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교수의 머릿속에 순간 온갖 생각들이 튀어나와 부대끼기 시작했다. 비자에 해당하는 외국인 거류증은 1년도 훨씬 전, 직장인 외교대학교에서 만들어줬었는데, 그들이 임의로 가족 비자와 모든 것을 취소하면서 직장 자격이 없어졌고, 출금 금지가 이뤄졌다고 하면서 외국인 등록증의 자격이 ‘재판으로 인한 연기’ 사유로 6개월에 한 번씩 연기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렇다면 외국인 거류증에 어떤 사유로 있는지를 보게 될 것이고 그걸 보면 출금금지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을 것이라는 것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안주머니 안으로 넣었던 손에서 지갑을 쉽게 꺼내지 못한 채 난처한 얼굴이 되어 버렸다.
“없으세요?”
“아니요. 여기 있습니다.”
모든 것을 순리에 맡긴다는 생각으로 지갑에서 외국인 체류증은 꺼내 그녀에게 넘겼다. 사진을 보며 그녀가 박 교수의 얼굴을 다시 한번 쳐다봤다. 다시 모니터를 보던 그녀가 여권과 외국인 체류증을 건네주었다.
“외국인 체류증 분실하시면 다시 들어오실 때 곤란해지는 거 알고 계시죠?”
“네?”
“외국인 체류증 분실하시지 마시라구요.”
여권과 외국인 체류증을 넘겨받은 박 교수는 어안이 벙벙했지만 일단 얼른 앞으로 통과해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대로 끝이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법원에서 온 것처럼 전산상으로 출국금지가 해제된 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안쪽 비행기 출입구 쪽으로 걸어가면서도 아까부터 긴장한 탓인지 목이 말라 식당에 가서 오렌지 주스를 하나 주문해서 자리에 앉았다. 비행시간까지는 두 시간 가까이 남아 있었다. 얼른 걱정하고 있을 아내와 어머니에게 카톡을 먼저 보냈다.
- 출입국 심사에 아무런 문제 없이 들어왔어요. 비행기 타기 위해서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아무런 걱정하시지 말라고 메시지 남겨요.
아내가 바로 읽고 답변이 왔다.
- 비행기 타기 전까지는 알 수 없어요. 걔네들 하는 짓이 도저히 방심할 수 없는 지경이니까요. 긴장 풀지 말고, 조심해서 와요. 비행기 타면 핸드폰 끄기 전에 출발한다고 메시지 하나 넣어줘요. 공항에 나가던가 할게요.
‘맞다. 얼마나 뒤통수를 맞았는지 잊을 뻔했구나!’
박 교수는 오렌지 주스컵을 들고 비행기 탑승구로 천천히 걸으며 다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비행기 탑승시간이 되어 탑승하기까지 박 교수는 초긴장상태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를 멈추지 못했다. 멀리서 혹시나 경찰이나 경비원이 달려오지는 않는지, 어디선가 이상한 방송이 울리며 자신을 찾는 것은 아닌지 여러 가지 망상들이 그를 괴롭혔다.
“자아, 인천행 비행기 탑승 시작하겠습니다.”
비행기 티켓과 여권을 내밀면서도 항공사 여직원을 정면으로 빤히 응시하며 긴장을 늦추지 못했던 그는 겨우 비행기에 자기 좌석을 찾아 짐을 올리고 앉은 뒤에야 깊은숨을 내쉬었다. 아내에게 비행기가 곧 출발한다고 메시지를 남기고 나서야 그는 기절하듯 쓰러졌다. 전날 밤부터 제대로 눈을 부치지 못하고 온갖 망상에 시달린 탓에 긴장이 풀리며 졸음이 아닌 혼수상태의 느낌으로 정신을 까무룩 잃었다.
