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사는 악녀 - 91

타이완 사람들이 한국인을 대하는 속내 1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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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먼딩의 까르푸 옆에 위치한 세무서를 먼저 찾아갔다. 박 교수에게는 두 번째 방문인 세무서였다. 본래 세무서는 아니었지만 시먼딩 세무 사무소 지부는 처음 방문하는 것이었다.


세무서는 악연이 있어 어느 정도 익숙했다. 정확히 말하면 세무서와의 악연이 아니라, 역시 외교대학교와의 문제였다.


타이완은 자신들이 중국과는 달리 자유주의 국가이며 미국의 자유주의 개방경제가 확실하게 선진화된 나라라고 우기고 있는 중이었다. 그중에서 세무서와 관련 업무를 알게 된 것은 대학에서 해임이 결정되고 난 이후, 잠시 일하러 기탁했던 한국 여행정보 콘텐츠 회사에서의 정보가 컸다. 여행정보나 기타 타이완에 대한 콘텐츠 정보를 기획하고 집필하던 박 교수는 새롭게 타이완을 찾는 워킹홀리데이 20대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그 회사의 취지였다. 그런데, 묘한 콘텐츠가 하나 발견되었다. 세금 환급. 박 교수는 외교대학교의 한국어학과에서 그 어떤 안내도 받지 못했던 내용이었다.


“세금 환급이라는 게 어떤 방식이죠?”

콘텐츠 회사 사장에게 물었다.

“두 가지 정도 있는데요. 기본적으로 1년 이상 일을 하게 되면 일괄적인 환급이 1년 뒤에 이루어져요. 저도 정확히 설명할 정도로는 잘 모르겠어요. 괜찮으시면 세무서가 여기서 멀지 않으니까 교수님이 취재도 할 겸 직접 가서 안내를 받아보시면 어떨까요?”

“그러네요. 얘기 나온 김에 지금 바로 다녀올게요.”

그렇게 처음 찾게 된 세무서였다. 세무서에서 한참을 묻고 물어 외국인 전용창구의 안내 과장을 만날 수 있었다.


“외국인에 대한 세금 환급제도가 지금 안내가 잘 되고 있는 건가요?”


여자는 어디에서 나왔는지 물으며 박 교수를 경계했다. 기자라고 하기도 뭐하고 해서 자신의 신분을 대학교수라고 실제로 밝히고 자신이 어떻게 세금을 환급받아야 할지 모른다고 안내를 받으러 왔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여자는 경계의 눈빛으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외교대학교면 국립대학교 중에서도 상당히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데, 그쪽에서 아무런 안내도 해주지 않던가요?”

“저는 전혀 들어 본 일이 없어서요.”

“이상하네요. 일단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국립대 교수님이시니까 교육 공무원 신분이시고요. 1년이 지나면 자신이 일했던 대학이나 회사를 통해서 서류를 확인받아서 그 확인서류를 근거로 세무서에 와서 세금 환급을 신청하셔야 합니다. 자녀가 있거나 가족이 많은 경우는 세금의 환급이 훨씬 더 많아지는 건 당연하구요.”

“한국에서도 그런 과정이 있기는 한데요. 그건 대개 개인이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이나 회사를 통해서 일괄적으로 이루어지는데요. 여긴 그렇지 않은가요?”


직접적인 질문에 그녀의 얼굴이 심하게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일그러졌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게 합니다. 당연히 회사나 대학의 행정 부서에서 그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녀의 표정이 왜 그런 미묘한 일그러진 것이었는지 박 교수는 사무실로 돌아와 외교대학교 행정부서에 연락을 해서야 알게 되었다. 외교부의 담당부서에서는 박 교수의 문의 전화를 받고서는 또 특유의 돌려치기로 주임을 찾고 과장을 찾아서야 연결이 되었다.


“저 한국어 학과 박 교수입니다.”

“네. 이미 해임되셔서 저희 쪽에 전화를 주실 이유가 없으셨을 텐데... 무슨 일로...?”

“방금 전화받았던 여자 직원한테도 설명하고 주임한테도 설명했는데요. 이미 알고서 전화 연결받은 거 아닌가요?”

“아, 네. 그렇긴 한데요. 세금 환급 건을 물으셨다고....”

“왜 나는 1년이 지난 다음에 세금 환급을 안내받지 못했던 거죠?”

“아, 그게, 저어,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서류를 받으러 오시겠어요? 저희가 세무서에 낼 서류를 준비해두겠습니다.”

“아니, 받으러 가긴 할 건데요. 왜 그걸 사전에 고지받지 못했느냐고 묻잖아요.”

“그건, 저는 정확하게 잘 모르겠구요. 안내가 나갔는데 못 받으신 건 아닌지.... 아니면...”

“일부러 공지를 안 한건가요? 다른 외국인 교수들에게도 그렇게 일처리를 하나요?”

“네? 아니, 그게 저어....”

“알겠습니다. 언제 서류를 받으러 가면 될까요?”

“저희가 지금부터 준비하면 이틀 뒤쯤이시면 괜찮으실까요?”


