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을 정리하고 따로 프린터 한 것들을 정리하려고 하는데, 익숙한 손글씨가 문건의 마지막 장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필체였다. 평소 살갑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길게 대화를 나누지 않은 전형적인 가부장적 시대의 아버지가 부러 남기신 손편지 같은 메모였다. 아마도 문건을 읽으시면서 의문이 나거나 한 것을 정리한 것이려니 싶어 찬찬히 내용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힘들었겠구나.
아버지는 네가 일일이 말하지 않아 이렇게까지 많은 말도 안 되는 일을 당하며 고생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차라리 처음 그런 일이 터졌을 때 알았더라면 그냥 한국에 빨리 들어오라고 했을 텐데 괜히 이렇게 오랫동안 네가 이런 고생을 하게 내버려 둔 것 같다는 생각을 아버지는 했다.
물론 최고의 대학에서 박사까지 딴 너라면 단순히 고집을 피우기 위해 이런 싸움을 시작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네가 정리한 기록을 읽으면서도 아버지는 이해할 수 없는, 도저히 이치에 닿지 않는 일들마다 몇 번은 다시 읽으면서 이해를 해보려고 했지만 네가 적은 글처럼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증명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똑같이 몇 번이나 물었다. 물론 네 엄마에게는 뭐라 설명할 수도 없었지만, 굳이 나중에도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생각하여 이렇게 몇 자 적는 것으로 대신한다.
아버지가 뭐라고 적는다고 하여 네 그간의 고생이, 그리고 앞으로 네가 이겨나갈 수 있을지 모를 이 타지에서의 고생에 무슨 도움이 되겠나 싶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아들아. 너는 태어났을 때부터 내내 부모의 자랑이었고, 단 한 번도 우리 속을 썩이지 않고 네가 아버지가 되어 손주들을 우리에게 보여줄 때까지도 자랑스럽지 않은 적이 없는 아들이었다. 네가 공부를 하다 몸이 아팠을 때도 내색하지 않고 약을 먹어가면서 네 논문까지 다 마쳐서 인쇄된 박사논문을 가져왔을 때도, 그리고 그 논문을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가서 먼저 올리고 인사를 드리자고 했을 때도, 너는 언제나 자랑스러운 우리 아들이었고,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왜 우리 아들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하늘을 탓하기도 해 보았지만 의미가 없는 짓이라는 것도 잘 안다. 지금 아버지가 현직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너에게 직접적인 힘이 되어줄 수 없는 것이 더 아버지를 무기력하게 만드는구나.
세상을 살다 보면, 언제나 진실이 승리하지는 않더구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쉽게 현실과 타협하고 이 굴욕적인 상황에 네가 하지도 않은 일을 인정하고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것을 선택하라고 말할 수도 없구나. 속 깊은 너는 분명히 부모인 우리를 생각할 테고 나중에라도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을 네 아이들까지 생각하여 지금 억지로 억지로 버티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네가 혼자서 설을 지내면서 요로결석으로 응급실에 실려갔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네 엄마가 알게 되었을 때, 네 엄마가 많이 울었다. 그래서 이번 설에, 에미와 아이들이 함께 있어주지 못한다는 이야기에 억지로라도 한번 가봐야겠다고 하여 이렇게 네 엄마를 데리고 왔었다.
괜히 너에게 부담만 주고 있다가 가는구나.
언제 이 싸움이 끝날지 어떻게 끝날지는 모르지만 내 자랑스러운 아들이라면 내 현명하고 똑똑한 아들이라면 반드시 최선의 답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 아버지는 믿는다.
언제든 힘들면 너에게 아직 부모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려무나.
그리고 언제든 연락하거라. 건강이 아직까지는 허락되니 언제고 네게 달려오마.
늘 건강 챙기는 것 잊지 말고, 너도 이제 가장이니 네 가정을 잘 챙기려무나.
한 장밖에 안 되는 빼곡히 적은 편지를 읽다가 글씨가 잘 안 보이고 여름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하기 직전의 굵은 빗줄기처럼 툭툭 눈물이 종이 위로 떨어졌다. 다 읽고 났을 즈음에 박 교수는 무너져 내리듯 주저앉아 꺼이꺼이 소리를 내고 울었다. 아무도 없는 최상층 라운지에 그의 서러운 울음이 퍼져 울렸다.
삔 다리가 다 나았을 즈음, 민사의 조정일이 잡혔다는 등기우편이 도착했다. 재판의 준비기일이라고 해서 이전에 제출했던 의견서를 토대로 재판을 어떤 과정으로 진행할지 그리고 서로 간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라고 했다. 기다리는 한 달의 기간 동안 민사건에 대해 새로 도움을 청한다고 ‘법률 부조 기금회’에 다시 지원서류를 냈지만, 이전에 난리를 쳤던 변호사를 통해서 소문이 모두 퍼졌는지 아예 사무실 쪽의 인원들이 박 교수의 등장만으로도 웅성거리는 소리를 내며 노골적으로 접수를 거부했다.
“저희는 지난번에 이미 지원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건 건이 다른데요. 민사잖아요.”
“이미 1심에서 유죄라고 실형이 판결 나온 사건이잖아요.”
“여긴 2심 항소심은 지원하지 않는다는 건가요?”
“그, 그건 아니지만, 이미 실형까지 나온 걸 다시 뭘 어쩌겠다는 거죠?”
“1심에 유죄가 나온 사안에 대해서는 항소심에 지원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나 보죠?”
“아,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내가 한국인이라서 그렇다는 건가요?”
“그, 그게....”
“아니라면 아니라고 대답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렇다고 대답한 적 없습니다.”
“지난번에 상담했던 변호사는 그렇게 대놓고 얘기하던데요. 녹취도 이렇게 다 했구요.”