‘띵띵’ 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어느 사이엔가 인천에 도착할 시간이 되어 있었다. 창밖을 보니 익숙한 인천 앞쪽 바다와 멀리 한국의 아파트 숲이 눈에 들어왔다. 냄새나고 꾸물거리는 날씨의 그 타이완으로부터 무려 2년 하고도 3개월 만의 귀국이었다.
“여기야 여기!”
팔순을 바라보는 박 교수의 노모가 손을 흔들며 짐 카트를 끌고 나오던 그를 맞았다.
“뭐하러 나오셨어요. 힘들게...”
“에미가 온다는 걸 내가 대신 온다고 오지 말라고 했다. 뭐하러 두 사람이나 나오나 싶어서. 나야 집에서 놀고 있는 사람이고 에미는 일 끝나고 또 애들도 챙겨야 하고 그러니...”
“네. 얼른 가죠.”
“그래. 고생 많았다. 정말 고생 많았어. 이렇게 한국에 오니까 얼마나 좋으니.”
팔순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끊임없이 아들의 손을 만지작만지작 지하철을 타러 가는 내내 놓지 않고 잡았다.
“무슨 특별한 일은 없으셨구요?”
“나야, 뭐 그렇지.”
“아버지한테 인사부터 드리러 가야 하는데, 짐이 좀 많아서 집에 짐을 두고 내일 인사를 드리러 갈게요.”
“그래. 그래야지. 무슨 짐을 이렇게 많이 가져왔어.”
“이거 술인데, 가져가서 아버지랑 같이 좋은 날에 드세요.”
선물로 가져온 한정판 진먼 고량주를 노모에게 내밀자 노모가 반색을 하며 마냥 웃으며 박 교수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이런 건 너희나 가져다 먹어. 우리가 먹을 일이 뭐가 있니? 애비가 온 걸루 됐다. 됐어.”
“한 달 정도 있다가 다시 들어가 볼 거예요.”
“응? 왜?”
“거기 집도 정리해야 하고,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잖아요. 이대로 들어가라고 뒷문을 일부러 열어둔 건데 쟤네들이 원하는 함정에 빠져서 평생 그 소문의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할 수도 있는데 그럴 수는 없잖아요.”
금세 노모의 얼굴을 다시 어두워졌다.
“꼭 가야 하는 거니? 물론 애비가 잘 알아서 하긴 하겠지만, 에미랑도 잘 상의해서 결정해라. 그런데 나는, 너희 아버지랑 나는 가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것들이 하는 짓이 뻔한데 그 꼴을 다시 보러 거길 들어간다는 게...”
“예. 일단 방송사 피디들도 좀 만나고 준비할 것들 다 해서 그렇게 들어갈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 잘될 거예요.”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박 교수는 4개월 만에 아이들과 아내를 다시 만나는 재회의 밤을 맞을 수 있었다.
그날 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에 학교를 나서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학교까지 데려다주면서 박 교수는 출근하는 아내를 배웅하고 다시 돌아와 노트북을 켰다. 원래 작성해서 보냈던 공중파 3사의 고발 프로그램 피디들에게 보낼 이메일을 다시 정리해서 보내면서 자신의 한국 핸드폰 번호를 넣었다. 한국에 잠시 들어왔다는 내용과 함께 시간이 한정적이니 한국에 있는 동안 만나서 사건에 대한 설명을 직접 하고 싶다고 의향을 표현했다.
