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랑비크 맥주를 마실 수 있다.(아래 상술) 물론 현지에 가면 아직도 랑비크를 만들어 제공하는 곳도 있긴 하지만 많이 없어졌다. 오히려 현재는 랑비크의 원액을 그대로 마시기보다는 괴즈 등 다른 랑비크의 재료로 이용하거나 벨기에 전통 요리의 맛술로 활용되곤 한다. 브뤼셀이나 브라반트 일대의 레스토랑에서 홍합요리 등에는 반드시 비린내 제거하는 용도로 마법의 조미료, 랑비크가 활용되고 있다.
특유의 발효향과 풍미가 치즈와 식초를 섞은 듯한 풍미가 느껴지면서 해산물의 비린내를 잡는 것은 물론 크리미한 향까지 만들어주는 신기한 향을 즐길 수 있다. 당연히 약간의 알코올은 가열로 인해 휘발되어 버리고 발효가 된 원액의 진액이 해산물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랑비크의 양조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가장 오래된 맥주의 자연발효방식을 고수하는 만큼 전통적인 제조법을 철저히 고수한다. 60~70%의 보리 맥아와 나머지 30~40%의 밀 몰트를 배합한 뒤 맥아즙을 끓여서 큰 나무통에 담아 하룻밤 식혀서 재워 둔다. 그리고 난 후, 맥아즙을 공기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도록 처리한 뒤 최소 6개월에서 길게는 와인처럼 몇 년간의 발효 과정을 거친다.
일반적인 맥주는 제조 과정에서 젖산 등의 잡균으로 야기되는 변질을 방지하기 위해 산소를 철저히 차단해야 하는데, 랑비크는 발효 과정을 위해 공기와 끊임없이 노출시키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 과정이 가장 핵심으로 출아균류(Saccharomyces cerevisiae, Saccharomyces pastorianus)나 브렛(Brett)이라는 명칭으로 유명한 Brettanomyces 계통의 균류, 특히 lambicus라는 야생 효모가 맥즙에 침투한다.
뿐만 아니라 유산균(Lactobacillus)까지 더해져 특유의 강렬한 신맛을 만들어낸다. 발효 이후에 같은 환경에 놓여 있다고 하더라도 각각의 케그마다 미묘하게 맛이 달라지는데, 맥즙에 담겨 있는 효모의 양이라던가 발효의 정도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완전 발효가 완성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점과 자연환경에 따라 영향을 워낙 많이 받기 때문에 대량생산이 어렵다.
특히, 계절적 환경에 가장 민감한 영향을 받는 편인데, 발효에 가장 최적의 시간인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라 하더라도 이상기후 등의 악재 때문에 환경이 일정하지 않은 경우 전체를 망쳐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의 장이나 묵은지의 발효과정과 아주 유사하다는 느낌이다.
랑비크 맥주에도 홉(Hob)이 들어가지만 한 가지 기능만으로 활용된다?
11세기경 초반 즈음 홉이 맥주 제조에 사용되면서 유럽인들은 맥주의 맛과 향의 증가와 방부 기능까지 터득하게 되었으나, 랑비크의 경우에는 발효 기간이 길면 길수록 아무래도 산패 가능성이 높아지는 탓에 이를 막기 위해 홉이 필수적이었다.
모든 맥주에 홉을 반드시 첨가한다는 인식이 굳게 자리 잡힌 19세기 초반 무렵에는 양조에 알스트(Aalst), 포페링거(Poperinge) 지방에서 생산된 홉이 주로 사용되었다. 현대의 랑비크 양조사들은 홉이 강조되는 맥주여서는 안된다는 전통적인 개념이 강해서 홉의 향과 맛을 억제하기 위해, 건조시켜 사용하기 때문에 그 맛과 향이 대부분 사라져버리고 방부 기능만을 유지하는 기능으로만 활용된다.
덕분에 랑비크의 풍미는 주로 치즈와 같은 쿰쿰함과 함께 어우러진 약초, 솔, 진흙, 건초, 짚 계통의 홉 향이 약초 비슷하게 느껴지는데, 이러한 전통적 방식을 중시하는 랑비크 양조사들이 최고로 인정하며 사용하는 홉(Hob)은 알스트(Aalst-Asse)지방에서만 생산되는 퀴노(Coigneau) 품종이라고 한다.
