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사는 악녀 - 96

재판이 끝나고 발견된 결정적 증거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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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로 들어가는 버스에 앉아 내내 노모는 아들의 손을 꼬옥 잡고 만지작만지작했다. 아들은 민망했지만, 그 마음을 알기에 뭐라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뜨거워지는 눈시울에 눈물을 떨궈낼 수도 없어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점심을 무엇을 드시면 좋겠느냐고 말을 돌렸다.


“아니야 아니야. 김치하고 깍두기 하고 애비 좋아하는 오이소박이랑 다 챙겨 와서 이렇게 따뜻한 날씨에 밖에 오래 있으면 안 돼. 얼른 들어가서 밥만 해서 같이 먹자.”

“그러면 집이 시내 한복판이니까 짐만 부리고 같이 나와서 맛있는 거 드시러 가세요.”


그렇게 짐을 끌고 집으로 들어와 주상복합 최상층 로얄라운지 집으로 부모님과 함께 설을 보내는 2주간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짐을 부리고 노모는 냉장고 정리에서부터 주방의 물건들을 정리하는 것에 시간을 보냈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앉으라고 하고 조용히 물으셨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게냐? 에미에게 물어도 애비에게 들으라고만 하니...”

“이거 계시는 동안 찬찬히 읽어 보세요. 사건을 이후에 어떻게 사용하게 될지 몰라서 소설이 될지 드라마가 될지 터트리려고 꼼꼼하게 하나하나 정리한 거예요.”


박 교수는 그간 피로 쓴 기록들을 아버지에게 조심스레 내밀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내미는 두꺼운 문건을 받아 들고서는 책상에 앉아 가만히 돋보기를 꺼내 들었다.

부모님이 계시는 동안, 박 교수는 관광까지는 아니더라도 워낙 좁은 타이베이이니 이곳저곳 모시고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자고 강권했지만, 부모님은 단호하셨다.


“놀러 온 것 아니다. 니 엄마가 불안해서 도무지 한국에 있지를 못하니 온다고 해서 그렇다고 혼자서 보내기가 그래서 내가 온 거고. 어디를 놀러 가고 무슨 맛있는 것을 먹는다고 그런 말을 하느냐!”

“그래도 그건...”

“됐다. 차분하게 함께 지내고 엄마가 너 보고 같이 지내고 싶다고 했으니 그걸로 됐다.”

“그러지 마시고, 여기 지하에 탁구장이나 운동시설 있으니까 내려가서 운동도 하시고, 주말에는 2층에 극장 시설도 거주민은 그냥 사용하면 되니까 어머니랑 같이 내려가서 보시고 그러세요.”

“극장?”


노모가 청소를 하다가 반갑게 물어오셨다.

박 교수의 아버지가 고층 밑으로 보이는 통유리 앞의 책상에 앉아 가만히 돋보기를 접고서 발아래로 보이는, 손주들이 다녔다는 라오송 소학교의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한국에서 모두가 부러워하던 대학의 교수에 굳이 동남아의 나라 같지도 않은 곳에 왜 가냐고 했을 때도 아들은 웃으며 자녀들에게 더 넓은 세계를 더 늦기 전에 경험시켜주고 싶다고, 가족이 떨어져서 지내는 것은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선히 대답하고 길을 떠났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받던 월급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박봉에 잘 지낸다고 매일 저녁 전화가 오더니 추석 즈음에 이상한 소문이 들리더니 청천벽력 그 나라의 검찰에 기소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잘못 들었지 싶었다.

박 교수의 입장에서는 그저 감추기만 하다가 다른 사람이나 매체를 통해 접하셨을 때 충격이 더 크실 거라 생각해서 기소 소식이 한국의 뉴스에 언급되었다고 했을 때 바로 전화를 드려 간단히 자초지종을 아버지에게 설명드렸던 터였다. 워낙 공직에만 계셨던 분인지라 길게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박 교수는 느낄 수 있었다. 효도는 못할지언정, 더 대단한 자리를 찾는다거나 더 많이 버는 길을 택하지는 못하더라도 이런 꼴을 보여드리는 것이 자신이 진실게임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이 드신 부모님에게 얼마나 큰 불효를 하고 있다는 것인지.


“소형 극장인데, 한국의 옛날 동시 상영관 사이즈 정도는 돼요. 입주민들만 보는 공간이라서 거의 사람들이 없어요, 이 건물이 여기서는 가장 높고 비싼 건물이라 타이완에서도 돈이 많은 전직 공무원이나 군인 같은 늙은이들이나 술집 여자애들이나 외국인 회사에서 회사 건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까 실제로 일단 서민들은 거의 살지 않아요. 2층에 레스토랑도 있긴 한데, 맛도 없고 사람들이 많이 않아서 제대로 운영이 안되니까 거긴 별루구요. 여름에는 여기 꼭대기 층에 야외 수영장도 운영해요. 작년 여름에 애들이 한창 뜨거울 때는 잘 놀았어요.”