처음 연락이 온 것은 M 사였다. 이명박 때 하도 핍박을 받고 반대파들이 득세했다가 비리 검사까지 날려버렸던 책임 프로듀서가 좌천되어 강제 퇴직당했다가 당당하게 사장으로 돌아온 방송사였다. 사실, 해당 고발 프로그램이 아니라 주영희의 연락을 받았다면 가장 먼저 연락을 취해왔던 여자 기자가 있는 방송사이기도 했다. 그녀가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티를 내고 진상만 파악하고 자기 보직이 해당 프로그램에서 뉴스 팀으로 옮겼다는 구차한 변명을 하며 흐지부지된 바가 있어 불쾌감만 더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시청률이 5%도 되지 않는 화요일 심야시간에 방송되는 해당 프로그램은 그래도 오래된 역사를 자랑했고, 기존의 핍박받아 뿔뿔이 흩어졌던 피디들이 다시 뭉친 지 얼마 되지 않는 시점이라 충분히 이야기를 해볼 수 있다고 여겨 스승 찬스까지 써가며 CP(책임 프로듀서)에게 직접 연락을 취했던 터였다. 그는 바로 제작 프로듀서를 연결해 주었다. 그리고 그 피디에게서 바로 연락이 온 것이었다.
“박 교수님이신가요? 저는 박 피디라고 하는데요. 제가 지금 4주 후에 방송해야 할 아이템을 정해야 하는 순번이라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희 방송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희 방송이 4~6명 정도 피디가 돌아가면서 독립적인 아이템으로 방송을 준비하는데요. 아무래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저처럼 이제 막 방송 끝낸 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이 바로 다음 방송 아이템을 찾기 시작하는 시점이거든요. 그래서 CP가 자료 보내주어서 제가 연락드렸습니다.”
“이렇게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전화로 통화하실 게 아니라 직접 뵙지요. 제가 교수님 계신 곳으로 갈게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잠실 쪽에서 만날까요?”
“네. 그러면 지금 여기서 간단히 회의 하나 하고 있는데, 바로 출발하면 점심시간 지나고서 괜찮을 것 같은데요. 식사하시고 간단히 차나 하면서 이야기 나누시죠?”
“알겠습니다.”
바로 미팅이 잡힌 것은 타이완에서 계속 국제전화를 하면서 지지부진 접수전화받는 막내 여자 작가들과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성과라면 성과였다. 관련된 자료를 간략하게 프린트해서 파일에 넣어가지고 온 것을 챙기면서 박 교수는 약속시간 전까지 다른 매체들의 연결 포인트에 이메일을 넣었다. 한쪽만 믿고 막연히 매달리기에는 시간적으로도 그렇고 효과가 떨어질 것임을 2년이 넘는 경험을 통해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S사에서는 연락이 온 것은 피디와의 약속시간에 맞춰 막 길을 서둘러 나가고 있던 차였다. 자신을 뉴스팀 기자라고 밝힌 남자는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혹시 보내주신 자료를 읽다가 발견한 건데요. 린 사모라고 들어보셨나요?”
“네?”
“보내주신 자료에 보면, 린 사모를 언급한 내용이 있어서요. 왕 사장이라는 이 사람과 밀접하게 연락을 하실 수 있는 사이신가요?”
“네?”
뜬금없이 린 사모는 뭐고, 왜 갑자기 왕 사장에 대해서 묻는 것인지, 아마도 타이완의 마약시장이 한국을 교두보로 삼아 마약을 뿌리고 있다는 가외 정보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회부 기자려니 생각하고 박 교수는 말을 끊었다.
“죄송한데, 제 핵심은 제가 겪은 일에 대해 외교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은 것이 핵심이고, 그쪽 사회부에서 한번 다루기까지 했었는데요. 확인은 하신 건가요?”
“네. 갑작스럽게 왕 사장에 대해서만 물어서 불쾌하실 수는 있는데요. 한국에 요번에 이상한 사건이 터져서 난리가 아니거든요. 한국에 들어오신 지 얼마 안돼서 모르시나 본데, 제가 기사 링크 몇 개 보내드릴 테니까 한번 보시겠어요?”
“알겠습니다. 제가 지금 막 미팅에 들어가야 해서요. 보내주시면 보고 나서 연락 다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박 교수는 그렇게 전화를 끊고 그가 보내준 링크까지는 확인하지 못하고 박 피디를 만나러 카페에 들어섰다.
