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마지막 아이들의 학교 학기가 끝나고 방학을 할 즈음이 될 때, 아내가 박 교수에게 세 사람의 비행기 표를 예약했노라 날짜를 말해줬다. 그리고는 말없이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2월이 되면 벌써 대만에 온 가족이 부푼 꿈을 안고 도착한 지 2년이 되는 날이었다. 꽉 채운 2년은 아니었지만 1월 말에 떠나게 되면, 이제 아내와 아이들은 다시는 타이완에 올 일이 없었다. 박 교수가 가족과 함께 한국을 가기 위한 방법은 오직 하나, 항소를 포기하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벌금을 모두 내는 것이었다.
박 교수의 아내는 그러길 원했다. 하지만 남편의 성정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 그것을 강권할 수는 없었다. 그저 자신이 포기하는 것으로 이 지긋지긋한 상황을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다. 남편을 혼자서 남겨두고 아이들과 셋이서만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도 알았지만, 이것저것 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타이완에 와서 몇 달 되지 않아 뱃속의 아기를 잃어야만 했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이곳의 수술실에 누워 뱃속의 아기를 떠나보내야만 했으며, 악녀에게 치욕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남편이 바닥까지 추락하는 모습을 봐야만 했다. 아이들의 학교를 오가면서도 한국 아이들이 없는 지역적 특성상 여기저기서 쑤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쳐다보는 이들만 있어도 남편의 일을 모두 알고서 대놓고 욕하는 것만 같다는 환청에 시달려야만 했다. 핑계라는 것을 알았지만, 아이들이 더 이상 상처 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갈 때도 원래 다니던 학교로 돌아가지 않겠다며 친정이 있는 쪽으로 거처를 정하고 학교를 알아봤다. 이제 남편을 두고서라도 셋이서 서울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찾아야만 한다고 그녀는 짐을 싸면서 내내 자신을 설득했다.
박 교수는 명함에 적혀 있던 옌(顔) 변호사와 통화를 할 수 없었다. 매번 재판 때문에 법원에 있다고 하고 핸드폰 통화가 여의치 않아 두 번이나 서로 통화가 어긋났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고 나서야 새벽 즈음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타이완에서 핸드폰으로 박 교수에게 전화를 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였다.
“죄송합니다. 요 며칠 정신이 없어서요. 늘 이렇게 새벽에만 혼자서 사무실에 앉아서 서류 작업을 할 때가 가장 여유롭습니다. 너무 늦게 전화를 드렸죠? 옌 변호사라고 합니다. 박 교수님 맞으시죠?”
한꺼번에 두서없이 말하는 그의 말에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말씀은 전해 들었습니다. 법률 부조 기금회에 신청하셨다구요? 아, 그 선배 변호사가 저랑 아주 친한 사람이거든요. 일단 부탁은 다시 해뒀습니다. 그쪽에서 허가가 떨어지면 그쪽에서 돈을 받으면 되니까요. 희망 변호사로 제 이름을 써서 넣어달라고 했습니다. 아! 중국어 불편하지 않으시죠?”
한참을 이야기하다 말고 자신의 중국어를 알아듣냐고 묻는 것도 황당했지만, 젊고 패기 있고 나름 목소리에 자신감이 잔뜩 묻어 있는 것이 나쁜 느낌이 아니었다.
“네. 의사소통하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그나저나 전화가 아니라 한번 만나서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 그렇지요. 스케줄이, 어디 보자. 다음 주 화요일에 괜찮으세요? 저희 사무실 위치는 아시나요? 시내가 아니라서 조금 멀 수도 있는데, 제가 메시지로 다시 한번 주소 넣어드릴게요. 화요일 오후 6시 어떠세요? 저와 제 파트너 변호사랑 셋이서 뵙는 걸로 하죠. 관련 자료들은 모두 챙겨 오시거나 제 이메일 주소 넣어드릴 테니까 그쪽으로 관련 자료 보내주시면 미리 검토하니 서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알겠습니다. 이메일 주소 보내주시면 그쪽으로 정리된 자료와 1심 판결문까지 20분 안에 보내드리도록 하지요.”
“알겠습니다. 바로바로 준비해주시고 아주 좋네요. 그러면 다음 주 화요일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그와 연락을 끊었다.
‘아차! 화요일!’
박 교수가 전화를 끊으면서 아차 싶어 스마트폰의 스케줄을 열어봤다. 화요일, 아내와 아이들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다행히 낮에 뜨는 비행기라 시간은 괜찮았지만, 괜히 약속을 겹치게 잡았나 심란했다. 얼른 노트북을 열어 정리된 자료 폴더에서 그의 이메일 주소로 파일들을 옮겨 넣었다.
