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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Dec 16. 2021

사람들의 시선이나 소문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세 치 혀만으로 멀쩡한 사람을 죽이는 시대의 서글픔에 대하여

子見南子, 子路不說, 夫子矢之曰: “予所否者, 天厭之! 天厭之!”
공자께서 南子를 만나시자 자로(子路)가 기뻐하지 않았다. 공자께서 맹세하여 말씀하였다. “내 맹세코 잘못된 짓을 하였다면 하늘이 나를 버리시리라! 하늘이 나를 버리시리라!”
주윤발이 공자로 열연한 영화 <공자>에서 공자와 남자의 대면장면

이번 장(章)의 등장인물은 드디어 앞에서 다른 인물들과 배경을 설명할 때 나왔던 그 위 영공의 부인(夫人)인 남자(南子)이다. 이 장의 공자의 맹세가 나오기까지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뒤 정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공자가 대사구(大司寇)의 벼슬로 노(魯) 나라의 정사를 보던 중, 제(齊) 나라가 보낸 여인과 그녀들의 춤에 노 정공과 계환자가 홀딱 빠져 3일간이나 조회를 열지 않았고, 이로 인해 계환자에게 실망한 공자는 결국 소원해져 노(魯) 나라를 떠나서 위(衛) 나라로 망명하게 된다. 그때가 위 영공 38년이고, 공자의 나이, 56세였는데, 자로(子路)가 주선하여 자로(子路)의 처형인 안탁추의 집에 머물면서 위나라로부터 노(魯) 나라에서의 녹봉과 같은 대우를 받으면서 위나라 정계의 인물들과 교류를 하게 된다.

위나라 영공

위(衛) 나라 영공은 부인(夫人) 남자(南子)와의 사이에 아들 영(郢)을 두고 있었고, 전처소생의 태자인 괴외(蒯聵)와 남자(南子)는 서로를 미워하는 사이였는데, 위 영공 39년에 태자 괴외(蒯聵)가 남자(南子)를 살해하려는 의도가 발각되자, 살기 위해 송(宋)을 거쳐 진(晉)으로 도망하게 된다. 당시의 위나라는 외교에 중숙어(仲叔圄), 종묘(宗廟)는 축타(祝鮀), 국방에는 왕손가(王孫價)의 행정가가 제 역할을 잘해주었기에 위 영공의 무도(無道)함에도 나라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고 공자가 계강자에게 후술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정치가로서는 영무자, 거백옥 등이 중심에 있고, 위 영공의 부인인 남자(南子)가 영공(靈公)과의 소통을 조율하여 위나라를 유지하고 있었던 상황이 바로 이 즈음이었다.​

 

거백옥의 집에서 위나라 주요 인사들의 교류가 이어지고, 그 멤버는 송조(宋朝)를 포함하는데, 공자와 송조, 남자(南子)는 송(宋) 나라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런 와중에 외부에서는 수려한 외모의 송조(宋朝)가 위 영공의 적모(嫡母)인 위양공의 부인(夫人)인 선강(宣姜)은 물론, 남자(南子)의 사통설(私通說)이 있고, 남자(南子)가 음란하다는 설(說)마저 파다하게 돌고 있었는데, 공자의 덕을 흠모한 남자(南子)가 공자를 보기를 원했고, 공자는 회피하다가 결국 남자(南子)와 교류하게 된다.


이런 만남을 본 다혈질의 제자, 자로(子路)가 탐탁지 않아하는 내색을 하자, 그가 어떤 것을 오해하는지 알고서 공자가 제자가 상상하는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바로 이 장의 내용이다.

먼저 이 장에 대해 주자는 어떻게 해설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南子는 위령공의 부인이니 음란한 행위가 있었다. 공자께서 위나라에 이르자 남자가 만나기를 요청하니, 공자께서 사양하시다가 어쩔 수 없이 만나신 것이다. 옛날에는 그 나라에 벼슬하면 그 小君(임금의 부인)을 만나는 예가 있었다. 그러나, 子路는 공자께서 이 음란한 사람을 만나보는 것을 치욕으로 여겼으므로 기뻐하지 않은 것이다.

矢는 맹세요, 所는 맹세하는 말이니, 예컨대 “맹세코 崔慶과는 함께 하지 않겠다.”고 말한 따위와 같은 것이다. 否는 禮에 합당하지 않은 것을 말하니, 도리를 따르지 않은 것이다. 厭은 버리고 끊는 것이다.

성인의 道가 크고 덕이 온전하여 가한 것도 없고 불가한 것도 없으니, 악한 사람을 만나볼 적에 진실로 생각하기를, 나에게 있어 만나볼 만한 예가 있다면, ‘저 사람의 악행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라고 여긴다. 그러나 이것을 어찌 子路가 능히 헤아릴 수 있는 것이겠는가. 그러므로 거듭 말씀하고 맹세한 것이니, 그가 우선 이 말을 믿고 깊이 생각하여 터득하게 하고자 하신 것이다.

