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에게 내색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부모님이 박 교수의 마음을 모르실 리 없었다. 그렇게 부모님과 박 교수는 서로의 마음을 읽고 있었기에 특별한 일이 없는 듯 조용히 2주간의 일상을 보냈다. 그것이 가족이었다. 그간의 두꺼운 기록들을 모두 읽은 아버지는 아들에게 특별히 뭐라 말을 전하는 대신 문건의 마지막 장에 손편지 글을 써서 남겼다. 2주가 지나고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 문건을 따로 챙겨서 볼 일이 없었기에, 박 교수는 그 편지를, 부모님을 공항에 배웅하고 돌아와 한참 있다가 발견하였다.
공항을 향하는 버스에서도 내내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도착했을 때와 똑같이 만지작만지작 거리며, 함께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아쉬움을 손끝으로 전했다. 엄청나게 먼 이역만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었고, 서로 왕래를 할 수 없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수입을 끊어버리고, 출금 금지를 시키고, 가족들의 비자를 취소시켜 철저하게 혼자 버틸 수 없게 하는 것들 모두가 고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시간들이었다. 박 교수의 아내가 언젠가 그에게 말했던 것처럼, 한창 일을 하고 무언가를 이룰 나이에 시간과 능력과 영혼을 가두는 것에 악녀와 주영희는 절반의 성공을 이미 이룬 터였다.
“어떻게 또 이렇게 우리만 가니?”
어머니가 출국 심사장에서 끝내 눈시울이 뜨거워져 아들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보이셨다.
“괜찮아요. 다 잘될 거예요. 주말에 다 설명드렸잖아요. 그러니까 돌아가서 마음 편히 계세요.”
“그래. 애 더 힘들게 하지 말고 어서 들어갑시다. 당신이 이러는 게 애한테는 더 힘들 게 하는 거니까.”
“쓸데없는 소리.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그래도 영 아니다 싶으면 그냥 똥 밟는 경험했다 생각하고 벌금 그까짓 거 내버리고 들어오거라. 더 몸 상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판단이 들거든 말이다.”
“예. 조심해 가세요. 얼른 어머니도 들어가세요.”
억지로 웃으며 부모님을 배웅했지만, 정작 부모님의 모습이 출국 심사장의 뿌연 유리 안쪽으로 사라질 때까지 박 교수는 망부석처럼 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온 몸에 힘이 빠졌다. 자신이 혼자서 힘들고 싸우는 것까지는 하겠지만, 부모님이 자식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시는 것만큼은 자식의 입장해서 못할 짓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감해야만 했다. 슬프고 무력하다는 간단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색깔을 알 수 없는 분노가 수시로 온몸을 감싸는 통증으로 찾아왔다.
버스에서 내려 막 시먼딩의 까르푸 뒷골목으로 들어서는 이상한 오토바이의 소리가 뒤에서 기계가 터질 듯이 요란하게 울렸다. 돌아보는 순간, 얼굴이 보이지 않게 헬멧을 쓴 오토바이가 정면으로 박 교수를 덮쳤다. 가까스로 옆으로 튀어 오르듯 피하던 박 교수를 뒤로 하고 오토바이가 그대로 다른 집의 벽에 쾅하는 소리를 내며 박았다. 중심을 잃고 옆으로 쓰러진 박 교수가 소리쳤다.
“무슨 짓이야? 너 정신이 있어?”
튕겨나가듯 바닥에 나뒹군 헬맷을 쓴 건장한 체구의 운전자는 주춤거리며 일어나 사고 소리에 놀라 나온 노인들을 마주하고 얼른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소리 지르며 다가서는 박 교수의 팔을 뿌리치며 얼굴을 돌리지도 않은 채 깨진 파편을 뒤로한 채 그대로 도망쳤다.
“야! 거기 안서!”
“저거 저거 도망간다~!”
요란한 사고 소리에 밖으로 나왔던 늙은이들이 오토바이를 보며 손가락질만 하고 소리를 칠 동안 박 교수는 다리가 삐었는지 뛰어나가려고 하다가 절뚝거리며 멈춰 섰다. 타이완에 와서 처음 있는 사고였다. 횡단보도의 사고나 차량이 많이 움직일 때의 사고는 많이 있다고 들었지만, 차량도 거의 없는 뒷골목에서 다짜고짜 사람을 향해 달려드는 차나 오토바이가 있다는 뉴스는 본 적이 없었다. 정신이 없어 절뚝거리며 집에 돌아와 파스를 붙이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상의를 해야겠다 싶어 옌변을 떠올렸지만, 그는 낮에는 도저히 통화가 어려운 상태라고 하였으니 스승밖에 없었다.
박 교수: 선생님. 바쁘십니까?
발검무적: 아니. 무슨 일이 있었나?
박 교수: 오늘 부모님이 한국에 돌아가셨습니다.
