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사는 악녀 - 104

대한민국 공중파 고발 프로그램 피디를 만나다. 2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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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박 피디와 박 교수 간의 4시간가량의 여러 대화가 오갔다. 그 역시 시사고발 프로그램의 피디로 잔뼈가 굵은 사람다웠다. 그가 그날의 대화를 갈무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저희도 시간이라는 한정이 있고, 제가 2주 전에 방송이 끝났으니까 저도 빨리 이걸 결정해서 타이완으로 가게 되면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거든요.”

“아무래도 그러시겠죠.”

“사실 제가 방송한 거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타이완의 교회를 때리는 방송을 한 번 했다가 조금 곤란해진 게 있기도 하거든요.”

“아 그러셨군요. 저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지금 보니까 관건은 지금 그쪽을 가더라도 타이완 교육부나 외교대학교는 아예 자기네 일 터질까 싶어서 입을 다물 확률이 90% 이상으로 보이기는 하는데요.”

“그거야 그렇겠지요.”

“뭐 그건 저희가 쳐들어가고 하는 방식이 있으니까 문제가 될 건 없는데, 주영희 쪽도 아마 건드리면 이제까지 기사 내고 반응하는 패턴을 보면 자폭할 확률도 있고, 다 좋은데...”

“뭔가 걸리시는 거라도?”

현재 한국 상황이요. 아시겠지만, 한국이 작년 초부터 터졌던 그놈의 미투 때문에 난리도 아니었거든요. 아무래도 다른 나라 건이기는 하지만, 이게 무고에 해당하는 건이니까 페미니즘을 타고 넘어야 한다는 과제가 있어서요. 아예 그것과 별개라는 걸로 이해시킬 수 있으면 참 좋은데.... 지금 사실 비슷한 건이 한국에도 몇 개 터졌었거든요.”

“저도 몇 가지 사건들, 검색해서 찾아보긴 했습니다. 무고를 폭탄처럼 투척하는 여자애들이 한국에도 있긴 하더군요.”

“잠룡이라고 하는 충남도지사도 지금 재판을 받고 휘청거리는 상황이니까요.”


교수 역시 예의 주시하고 있던 충남도지사의 건까지 언급하며 박 피디가 신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는 이 부분이 성추행에 대한 무고도 문제지만, 해외의 사건이기 때문에 외교부의 재외국민 방치에 초점이 맞춰져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씀도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저희가 지난주 멕시코 건에 대해서 다룬 보도는 보셨죠?”

“아, 그...”


박 교수가 악녀에게 그런 일을 당하기 좀 전이었던 2016년 한국에 있을 당시 박 피디의 프로그램에서 멕시코에서 감옥에 갇힌 여자의 억울한 사연이 나온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이례적으로 그녀의 사연은 1년이 지나 아직까지 감옥에 갇혀 있다는 내용의 보도였다. 그 방송이 바로 지난주 그 프로그램에서 다뤄진 것이었다.


사건의 내용은 간략했다. 멕시코 검찰의 반인권적 불법 수사에 한국 대사관 영사에게 조력을 요청했던 제보자 양현정 씨(나중에 언론을 통해 실명이 공개되었다.)가,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하고 현지 언어도 전혀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멕시코 한국 대사관의 경찰 영사가 양 씨를 범죄자라고 인정하는 진술서에 서명하도록 했다는 것이었다.


애초부터 멕시코 검찰의 실적 올리기 셋업 검거작전이었다는 사실이 방송을 통해 알려졌고, 강압 상태에서 이뤄진 데다 사실과 다르게 작성된 1차 진술서를 바탕으로 멕시코 검찰은 양 씨를 구속 수감하였다. 한국의 공중파 방송사에서 다뤄지면서 이슈가 되었고, 지리한 법정 공방 끝에 멕시코 재판부는 양 씨 석방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황당한 그녀의 짧지 않은 수감생활은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양 씨의 석방이 결정된 날, 멕시코 검찰의 항소장이 날아들었다. 양 씨는 그들이 내민 새로운 증거 때문에 또다시 구속됐다. 한국 대사관 영사와 통역사의 충분한 조력 속에 양 씨 진술서가 작성됐고, 서명이 이루어졌다는 ‘영사 진술서’로 인해서 양 씨는 교도소에 재수감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문제의 그 경찰 영사는 외교부 소속이 아닌 현직 경찰간부였다. 문제가 생기고 방송이 터지자, 급하게 이듬해 1월에 한국으로 급거 귀국하고, 국회의원과 영화배우까지 나서서 국회에서 이례적인 기자회견을 하면서 외교부의 안일한 조치에 대해 성토하며 이슈화를 시켰다.


급기야 그 국회의원은 멕시코로 날아가 현지 외교부 공관 감사라는 희대의 쇼까지 벌이며 경찰 영사와 대사관이 대처를 미흡하게 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밝혔다.