“그렇구나. 애비가 주말에 데리고 가면 같이 가보자, 극장.

애써 해맑게 웃어 보이는 오랜만에 보는 노모를 보며 박 교수는 자꾸만 맘이 아려왔다.

“오늘은 피곤하실 테니까 일찍 주무세요. 그리고 인터넷으로 한국 TV 나오게 태블릿을 맞춰뒀으니까 편하게 보세요. 충전은 거기 그대로 꽂아서 하면 되니까요.”

“그래. 애비도 일찍 자라. 오늘 괜히 공항까지 오느라고 고생했다.”

그렇게 부모님이 오신 첫날이 흘러갔다.

다음날 주상복합 주민들에게 연동이 되어 있는 앱에 아침부터 알림 메시지를 울렸다.


- 우편물이 로비에 도착했습니다.


‘우편물이 올 게 없는데? 재판도 끝나서.’

“저 잠깐 1층에 우편물 좀 받으러 다녀올게요.”

밤새였는지 새벽부터였는지 아버지는 책상에 앉아 벌써 문건의 절반 이상을 읽고 계셨고, 어머니는 연신 지저분한 대리석 타일 바닥을 닦고 계셨다.

로비에 가서 늘 눈인사를 하는 프런트의 직원에게 인사를 건네고 우편물을 찾으러 왔다고 하니 안쪽으로 다시 들어갔던 여직원이 편지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여기에 서명 좀 해주세요. 이게 등기라서 서명을 저희가 해서 보내줘야 하거든요.”

“네. 그런데 이게 어디서... 응?”

타이베이 법원이라고 적혀 있는 봉투였다. 일단 사인을 해주고 꼭대기층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얼른 봉투를 뜯어보았다.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았다.


- 민사 소송 안내장


주영희의 변호사 이름으로 악녀 랴오츠리엔과 B녀로 불리던 천 위지에의 이름으로 민사소송이 청구되었다고 하는 소장이 들어있었다. 내용이야 뻔했고 관건은 손해배상 소송이었으니 각자 40만 대만 달러를 요구한다고 적혀 있었다. 금액도 어이가 없었지만, 스승이나 옌 변호사가 예상했던 수순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밟아 간다는 것이 가장 어이가 없었다. 그들에게 예상 밖의 움직임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일단 의견에 대한 서류를 작성해서 2주 안에 대응할지에 대한 여부를 서류로 접수하라고 적혀 있었다. 바로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옌 변호사에게 보냈고 옌 변호사는 전처럼 그 다음 날 새벽에 답변이 왔다.

옌 변호사: 간략하게 저희에게 주셨던 자료대로 무고의 증거라고 해서 제출하시면 법원에서 준비기일을 잡아서 알려줄 겁니다.

박 교수 : 항소심이 진행 중인데 민사가 진행되기는 어렵지 않은 건가요?

옌 변호사: 일단 그렇긴 한데, 지난번 회의 때 말씀드렸던 것처럼 그쪽에서는 압박의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거고, 손해 볼 것이 없으니까요. 일단 내용 간단히 정리해서 보내주시면 법원에 내는 양식에 맞춰서 제가 수정해서 만들어드릴게요. 그러면 그대로 제출만 하시면 됩니다.

박 교수 : 알겠습니다.

심란해서 어차피 잠을 못 이루던 박 교수는 바로 책상에 불을 켜고 부모님이 깨시지 않게 조심스럽게 노트북을 열어 사안을 정리하기 시작하고 개략적인 답변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걸 이번에 공개하자.”


박 교수가 프린트되어 있던 서류뭉치에서 한 가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이번에 재판이 끝나고 나서야 열람이 해제된 검찰 측에서 공개를 거부했던 자료들에서 정말 어이없게 발견된 악녀가 최초로 학교 측에 제출한 진술서였다. 그 진술서가 핵심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에는 정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평범해 보이는 그 자필 진술서에는 성희롱을 당한 장소에, ‘엘리베이터’와 ‘강의실’이라고 적혀 있던 것이다. 처음 그것을 발견했을 때의 허탈감과 전기충격을 받는 듯하면서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을 박 교수는 그 서류를 다시 만져도 느낄 수 있었다.