발검무적: 그래. 배웅은 잘 해드렸고?
박 교수: 네. 연락드린 것은 다름이 아니고, 부모님을 배웅해드리고 돌아오던 길에 집 앞에서 사고가 있었습니다.
발검무적: 사고? 갑자기 무슨 사고?
박 교수: 오토바이가 갑자기 저를 향해 덮쳐오는 사고였습니다.
발검무적: 자네를? 갑자기? 다치지는 않았고?
박 교수: 네. 다리만 조금 삐끗하고 다친 곳은 없습니다.
발검무적: 다행이구나. 그런데 어쩌다 그런 사고가? 혹시...
박 교수: 예. 저도 그 점이 마음에 걸려 상의드리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발검무적: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놈들이다. 전에 카페에 간략하게 메모 남겼다만, 1심의 결과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나왔는데, 자네가 어떤 미동도 없이 계속해서 진실을 밝히겠다고 바로 항소심을 제기한 것이 오히려 그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일 게다. 민사를 청구하면서까지 압박을 했는데도 그닥 별로 반응이 없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이 배수진을 치고 싸우겠다고 하니 그들이 쓸 수가 별로 없다고 느끼고 초조해진 나머지, 충분히 그런 짓을 할 수도 있는 것들이다. 앞으로 밖으로 나가거나 누가 드나들지 않는지 신중하게 체크할 필요가 있겠구나.
박 교수: 예. 그러려고 합니다. 그런데, 민사도 그렇고 항소심도 그렇고 저 역시 뭔가 확정할 수 없는 상황인지라 답답합니다.
발검무적: 린치를 가하는 것보다 더 심하게 자네를 괴롭히는 것이 무력하게 묶어두는 시간 공격이라는 것을 그들이 알고서 그러는 것인지, 그에 더해 어차피 급하게 처리하여 자신들이 자충수를 둘 필요가 없다고 여기니 그렇게 할 예정인지는 몰라도 그들은 결코 바로바로 일처리를 하려 들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마음의 준비도 그렇고 장기전으로 갈 생각을 자네도 해야 할 것이다.
박 교수: 그것이 지금 현재로서는 가장 힘듭니다. 제가 이 쪽에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학교 쪽에 계속 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것도 점점 불투명해지는 것 같아서요.
발검무적: 지금은 일단 자네가 건강하게 지내며 힘이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혹여 경제적으로는 괜찮은 건가? 괜찮다면 계좌를 알려줄 수 없겠나?
박 교수: 아닙니다, 선생님까지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발검무적: 아니다. 이럴수록 곳간이 차 있어야 마음도 덜 흔들리고 그러는 거다.
박 교수: 정말 괜찮습니다. 부모님도 돈을 주고 가셔서 당분간은 지낼 만큼은 있습니다. 저 혼자 지내는데 집값 말고는 크게 들어가는 돈도 없구요.
발검무적: 그래. 일단 오늘 사고는 경찰에 신고를 하고 도대체 그 녀석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를 파악할 필요는 있어 보이는구나.
박 교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얼른 근처 파출소에 가서 조서 접수하도록 하겠습니다.
발검무적: 그래. 언제든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박 교수: 예. 알겠습니다. 심려 끼쳤습니다. 조만간 또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채팅을 마치고 박 교수는 절뚝거리며 근처 파출소를 찾았다.
“무슨 일로 오셨...어? 지난번 외교대 교수님이시네?”
파출소에 앉아 있던 경찰이 박 교수를 알아보며 인사를 했다. 지난번에 주영희의 짓이 너무도 뻔한 찌라시 살포 사건 때 고소장을 접수하러 왔을 때 들러 만났던 그 경찰이었다.
“오랜만이네요. 오늘도 사건을 좀 신고하러 왔는데요.”
“네. 누가 또 찌라시 같은 것을 뿌렸나요? 다리는 또 왜 그러세요? 일단 여기 좀 앉으세요.”
늘 그렇지만, 타이완 사람들은 아무런 이권을 보이지 않았을 때는 너무도 나이스 하는구나,라고 박 교수는 생각했다. 사실이었다. 그들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길을 물을 때나 한류 드라마나 아이돌을 이야기할 때 너무도 친 한류적인 성향을 드러냈다. 그러나 본질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는 순간 너무도 쉽게 그들의 속내를 드러내고 본색을 드러내버리는 가벼움을 보여주는 것이 참으로 신기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경찰을 보면서 또 들었다.
“고소하려는 것이 아니라서 따로 고소장은 이번엔 안 가져왔구요. 오늘 사고가 있었어요.”
“사고요?”
“네. 바로 이 뒷골목에서 오토바이가 저를 향해 달려드는 사고가 있었어요.”
“아! 아까 신고받았었던 그 건인가 보네요. 오토바이 운전자가 바로 도주했다고 하던데, 그거 맞나요?”