화요일 아침. 봉고차를 불렀다. 이것저것 짐을 줄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이들짐부터 아내의 짐까지 자신의 짐을 제외하고서도 한 사람이 여행용 트렁크 2개씩 부치고, 작은 트렁크를 하나씩 끄는 것으로 거의 작은 원룸 짐 정도의 규모가 되었다. 아내는 굳이 이렇게 짐을 모두 챙겨갈 필요가 있느냐고 타박했지만, 박 교수는 대한항공 본사의 지인 찬스를 통해 부치는 수화물을 본래 규정의 2배로 허가받았다. 그래서 간단한 짐을 끌고 시먼딩에서 지하철을 타고 송산공항을 가는 것은 처음부터 포기하고 봉고차를 불러 타오 위엔 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몇 번 아이들과 아내가 무비자 규정 때문에 여행이나 한국에 다녀올 때 타오 위엔 공항을 배웅하고 오는 날이면, 돌아오는 공항버스에서 이유 없는 무기력감에 혼자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그렇게 싫을 수 없었다.
“아빠가 같이 못 가서 미안해. 그래도, 먼저 가서 학교도 정하고 여기서 못 탔던 스키도 타러 다니고 겨울방학 내내 즐겁게 보내.”
“네.”
“여기는 안 추웠지만, 한국은 도착하면 추울 테니까 옷 단단히 입고, 괜히 가자마자 감기 걸리면 안 돼. 알겠지?”
“네. 근데 아빠는 언제 와요?”
“응? 아빠도 곧 정리하고 따라갈 거야.”
“알겠어요.”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아들의 표정이 영 밝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아무런 감정이 보이지 않는 얼굴이었다. 박 교수는 말없이 원래 불러두었던 개인 승합차로 짐을 실어 넣었다. 대형 트렁크만 6개에 소형 트렁크 3개까지 9개나 되는 짐에 아이들은 책가방을 각자 멨고 아내는 큰 쇼울더 백을 멘 채였다. 타오위엔으로 가는 동안 기사가 친한 척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고, 중국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아들은 그와 최근에 개봉했던 아쿠아맨의 이야기를 신나게 하고 있었다.
처음 타이완을 올 때, ‘니하오’ 한 마디도 못하고 화장실을 뭐라고 하는지 몰라 당황했다던 아들과 딸이 한국인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중국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박 교수는 위안을 삼았다. 그것을 위안으로 삼자고 생각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내와 아이들이 보지 못하는 틈에 눈물을 얼른 훔쳤다.
‘이런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
애써 창밖을 보며 다른 생각을 하며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오지 않을 정도로 이를 악물고 버티다 보니 막히지 않은 시간대라 바로 공항에 도착했다.
“엄마 말 잘 듣고,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하고.”
“네.”
딸을 한 번 꼭 안고, 아들을 다시 꼭 안고, 아내를 보자 아내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는 것이 보였다. 모른척하고 박 교수는 아내를 가볍게 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다 괜찮아질 거야. 먼저 가서 여기 일 다 잊고 편하게 지내.”
“밥 잘 챙겨 먹고요. 우리 없다고 또 돈 너무 아낀다고 지내지 말구요. 어차피 집세가 몇 백 나가는데, 몇 푼 아껴봐야 의미도 없어요. 알았죠? 제발.”
“그래. 그럴게.”
그렇게 아내와 아이들이 공항 심사대 안쪽으로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박 교수는 굳은 얼굴로 그들을 배웅했다. 그리고 가족의 모습이 완전히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나서 뒤로 돌아 얼른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져 흘렀다. 다행히 비행시간이 겹치거나 다른 여행객들이 없어 그가 얼굴을 적당히 가려 눈물을 닦아내는 것으로 그는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다.
공항버스를 타고 다시 시내로 돌아오는 한 시간여 동안 박 교수는 자신의 짧지만 아주 길었던 2년간을 다시 복기했다. 시먼딩 쪽으로 끝까지 와서 내리는 것보다 옌 변호사의 사무실 쪽이 멀었기 때문에 중간에 내려 시내버스를 타고 그쪽으로 조금 일찍 가는 편을 선택했는데, 정작 그렇게 일찍 도착한 것도 아니었다. 30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조금은 날은 변두리 건물 3층에 변호사 사무실이라고 적힌 명판을 보고서 올라갔다.
“어떻게 오셨죠?”
비서로 보이는 여자 직원이 인터폰으로 문을 열어주며 물었다. 타이완은 워낙 돌발행동을 벌이는 의뢰인들이나 가해자들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변호사 사무실이 안에서 따로 열어줘야 문을 열 수 있도록 도어록을 한다는 점은 장 변호사에게 들었던 사실이긴 했지만, 그간 타이완의 상위 랭커 변호사 사무실부터 저 아래 랭커의 변호사 사무실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그렇게 철통 같은 경비를 하는 것도 우습기 그지없었다.
“아, 박 교수님이신가요?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오셨네요? 옌 변호사님이 법원에서 지금 오시는 중이라서요. 재판이 끝나고 의뢰인과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나 보다고 하시더라구요. 이쪽에 들어오셔서 기다리세요.”
