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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Mar 22. 2022

창업 멤버 아니라는 이유로 꿈을 펼치지 못하고 밀려나도

자신이 직접 창업하여 모체가 된 회사를 병합하여 커피 황제로 인정받다.

191번째 대가의 이야기.


세 친구는 1960년대 샌프란시스코대학교(University of San Francisco)에서 만난 동창이었다. 졸업 후 한 사람은 영어 교사로, 한 사람은 프리랜서(Freelancer) 작가로,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은 역사 교사로 각자 시애틀에 정착했다. 커피 애호가라는 공통점이 있었던 세 사람은 좋은 커피가 있거나 발견하게 되면 그것을 공유하는 모임을 지속해 나갔다.


1970년대 대다수 미국인은 쓴맛이 강한 로부스타(Robusta) 커피를 주로 마셨지만, 세 사람은 부드럽고 향기가 뛰어난 아라비카(Arabica) 원두를 선호했다. 하지만 북미 쪽에는 아라비카 원두를 판매하는 공급처가 많지 않았고, 이들이 거주하던 시애틀에는 그나마 한 곳도 없었다. 이들은 우편 주문을 하거나 혹은 캐나다 등지까지 직접 가서 아라비카 원두를 사 오곤 했다.


그러던 중 세 친구들은 시애틀 인근에 자신들이 직접 아라비카 원두 판매점을 열기로 뜻을 모았고, 1971년 각자 1만 달러를 투자해 시애틀(Seattle)의 지역 시장인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에 작은 매장을 열어 원두(Bean)와 차, 향신료 등을 판매하는 커피 전문점을 오픈했다. 당시 이들은 유명한 해양 소설 모비딕(Moby Dick)에 등장하는 커피를 좋아하는 일등 항해사 ‘스타벅(Starbuck)’의 이름을 딴 ‘스타벅스 커피, 티 앤 스파이스(Starbucks Coffee, Tea and Spice, 스타벅 3명이라는 뜻으로 ‘스타벅스(복수형)’를 취함)’와 사이렌(Siren, 바다의 신)의 형상을 응용해 간판을 만들었다. 이것이 오늘날 ‘스타벅스’ 브랜드의 시작이 되었다.

고든 보커(Gordon Bowker), 제럴드 제리 볼드윈(Gerald Jerry Baldwin), 지브 시글(Zev Siegl). 1971년

현재 가장 대표적인 커피 전문 프랜차이즈(Franchise) 브랜드로 모두가 인정하는 스타벅스(Starbucks)는 커피를 비롯해 차, 주스, 디저트, 머그, 텀블러 등을 판매하는 커피 전문점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원래 대학 동창이던 세 사람, 프리랜서 작가였던 고든 보커(Gordon Bowker), 영어교사였던 제럴드 제리 볼드윈(Gerald Jerry Baldwin), 역사교사였던 지브 시글(Zev Siegl)에 의해서 시작된 이 회사를 정작 프랜차이즈로 키워 변모시킨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의 이야기이다.


하워드 슐츠는 1983년 스타벅스 커피, 티 앤 스파이스에 합류해 원두 판매점에서 감성적 체험을 제공하는 커피 프랜차이즈(Franchise) 브랜드인 스타벅스로 전환시킨다. 이후 스타벅스는 세계시장에 진출해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늘려나갔고, 1990년대 이후 적극적인 인수 합병을 통해 캔커피, 병커피, 인스턴트커피, 주스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며 현재의 메머드급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뉴욕 브루클린 유대인 가정에서 1953년 태어난 하워드 슐츠는 자신이 3세 때 가족과 함께 브루클린 남동부의 이웃 커나시에 있는 베이뷰 집합 주택으로 이주하였다. 슐츠는 운동선수로 자신 집 주변 농구 코트와 학교 미식축구 필드에서 경기를 치렀다. 그는 1970년 노던미시간 대학교에 미식축구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며 브루클린 지역에서 벗어나게 된다.