“네. 맞습니다. 제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저를 보고 달려들다가 제가 피하니까 벽에 박고 오토바이 운전자가 그대로 도주해버렸습니다.”
“으음.”
“근처에 CCTV도 많잖아요. 바로 잡을 수 있지 않나요?”
의자까지 권하며 나이스 한 척을 하던 경찰이 지난번 고소장을 접수하던 모습으로 살짝 바뀌어서는 대답 대신에 잠시 생각에 빠진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박 교수는 이제 그들이 이 묘한 표정을 지을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아주 잘 안다. 그들은 재고 있는 거다, 자신들에게 어떤 것이 가장 유리한 상황인지, 그리고 어떻게 이 상황을 가장 무리 없이 뭉갤 수 있는지까지 수 읽기를 하는 것이다. 신중한 표정으로 아무 말이 없던 그가 입을 열었다.
“이게 말이죠, 교수님. 교통사고가 이 시먼딩에서만 하루에 몇 차례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우리 복잡하게 가지 말고 결론만 이야기합시다.”
“네?”
“교통사고가 났어요. 사람이 죽거나 하지 않았으면 조사를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크게 다칠 뻔했어요. 그리고 골목 나가는 길마다 온통 CCTV가 있어요. 그런데 그 오토바이 사고자를 찾을 수가 없어요?”
“저는 찾을 수 없다고 아직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이전까지 지어 보이던 나이스 한 평온함을 지운 얼굴로 뻘겋게 달아올라 언성을 높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들어봅시다. 말씀하시지요.”
“네. 우리가 찾을 수 없고, 잡을 수 없다는 게 아니라, 지금 보세요. 시먼딩에 그렇게 수많은 사고가 일어나는 것만도 우리가 출동해서 처리하기에 정신이 없어요. 그런데 지금 교수님이 당하셨다고, 물론 이게 당하셨다고 말하기도 좀 애매하기도 한데, 오토바이가 지 혼자서 벽을 박고 누군가 다치거나 죽은 사고가 아니잖아요. 그저 벽만 박고 재산상의 피해가 발생한 것도 아닌데, 우리 경찰력이 다시 그것을 사고로 접수해서 그 사람을 잡는다고 한들, 속도를 과하게 낸 것도 아니고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도 아닌데, 그걸 잡겠다고 하는 것도 저희 입장에서는 굉장히 곤란하다는 거죠.”
“그러면 내가 치어서 다쳤으면 확실하게 수사를 했겠네요?”
“그거야.... 그렇지요.”
“보시다시피 지금 그걸 피하려고 하다가 내가 이렇게 절뚝거리며 다쳤단 말이에요. 이게 그 사고 때문이 아니라고 하는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직접적인 그 사고로 인해서 다치셨다고 보기에도 애매해서....”
“원래 타이완 경찰이 수준이 이렇습니까?”
“아이, 또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타이완 경찰이 어때서요? 한국보다 훨씬 더 치안력도 뛰어나고 업무처리 능력도 뛰어나다고 평가합니다.”
“그래요? 그래서 이 사고 오토바이 운전자를 잡지 않으시겠다는 거죠?”
“이걸 사건으로 접수하기가... 그렇다는 말씀이죠. 사실, 아시는 것처럼 여기 뒷골목이 창녀들도 공공연하게 많고, 마약에 취해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정신 나간 것들도 많아서 저희도 힘들어 죽겠습니다. 좀 양해해주십시오.”
“왜 그 양해를 나에게 구합니까?”
“도와드릴 수 없어서 죄송합니다.”
경찰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박 교수에게도 일어나라는 식으로 제스처를 취했다.
“후우! 정말 어이가 없네요. 알겠습니다.”
박 교수는 절뚝거리고 밖으로 나오며 이제 습관적으로 좌우로 움직이는 오토바이나 차량을 살폈다. 아까의 경험이 이미 학습되어 온몸에 세포들이 쭈뼛거리며 반응하는 듯했다.
집으로 돌아와 1층 로비에 다가가 리셉션리스트들과 경비에게 물었다.
“여기는 24시간 CCTV가 돌고 경비가 있죠?”
“네? 네. 그렇죠. 뭐 필요하신 게 있으세요?”
“아니에요. 관리비가 비싼 게 다 이유가 있는 거겠죠? 여기에 이상한 잡상인들이나 여기 거주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게 하죠?”
“2층에 식당이 있으니까 들어오긴 하는데요. 일단 엘리베이터에 키로 누르지 않으면 올라갈 수 없기 때문에 특히나 지금 살고 계신 최상층 라운지층은 못 올라갑니다.”
“알겠습니다.”
찜찜한 마음은 그지없었지만, 새삼스럽게 뭐가 달라질 것도 없다는 생각에 집으로 올라가 가만히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남기신 편지를 발견한 것은 그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