문제의 경찰 여사는 총경 계급의 경찰 간부는 한국에 들어와 징계를 받았다.


무려 감봉 1개월.

그가 해외 체류 수당으로 받은 금액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금액을 내놓는 것으로 그는 면죄부를 받았다. 이례적인 현지 국감을 앞두고 얼굴도 비추지 않던 현지 대사는 양 씨를 감옥까지 찾아가 “절대 정치인을 접촉하는 따위의 행동을 해서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지 말라!”며 협박까지 했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양 씨는 류마티스 관절염까지 발병하여 손가락조차 움직이지 못하는 사태로 15개월째 감옥생활을 하고 있다는 보도였다.(결국 최종적으로 무죄를 받고 한국에 돌아오기까지 그녀는 3년 2개월간을 멕시코의 수감생활을 견뎌야만 했다.)

정신 나간 멕시코 대사는 사건이 터졌던 2016년 4월 박근혜 대통령이 멕시코를 방문하였을 때, SNS에 ‘박 대통령의 기품, 우아함, 부드러움, 강인함은 멕시코 페냐 니에토 대통령의 넋을 빼앗음’이라는 이른바 ‘박비어천가’를 올려 논란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었다.

물론 박 교수가 스승을 통해 케이스 스터디의 형태로 들은 내용은 그들의 방송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않은 사실들이 행간에 숨어 있었다. 일단 피해자로 지칭된 양현정 씨만 부각되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실제 주인이었던 현지 교민이자 양현정 씨의 동생과 약혼한 남자가 운영했던 단란주점이 여성 접대부를 고용하여 2차를 불법적으로 운영했던 곳은 맞다는 점이었다.


물론 누군가의 모함인지는 몰라도, 여성들을 강제로 감금하고 성매매를 시켰다는 과장이 있기는 했지만, 성매매를 한 것과 그것이 범법행위였다는 점은 불변의 사실이었다. 다만, 여동생과 그 약혼자의 말만 믿고, 가게 카운터만 맡고 있으면 된다고 했다가 졸지에 벼락을 맞은 양현정 씨가 범죄 당사자도 아니고 수익을 나눠가진 공범도 아닌데, 정작 감옥까지 가게 되고, 그 과정에서 총경이라는 경찰간부가 자기 가족과 외유 격 외교관 신분으로 한국에서 하던 짓대로 재외국민을 내팽개쳐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도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었다.


스승은 그 사건을 해설해주며 사건의 뒤에 있던 본래 이익을 취했던 자가, 돈으로 권력과 언론을 움직이는 전형적인 케이스라 설명해주었다. 늘 그랬지만 스승의 추론이 납득이 갔던 것은 객관적인 증거 때문이었다. 언론을 통해 먼저 터져서 굉장히 이슈가 되었다고 보기도 어려운 사건인데, 언론과 국회의원이 동시에 터트렸다는 것과 심지어 유사한 영화를 감독했던 정치권에 선이 닿은 여자배우까지 나서서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했다는 점이 그러했다.


무엇보다 공중파에서 1년여에 걸쳐 두 번이나 그것을 보도할 정도의 케이스가 아니었음에도 재방송 수준의 방송을 박 피디의 프로그램에서만 다뤘다는 점에서 그저 정의 구현만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점이 스승이 제시한 근거들이었다. 멕시코라는 우리나라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는 남미의 나라라는 점에서 박 교수의 타이완 케이스와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도연이 열연을 했던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의 감독을 맡았던 방은진이 외교통상위 소속 국회의원과 함께 목소리를 높인 것도 그런 맥락이라면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집으로 가는 길>에서도, 분명히 전도연이 열연한 주인공이 자신은 몰랐다고 하지만 마약을 운반하는 중범죄를 짓게 된다.


범죄자는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핵심은 대사관 직원의 재외국민 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그녀가 받아야 할 처벌이나 형벌보다 훨씬 불합리한 처우를 받아 내팽개쳐졌으며 그녀의 제대로 된 법적인 방어권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이 그 영화에서 개고생을 한 ‘재외국민 범죄자’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무고가 명백하다는 증거를 이리 많이 가지고 있는 박 교수의 사건에 박 피디가 주저하는 것은 박 교수 입장에서는 분통 터지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멕시코 방송은 다른 분이 하셨던데요.”

“네. 제가 한 건 아니구요. 후배가...”

“게다가 그건 유죄 정황도 있는 사건이던데...”

“네. 제가 담당한 프로그램이 아니어서 자세히는 모르는데, 아까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외교부의 부적절한 대응이 문제라는 것으로 포커스를 맞추게 되면 CP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중복된다고 느낄 수도 있거든요.”

“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중요한 건 박 피디님이 하고 싶은가가 가장 큰 것일 테니까요.”