랑비크의 종류
랑비크의 종류는 블렌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종류는 만들어내는 대로 증가한다. 특히 뒤에 후술하게 될 과일 등의 재료나 같은 랑비크 원액끼리 섞는 과정을 통해 취향에 따라 전혀 새로운 맛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종류를 가질 수 있다.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원액이 갖는 특유의 강한 산미와 특유의 구린내로 대중적이진 않기 때문에 그것을 완화시키기 위해 설탕을 첨가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전통과 정통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성향의 랑비크 양조사나 블렌더들과 람빅의 참맛을 즐기는 이들은 다른 건 몰라도 설탕을 넣어 가당 처리하여 마시는 것은 랑비크를 모독하는 것이라 여겨 경멸하는 편이다.
전통 방식으로 양조된 랑비크는 ‘트래디셔널(Traditional)’이라고 한다. 보통 전통 랑비크를 특유의 코르크 마개로 밀봉된 샴페인 병으로 출시하는데, 라벨에 ‘우드(Oude)’가 붙인다. 이 의미는 ‘오래된’이라는 의미이다. 말 그대로 원액 그대로이기 때문에, 젖산균에서 나온 강렬한 신맛과 브렛에서 나온 꿈꿈함이 그대로 남아 있어, 일반인은 마시기 굉장히 힘들어 그저 모험심에 도전할만한 것은 아니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의 청국장을 그대로 맛본다거나 된장을 그냥 손가락으로 찍어 퍼먹는 느낌을 생각하면 비슷할까? 하지만, 그렇게 시작하여 공부를 하고 조금씩 맛보기 시작하면, 진정한 맥주의 오리지널리티를 찾아 다른 맥주는 싱거워서 못 마신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중독성이 강한 편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호불호가 너무 강해서 시장성이 없다 보니 랑비크 맥주의 본토인 벨기에조차 철저히 찾는 이들만 마시는 특정 맥주였고 그조차도 대부분 설탕이나 과일시럽, 크왁(Kwak)에 섞어 먹었다. 그래서인지 18세기 말엽에는 원액에 설탕을 첨가하는 파로(Faro)가 개발되어 유행하자 이를 기반으로 가당 랑비크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를 ‘스위트니드(Sweetened)’라고 한다.
현대에 와서는 살균처리를 하고 가당 처리를 하게 되면, 당연히 달달해지면서 불쾌했던 쿰쿰함도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대중성을 크게 확보하는 맛으로 변한다. 하지만 이렇게 할 경우에는 랑비크의 본래 개성이 모두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굳이 랑비크를 마실 의미가 없다며 보수파들에게 욕을 먹는 것이다. 이 문제는 내내 랑비크 양조장의 영원한 난제이다.
랑비크 맥주를 와일드 에일(Wild Ale)이라고도 부른다?!
랑비크 맥주는, 법적으로 전 품목이 지리적 표시제의 보호를 받고 있어서 다른 지방에서 자연발효식을 만들더라도 랑비크라는 이름을 함부로 내걸고 팔 수 없다. 예를 들어 미국의 어떤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이 랑비크의 제조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지켜 만들어 냈다고 하더라도 완성품을 출하하여 판매할 때에는 라벨에 ‘람빅’이라고 대놓고 붙여 판매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럴 경우 보통 브렛이 첨가된 상면발효 맥주들을 통틀어 가리키는 신조어인 ‘와일드 에일(Wild Ale)’이라는 명칭을 대신 사용하곤 한다.
1. 원액(Unblended)
앞서 설명한 전통방식으로 만들었다는 의미의 ‘트래디셔널(Traditional)’과 헷갈리지 않도록 주의할 것. 원액은 탁하고 거품기가 없고 무탄산에 시큼한 신맛을 가지고 있으며 드래프트로만 판매된다. 그중 발효 기간에 따라 짧으면 ‘Jonge’, 길면 ‘Oude’라는 명칭이 붙으며 몇 년 발효를 했는지를 표기한다. 주로 칸티용에서 출하되는데 양조장을 방문한 관광객이 시음을 원하면 가장 먼저 주는 것이 1년 정도 발효시킨 원액을 따라 준다. 알코올 도수는 보통 5%도 정도다.
2. 크릭(Kriek)
랑비크의 원액에 체리를 첨가한 것을 의미한다. 주로 사용되는 체리는 신맛이 강한, 모렐로(Morello)종으로 이를 벨기에에서 개량한 ‘Schaarbeekse krieken’을 현지에서는 최고로 친다. 다른 과일을 첨가한 것과는 달리, 가장 역사가 오래된 과일 첨가 방식으로 하나의 스타일로 굳어져 이후에 여러 가지 과일을 넣는 방식의 프루트 랑비크로 분류해야 하는 지조차 조금 애매할 정도로 원조격에 해당한다.
