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사는 악녀 - 106

대한민국 공중파 고발 프로그램 피디를 만나다. 4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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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박준기를 치겠다는 의도인 건가?’


박 교수는 자기도 모르게 사건이 터졌던 2017년 12월의 저널지 그 기레기가 떠올랐다. 제대로 외교부의 박준기 실명까지 까발리고 저격하겠다며 큰소리치다가 외교부와 딜하고 기사를 덮은 후, 외교부 출입 특권을 얻어 하노이 김정은, 트럼프 북미회담의 기사를 송출하며 신나 하던 그놈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그놈이 지금 일본 총영사로까지 오히려 승진해서 갔더라구요?”

“네? 아, 네. 그 해에 표창까지 받았죠. 외교부에서 훌륭한 외교관상.”

“아무리 외교부가 지들 판이라고 하더라도 이건 아니죠.”

그가 혀를 끌끌 차며 천천히 다이어리 수첩과 볼펜을 꺼내 들었다.

“저는 사실 타이완에 취재를 갈 수도 없고, 갈 상황도 못됩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게 제 자랑은 아니지만 제가 그 최근에 계속 기획취재를 다룬 것들을 그 알 쪽 피디들이랑 작가들이 모두 물어가는 실정 이어서요. 약촌오거리 사건이랑 최근 재심 터진 것들이 모두 제가 밀착 기획 취재로 터트린 것들이거든요.”

“아, 그러세요? 그 알 쪽이랑 잘 아시나 보죠?”

메인 4대 일간지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젊은 기자는 나름 자기가 최근 스쿠프(특종)를 터트렸고, 그알에서 자신의 취재를 바탕으로 방송을 꾸렸다는 것에 자부심이 대단해 보였다. 정작 그알의 책임 피디였던 배 피디를 만난 이야기를 하자 거들먹거리며 박 교수에게 되묻기까지 했다.

“제 이름 대고 한번 물어보세요. 며칠 뒤에도 같이 만나기로 했는데...”

“제작팀 피디가 아니라서 요즘 제작을 안 한다고 하던데요?”

“아, 그거야 하는 말이지, 자기 이름이 안 나가도 지금 회사 월급을 받고 있는데, 자기가 큰 꺼리가 당긴다 싶으면 언제든 물고서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는 거죠.”

“그런 건가요? 그건 그렇고, 아까 하던 얘기마저 해보시죠. 그래서 외교부를 타깃으로 뭘 어떻게 하시고 싶으신 건가요?”

“저는 외교부의 재외국민 보호가 개판이었고, 몇 번이나 큰 건이 터졌는데도 이제까지 고쳐진 거 하나도 없고, 최근에 외교부 기강해이 문제가 여기저기 봇물 터지듯 무너지고 있는데, 통역사 하던 여자 장관은 정권의 입맛대로 가져다 꽂아만 뒀지, 성 비위에 대해 바로 아웃시키겠다는 약속조차 국장급들이 지들 멋대로 휘두르고 있다, 뭐 이런 것들을 이 건을 계기로 직접 저격하려고 합니다. 당연히 이 총영사의 이름은 실명으로 들어갈 생각까지 하고 있구요.”

“그러면 기획취재라고 하셨으니 단발성 기사가 아니겠군요?”

“네. 그건 지금 계획 중이긴 한데, 제 원래 기사 담당 꼭지가 있는데, 그 꼭지를 기획 취재일 경우에는 연재 방식으로도 가고 있거든요.”

“그러면 제가 뭘 더 협조해드리면 되죠?”

“보내주신 녹취가 가장 효과적이었는데요. 이메일에도 적어 보내 주셨듯이 그 이후에도 박 준기 부대표와 계속 통화하신 것을 모두 녹취하셨다고 하셨잖아요?”

“네. 박 부대표 말고 외교부 국장부터 재외국민 과장까지 그들과의 모든 통화를 녹취했어요. 이 사건 이후에 타이완 것들만큼이나 한국 외교부 것들이 수시로 말을 바꾸고 증거를 대라는 식으로 군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네.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젊은 기자는 흥분한 듯이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그 모든 녹취 파일을 저에게 보내주세요.”

“네? 모두요?”

“네. 외교부를 아주 이번 참에 박살내려구요.”

“그럴 수 있겠어요?”


박 교수가 그제서야 주스 스트로우를 입에 가져가며 천천히 다시 물었다.


“그간 제가 쓴 기사들이 모두 재심에서 무죄로 드러났고, 그알에서도 주목해서 다시 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거든요. 제가 확실하게 준비해서 대화에 드러난 사람들 모두 한번 털어보겠습니다.”

“그래요? 좋습니다. 이틀 뒤에 외교부 감사실 쪽 사람들과 만나기로 했는데, 그것까지 모두 녹취해서 드리도록 하지요.”

“아, 좋지요. 너무 좋습니다. 그러면 오늘 일단 제가 녹취 들으면서 궁금한 것들 좀 여쭤보고 정리하면 되겠습니다.”

“네. 물어보세요.”