한편, 커피 매장 오픈 후, 고든 보커, 제럴드 제리 볼드윈 그리고 지브 시글은 원두 공급업체인 피츠 커피&티(Peet’s Coffee&Tea)에서 아라비카 원두를 공급받아 로스팅(Roasting, 생 원두에 열을 가하여 볶는 공정) 한 후 팩에 담아 판매했다. 스타벅스 커피, 티 앤 스파이스의 판매량은 이들의 예상을 앞질렀고, 며칠 후 지역 일간지인 시애틀 타임스(Seattle Times)에 이들의 매장과 관련된 기사가 실리면서 매출은 급격히 상승했다. 9개월 이후 스타벅스 커피, 티 앤 스파이스는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지역 커피 재배업자들에게 직접 아라비카 원두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스타벅스 커피, 티 앤 스파이스의 매출은 꾸준히 늘어나 1972년부터 시애틀 유니버시티 빌리지(University Village)에 두 번째 매장 오픈을 시작으로 1980년까지 시애틀 인근 벨뷰(Bellevue), 캐피톨 힐(Capitol Hill), 유니버시티 웨이(University Way) 지역에 매장을 잇달아 열었다. 설립 초기 제럴드 제리 볼드윈을 제외한 두 사람은 본업을 하면서 파트타임(Part Time, 비상근)으로 틈틈이 스타벅스 커피, 티 앤 스파이스의 업무를 돕고 있었다.

스타벅스 커피, 티 앤 스파이스 매장 실내 전경과 초기 로고

한편, 슐츠는 1975년 통신학에서 과학사와 함께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에 스웨덴의 커피 메이커(Coffee maker) 제조회사인 ‘해마플라스트(Hammarplast)’의 기구 판매원으로 일하였다. 1980년대 초반, 판매 국장으로 진급한 슐츠는 메이시스 시보다 워싱턴주 시애틀 시에서 당시 스타벅스 커피(티 앤드 스파이스 컴퍼니)라는 작은 회사가 자신보다 커피 메이커를 더 많이 판매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슐츠는 시애틀로 이주한 이유를 말했다.

“스타벅스가 단지 상점 몇 개를 운영했는데도 매달마다, 분기마다 판매량이 증가하였다. 그리고 시애틀로 가야 했다.”


슐츠는 1981년 초기의 스타벅스에 처음으로 들어선 기억이 뚜렷하다고 했다. 당시 스타벅스는 겨우 10년 된 회사로 시애틀 외부에는 지점도 없었다. 회사의 원래 소유자들이던 세 친구를 만났을 때를 슐츠는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내가 처음으로 이 상점에 들어가자 집에 있는 느낌이었다. 난 그것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난 내가 특별한 장소에 있었고 나에게 말한 제품 종류를 알았다. 난 전혀 좋은 커피 한잔을 한 적이 없다. 난 회사의 창립자들을 만났고 정말 거대한 커피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었다... 난 그냥 ‘맙소사, 이것은 그간의 내 전문적 인생을 위하여 찾아온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이후 그는 스타벅스 커피, 티 앤 스파이스에 합류하고 싶다는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하며 1년 후인 1983년 스타벅스 커피, 티 앤 스파이스의 식구가 되었다. 하워드 슐츠가 당시 커피 음료가 아닌 커피콩을 팔은 자라나는 커피 회사를 위하여 소매업과 마케팅을 위한 대표이사로 합류하면서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1982년까지 스타벅스 커피, 티 앤 스파이스는 로스팅 공장 1곳과 원두 판매점 5개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지역 레스토랑과 에스프레소 바(Espresso Bar)에 원두를 공급하는 업체로 성장했다. 이 시기 설립자 중 한 사람이었던 지브 시글은 본인의 별도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 회사를 떠났다.


1983년 하워드 슐츠는 이탈리아 밀라노(Milano)에서 열리는 국제 가정용품 전시회(MACEF)에 참석하게 되었다. 당시 그는 길가에 있는 수많은 에스프레소 바에 이탈리아인들이 스팀밀크(Steam milk)와 에스프레소 등이 어우러진 커피를 마시며,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보고 그 카페 문화를 미국에 적용해야겠다는 아이디어로 결심을 다음과 같이 하게 된다.