“뭐, 그렇게 잘 알고 말씀하시니 할 말은 없네요. 그러면, 가장 중요한 판결문의 번역이 모두 나오는 대로 저희 작가와 팀이 논의를 좀 해보고,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불안한 마음을 토닥이며 집으로 돌아오니 아이들이 있었고, 아내가 있었고, 함께 하는 저녁이 있었다. 그저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첫날의 어려운 발걸음을 뗐다.


다음날 아침, 박 피디와 대화에서 생각이 나서 영화배우 겸 감독인 여자에게 연락을 취해보기로 했다. 그녀는 공식적으로 정치권과 선이 닿아 있는 듯 영화 쪽보다는 정치적인 행보를 하는 듯 강원영상위원회 위원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그 사무실에 있다고 했다. 그쪽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매일 출근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그의 비서 역할을 하는 부위원장이 있다면 연결을 해주겠다고 여직원이 말했다. 하루가 다 가고 다음날이 되어서야 부위원장이라는 남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박 교수님이신가요? 저희 위원장님을 찾으셨다구요? 어쩐 일이시죠?”

“아 다름이 아니구요. 지난주 멕시코 사건으로 국회의원과 기자회견을 한 것을 봐서요. 저는 타이완에 있는 대학에 있었는데, 그 비슷한 사건이 한국인에게 또 발생해서...”

“아, 죄송한데요. 요즘 여러 가지 일이 바쁘셔서, 말씀은 드려보겠지만, 아마 다시 연락을 드릴 수 있을 거라는 약속을 드리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네? 타이완에서 벌어진 사건은 <집으로 가는 길>보다 훨씬 더 어이가 없고, 제가 스토리도 모두 구성을 해둔 상태로 관심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글쎄요. 사실 <집으로 가는 길>도 다른 사람이 쓴 대본을 감독직만 제안받으셔서 각색하면서 연출하신 작품이구요. 멕시코 이번 사건도 그쪽 부탁으로... 아닙니다. 하여간 말씀하신 내용으로 정리해서 보고는 드리겠습니다.”

“제가 직접 통화를 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시기 어려우실까요?”

“네. 그게 워낙 바쁘시고 이런 일로 모두 연결하는 것을 싫어하셔서요. 요즘 준비하시며 쓰시고 있는 대본도 있으셔서 아마 <집으로 가는 길>류의 사건을 영화화하는 것이라면 관심이 있으실 것 같지 않습니다.”

“아,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이 사안에 대해 알려주세요. 영화화까지는 아니더라도 도움을 주실 수 있는지라도...”

“네. 그럼 끊겠습니다.”


허망하게 전화를 끊는데 다시 전화벨이 바로 울렸다.


“여보세요? 네. 무슨 더 하실 말씀이라도?”


방금 끊은 상대라고 생각해서 물었던 박 교수의 수화기 너머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교수님이신가요? 저어, 어제 전화드렸던 S사 사회부 기자입니다. 보내드린 기사 링크들은 좀 보셨나요?”

“아, 네. 그런데 저는 제 사건에 도움이 필요해서 연락을 드린 건데, 이 버닝 썬인지 하는 곳의 사건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지요?”

“저희가 지금 기획취재를 준비 중인데요. 타이완의 마약이 한국에 들어오고 있다는 것과 버닝썬같은 곳에서 타이완의 돈이 세탁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까지 어떤 언론에서도 다룬 적이 없었던 사건이라서요.”

“저는 대학교수여서 이런 쪽에는 전혀 알지 못하는데요.”

“죄송하지만, 교수님이 보내주신 자료를 저희 팀에서 분석하다가 린이쥬라는 여자의 남편이 언급하신 문건의 왕회장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너무 놀라서 크로스 체크를 했습니다.”

“네?”

“어제도 통화에서 잠시 말씀드렸었지만, 린 사모라는 여자, 그러니까 린이쥬가 한국 연예인들을 좋아하고 그랬던 것은 표면적인 것이고 그 여자가 돈을 한국에서 고급 아파트를 사고 클럽에 투자하고 돈을 굴린 것도 그렇고 클럽을 매개로 한 게, 타이완의 마약루트로 활용된 것이라고 보는 게 저희 합리적인 의심이거든요.”

“네? 왕 회장이요?”


사실 직접 왕회장을 만나본 것도 아닌 입장에서 박 교수가 왕 회장을 언급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당장이라도 타이완에 날아갈 요량으로 박 교수에게 애걸복걸하는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저희 사회부에서 2017년 12월에 교수님을 취재하고 나서 입을 닦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팀장인 제가 대신해서 사죄드리겠습니다. 저희가 타이베이에 어떤 네트워크를 동원해도 지금 그들이 사는 집조차도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거든요. 혹시 괜찮으시면 한번 만나 뵙고 이야기를 드리고 좀 얘기를 나눌 수 없을까요?”

“저야 상관은 없는데, 지금 말씀하시는 것과 제 사건과는 직접적인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 같은데요.”

“아, 그건....”


핵심을 찔렸는지 기자 팀장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이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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