 

일단, 여기에서 언급된 ‘崔慶’은 제(齊) 나라 莊公을 시해한 최저(崔杼)와 경봉(慶封), 두 사람을 가리킨다. 이 내용은 <<春秋左傳>> 襄公 25년조에 보인다.


공자의 입장에서는 만나지 않을 수 없는 예법이 있었고, 그래서 당당히 만났으나 세상은 그리 보지 않았고, 안 좋은 소문은 더 커져갔다. 당연히 처음부터 내키지 않았던 다혈질 건달 출신의 자로는 스승이 그런 안 좋은 소문의 중심이 되는 것 자체가 불쾌했던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하늘까지 언급하며 맹세라는 표현을 써서 다혈질 제자의 눈높이 맞게 강력한 부인과 변호를 한 것이다. 주자의 변호가 다소 논리적으로 빈약하다고 빈축을 살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주자의 해설과 다르게, 공자가 왜 그런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면서까지 그녀를 만나려고 했는지, 그리고 만나서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에 주목한다.


공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가르치고 펼쳤던 인(仁)의 정치를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위나라까지 망명을 온 상태였다. 당시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위 영공(衛靈公)이 죽기 전 남자(南子)의 아들 영(郢)을 태자로 세우고자 했으나, 도망한 태자 과외의 아들 첩(輒)에게 위(位)를 잇게 하자는 영(郢)의 뜻에 따라 괴외의 아들인 첩(輒)이 영공(靈公)을 이어 출공(出公)이 되는데, 자신의 아들을 공(公)의 자리에 올릴 수 있었지만 자신의 아들을 공(公)의 자리에 올리지 않고 출공이 공(公)의 자리를 잇는 인(仁)의 정치를 보일 기미가 엿보였던 것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제대로 된 도를 펼칠 수 없으면 공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다. 그래서 노나라를 떠나왔다. 그런데 위나라의 실권자는 위 영공이 아닌 그의 아내 남자(南子)였다. 그런데 자신이 이전에 노나라에서 대사구 벼슬로 있었던 연봉까지 맞춰주는 파격적인 대우를 하며 빈객으로 모셔주었다. 이는 공자의 사상과 그의 존재를 높이 산 남자(南子)의 결정이었을 확률이 높다.

 

이는 다시 말해, 그녀와 정치적인 사상이, 그 지향이 일치하고 부합한다면 공자는 위나라에서 자신이 꿈꾸던 정치를 펼칠 수 있는 일생의 마지막 기회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당시의 이러한 상황들과 위나라가 그런 기미를 보이는 태자의 옹위를 하는 결정들이 공자에게 남자(南子)와의 만남을 통해 위나라에서 인(仁)의 정치를 펼칠 수 있는 여지를 본 것일 수 있다는 가정이 가능하다. 그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면, 사사로운 소문 따위를 두려워할 상황도 그럴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수천 년 전에 욱해서 스승의 맹세만으로 긴가민가 했을 자로에게 이 이야기를 전한다.

2018년 초, 현직 여 검사가 오래전 자신이 당한 성희롱에 대해 전면에 나서 인터뷰를 하면서 한국은 미투 열풍에 빠져들었다. 법비들이 룸살롱 여자들에게 하던 행동을 여자 검사들에게 했다는 것은 별로 놀랄 일도 아니고,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마치 한때 미국을 빨갱이 솎아내며 피바람이 불었던 매카시 열풍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물론 자신의 지위나 명예를 이용하여 몹쓸 짓을 한 이들은 많다.

하지만, 예컨대, 지금 유죄를 받고 감옥에 있는 전 충남도지사의 사건만 보더라도, 같은 여성인 그의 아내가 너무도 어이가 없어 "이게 불륜 사건일지언정 어떻게 성희롱 사건으로 둔갑할 수 있냐?"고 열변을 토했고 많은 중년 여성들이 함께 분노했던 사실을 우리는 기억한다.


매일 아침 <논어>를 읽고 공부하며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만, 법률과 상식의 차이가 클수록 그 사회가 썩은 정도가 심한 것이라고 보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남녀 간의 문제는 남녀만이 안다고 하지만, 객관적인 증거를 통해 남성에게 흠집을 내기 위한 보복성 미투, 돈을 뜯어내겠다는 협박성 미투는 그러한 시대의 흐름을 만나 신나게 활개를 쳤다.


