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사는 악녀 - 95

새로운 싸움의 시작을 위해 숨을 고르다.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603


“네. 사실 1심에서 증인 심문도 그렇고 대략의 나올만한 사안들은 모두 나왔고, 저쪽의 고소인 말고는 결정적인 증인도 없다는 사실이 우리 쪽에서 판단할 때는 굉장히 유리한 쪽으로 이끌 수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러면 통상 2심은 얼마나 걸리나요?”


“아마 6개월이 안 걸릴 겁니다. 물론 어떻게 진행하느냐에 따라 1년이 넘을 수도 있기는 한데, 지금 검찰 측에서 새롭게 제시한 증거가 나올 것 같지도 않고, 여러 정황을 보건대, 결국 우리 쪽에서 반대 증인 심문을 청구하는 것 정도가 될 텐데, 그러면 1심보다 더 길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1심에서도 아까 정 변호사가 말했던 것처럼 반대 증거가 그렇게 많았어도 전혀 반영되지 않았잖아요.”


“뭐. 아니라고는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그래서 아까 2심의 주심판사가 누가 되는지가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이건 제 예상인데, 1심 판결문의 묘한 특징과 저쪽에서 하는 행태가 굉장히 이례적인 면이 있어요.”


“이례적이요?”


“네. 기소할 때야, 말도 안 되게 여러 성희롱 행위가 있다고 나눌 수 있어요. 예컨대 여기 표에 나온 것처럼 엉덩이 만졌다는 걸 따로 표기하고 등을 만질 걸 따로 표기하는 식으로 횟수를 늘리는 방식인 거죠.”


“그런데요?”


“그런데, 판사가 이걸 하나하나의 별개의 범죄행위로 보고 한 행위당 벌점을 매기듯이 형량을 3개월씩 넣은 거예요.”


“그게 이상하다는 건 왜죠?”


“그렇게 하는 경우가 없거든요. 예컨대, 절도의 경우, 빵을 훔치고 우유를 훔친 것에 대해 절도면 절도지, 빵을 훔친 건 2개월형, 우유를 훔친 건 따로 2개월형, 이런 식으로 판결을 내린 것과 똑같은 거예요. 양형기준도 한 사람의 형사재판에서 동일 범죄행위가 아닌 경우에는 형량을 합산하지만 동일 범죄행위를 기간별로 나눠 기소했다고 그걸 그렇게 하진 않아요. 하다못해 타이베이 고속도로에서 출발해서 타이난까지 가면서 속도위반을 했을 때, 여러 번 단속이 되더라도 연속된 시간일 경우에는 동일 범죄행위라고 해서 처음에 찍은 것만을 대표 처벌하는 것과 비슷한 거죠.”


“그런 게 있었군요. 그런데 왜 여자 판사는 그런 짓을 한 거죠?”


“징역기간이나 벌금을 최대한 많이 책정해서 만들기 위한 거죠. 이런 경우는 초법적인 경우를 통해 언론플레이를 하려는 경우 아주 이례적으로 국민들의 호응을 얻어내기 위한 정치적인 힘이 뒤에서 작용될 때 사용하는 수법입니다.”


“자기가 돈을 챙기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짓을 하죠?”


박 교수가 처음 듣는 이야기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래서 아까 그쪽 고소인과 그 뒤에 있는 이들의 꿍꿍이가 이상하게 보인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그쪽에서는 아마 곧 민사를 청구할 거예요.”

“민사요?”

“네. 일종의 손해배상이죠. 형사에서 유죄가 나왔으니 그것 때문에 피해보상청구소송을 하겠다고 하는 거죠. 형사에서 합의금을 뜯어내려고 했는데 받아내지 못했잖아요. 그러니까 돈을 위해서라면 그런 식으로라도 해야 한다는 거죠.”

“아직 2심도 끝나지 않았는데요?”

“맞습니다. 그래서 이상한 부분이 생겼다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1심의 벌금을 빨리 내고 교수님이 한국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강력하게 푸시하려는 의도 같아 보입니다.”

“왜요?”

“계속 2심이 진행될 경우, 그들에게 최악은, 재수가 없어 공정하면서도, 입법위원의 뒷돈에 움직이지 않는 몇 안 되는 판사 중에 한 명이 사건을 맡게 되는 날에는, 그동안 그들이 벌인 쇼가 거짓이고 무고라는 것이 백일하에 밝혀지는 도박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아!”


옌 변호사의 설명과 추리는 나름 논리적이었다. 박 교수가 스승과의 이야기를 통해 들었던 설명과 비슷한 시각을 그가 접근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면 옌 변호사께서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죠?”

“으음,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건 법리의 싸움이 아니라 누가 2심의 주심이 되는지가 관건인 싸움이라 이쪽에서 전략을 세우기가 참 애매한 사건입니다. 타이완의 법조계는, 아니 거의 모든 사안들이 뒤에 보이지 않는 콘체른들의 거래와 인맥으로 결정이 되다 보니 창피한 이야기이지만 저 역시 어머니와 대부(代父)로 구성된 장로들의 의견을 받아 그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해줘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저 역시 지금 이 고통스러운 싸움을 어떻게 뒤집을 수 있을지에 대해 조금 구체적인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특히 민사에 대해서 예상하신다면 어떻게 대처하는 게 맞을지도...”