그렇게 전화를 끊고 지하철 동물원 역의 종점에 있는 버스를 갈아타고 외교대까지 가면서 이런 촌구석에 처박혀 1년이나 그 전쟁을 겪었구나 싶은 생각에 다시 울컥하고 속에서 뭔가가 올라왔다. 사무실에 가니, 모두 서류가 준비되었다며, 뭔가 더 추궁을 받을까 싶어 서류를 얼른 내밀며 눈만 깜빡거리며 왜 빨리 안 가냐는 표정으로 그를 계속 쳐다봤다. 여 직원의 뒤쪽에 사무실 공간에 앉아 있던 주임과 과장은 애써 다른 일로 바쁜 사람인 양 모니터 뒤로 머리를 박고서 박 교수의 시선을 피했다.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대학에서 모든 서류를 준비해서 일괄적으로 해주는 것이 맞았다. 그런데 외국인 교수나 외국인 연구원 등 1년을 일정으로 교환교수의 방식으로 오는 이들에게 대해서는 일부러 안내를 하지 않아 그들이 세금 환급을 받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 타이완의 시스템이었다. 그것은 구조적으로 1년의 기간을 일정으로 타이완을 찾는 연구원이나 교환교수의 경우는 1년이 지난 다음에 신청을 하고 그 이듬해 5월경에 통장에 지급을 받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1년만 체류하는 외국인들은 그것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와서 한 푼이 아쉬웠던 지방에서 왔던 여자 워킹홀리데이에 해당하는 이들은 특유의 독함을 발휘해서, 정보를 알아내고 알아내서 1년만 유효한 워킹홀리데이 비자 때문에 더 체류할 수 없을 경우에는, 아는 타이완 친구의 계좌로 돈을 받는 방식으로 신청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정말로 친절한 타이완인을 만나는 극히 드문 경우에는 회사에서 처리해주거나 대신 받아서 송금해주는 방식으로든 자신의 권리를 찾는 방식을 취했다.


그런데, 일반 회사원이나 업무상 일을 하는 이들은 물론이었지만, 대학은 조금 얘기가 달랐다. 외교대는 물론이고 타이완을 찾는 그 수많은 외국인 연구원이나 외국 국적의 교환교수들에게 1년 이상 체류를 허가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외국인 체류증 자체가 1년 단위로 갱신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1년만 체류하는 이들의 세금 환급분은 결코 적은 금액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외국인에게 돌아가는 환급분은 자신들의 주머니에서 나간다는 인식이 타이완에는 이미 완전하게 깔려 있었다.


그렇게 박 교수가 결론을 내린 데에는 다른 의미의 세금 환급이 있었다.


시먼딩의 까르푸를 필두로 중국 본토의 관광객들이 타이완을 관광이 금지되면서 타이완의 관광객 1위를 차지한 한국 관광객에게 그들이 말 그대로 세금 환급(Tax Refund)에 해당되는 업체들이 슬쩍 그 안내를 빼버리는 일이 발생하는 것을 매번 장을 볼 때마다 확인한 것이다. 시먼딩 까르푸는 타이완 까르푸에서 매출이 1위인 곳이었다. 그리고 그것의 매출 중에서 한국에서 배낭여행을 온 이들이 타이완의 물건을 여행 마지막 날이나 패키지여행에서도 대놓고 물건을 구매하는 곳으로 지정한 곳이었다. 집 앞이다 보니 매주 장을 보던 박 교수의 눈에 한국인들의 모습이나 한국어가 들리는 것은 이제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카운터에 있던 까르푸 직원들이 본래 카운터 앞에 붙여놓고 한국어로도 안내를 해야 하는 세금 환급 부분을 슬쩍 밑에 깔거나 감추는 것을 수시로 확인한 것이다. 고기류나 주류 등의 특정 품목을 제외하고는 3일 이내 출국하는 외국인이 구매한 물품들은 대개 세금 환급이 된다는 점에서 한국 관광객들이 구매한 물건 가격을 기준으로 적지 않은 퍼센티지(%)가 환급되어야 맞았고, 본래 프랑스 본사의 정책이 그렇게 되어 있는지, 정부에서 투명하게 하라고 계도했는지는 몰라도 한국어로도 그 내용이 설명되어 카운터에 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 안내 프린팅 전단은 한국인 패키지 관광객이 오거나 한국어가 웅성거리고 들릴 때가 되면 여지없이 카운터의 직원들에 의해서 감춰졌고, 그나마 인터넷의 정보를 짧은 영어와 바디랭귀지로 항의하는 드센 관광객이 나타나 문의하게 되면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이 슬그머니 꺼내며 똥 씹은 얼굴로 설명해주고 계산해주는 것을 매번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중국 본토가 그 나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가 국가로 인정받을 수 없는 국격이라고 박 교수는 생각했다. 실제로 외교대학교에서 한 해 세금 환급으로 받은 금액은 한 달치 정도의 월급으로 한국에서 말하는 13월의 월급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1년 약정으로 온 수많은 외국인들의 그 금액을 국고에 굳히는 것이 자신들의 이익이라고 여기며 아득바득 그렇게 안내하지 않는 국립대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박 교수는 나중에서야 확인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세무서에 납세 확인서와 관련 서류를 떼러 왔다고 하니 또 외국인 거류증을 확인한 직원이 이상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걸 어떤 목적으로 떼시는 거죠?”