“스타벅스는 커피콩뿐만 아니라 커피 음료를 팔아야 한다. 난 어떤 것을 보았다. 커피의 낭만뿐이 아니라, 공동체 의식, 그리고 사람들이 커피를 마셔야 했던 연결을.”


하워드 슐츠는 미국에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하며, 제럴드 제리 볼드윈과 고든 보커에게 매장 내에서 에스프레소 바 운영을 제안했다. 그러나 제럴드 제리 볼드윈과 고든 보커는 커피 음료 판매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커피의 맛’과 맞지 않는다며 제안을 거절했다. 

끈질긴 설득 끝에 1984년 하워드 슐츠는 매장 일부를 활용해 6개월간 에스프레소 바를 시범 운영하게 되었다. 스타벅스 커피, 티 앤 스파이스의 6번째 매장 오픈에 맞춰 진행된 에스프레소 바는 성공적이었지만 제럴드 제리 볼드윈과 고든 보커는 끝내 자신들의 본래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들의 이러한 결정에 실망한 하워드 슐츠는 1985년 자신이 구상한 커피 프랜차이즈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스타벅스 커피, 티 앤 스파이스를 떠났다.


스타벅스 커피, 티 앤 스파이스에서 나와 따로 독립한 하워드 슐츠는 1985년 시애틀에 별도의 커피 프랜차이즈인 ‘일 지오날레 커피 컴퍼니(il Giornale Coffee Company, Il giornale는 이태리어로 ‘매일’이라는 뜻으로 이태리의 유명 일간지의 명칭을 따옴)’를 설립했고, 얼마 후 시카고에 첫 번째 ‘일 지오날레’ 매장을 오픈했다. 

일 지오날레(il Giornale) 매장 전경

그는 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제럴드 제리 볼드윈과 고든 보커의 30만 달러와 개인 투자자 론 마골리스(Ron Margolis)의 10만 달러 등을 포함하여 총 4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았고 일 지오날레 커피 컴퍼니는 주식회사로 운영되었다.


하워드 슐츠는 본래의 자신이 영감을 받았던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일 지오날레를 운영하기 시작한다. 그는 일 지오날레에서 스타벅스 커피, 티 앤 스파이스에서 공급받은 원두로 카푸치노(Cappuccino), 카페라테(Caffe Latte)와 같은 커피음료를 판매하기로 했고,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바의 모습과 분위기를 그대로 매장에 적용했다. 


하워드 슐츠는 일 지오날레의 메뉴판을 이태리어로 만들었고, 매장 내부에는 클래식 음악을 틀었으며, 직원들은 나비넥타이를 매도록 했다. 또한, 이름에서처럼 그날의 일간지를 매장에 비치했다. 또한, 하워스 슐츠는 시애틀의 커피 전문가인 ‘데이브 올슨(Dave Olsen)’을 영입해 직원들에게 커피에 대한 교육을 맡겼다.


일 지오날레는 오픈하자마자 아라비카 원두를 사용한 커피의 풍부한 맛과 매장 분위기로 금세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고 개장 6개월 만에 하루 1천 명 이상의 고객을 끌어들이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일 지오날레는 곧 시애틀에 2번째 매장을 개설했고 캐나다 밴쿠버(Vancouver)에 3번째 매장을 열었다. 


그러나 고객들이 이탈리아어로 된 메뉴판과 직원들의 정장 등을 부담스러워 하자, 하워드 슐츠는 편안한 매장 분위기를 유지한 채 메뉴판을 영어로 바꾸고 직원들의 복장 규정도 완화시켰다. 그는 이때 매장이 늘어감에 따라 균일한 커피 맛을 고객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직영점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게 되었다.


1987년 하워드 슐츠는 고든 보커와 제럴드 제리 볼드윈이 3년 전에 사들인, ‘피츠 커피 앤 티’ 경영에 집중하고자 ‘스타벅스 커피, 티 앤 스파이스’를 판매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 지오날레의 투자자들의 도움으로 ‘스타벅스 커피, 티 앤 스파이스’를 인수했다. 하워드 슐츠는 스타벅스 커피, 티 앤 스파이스를 일 지오날레 커피 컴퍼니로 합병시키고 일 지오날레 매장의 이름을 스타벅스로 만든 후 회사명을 ‘스타벅스사(Starbucks Corporation)’ 로 변경했다.

