소심한 대표로 바뀌었지만, 나라도 아니고 대사라고도 불리지 못하고 대표라고 불리는 그들은 연이은 대표와의 면담 요구를 저 아래 있는 사건 담당 영사와 만났으니 그와 상의하라는 답변으로 일관해오던 터였다.


“들어가시죠. 사모님도 같이.”


판결을 내리는 것까지 자신이 참석할 필요는 없다며 장 변호사는 아예 법원에 오지도 않았다. 법원의 개정 시간이 되자, 여자 판사가 들어섰다.


“판결 내리겠습니다.”


박 교수와 그의 아내, 사건 담당 영사와 주영희의 변호사까지 모두가 숨을 죽이고 여자 판사의 튀어나온 입에 시선을 모았다.


“피고 박 00은 성추행 방지법 제25조 제1항의 성추행죄, 총 8개 죄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각각 유기징역 3월에 처하며, 벌금으로 환형시에 하루에 대만 달러 천원으로 환산한다. 1년 2개월의 징역이 집행되어야 하고, 벌금으로 환형 시에 하루에 대만 달러 천 원으로 환산한다. 또한 형의 집행이 끝나거나 석방 후에는 추방 조치된다.”


“응?”

너무 빠른 속도로 웅얼거리듯이 확 끝내버린 그녀의 말에 사건 담당영사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유죄’라는 말을 들은 순간 귀가 멍해져 있던 박 교수는 그 귀의 말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정확히 지금 뭐라는 겁니까?”


박 교수가 통역과 떠들고 있던 사건 담당 영사에게 말을 걸었다.

“일단 유죄라는 것 같은데요.”

여자 판사가 눈치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벌금을 내면 바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누가 유죄라는 겁니까?”

박 교수가 날카롭게 그녀에게 외쳤다.


“나한테 언성을 높이면 법정모독죄로 구속합니다.”

“묻잖아요! 누가 유죄이고, 이건 양형기준에도 맞지 않는 거잖아요? 근거에 대해서도 읽어주질 않아요?”


스승과 장 변호사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조금 길더라도 형사사건의 경우, 판사는 주문 이외에 그렇게 판결을 내린 이유에 대해 낭독해 그 자리에서 설명하도록 되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주문 3줄만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웅얼거리듯 읽어 내려가고서는 박 교수에게 법정에서 나가라고 손사래를 쳤다. 주영희의 변호사는 예스라고 외치며 주먹을 쥐어 보였다.

법정에서 쫓겨나듯 나오며 박 교수의 눈치를 보며 사건 담당 영사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요. 저희가 보기엔 그간 내신 증거도 그렇고 이럴 리가 없는데...”


그 역시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이게 말이 되는 겁니까? 그러니까 대표부에서 대한민국 외교부에서 제대로 감시하고 이런 허튼짓을 할 수 없도록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들이 알게 해달라고 그렇게 부탁하지 않았습니까?”

“아! 그게... 일단 오늘은 돌아가시구요. 저희도 판결문이 나오는 대로 다시 분석하고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가요. 여기서 이러지 말고.”


박 교수의 아내가 박 교수의 등을 도닥이며 법정을 나섰다.


“당신한테 말만 듣고, 오늘 처음 봤는데, 저런 얼굴의 저런 여자라면 충분히 오늘 이런 결론으로 밀어붙일 수 있겠네요.”

박 교수의 아내가 법원을 나오며 뱉은 첫마디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태 당하고서도 몰라요? 여기가 나라 수준에도 못 미치는 곳인데, 이 나라를 대표한다는 국립대에서 벌어진 일이고, 교육부에, 입법위원에, 언론까지 지금 제대로 이 사건을 들여다본 이들이 한 명이라도 있어요?”

냉정한 판단과 위로가 함께 들어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박 교수는 하늘이 노랬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서지 않았다.


집으로 오자마자 장 변호사에게 전화부터 걸었다.