남도의 한 학급에서는, 가르치는 아이들을 예쁘다고 쓰다듬고 사이가 좋았던 선생님을 자기네 기분이 나쁘게 했으니 한번 모함하자고 하여 학생들이 선생을 모함했고, 선생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극단적 결과를 맞게 되자, 학생들은 눈물로 그의 영전 앞에서 사과를 하는 사건이 있었다.


한편, 부산에서는 정작 자신이 여학생들에게 성희롱을 해놓고는 과대표를 시켜 다른 젊은 교수가 그런 일을 한 당사자라며 소문을 내라고 사주한 나이 든 교수도 있었다. 결국 그 젊은 교수는 자신이 살던 아파트 고층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고, 결혼도 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들의 명예라고 되찾아주겠다고 뛰어다니던 노모의 바람으로 진실을 한참 뒤에야 경찰의 수사를 통해 너무도 간단하게 밝혀졌고, 사주했던 교수는 처벌을 받았고, 대학원을 보장받으며 몹쓸 짓의 선두에 섰던 여자 과대표는 국립대 졸업 몇 달을 앞두고 대학에서는 퇴학당하고, 실형을 받아 감옥에 갔다. 만약 그가 죽지 않았더라면 벌금이나 집행유예로 끝날 일이었는데, 피해자가 그 무고로 죽었기 때문에 실형이 선고되었다고 법원은 밝혔다.


결혼도 하지 못하고 학생 때부터 미대의 특성상 교수들의 수족처럼 부려져 겨우 교수직을 얻고 조각가로서 꿈을 채 펴보지도 못한 그 아들이 남긴 메시지가 노모에게는 평생 짐이 될 것이다.


“저는 평소 제가 멘털 갑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을 막상 당하고 나니 도무지 견딜 수가 없네요. 어머니 죄송해요.”


내가 현재 밤 시간에 연재하고 있는 <대만에 사는 악녀>역시 동남아의 나라 같지도 않은 곳에서 우리나라 국민이 당한 말도 안 되는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너무도 많은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타이완은 특파원조차 파견하지 않는 나라급도 안 되는 곳이라며 기레기와 고발프로 피디들은 미끼만을 툭툭 따먹고 꼬리를 감췄다.

자살했던 부산 사립대의 젊은 조각가의 삶은, 죄를 지은 자들이 감옥에 가서 불과 몇 년 산다고 한들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사건을 말 그대로 남의 일처럼 그저 잊어버렸다.


정작 타이완에서 우리 국민이 그런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사실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한국인 커뮤니티에서 카더라식의 스캔들을 양산하고 자신이 마치 피해자와 아는 것처럼 떠드는 수많은 2,30대 무뇌아들이 떠들어 댔었다. 그들에게 진실을 묻고 취재하겠다고 연락이 가자, 그들은 모두 연락을 끊고, 심지어 잘못했다고 빌기까지 했다.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자신이 가고자 하는 일을 하고 그와 관련된 일을 할 때, 소문이나 스캔들은 충분히 생길 수 있다. 그런데 대개 그 스캔들은 멀찍이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가장 가깝거나 가깝다고 여겼던 이들이 만들어내는 무고가 많다. 만약 그 같잖은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고 승진한 법비의 의도대로 사회적 흐름이 흐르기 전에,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면, 부풀린 미투나 협박성 미투는 훨씬 더 줄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경찰도 검찰도 기레기들도 방송사도 진실을 궁금해하지도 않고 조사하지도 않는다. 자신들에게 어떤 그림이 나와야만 가장 이익이 되는가에만 집중한다. 자극적이어서 시청률을 바짝 올릴 수 있거나, 그것으로 스쿠프를 따내 자신이 승진할 수 있거나 사회적으로 관심이 집중되어 자신의 몸값을 올릴 수 있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여검사가 2018년 연초부터 자신의 폭탄을 제대로 터트려줄 것이라고 찜했던 방송사의 고발 프로그램의 피디가 타이완의 사건을 일주일간이나 검토하고 이건 정말 알려야 할 사건이라며 타이완으로 취재를 가겠다고 그의 농대 출신 데스크에게 허락을 요청했을 때, 그 데스크가 KILL을 하며 했다는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우리 회사에서 스쿠프로 사장이 직접 한 인터뷰가 대박 나면서 이 나라에 미투가 시작됐는데, 그 반대되는 무고 사례를 터트리면, 그것도 우리가 터트리면, 우리 회사의 얼굴이 뭐가 되겠냐?”


그는 그렇게 회사에 충성하여 데스크에서 더 승진하여 여검사와 인터뷰했던 자의 뒷자리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지금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수많은 자로(子路)야! 분노는 분노해야만 할 시기에, 정작 분노해야만 할 대상에게 해야 하는 것이란다.


가장 무서워해야 할 것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소문이 아니라, 네 양심이고, 널 늘 내려다보는 하늘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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