1987년 하워드 슐츠는 스타벅스를 인수한 뒤 스타벅스 매장에서도 직접 커피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고, 그 해 스타벅스사의 첫 번째 해외 매장을 캐나다 밴쿠버에 열었다. 스타벅스사는 태평양에 면한 북미대륙의 북서 지역(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Portland) 및 워싱턴주 시애틀, 캐나다 밴쿠버)과 시카고에서 매장을 늘려나가 6개의 매장을 열었다. 스타벅스사의 매장은 하워드 슐츠가 세운 원칙에 따라 직영점으로 운영되었다.


1988년 스타벅스사는 처음으로 우편주문 카탈로그를 발간해 원두 판매를 시작했고 미국 전역에 유통망을 확보했다. 1990년에는 수신자 부담 주문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소규모 전화, 컴퓨터 시스템에 투자했는데, 이를 통해 고객들과 커피에 대한 수준 높은 일대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1990년 사상 첫 흑자를 냈고 이를 기반으로 1991년 캘리포니아에 진출할 수 있었다.


1992년 스타벅스사는 나스닥(NASDAQ)에 주식을 상장했고, 165개의 매장을 소유한 커피 전문 프랜차이즈로 성장했다. 늘어나는 커피의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1993년 워싱턴주 켄트(Kent)에 두 번째 로스팅 공장을 설립했다. 1994년 하워드 슐츠는 커피에 관한 재미있고 다양한 정보를 보여주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매장 분위기를 바꾸길 원했고 그 해 디자이너 출신의 기업가인 라이트 메세이(Wright Massey)를 영입했다.

라이트 메세이는 스타벅스 매장을 하루에 한 개만 개장하도록 하는 ‘시너지 스틱 롤아웃 프로그램(Synergistic Rollout Program)’을 개발해 스타벅스사가 1년에 2천만 달러(약 200억 원, 1달러 기준 1천 원)를 절감할 수 있도록 이바지했다. 라이트 메세이는 또한, 스타벅스사 내에 브랜드 아이덴티티(Brand Identity)와 매장 디자인 등을 담당하는 크레이티브 서비스(Creative Services) 부서를 조직해 스타벅스 매장의 디자인을 변경했다. 


그는 스타벅스 커피의 로스팅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 매장 한편에 공간을 만들어 직접 원두를 넣어 전시했으며, 편안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물(파란색)과 로스팅된 원두(빨간색), 식물(초록색), 땅(갈색)을 상징하는 색들을 활용해 매장을 꾸몄는데, 예를 들어 스타벅스 매장에서 제공하는 냅킨과 설탕 포장에는 갈색을 사용했다. 변경된 스타벅스 매장은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1994년까지 매장을 400개 이상으로 늘려나갔다.


1994년 스타벅스사는 펩시코사(PepsiCo.Inc)와 함께 북미 지역 RTD(Ready-To-Drink, 캔과 병에 넣은 즉석 음료 형태) 커피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합작투자회사인 ‘북미 커피 파트너십(North American Coffee Partnership)’을 설립했다. 북미 커피 파트너십은 스타벅스사의 커피에 대한 전문성과 펩시코사의 유통 배급망 및 캔 음료 제조 기술을 결합한 회사였다.

스타벅스 더블샷 커피캔(초기)

1995년 스타벅스사는 혼합 음료인 프라푸치노(Frappuccino)를 판매하기 시작했고 독특한 맛으로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스타벅스사는 프라푸치노의 수요 증가로 펜실베이니아주(Pennsylvania)의 요크(York)에 세 번째 로스팅 공장을 설치했고, 다음 해인 1996년에는 북미 커피 파트너십을 통해 대표상품인 프라푸치노를 병에 담아 판매하기 시작했다. 또한, 같은 해 처음으로 북미 대륙을 벗어나 일본 도쿄와 싱가포르에 매장을 오픈하면서 전 세계 스타벅스 매장의 수는 2년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하여 1,000개를 넘어섰다.