“실형이 나왔습니다. 이 나라는 아무리 나라가 아니어도 그렇지 양형기준을 넘어서는 판결을 합니까?”

“네?”

장 변호사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되묻는 외마디 말 이후 숨소리밖에 내지 못했다.

“실형을 내면서 벌금환산형이랍시고 425,000 대만 달러를 내랍니다. 이게 장 변호사가 말한 최대 양형기준인 만원도 되지 않을 거라는 벌금형입니까?”

“항소하면 됩니다. 항소 안 할 거 아니잖아요? 일단 판결문을 받고 나서 내용을 정확하게 봐야 아니까 지금 이렇게 흥분하실 게 아니라...”

“당신이 나 같으면 지금 흥분이 안됩니까?”

“제가 지금 어떻게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판결문이 오면 그때 이야기 다시 하시죠.”

삐친 여자아이같이 그렇게 외치고는 장 변호사가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그렇게 해가 바뀌던 마지막 날 박 교수의 아내는 박 교수에게 어렵게 무거운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 그만해요.”

“그게 무슨 말이야? 그 벌금을 내고 쫓겨나자구?”

“그럼, 여기서 평생 돈도 못 벌고 돈 까먹으면서 성추행범 소리 들으면서 이 말도 안 되는 쓰레기 같은 것들이랑 싸움을 계속할 거예요?”

아내의 반응도 이해를 못 할 것은 아니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중간에 누군가 정의를 제대로 세워놓은 이가 있어 정의로운 판결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데, 계속해서 승산도 없는 피 말리는 싸움을 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아프지만 받아들여야만 할 현실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대로 저들이 원하는 대로 벌금을 납부하는 건, 그 꼬리표를 흔들고 다니며 내가 어디를 가든 주영희는 한국 언론사에 떠들어댈 거야. 저 미친놈도 미친놈이지만 츠리엔 같은 악녀를 그대로 놔두는 건 도저히 용납이....”

“그러면 차라리 그 사람한테 죽여달라고 부탁을 해요.”

“응?”

판결이 나오고 나서 판결 내용을 스승과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나온 화면을 아내가 봤을 것이라고 박 교수는 생각지도 못했다.

“봤어? 선생님이랑 얘기 나눈 거?”

“그냥 우연히 봤어요.”

“아무리 그래도....”

“당신이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저도 생각했어요. 이 쓰레기 같은 곳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도 말이 안 되고, 당신 곁에서 계속 이 답도 없는 모습을 지켜봐 줄 자신도 없어요. 우리는 이번 학기가 끝나는 대로 한국으로 들어갈게요. 당신이 어떻게 할지는 차분히 떨어져서 한번 생각해보고 결정하기로 해요.”

“그게 지금 무슨 말이야?”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살 것 같아요.”

아내의 눈시울이 붉어지며 그에게 이별 아닌 이별을 고했다.

“알았어. 힘들겠지만, 얘들이랑 한국에 먼저 들어가. 나는 어떻게든 이 상황의 끝을 봐야겠어.”

“그렇게 해요. 당신이 원하는 대로 답이 나오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만족할 수 있으면 만족할 수 있을 때까지 해봐요.”


그날 시먼딩에서 가장 비싼 주상복합의 빌딩 꼭대기 옥상에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안개 낀 101 빌딩을 쳐다보는 것으로 2019년을 맞았다.


스승과 나눈 이야기의 채팅 내용이라는 것에서 나온 것은 황당한 사건의 주인공 입에서 나온 내용이었다. 2018년이 대한민국 여검사 발 미투로 화려하게 시작되었다면 2019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것은 단어 그대로 불타는 태양인 버닝 썬 사건이었다. 거기서 뜬금없이 나온 대만 물주 여자가 있었다, 아이돌 그룹의 멤버였던 철없는 녀석이 그렇게 외쳐댔던 사모님. 바로 린 사모였다. 그녀와 아주 밀접한 인물이 이미 그 사건이 불거지기 전에 박 교수의 스승, 그리고 그 스승의 지인을 통해 연결고리를 이어가며 이야기가 이어졌던 것이다.