비서의 안내를 받아 혼자서 앉아 있자니 노크 소리가 들리고 어려 보이는 정장의 여자가 한 명 들어왔다. 말이 정장이긴 했지만, 머리도 좀 헝클어져 있고, 옷도 오래 앉아 있었는지 구겨져 있는 그대로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파트너 변호사 정 여립이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옌 변호사님이 오시는 중이라고 하셔서 일단 제가 먼저 자료 검토한 것도 그렇고 여쭤볼 것도 있고 해서 먼저 들어왔습니다. 옌 변호사님도 저희들이 먼저 회의를 시작해도 좋다고 하셔서요.”
“네. 궁금한 게 있으시면 물어보세요.”
정 변호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서른을 조금 넘어 보이는 젊은 여자 변호사는 박 교수가 보낸 자료로 보이는 프린트 자료들을 모두 꺼내고 자신의 다이어리를 펼쳐 보였다. 형광펜과 페이지를 체크하는 포스트잍이 잔뜩 색색깔로 붙어 있는 것이 일주일이 채 안 되는 시간에 꽤나 면밀히 검토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장 변호사 쪽의 분위기와는 또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제가 궁금한 것부터 여쭤보는 방식으로 해도 괜찮을까요?”
생각했던 것보다 꼴통스러운 표정으로 정 변호사가 훅하고 들어왔다.
“네. 얼마든지요.”
“중국어 잘하시네. 한국사람인지 모르겠네.”
혼자서 구시렁거리는 것 같더니 장 변호사가 자신의 만년필 뚜껑을 열어 체크했던 곳에 동그라미를 치며 질문을 던져왔다.
“일단, 문제의 랴오츠리엔이라는 여학생이 사랑을 고백했다는 거잖아요?”
“네. 106년 5월 24일 밤부터 25일 새벽의 일이죠.”
“네. 그런데 왜 갑자기 그녀가 그렇게 변했는지가 저는 이해가 좀 안 가서요.”
“음. 간단하게 말하자면, 26일에 우리 집에서 파티를 했고, 그 파티에 다른 여학생들이 2명 있었어요. 남학생도 1명 있었고. 그런데, 다른 여학생들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뭔가 했던 적이 없거든요. 그 여학생은 나이는 많았지만, 휴학에 전과에 학년이 2학년이었기 때문에, 다른 여학생은 3학년과 4학년이었고, 남학생도 3학년이라서 그 여학생과 교류가 전혀 없던 사이였거든요. 게다가 우리 집에 찾아온 것은 처음이라서 혼자서 집사람과 함께 쓰는 침실이니 욕실을 혼자서 멋대로 들어가서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그날 다른 여학생들에게 똑같이 친절하게 하는 것을 보고 눈이 확 뒤집히는 것을 정면에서 본 기억이 나요. 당시에는 왜 그렇게까지 확 돌아버리는 아이처럼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갔었는데, 실제로 그날 파티를 마치고 배웅하는데, 그날 왔던 여 T(여자 동성애자)였던 학생에게 들러붙어서 갑자기 친한 척을 하면서 끌고 다니는 모습이 느낌이 이상했다고 저와 함께 있던 아내도 느꼈습니다.”
“음,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사랑 고백하고 나서 이틀 만에, 아니 정확히는 하루지요. 그럴 수 있는 거죠?”
“제가 보내드린 라인의 대화는 정확하게 다 흐름을 이해하셨나요?”
“아! 맞아요. 라인 대화. 정말 대단하던데요. 이거 마요흥사건보다 더 심하게 당일은 물론이고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당한 애들이라고 볼 수 없는 명백한 증거인데 왜 재판부에서 원용하지 않았던 거죠?”
“판결문 검토하셨죠?”
“네.”
“죄송하지만 제가 질문을 좀 할게요. 정 변호사는 그 판결문이 정상적으로 보이던가요?”
“아, 그건....”
거침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그녀가 잠시 주춤하고 대답을 머뭇거렸다.
“사실 아예 없는 케이스는 아니에요. 어느 한쪽에서 재판부를 매수하거나 그런 일이 우리나라의 법조계에서는 일반화되어 있기도 하거든요. 물론 모두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이 여자 판사가 또 형사 법정에서는 그런 쪽으로 워낙 유명한 여자라서요.”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원래 그런 편파적인 판결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구요. 법률신문의 기사도 봤습니다.”
“아, 아시는구나. 하여간 그것도 그거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건데, 이 여학생들이 무고에 대한 것을 치밀하게 준비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만약 이렇게 꾸며나가려면 장기간 성희롱을 당했다가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하루 교수님이 돌변했다는 식으로 갔어야 하는데, 반대 증거가 이렇게 많이 쌓여 있는데, 너무 억지스럽게 장기간 성희롱을 당했다는 식으로 끌고 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