“왜 마음대로 변호사님과의 대화를 녹취하신 거죠?”
“대만 법률에 의거 대화 당사자간의 녹취는 상대방의 허가를 받지 아니하여도 된다고 법전에 쓰여 있던데요.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요?”
“그러면 일단 서류나 놓고 가세요. 따로 연락드릴게요.”
“정해진 수순대로 하는 게 아니구요?”
“아이, 정말. 여기 와서 왜 이러세요? 그냥 다른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도움을 청해 보세요.”
“법률 부조 기금회가 원래 서류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들에 사안에 대해 검토해주는 곳이 아닌가요?”
“죄송합니다. 더 이상 응대가 어려울 것 같아서요.”
그렇게 직원은 도망가듯 자리를 피했다. 대화를 모두 듣고 있던 직원들은 도망가는 직원을 따라 뿔뿔이 흩어지듯 박 교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저마다 뒤쪽으로 슬금거리며 자리를 피했다.
부모님이 계실 때는 티를 내기 싫어서 하지 못했던 타이완 국회에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일단 차이잉원의 여당 쪽에 기자회견을 했던 여자 입법위원이 있었기 때문에, 야당인 국민당의 입법위원들의 리스트를 뽑아서 한국의 국회의사당에 해당하는 국회회관을 찾아갔다. 로비에서 약속을 했던 입법위원 사무실에 전화를 걸면, 해당 사무실의 담당 직원이 내려와 응대를 해줘야 올라가거나 면담을 할 수 있는 구조였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차이잉원이 총통으로 있는 여당인 민진당은 타이완의 개별적 국가를 인정해달라며 중국 본토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당이었고, 국민당은 중국 본토와의 원활한 관계를 통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며 중국과 공생하는 것을 추구하며, 무엇보다 중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야당이었다.
타이완 국립대 법학과를 나와 미국 하버드에서 유학을 하고 왔다는 젊은 남자 국회의원에서부터 국민당이 여당이었을 때 교육부 고위직 공무원이었다가 입법위원이 된 여자에 이르기까지 대략 5명 정도의 입법 위원실에 이메일을 보냈다. 모두 답변이 없었다. 그래서 국회회관에 찾아가 직접 로비에서 전화를 걸어 면담을 요청했다. 그들은 한국의 국회의원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화는 피했고, 연결이 되면, 이메일을 보내면 다시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직접 로비 1층에 있으니 내려오라고 하면 가장 낮은 잔심부름을 하는 비서를 보내 적당히 응대하고 관련 자료를 받아오라는 식으로 응대했다.
하도 자주 출근하듯 찾아가니 로비에서 전화를 응대해주는 아줌마 직원은 박 교수를 보고 착각하여 자연스럽게 인사를 할 정도로 문턱이 닳을 때까지 만나줄 때까지 그들을 찾아갔다. 뺀질거리며 도망 다니던 이들을 뒤로하고 별관에 있던 교육부 국장 출신의 여자 입법 위원실에 그냥 올라가버렸다. 그러자 과자와 음료를 먹으며 노닥거리고 있던 보좌관과 비서관이 놀라서 누구냐고 물으며 박 교수를 왜 들여보내 줬냐면서 경비에게 소리를 지르고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면담이 이루어진 보좌관이 물었다.
“저희도 뉴스를 통해서 보기도 했고, 2주 전에 보내셨던 이메일도 여기 이렇게 출력해왔습니다. 대강 읽어봤는데요. 지금 1심이 끝난 상태인 거잖아요? 2심이 들어갔나요?”
“아니요. 다다음달에 준비기일만 정해졌습니다.”
“그래요. 이걸 저희가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까요?”
“그쪽 입법위원이 교육부 국장 출신 아니신가요?”
“어떻게 그런 건 다 아셨어요? 부인이 타이완분이시던가?”
보좌관은 느기작거리며 박 교수의 표정을 살폈다.
“한국 사람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이 나라의 입법위원이고 교육부 관할 감사 의원이라면 교육부에서 이렇게 버젓이 행정절차까지 어겨가며 이런 행위를 한 것도 그렇고 이 나라의 대표 국립대학교라는 곳에서 현행법을 어겨가며 진행한 사실이 이렇게 증거로 명확하면 나서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 현행법을 어겨요? 대학이요? 교육부가요?”
현행법을 어겼다는 말에 그녀가 느기작거리며 웃던 표정을 싹 바꾸며 정색을 하고 앉아 되물었다.
“내가 보낸 메일과 이 문건 다 읽었다면서요? 여기 증거 자료 있네요. 여기 한국어학과 교수는 단과대학 회의의 정족수에 들어갈 수도 없고 투표는 더더구나 할 수가 없는데, 이 두 사람이 버젓이 사인한 문건이 있잖아요.”
“어? 정말 그러네요? 어? 정말 이거 왜 이런 거지?”
그녀가 호들갑을 떨며 문건을 눈앞에 들이대며 다시 확인을 했다.
“게다가, 지금 이게, 문제의 여자 입법위원에게 처음 들쑤신 여학생이 자기가 피해자라면서 처음 학교 성평회측에 처음으로 제출한 피해 진술서입니다.”
“네. 뭐 여러 군데에서 성희롱을 당했다고 적혀 있네요.”
“맞아요. 자필로 작성한 거죠?”
“그렇네요.”
“피해 장소가 어디라고 적혀 있나요?”
“어디 보자. 엘리베이터 안, 강의실, 교실.... 교실?”
그녀가 다시 한번 놀라며 더듬거리며 장소를 읽었다.
“자아, 외교대학교 엘리베이터에서 강의실에서 내가 그런 짓을 했다면 CCTV에 안 찍히고 그렇게 할 수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