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사는 악녀 - 92

타이완 사람들이 한국인을 대하는 속내 2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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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화라고...그런데 그게 문제가 되나요?”


얼떨결에 장 변호사의 이름을 댄 박 교수가 다시 되묻자, 그녀가 뭔가 원하던 것을 얻어낸 사람처럼 미소를 담뿍 담은 얼굴로 말했다.


“저희 단체에서는 자기가 변호사를 살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을 갖추신 분에게는 기본적으로 지원하지 않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따로 내지 않아도 아까 기본적인 서류로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증빙은 끝냈습니다.”

“변호사를 1심에서 사셨었던 거 아닌가요?”

“그때는 교수직에서 해임되지 않아 수입이 있었구요.”

“지금은요?”

“지금 앞에 행정소송을 위한 증거 서류 보여드리지 않았나요? 당신의 오른손 밑에 깔려 있는 해임 통지서 안 보이나요?”

“네? 이런 젠장!”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은 것에 놀라 입을 황급히 막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괜스레 할 말이 없어 해임 통지서와 왜 행정소송을 해야 하는지 간략하게 적은 다음 종이를 훑어보던 그녀가 말했다.


“저기, 잠시만요. 원래는 저희가 이렇게 사안이 들어오게 되면 무작위로 3명의 심사위원들이, 그러니까 물론 변호사들이구요. 심사를 해서 지원을 할지 말지 결정을 합니다.”

“네.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그 과정이 2주 정도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런데 이 건은 아무래도 긴급하게 항소를 결정하셔서 다퉈야 하는 건이고, 행정소송도....”

“이미 항소장 제출했습니다.”

“네?”


박 교수는 그녀의 서툰 것인지 억지스러운 것인지 늦게 사무실에 들어올 때부터 느꼈던 불편함에 더해 그녀가 지금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밀어내려고 핑계를 궁리하고 있다는 것을 온몸의 세포를 통해 감지할 수 있었다.


“항소장은 1심 변호사가 이미 제출을 한 상태이고, 항소 이유서는 따로 이후에 제출해도 된다고 해서 지금 이곳을 찾은 겁니다. 뭐 문제 될 게 더 있나요?”

“아, 아니요. 뭐 문제는 아니고... 1심에서 쟁점이 되었거나 확실하게 교수님이 그런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나요?”

“지금 방금 설명했는데 다시 할까요? 그리고 쟁점 사안은 당신의 왼손 아래쪽에 드린 문건의 두 번째 페이지에 있습니다만....”

“아, 네.”


우왕좌왕하는 그녀의 모습을 불안하게 보던 옆 자리의 젊은 직원이 그녀에게 시간을 벌어줄 의도였는지 박 교수에게 물었다.


“그러면 지금 외교대학교의 잘못된 행정처분에 대한 행정 소송하고 형사소송 2심에 별도로 대학을 대상으로 한 민사소송을 부탁하고 싶으신 거죠?”

박 교수가 그렇다고 대답하려고 하는데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여자 변호사가 외쳤다.

“어떻게 한 사람이 3건을 신청을 합니까, 그것도 한국인이면서?”

“네? 뭐라구요?”


박 교수도 그녀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대해 발끈하고 그녀를 치어다보며 외쳤다.


“외국인은, 아니, 한국인은 법률 부조 기금회의 지원대상이 아니란 말입니까?”


곁에서 지켜보면 젊은 여직원이 놀라서 벌떡 일어나며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닙니다. 현재 타이완에 외국인 거류증을 가지고 공식적으로 체류하고 있는 분은 대상이 되십니다. 변호사님. 여기서 왜 이러세요!”

“아니, 우리보다 밑에 있는 베트남이나 말레이시아도 아니고 우리가 왜 한국인을....”

젊은 직원이 참다못해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움켜쥐고서야 변호사는 말을 멈췄다. 아예 가릴 것도 없이 이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내뱉으며 본색을 드러낸 막장파 타이완의 본성 그대로였다.

“1심에서 실형에 해당하는 형까지 나왔는데, 이런다고 결과가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 심사를 하자는 겁니까? 시비를 거는 겁니까? 여기가 원래 이런 식으로 진행합니까?”


박 교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인상을 써보이자, 젊은 여직원이 놀라서 여자 변호사의 앞을 지나 박 교수를 만류하듯 가로막고 말했다.


“아니요. 오늘 변호사님이 이전 재판 때문에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으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자료는 저희가 충분히 검토하고 원래 정해진 시간 내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그만 돌아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거의 떠밀리다시피 해서 상담실을 나온 박 교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뭔가 감정적으로 싸운 것도 아니고, 바깥쪽에 개방되어 있는 사무실 공간 쪽에서 터진 공간이라 그런지 아까 여자 변호사의 목소리가 다 터져 들렸다.