“네?”

“어떤 목적으로 떼시는 거냐고요. 지금 요청하신 서류들은 대개 수입이 없다는 증명을 받아서 정부에 뭔가 요청하거나 지원사업에 제출하는 건데요.”

“네. 법률 부조 기금회라는 곳에서 이 서류들을 준비해오라고 해서요.”

“법률 부조 기금회요? 외국인이시잖아요?”

뚱뚱한 아줌마가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날카로운 소프라노 음성으로 되물었다.

“그런데요? 외국인은 법률 부조 기금회에 도움을 청할 수 없던가요?”

“네? 아니, 그게... 그래도 그건 우리나라 사람들을 먼저 도와주는 거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다 못 도와주는데... 한국 사람이...”


뭔가 직접 대놓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뭐라고 구시렁거리는지 모르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녀는 혼잣말인지 주문인지 싶은 말을 계속해서 떠들었다.


“그래서 서류 발급 거부하시는 건가요?”

“네? 아니에요. 여기 있습니다. 아마 그쪽에서 도움을 받기는 어려우실 거예요.”


뭐라고 한 마디 해줄까 싶었지만, 그런 썩어빠진 시체 같은 여자와 말을 섞는 것 자체가 역겹다는 생각에 얼른 서류를 챙겨 밖으로 나와, 법률 부조 기금회의 첫 번째 지회인 신베이 지회로 가는 버스를 올라탔다.

그녀의 예상이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는 불길한 예감은 계속 박 교수의 뇌리에 맴돌았다. 하지만 분명히 전화로 몇 번이나 확인했고, 외국인들에게 대해서도 도움을 준다고 확인했기 때문에 준비해온 서류들을 가지고 잘 설명하면 크게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도닥였다.

건물의 6층에 사무실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사무실에 들어섰다. 한국으로 치면 법률구조공단이어서 그런 것인지 대기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들의 면면이, 보호 1종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저소득 계층임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만한 행색의 나이가 많은 이들이 앉아 있었다. 자원봉사자라는 띠를 가슴에 두른 할머니가 박 교수에게 물었다.


“약속하신 시간이 어떻게 되시죠? 성함은요?”

“네. 아직 10분 남았는데요. 아, 여기 제 이름이 있네요. 이게 제 이름입니다.”

할머니 자원봉사자가 들고 있던 시간과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는 종이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아서 손가락으로 표시하고 일러주자 할머니는 조금 앉아서 기다리라며 사무실 안쪽으로 가서 시간에 맞게 온 사람들을 순서대로 각 방으로 안내를 했다.

원래 약속시간에서 10여분쯤 지났을 때, 이름이 불려 방으로 들어가니, 젊은 여자 직원이 혼자서 앉아 있었는데, 뒤에서 또각거리는 하이힐 걸음소리와 함께 명품백을 한쪽에 걸쳐맨 변호사로 보이는 여자가 박 교수의 등을 밀치듯 황급히 들어와 앉았다.


“죄송합니다. 앞에 재판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늦었습니다. 얼른 앉으시죠.”


자기가 정작 가장 늦게 와서는 이 자리에 앉아 그를 맞았다.

“자아, 어떤 사건이시죠?”

박 교수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옆의 여자 직원이 사전에 인터넷으로 등록했던 간단한 자료들을 정리해서 변호사에게 보여주었다.

“아, 성희롱 사건이시군요. 교수님 당사자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1심이 결과가 나왔다고 적혀 있네요? 판결문을 가지고 오셨나요?”

“네. 여기 있습니다.”

“네. 일단 좀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살펴보는 동안 간략하게 사건의 요지를 설명해주시면 들으면서 살펴보겠습니다.”

“네?”

“설명해보시라구요.”

박 교수는 판결문을 들춰보는 여자의 정수리를 보면 간략하게 그간 있었던 사건을 정리하되, 주로 왜 이 판결이 모순인지, 그리고 결정적인 증거가 뭐가 나왔으며, 특히 학교 측의 행정처리상 법률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설명했다.


“그런데 3가지를 모두 신청하셨어요.”

여자 직원이 변호사에게 귓속말이랍시고 말했지만, 박 교수에게도 또렷하게 들리게 설명했다.

“네? 3가지 건으로요?”

“맞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박 교수가 대답을 가로챘다.


“이곳에서는 조건만 부합한다면 민사든 형사든 행정재판이든 도움을 주신다고 들었습니다. 명백하게 증거까지 있는 경우는 더더욱 확실하게 도움을 주신다고 안내를 받았습니다. 지금 보여드린 대로 외교대의 한국어학과 교수들은 자신들이 참여하여 정원에 계산될 수 없음에도 버젓이 회의에 참석하여 정족수를 채우는 편법을 감행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제가 입은 피해에 대해서는 행정소송이 금방 결론이 나오게 되면 바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으로도 진행해야 한다고 1심 변호사에게 들었습니다.”

“1심 변호사요? 1심에 변호는 보자, 누가 했죠?”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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