“으음, 저한테 정리해주신 이메일 문건, 다른 매체의 기자들에 똑같이 뿌리고 그러신 건 아니죠?”

“네. 전에 연락을 했던 기자들이 몇 명 있는데, 몇 번 찝쩍이기만 하고 이미 기사를 쓴 기자들은 연락이 없지요. 확인하셨겠지만....”

“원래 방송사나 유력 일간지 기자들은 다 그렇습니다. 한두 번 때리고 단물 빼먹으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네. 그런데 물어보신다는 게....?”

“아, 죄송합니다. 이 녹취를 제가 오늘도 오면서 지하철에서 찬찬히 다 들으면서 정리를 했는데요. 결국 이 박 부대표와 처음 만났을 때, 요구하셨는데, 이 사람이 알겠다고 대학 측에 전달하겠다고 한 그 문건이 제대로 전달이 안되었다는 거잖아요? 두 번째 전화 녹취 내용을 보면....”

“네. 처음 대표부를 찾아가서 만나서 이야기했을 때는 자기가 대학 측에 문제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성평회의 불공평한 조사 방식에 대해서도 제가 가져다준 문건을 전달하고 시정을 요구하겠다고 했거든요, 들으셨겠지만...”

“네. 그러셨죠.”

“그런데, 나중에 결과적으로 확인해보니, 한국어학과 학과장에게 개인적으로 말했다는 둥, 다른 한국인 교수를 통해서 말했다는 둥, 그런 헛소리를 하며 얼버무리는 거예요.”

“그런데 국회의원실을 통해 외교부에 정식 문의를 했을 때는 마치 대학 측에 그 문건을 전달했다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제대로 대학 측에 조사를 요구했으면 이렇게까지 일이 오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랬겠네요.”

“사실 이메일에는 빠져있는데 1심이 끝나고 나서 발견된 그들이 감췄던 증거가 나온 게 있어요.”

“네?”

“처음 그 여학생이 학교 성평회에 일을 꾸미고 자신이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며 제출했던 진술서를 학교 성평회에서도 가지고 있었고, 그대로 검찰에도 전달되었고, 심지어 검찰 측의 자료로 법원의 판사도 열람이 가능했었는데, 그걸 끝까지 저와 변호인에게 공개해주지 않았어요.”

“그 진술서가 뭔가 반전의 증거가 되었나요?”

“네. 아시겠지만 성추행 관련 범죄에서는 초기 피해자라고 하는 이의 진술이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잖아요.”

“그렇죠. 진실 여부도 그렇고 피해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그렇고...”

“그 진술서가 이건 데요. 중국어 못하시니까 간략히 설명을 해드리자면....”


박 교수가 태블릿에 띄운 악녀가 쓴 진술서를 보며 설명해주었다.


“이건 그냥 한자로 적혀 있네요?”

“네. 번체자가 그냥 한자와 똑같으니까요. 여기 피해 장소를 적은 걸 보세요.”

“피해 장소, 그러니까 강의실, 교실, 이건 뭐죠? 전기 전자에...”

“띠엔티...엘리베이터라는 중국어예요. 이걸 보면 취재 전문 기자에게는 어떤 생각이 드나요?”

“다 공개된 장소들이잖아요. 게다가 CCTV를 보.... 아!”

“네. 맞습니다.”

“그러면 CCTV를 모두 찾아보신 건가요?”

“찾아볼 필요가 없죠. 그런 장면은 없었으니까....”

“아! 이 여학생이 급한 마음에 공개된 장소를 적었는데 증거가 없다는 것까지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한 거였군요.”

“그런 것도 있지만, 내가 부임하기 전 한참 동안, 하도 건물이 낡아서 엘리베이터의 CCTV가 고장 나 있었대요. 그런데 제가 부임하기 바로 직전에 최신식 화질도 좋고 저장도 6개월 이상되는 장비로 싹 개비를 했는데, 그 여학생이 그 부분을 놓쳤던 거죠. 그만큼 타이완 애들이 허술해요. 꼼꼼하고 치밀하지 못하고...”

“그렇군요. 그러면 이건 결정적인 그 여학생의 무고 증거가 되겠군요.”

“그렇죠. 게다가 이메일에는 구구절절이 쓰지 않았지만, 이 사건이 터지고 학교 정신과 상담센터에 상담을 받으라고 성평회에서 주선을 했었나 봐요. 그런데 그 여학생이 상담센터의 상담사에게 자기는 정신적으로 충격받은 사실이 없으니까 상담은 필요 없다고 이야기하고 서명한 서류도 발견되었어요. 그런데 마침 나도 거기 교수로 재직 중이었어서 나는 충격 때문에 정작 그 센터에서 4개월이 넘게 상담치료를 받았거든요.”

“아! 이거 정말 타이완에 가서 취재할 수 있으면 대박이겠는데요.”


젊은 기자는 흥에 겨워 혼자서 계속 필기를 하며 말했다.


“그알의 배 피디를 모레 만나기로 했다고 했죠? 그 친구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처럼 심드렁하던데요?”