발검무적: 올려놓은 내용 보았다. 이런 식으로 주문만 읽고 끝내버렸다구?

박 교수: 유죄랍니다, 선생님.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내용은 지금 업로드한 그대로 그 주문만 읽고서 끝나버렸습니다.

발검무적: 예상하긴 했지만, 실형을 전제로 한 벌금 환금형이라는 건 정말 기상천외하구나. 아마도 검찰의 기소를 하나하나의 별개의 죄라고 보고 그것에 하나하나 양형을 붙이는 방식을 편법으로 한 것 같구나. 이것들이 아예 자기 세상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구나.

박 교수: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발검무적: 뭘 어찌해야 할지 몰라. 마음 단단히 먹어야지. 그들이 그냥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악녀라는 년이 모두 꾸민 것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여 사과할 줄 알았더냐?

박 교수: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명백한 증거를 내밀었는데도...

발검무적: 어리석은 소리. 당장 현행범에게도 오리발을 내미는 족속들에게 뭘 기대했더냐?

박 교수: 항소를 준비해야 할 텐데 그것도 어떻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발검무적: 이건 다른 이야기다만, 지난번 악녀에 대해 뒷조사를 부탁했던 측에서 의외의 소식이 돌아왔다.

박 교수: 의외의 소식이라 하시면?

발검무적: 원래 악녀의 집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이야기는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박 교수: 네.

발검무적: 결국은 돈돈하며 돈 때문도 이번 일을 활용하려 들었던 것인데, 자네가 전혀 그럴 여지가 보이지 않으니, 술집에서 얼굴을 봤다고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박 교수: 술집이요?

발검무적: 그리고 이건 내가 직접 서칭하면서 찾았던 것인데, 악녀가 타이완의 연예계 모델을 뽑는 이벤트에도 자기 프로필과 사진을 올리며 응모했다가 네티즌들에게 한 표도 받지 못한 프로젝트도 있었더구나.

박 교수: 언뜻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건 그냥 학생 모델을 뽑는 것이라고...

발검무적: 그런데, 그 뒷조사를 부탁한 녀석이 타이완의 게임계에 있는 녀석인데, 그 녀석이 타이완의 조악하고 지저분한 게임 바닥에서 오래 어울렸던 녀석인데, 자기가 왠 큰형님이라고 불리는 자와 접촉을 하면서 이번 사건의 뒷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나에게 소식을 알려왔다.

박 교수: 게임계의 큰 형님이라면, 한국의 게임을 타이완에 푸는 것 아닌가요?

발검무적: 한국의 게임이 중국에 직접 들어가지 못하면서 게임과 마약에 찌든 타이완을 중화권 교두보로 삼고 있다는 점은 자네도 잘 알고 있지?

박 교수: 네.

발검무적: 그런데, 그런 양지의 게임이 아닌, 성인게임장의 게임들과 도박, 그리고 공식적인 타이완에서 재배되고 유통되는 마약의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는 자들이 있다.

박 교수: 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왜 갑자기 제 사건에?

발검무적: 그러게. 나도 좀 이상하긴 했는데, 그 녀석이 왕래하는 왕사장이라는 큰 형님이 있는데, 딸들이 있고, 아내가 한국에 대해 엄청난 한국 빠라는구나. 한국에도 워낙 많이 왔다 갔다 하면서 한국 연예인들과 막역한 관계를 유지하고, 돈세탁을 하는 것으로 한국을 이용한다고 하는데, 그런 이유로 한국 교수의 사건이라고 하면서 자기가 관심이 가서 애들을 시켜 좀 알아봤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먼저 건네 왔다는 거야.

박 교수: 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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