아담한 키의 깐깐한 성격을 드러내는 듯 가느다란 눈매에 약간 소프라노성 목소리를 가진 박 피디가 박 교수를 대번에 알아봤다. 카페에 그다지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니긴 했지만, 그는 한눈에 박 교수를 알아보며 손을 내밀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한국에는 어제 들어오셨다구요?”
“네.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슨 말씀을요, 저희는 사건 찾아다니는 게 일인데요, 뭐. 이렇게 연락을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드릴 쪽은 저인걸요.”
“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제가 어제 새벽에 자료를 받고 오늘 내내 자료를 좀 분석했거든요? 작가들이랑 아까 간략하게 회의하고 그쪽에다가 검토할 것들 숙제로 던져주고 오는 길입니다. 제가 이동하면서 핵심 사안들을 좀 정리해봤는데요.”
그렇게 말하면서 박 피디는 주섬주섬 자신의 다이어리 수첩을 꺼내 들며 메모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일단 교수님의 주장대로라면, 죄송합니다. 직업상 이렇게 표현하는 걸 좀 이해해주세요.”
“네. 괜찮습니다. 편하게 이야기하셔도 오해하지 않습니다.”
“다른 게 다 이상하긴 한데, 아무래도 저희가 방송을 결정하게 되면 타이완에 타이베이로 직접 가야 하는 건 100% 거든요. 거기에서 물론 저희가 현지 가이드를 쓰기도 하긴 하지만, 가장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분이 교수님이시라, 교육부 쪽도 그렇고, 대학 측도 그렇고 특히 검찰이나 법원 측을 좀 면밀하게 취재를 해야 그림이 되는데, 그걸 짧은 시간 안에 다 할 수 있을지가 좀 걱정이 되긴 합니다. 그래서 가장 큰 문제는, 판결인데요. 저희가 보내주신 파일이 번역이 안된 원본이라 오늘 아침에 번역 사무소에 맡기고 오긴 했거든요? 다른 자료들이랑 같이?”
“네. 필요하시면 제가 간략하게 번역을 해 드려도 되긴 하는데....”
“아니요. 그건 저희가 그냥 번역 사무소에 맡겨서 해도 되니까요. 한 3~4일 정도 걸린다고는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전에 제가 궁금한 게, 이런 사안에 실형이 나오는 것이 가능한 건지?”
“제 변호를 담당했던 1심 변호사는 최악의 경우라도 그저 가벼운 벌금형이라고 이야기했었어요, 양형기준이. 그 사람도 검찰에서 검사 옷 벗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전관이었든요.”
“아. 그러게요. 저희가 알아봤는데, 타이완 법률 전문가가 한국에 거의 없어서요. 우리나라랑 많이 다른 건지, 한국의 기준으로 보게 되면 이게 너무 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그래서요.”
“네. 타이완에서도 이례적인 경우라고 변호사에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초점이 아무래도 그 두 여학생 말인데요. 저희가 직접 만날 수 있을까요?”
“만나려고 하면 만날 수 있으시겠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보건대, 주영희 쪽 변호사. 아! 주영희가 누군지는 아시죠?”
“아, 그 똘아이 대만 친일파 말씀하시죠? 링크 주신 거와 해서 자료 찾아봤습니다. 블로그도 대강 구글 번역 돌려서 봤는데, 아주 똘아이던데요.”
“박 피디님이 서울대 인문대 동문 선배시라고 CP에게 들었습니다. 독일어 전공하셨다고.”
“아, 네. 제 백그라운드까지 CP가 말씀하셨군요. 하하.”
“외교대학교 한국어학과에 K대 언어학과 출신이 하나 있는데, 그쪽 동문도 피디 중에 있어서...”
박 교수가 껄끄러웠던 것을 묻자, 박 피디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저희는 그런 학연 지연으로 덮어주고 빼주고 하는 거 절대 없습니다. 사장님이 프로듀서로 있을 때부터 저희들 철칙입니다. 그 점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