“아니! 말이 돼? 한국인이 버젓이 그것도 3건이나 되는 사안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대를 상태로 행정소송이란 민사소송을 하겠다고 하는데 그걸 우리가 지원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미친 거 아니야? 한국인이라고 한국인. 그 뉴스에 나왔던 외교대 성희롱 사건!”

“그래? 정말? 그 한국인 교수가 우리 사무실에 왔었어? 어디 어디? 누구야?”


그들은 체면이나 양심이라던가, 자신들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상관없이 설마 그들의 중국어를 박 교수가 못 알아들을 거라는 생각 따위는 없이 개념 없는 말들을 떠들어대며 사무실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달려 들어가 모두 뒤집어엎고 싶었지만, 그저 발길을 돌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4일이 되어 이번엔 다른 지난번 신베이 지회가 아닌 다른 지회의 약속이 잡힌 날이었다. 지회는 지부처럼 운영이 되어 사실 동시에 여러 지회에 지원을 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다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조금 정상적인 변호사를 만날 것을 기대하며 사무실에 들어섰다. 버스에서 내려 한참 시장 골목을 걸어 그곳을 도착했다.

순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자니 이름과 번호를 불러 상담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남자 변호사가 젊은 여자 직원과 함께 앉아 있었다. 이미 한번 신베이 지회를 다녀와서 수순 같은 것은 다 안다고 말할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전보다는 조금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듯했다.


“서류 준비해오신 거 있으시면 전부 주시겠어요?”

여직원이 먼저 서류를 달라고 했고, 3군데 지회를 위해 3부를 준비했던 서류를 다시 그녀에게 건넸다.

“자아, 3건을 지원하셨네요?”

변호사로 보이는 남자가 서류를 뒤적이며 물었다.

“네.”

“아, 성희롱 사건이군요. 외교대학교. 저도 얘기는 좀 들어서 알고 있는 건이네요. 이게 1심이 판결이 났던가요? 아 여기 있네요. 1심 판결문. 잘 준비해오셨네요. 제가 좀 읽어보겠습니다. 으음...”

남자는 나름 차분하게 빨간 볼펜을 한 손가락으로 돌려가며 종이를 빠른 속도로 넘겨 핵심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는 다음 장에 박 교수가 정리한 1심 판결문의 모순과 왜 무죄인지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를 분석한 한 장 짜리 문서를 읽으며 빨간 펜으로 밑줄과 동그라미를 쳐가며 꼼꼼하게 읽었다.

“잘 정리하셨네요. 이건 냄새가 좀 심하게 나는 건이네요.”

종이를 덮으며 그가 말했다.

“냄새요?”


박 교수가 되물었다.


“이 여자 판사 타이완 형사사건 쪽에서는 워낙 유명한 여자거든요. 그런데, 그 악질 여자 입법위원까지 끼고, 쓰레기 언론 출신 늙은이까지 아주 고약하게 엮이셨네요.”

마치 오랫동안 이 사건을 조사하고 관계했던 사람처럼 남자 변호사는 핵심을 짚어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아마 우리 기금회에서 지원을 받으시긴 어려우실 겁니다.”

“네? 그건 또 왜죠?”


박 교수는 이제 놀랄 것도 없는 표정으로 바로 그 이유를 물었다.


“원래 이런 안내를 해드리면 안 되게 되어 있는데, 제가 하도 타이완 사람으로 쪽팔리기도 하고, 그렇다고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처지도 못되고 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이런 사안이 들어오면 심사를 합니다, 변호사로 구성된 3명의 위원이죠.”

“네. 그 과정은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한 명은 직접 사안을 상담했던 변호사가 들어갑니다. 이 경우에는 바로 저죠.”

“네.”

“저는 당연히 이 건에 대해서 도와드려야 한다고 표를 들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두 명의 변호사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3명의 심사위원이 모두 교수님의 케이스에 지원을 해야 한다고 결정을 하더라도 지회의 최종 승인이 나야 합니다. 그쪽에서 틀어버리면 심사 자체를 접을 수 있게 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내부 규정으로는 그렇게 되면 안 되는데,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괜한 짓을 한 겁니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법조계에서는 이 건에 대해서 이미 작년에 사건이 터져서 기소가 되었다고 했을 때 말들이 다 돌아서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이 건은 사안이 어렵거나 쟁점이 많은 사건이라서 까다로운 것이 전혀 아닙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죠?”


박 교수는 이미 그의 행간을 읽긴 했으나 확인 차원에서 조심스레 물었다.