그 서류를 검찰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서류가 공개되어 탄핵될 경우, 모든 검찰의 수사와 기소가 억지였고 거짓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박 교수는 잘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해, 페이스북에 남학생을 뒤에서 조종해서 폭로한 글에는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느끼한 성희롱 행위가 3류 성애소설처럼 묘사가 되어 있었는데, 연구대루 엘리베이터가 계속 고장이었다가 박 교수가 타이완에 부임해 오기 한 달 전에 최신 CCTV로 교체되었다는 사실을 악녀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직접 자필로 기술한 진술서에 자기가 성희롱을 당한 장소가 ‘엘리베이터’와 ‘강의실’이라고 기재한 것이 명백하게 검찰 측이 쥐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자료는 당연히 성평회의 조사위원회에 제출된 것이라고 적혀 있었으니 최초에 그 자료를 받았던 것은 박 교수를 성희롱범이라고 벼랑 끝으로 밀지 못해 안달이던 그 세 명의 성평회 조사위원들의 손에 들려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박 교수가 엘리베이터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남자 위원장이 그렇게 당황하며 그 이야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말라고 했던 것임을 그 서류를 확인하는 순간 모두 알 수 있었다. 그저 심정만으로 악녀가 무고를 한다고 그들도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은 무고가 확실하다는 증거를 손에 쥐고 있으면서 최대한 박 교수와 장 변호사 측에 그 자료가 넘어가서 재판이 다 뒤집어지게 하는 꼴을 최대한 막았고, 검찰도 성평회 조사보고서를 원용하면서도 그 자료는 쏙 빼고 감췄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심지어 박 교수의 주장이 있었음에도 여자 판사는 그 내용과 서류를 증거 목록에 없는 것처럼 하고 감추는데 동의한 것이었다.

박 교수는 그 자료를 이번 민사 답변서에서 공개하여 역으로 그들을 압박하는 방법으로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을 쥐고 터트리지 않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1. 원고의 소송이 기각해주시기 바랍니다.

2. 소송비용은 원고의 부담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피고는 법률대리인이 없어 직접 초안을 쓰고 관련 서류와 증거를 제출합니다.

형사 재판 과정에서 본 민사를 제기한 원고 두 명이 무고했다고 판단되는 명백한 무고의 증거들이 너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편파적인 형사 1심 법관은 이러한 무고의 증거들을 묵인했고, 그러한 이유로 현재 항소를 한 상태입니다. 항소심이 아직 열리지도 않아 준비 중이니 항소심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시기를 요청드립니다.

그러기 위해 앞서 언급했던 무고의 명백한 증거라고 하는 것들을 답변서에 설명하고 제출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무고의 증거가 되는지 안되는지 보시고 현명한 판사께서 판단해주시기를 요청드리는 바랍니다.

1. A녀에 대한 무고의 증거

106년 6월 5일에 원고 A녀가 직접 작성한 진술서와 남학생을 이용했던 페이스북의 내용에 의하면, 성희롱이 일어난 장소는 ‘승강기 안’과 ‘교실’이라고 기술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 장소 모두 동영상 보관기간 1년 이상의 메모리를 가지고 있는 최신형 CCTV가 설치된 공간입니다. 만약 정말로 그런 성희롱 행위가 있었다면 원고 측에서는 너무도 손쉽게 증거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외교대학교 성평회 조사가 시작되기 전 피고인이 CCTV를 결정적인 무고의 증거로 채택해 달라고 학교 측에 요청하자, 성평회의 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처음에 진술했던 페이스북의 내용이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성평회 조사위원장은 조사과정에서 직접 피고인에게 피해 여학생을 위한 허위진술까지 하는 촌극이 벌어졌습니다. 그는 “교수 연구실이 아닌 장소는 결코 피해 장소로 특정되지 않았다”라고 허위진술을 하면서까지 여학생의 거짓말을 돕고 진실을 은폐했습니다. 이 진실은 두 가지 사실을 실증하였습니다. 하나는 성평회의 조사가 전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고 조작되었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나중에 경찰, 검찰관과 법관까지 최초 진술서의 무고 증거를 알면서도 진실을 은폐하는 데 동의했다는 점입니다.

2. B녀에 대한 무고의 증거

원고 B녀 역시 형사 재판 중에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자신을 피해자라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106년 6월 1일 피고의 연구실을 방문하여 “더 이상 성희롱 문제로 연구실에 오지 않겠다.”라고 선언하고 휴대전화로 피고와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였고 그 대화 내용을 형사법정에 증거로 제출한 바 있습니다. 그 내용에서 피고는 직접적으로 B녀에게 “내가 너나 다른 학생들에게 이상한 행동이나 무례한 행동을 했거나 무슨 일을 강요했냐?”라고 물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답을 회피하거나 그렇지 않았다고 대답한 부분이 녹취록에 작성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증거를 만들겠다고 몰래 녹음까지 시도한 사람이 정작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묻는 사람에게 제대로 답변을 못하거나 그렇지 않았다고 대답할 정도라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자신이 그렇게 조작한 증거를 결정적인 증거라며 자신이 직접 모두 번역하여 형사법정에 증거로 제출하였습니다. 이 부분들은 판사가 직접 증거를 열람할 수 있는 형사법정의 증거들이니 따로 별첨 하지는 않겠습니다.

부디 이 황당한 사건에 대해 명확하게 판단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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