“뭐 매체마다 특성이 다르고 지금 다른 것에 꽂혀서 그럴 수도 있고, 그건 제가 알 수가 없죠. 하지만 저는 말씀드렸던 것처럼 외교부를 때리는데 집중할 계획이고, 제가 오래 기자생활을 한 건 아니지만, 주로 억울한 분들의 억울함을 풀어드리고 진실을 보도하는 기획취재를 많이 해서 그런지 들어보고 증거 얘기 들어보면 견적이 딱 나오거든요. 교수님은 게다가 1심에 실형까지 선고받으셨으니 정말 일반 사람들 같았으면 못 견뎠을 거예요.”

“그렇게 알아주니 고맙네요. 그런 확실한 상황이었음에도 재외국민 보호에 대한 영사 규정이 어쩌고 하면서 부대표라는 놈이 빼고 빼고 한 정황이 들은 통화 그대로였어요.”

“네. 그리고 파일 모두 보내주시면 참고하긴 하겠지만, 외교부 재외국민 보호과장이랑 국장은 어떻게 대처하던가요?”

“일단 내가 공식적인 메일을 통해서 대표와의 면담을 요청한다고 계속 말했는데 무시당했어요. 단 한 번도 대표와의 면담을 하지 못했어요.”

“아....”

“그리고 재외국민 보호과장이 중간에 한번 바뀌어서 두 명을 통화했었는데, 이전 과장은 자기가 미주지역으로 순환보직으로 발령받을 차례랍시고 시간을 끌다가 그해 8월에 미국에 들어가 버렸고요. 그다음 바뀐 현재 과장이라는 작자가 아주 더티하기 그지없었어요. 이야기하다 말고 중간에 전화를 끊어버리질 않나, 박준기 부대표라는 놈이 보낸 두루뭉술한 문건을 보면서 그대로 타이베이 대표부는 최선을 다했다고 하는데 내가 뭔가 더 심한 것을 요구하고 강요했던 것처럼 굴더라구요. 심지어 대표가 지가 귀족인 것처럼 자기는 민원인을 직접 만나주지 않는다는 행세를 하더니 새로운 대표도 지금 그러고 있고, 과장이라는 놈이, 이제는 자기가 직접 상대할 필요가 없다면서 중국 담당이랍시고 경찰청에서 외교부에 파견 나온 어린 경감애들이 응대하도록 돌려버렸어요.”

“그러셨군요.”

“외교부에 파견 나와 있는 경감애들이 뭘 안다고, 걔네는 말 그대로 외교부에서 수혜 하는 식으로 경찰민원의 지저분한 일을 지들이 하기 싫으니까 경찰청의 인원을 파견받는 거고, 경찰청에서는 지난번 멕시코에 나간 그 정신 나간 총경처럼 경찰 영사라는 명분으로 해외에 나가 코에 바람을 넣을 수 있는 가족 해외연수의 기회니까 그렇게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존관계를 유지하는 것 같더라구요.”

“정말 그렇네요. 외교부에 대해서 이번에 아주 속속들이 다 벗겨낼 수도 있겠네요.”

“더 궁금하신 거는요?”

“아닙니다. 일단 핵심은 확실하다는 걸 확인했으니까요. 오늘 파일 다 보내주시면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다 듣고 나서 다시 궁금한 거 질문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기사가 나중에 킬 당하더라도 최소한 취재라도 제대로 외교부를 찔러가면서 했으면 좋겠네요.”

“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기획취재로 들어가면 킬 당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박 교수는 길고 긴 미팅으로 매번 했던 설명을 또 하도 또 하는 일을 반복해 나아갔다. 혀끝이 갈라지는 힘겨움 속에 밤늦게 돌아왔지만,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혼자서 타이베이의 시먼딩 한복판 꼭대기층에 갇혀 있던 것보다는 한결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부모님의 댁에 가서 어머니가 손수 챙겨주신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잠시 쉰다고 누었는데, 잠이 들어버렸다. 오후에 만나기로 했던 장자연 일보의 국제부 기자에게서 연락이 오면서 눈이 번쩍 떠졌다.


“여보세요.”

“네. 교수님. 전화 제가 너무 늦게 드렸죠? 한국에는 잘 들어오셨다구요? 다행입니다. 정말로.”

“아, 정 기자. 내가 말한 거 한번 생각해봤어요?”


광화문이라 타이완 서울대표부 사무실과 가깝기도 했지만, 그에게 박 교수는 타이베이 서울대표부를 압박해달라고 요청하는 이메일을 기획안으로 하여 보냈었다. 양국이 정상 교류국이 아니니 대사관이 아닌 대표부라는 이름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 나라에서 대한민국 국민이 그 나라의 입법위원을 필두로 한 린치를 당했는데, 정식으로 항의하고 진실을 취재하겠다는 것은 4대 일간지 중에서는 가장 큰 덩치를 가지고 있는 장자연 일보가 적합하지 않겠냐는 스승의 아이디어와 소개로 출발한 것이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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