“기본적으로 소송과 관련된 일들은 그 일정이 나오게 되는 순간 합니다. 물론 이 소송은 항소심이기 때문에 우리가 기본적으로 한번 진 것을 뒤집어야 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불리한 거죠. 그렇게 때문에 기본적인 전략이나 사실관계 그리고 특히 항소심 이유서에 적을 전략적인 뼈대는 지금부터 준비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더 저들의 움직임과 가장 큰 누가 항소심의 주심이 될지에 대해서 등도 그렇구요.”

“그렇군요. 그런데 이건 좀 다른 질문이긴 한데, 출국금지에 대한 것은 언제쯤 해소가 됩니까?”

“형사사건의 경우 완전히 소송이 끝나거나 벌금을 모두 납부하지 않는 이상 출국금지는 계속 지속될 겁니다. 그건 워낙 기본적인 사안이라, 특히 외국인의 경우에 한해서 타이완 법원과 검찰에서 계속 엄중하게 관리를 할 것이고 이민서와 공조를 토해서 그 부분을 유지할 겁니다. 이미 기소 때부터 출국금지가 되어 있기 때문에 검찰이나 법원에서 그것을 일부러 해제 명령을 하지 않는 이상, 그 부분은 기대하실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한국에 가실 일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아니요. 그건 아니지만, 마치 철창 없는 감옥에 갇혀 있는 것 같아서요. 후우!”

“조만간 재판부가 결정이 되는 대로 다시 회의를 하는 것으로 하고, 오늘은 무료 변론에 계약서를 서명하시죠. 저희들 입장에서는 빨리 법원에 선임계를 내는 게 움직이기 편하니까요. 1심 관련 자료들도 변호사 선임계를 내야 열람 신청을 수 있구요.”

“알겠습니다. 계약하시죠.”


박 교수에게 더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사인을 하고 다음 회의를 기약하며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여러 가지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지금은 얼른 집으로 돌아가 한국에 힘겹게 짐을 바리바리 들고 들어갔을 아이들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아이들과 아내가 있던 공간을 혼자서 들어서는 것은 이전에 비자 때문에 세 사람이 여행을 갔거나 한국을 다녀오던 때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아내에게서 짐 정리하고 정신이 없어 영상통화로 이야기할 정신이 없다며 오늘은 일단 쉬고 내일 전화하자는 카톡 메시지를 받고서 저녁식사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침대에 누워 잠들지 못한 채로 해가 뜰 때까지 천장을 응시하며 아침을 맞았다. 한국과의 통화를 위해 충전 중이던 인터넷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네? 공항이요?”


팔순을 바라보시는 박 교수의 노모였다.


“지금 인천 공항으로 가는 길이다.”

“왜요, 갑자기?”


박 교수가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에미가 애들이랑 들어왔는데, 어떻게 애비 혼자 거기 두니? 아버지랑 내가 김치하고 먹을 것도 좀 챙겼고, 갈 테니까 오늘 바쁘면 공항에 안 나와도 되긴 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거길 찾아갈 줄을 모르고, 중국어도 못하니까...”

“아휴! 왜 상의도 없이 연락이라도 하고 천천히 오시지, 뭐가 그렇게 급하셔서 그러셨어요.”

“보나 마나 간다고 하면 애비가 오지 말라고 할 게 뻔해서 아버지랑 상의 끝에 그냥 그렇게 결정했다.”

“알겠어요. 몇 시, 어디 비행기로 오시는 거예요?”

“응. 대한항공이고.... 시간이 어디 보자...”

전화를 끊고 집을 대강 치우기 시작했다. 어제 한국으로 들어간 가족들의 짐이 많이 빠지고 모두 널브러져 있어 정신이 사나워, 보나 마나 어머니가 오시게 되면 박 교수를 위해 이리저리 치우신다고 하실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버리고 정리할 것들을 박스와 비닐에 넣고, 싱크대부터 욕실까지 락스로 깨끗하게 청소하며 내내 움직이자 몸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곧 설이 찾아오는 1월 말이었음에도 타이베이의 날씨는 영상의 날씨로 조금만 움직여도 후덥지근하지는 마찬가지였다.

공항에서 막 한국에서 도착한 관광객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큰 트렁크를 끌며 박 교수의 어머니와 그 뒤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아버지의 모습이 박 교수의 눈에 들어왔다.


“어서들 오세요. 힘드셨죠?”

“아이구, 혼자서 이게 무슨 고생이냐!”


박 교수의 어머니가 짐을 내팽개치며 아들을 왈칵 안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버지 오셨어요?”

“그래. 일찍 나왔니?”

“아니에요.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우리야 머 비행기 타고 여행 오듯이 온 건데. 네가 고생이지, 이런 타지에서.”

“고생은요, 무슨. 뭐 좋은 곳이라고 일부러 여길 오세요. 기분 좋게 놀러 오시는 것도 아니고.”

“뭐 비행기 타면 몇 시간 걸리지도 않는데, 여기서 사는 집이 머니?”


짐을 잔뜻 챙겨 끌고 들고 움직이는 어머니에게 가방을 받아 박 교수가 앞장을 섰다.


“여기서 버스 타면 한 시간이면 시내로 가요. 집은 시내 한가운데에 있어요. 시내로 가서 식사라도 하셔야죠. 기내식이 부실해서 식사도 못하셨을 텐데, 아침일찍부터 나오셨잖아요.”

“그래. 일단 가자.”


팔순을 바라보시는 부모님이 자신 때문에 이곳을 찾아오셨다는 것 자체가 박 교수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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