체리맛과 향이 가미되어 있어서 랑비크치곤 거품이 제법 있는 편이다. 원액이 너무 시큼하고꿉꿉한 맛이라고 거부감을 일으키는 일반인들도 이 맥주는 은은한 체리향으로 코팅되어 거부감을 많이 줄인 편이다. 사실 일반인들이 그럭저럭 마시는 것은 여기에 가당 처리를 한 것이고, 가당 처리가 되지 않은 현지 전통 방식으로 만든 정통 크릭은 웬만한 드라이 와인 뺨칠 정도로 신맛이 매우 강하고 드라이한 것이 특징이다.
정통 크릭의 경우, 체리에 조금이나마 있던 당분도 발효되느라 거의 다 사라져 버리고 말기 때문에 끝 맛에서만 약간 단맛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대중화하기 위해 가당 처리를 하기 시작한 크릭이 나오게 된 것이다. 가당 처리가 된 것은 플랜더스 레드 에일과 맛이 거의 유사하다.
3. 프루트(Fruit) 랑비크
원액에 과일을 담가 약 1~2주 추가 발효시키고 이후 3~6개월간의 숙성기간을 거치며 가장 대중적인 프루트 랑비크로 꼽히는 ‘프랑부아즈(Framboise)’는 라즈베리를 부가물로 사용한 랑비크이다. 과일을 어떤 것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맛과 향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보통 첨가하는 과일의 이름에 따라 분류하며 명칭도 그에 맞게 달라지는데 명칭은 왈롱식 프랑스어와 플란데런 네덜란드어가 섞여 있는데,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과일 첨가물에 따른 프루트 랑비크 이름
라즈베리 Framboise(프람부아)
사과 Pomme(폼)
블랙커런트 Cassis(카시스)
복숭아 pêche(뻬슈)
포도 druif(드뤼프)
딸기 aardbei(아드베이)
바나나 banane(바나너)
파인애플 ananas(아나나스)
살구 abricotier(아브리코치)
자두 prunier(프루니)
레몬 citron(시트롱)
블루베리 bleuet(블루엣)
4. 괴즈(Geuze)
앞서 잠깐 설명에 나왔던 랑비크를 배합해 숙성한 파생형 맥주를 말한다. 약 2년 가량 묵혀 신맛이 감도는 원액과 만든 지 1년 안팎인 단맛과 신맛이 강한 원액 두 종류를 적절히 혼합한 뒤, 샴페인과 비슷하게 코르크 마개로 막아놓은 병에 담은 채로 2차 발효를 시킨다. 이 과정에서 탄산이 축적되며, 완성된 맥주는 누런 색깔 또는 옅거나 진한 갈색을 띤다. 다만 이 맥주도 결국 랑비크가 없으면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벨기에 외의 지역에서는 거의 생산되지 못한다. 그나마 드라이한 성향의 샴페인과 식감이 꽤 비슷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맛은 조금 강한 편이다.
5. 파로(Faro)
랑비크의 원액에 설탕을 첨가한 방식이다. 첨가물로 캐러멜, 당밀, 흑설탕, 빙설탕 중 하나를 쓰는데 발효용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발효가 끝난 원액에 병입 전에 넣기 때문에 흑갈색을 띠며 새콤달콤한 맛이 난다. 랑비크 자체의 맛과 향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려는 시도로 설탕을 넣은 것으로 주로 사탕무에서 추출한 설탕이나 당밀을 사용했다고 한다. 6도 미만의 낮은 도수와 조화로운 단맛과 신맛을 가지고 있으며 특유의 꿉꿉함이 거의 희석되어 일반인들도 큰 진입장벽 없이 마실 수 있다.
19세기 초에 유행하기 시작해 벨기에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던 스타일인데, 당시 설탕이 아닌 원가를 낮춰 차익을 남기려는 장난질로 인해 술에 이상한 것들이 들어가면서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는 가장 싸구려 술로 전락하기도 했었다. 현대에 오면서 그나마 전통적으로 마시던 랑비크라는 인식이 있어 가당 처리방식의 대명사처럼 남았다.
벨기에산 랑비크 맥주를 마셔보고 싶은데 추천 좀 해주세요.
랑비크 맥주 자체가 벨기에 브라반트 주 서부지방으로 한정되어 있는 만큼, 양조장도 그나마 몇 개 없다. 여기서 소개하는 것도 양조장 기준의 전통 메이커들이다. 손에 꼽을 정도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신생 양조장도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현재 한국에 수입되고 있는 ‘틸퀸 Tilquin’은 유일하게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양조장으로 2008년 설립된 신생 양조장이다. 2018년에 설립된 가장 젊은 양조장인 ‘랑비크 패브릭’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