“이미 검찰과 법원에서도 이 사건이 어느 정도 무고로 인해 정치적인 이슈로 활용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언론에서도 그렇기 때문에 교수님의 밀착취재라던가 증거를 돌리지 않은 거구요. 만약 정말로 한국인 교수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대에 와서 그런 성희롱을 했다면 그리고 그 여학생들이 올린 글처럼 자극적인 행위들이 학교에서 있었다면 아마 일주일, 아니 한 달 내내 CCTV 화면을 틀어서 시청률을 올리고 한국을 욕하고 난리를 쳤을 겁니다. 그런데 기자들이 왜 후속기사를 내지 못하고 기자회견을 계속하겠다고 설치는 그들에게 몰려가지 않고 인터넷 매체 정도만 중계했는지 타이완의 법조계나 언론계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럼 이런 식으로 권력에 의해서 혹은 그들의 의도대로 재판이 멋대로 휘둘러질 정도로 이 나라의 법조계가 개판이라는 뜻인가요?”

남자 변호사가 박 교수의 자극적인 표현에 반응한 사람처럼 안경을 손가락으로 다시 들어 올리며 노려보듯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할 말이 없지만, 지금 교수님이 생각하셔야 할 부분은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뒤집을까이지 이 나라의 법조계나 나라 사정이 개판이라는 것을 공격하시고자 함이 아니지 않을까요?”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이 사건에 관심이 있는 친구가 있었는데, 제가 연락처를 드릴 테니 그 친구를 한번 만나보세요. 원래 이쪽에서 사건을 알선한다던가 그런 행위를 해서는 안되는데, 이건 그런 차원에서 홍보를 하거나 알선하는 것이 아니니까 이 친구에게 한번 연락하고 찾아가 보세요. 제 명함도 드릴 테니 제가 소개했다고 하면 관심 있어할 겁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이 친구 역시 기금회에서 활동하는 소속 변호사입니다. 그러니 아마 사안에 한해서 이 항소건을 맡게 되면 수임료를 주지 않고 승소하게 되면 후불을 하거나 아니면 나중에 손해배상 민사를 이 친구에게 수임하는 조건 등으로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남자 변호사의 설명을 들으며 옆에 있던 여직원이 뭔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긴 했지만, 남자 변호사는 고개를 돌려, 눈을 찡끗해보이며 모른 척하라는 듯한 싸인을 지어 보였다.


“그러면 행정소송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지금 주신 이 변호사가 모두 관심이 있어하지는 않을 텐데요?”


박 교수가 명함을 받아 챙기며 다시 물었다.


“지금은 선택과 집중을 할 때입니다. 물론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중요하고, 행정소송이 워낙 명백한 사안이기도 하고 바로 뒤집을 수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런데요?”

“그건 정상적인 케이스일 때이고, 교수님도 아시겠지만, 당신은 한국인이고, 지금 이 사안에는 선거를 앞둔 여자 입법위원과 이 나라에서 얼굴을 팔아가며 먹고사는 똥파리 같은 전직 언론인이라는 자가 붙어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 그들의 압력으로 인한 것인지 이익을 함께 하는 것인지 몰라도 이 나라를 대표하는 국립대에서 대놓고 불법적인 사안들로 당신의 인권을 뭉갰습니다. 만약 행정소송이 정식으로 청구되어 뒤집히게 된다면 입법위원의 지원사격까지 했던 교육부나 타이완 행정부가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이게 타이완 정부와 하는 싸움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생각해야 하는 겁니까?”

“대상이 한국이고, 당신이 한국인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나마 당신이 명문대 출신의 대학교수이라는 점이 양날의 검처럼 된 겁니다. 만약 일반 한국 관광객이었다면 벌써 경찰 단계에서 협박을 해서 돈을 뜯어냈을 겁니다. 그런 일들이 십수 년 전부터 이곳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어요. 그런데, 교수님이 어떤 이유인지 복합적인 일이 꼬였는지, 이 여자애한테 잘못 걸리셔서 유명세를 치르게 된 겁니다. 만약 교수님의 신분이 아니었다면, 여자 입법위원도 자신의 유명세를 다지는 계기로 사용할 마음이 없었을 테니까요. 일단 행정소송과 민사소송은 가능성이 없긴 하지만 제가 올려보기는 하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형사사건도 말이 안 되는 판결이 나온 부분에 대해서는 올려서 심사를 요청하겠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뒤바뀌거나 지원이 결정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점에는 크게 변동이 없을 겁니다.”


남자 변호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내부 사정에 대한 명확한 브리핑을 박 교수에게 해주었다. 박 교수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받아 든 명함 두 장을 다시 손에 쥐고 전의를 다졌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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