스타벅스사는 1998년 아프리카의 커피 체인점인 시애틀 커피 컴퍼니(Seattle Coffee Company)의 영국 매장 65개를 인수하면서 유럽시장 진출을 시작했고, 미국의 종합 식품 제조업체인 크래프트 푸즈(Kraft Foods Group)와 파트너십을 맺어 카페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의 식료품 잡화점에도 스타벅스사의 원두를 포장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1999년 스타벅스사는 미국의 차 제조업체인 ‘타조 티(Tazo Tea)’를 인수했고, 중국, 쿠웨이트, 레바논, 한국 등에 스타벅스 매장을 개설했다. 2000년 CEO였던 하워드 슐츠는 자신의 열정이 예전 같지 않다는 판단 하에 스타벅스사를 위해 CEO 자리에서 물러나 이사회의장이 되었고, 당시 스타벅스사의 이사(Director)였던 오린 스미스(Orin Smith)를 CEO로 임명했다. 

오린 스미스(Orin Smith)

오린 스미스(Orin Smith)는 나이키(Nike, Inc.)에서 이사를 지내고 월트 디즈니 컴퍼니(Walt Disney Company)에서 상임이사를 거친 뒤 1990년 스타벅스사에 부회장 및 CFO(Chief Finance Officer, 재무담당 최고책임자)로 합류한 인물이었다.


2002년 스타벅스사는 스타벅스 원두의 구매 업무를 전문화하기 위해 ‘스타벅스 커피 트레이딩 컴퍼니(Starbucks Coffee Trading Company)’를 스위스 로잔(Lausanne)에 설립했다. 이 해 전 세계 스타벅스 매장은 5,000개가 넘었는데, 2003년 원두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로스팅 공장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Amsterdam)과 미국 네바다(Nevada)에 설립했다. 같은 해 스타벅스사는 시애틀 커피 컴퍼니를 인수하면서 ‘시애틀스 베스트 커피(Seattle’s Best Coffee)’와 ‘토레파치오네 이탈리아 커피(Torrefazione Italia Coffee)’도 함께 인수했다.


2005년 오린 스미스가 CEO에서 은퇴하고 당시 스타벅스의 북미 지역 사장이었던 짐 도널드(Jim Donald)가 CEO로 취임했다. 짐 도널드는 2005년에는 미국 생수 브랜드인 ‘에토스 워터(Ethos Water)’를 사들여 스타벅스의 자회사로 포함시켰으며, 2007년까지 바하마, 아일랜드, 요르단, 네덜란드, 루마니아, 러시아 등에 진출해 매장을 늘려나갔다.

짐 도널드(Jim Donald)

스타벅스사는 짐 도널드의 사업 확장으로 2007년까지 전 세계에 매장 수가 1만 5천 개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매장을 늘리기 위해 매장 디자인을 지나치게 간소화했고 매장 내 책이나 음악 CD, DVD 등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스타벅스 매장만의 편안한 특징은 사라져 버렸다. 이로 인해 커피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스타벅스 매장 고유의 이미지를 잃게 되었고, 커피뿐만 아니라 매장의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스타벅스 매장에 왔던 고객들은 자주 오지 않게 되었다. 그 시기 스타벅스사의 주가는 42% 이상 하락했다.

2008년 스타벅스의 CEO로 다시 돌아온 '하워드 슐츠'

2008년 짐 도널드는 무리한 사업 확장에 대한 책임으로 CEO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하워드 슐츠가 ‘온워드(Onward, 전진)’라는 구호를 내걸고 스타벅스사의 CEO로 복귀했다. 그는 스타벅스사의 방향을 ‘초심으로의 회기’와 ‘존중’으로 설정했고, 스타벅스사 문화의 핵심 가치인 고품질의 커피 음료와 편안한 공간을 회복하는 작업에 집중했다. 


그는 미국 내 600여 개의 매장을 폐쇄했고 직원 550명을 해고했으며, 새 커피 메뉴를 개발하는 등의 경영 혁신 작업을 진행했다. 그는 미국의 커피 메이커 회사인 ‘커피 이큅먼트 컴퍼니(Coffee Equipment Company)’를 인수하면서 그 회사의 커피 메이커인 ‘클로버(Clover)’ 브랜드도 함께 인수했다.


2008년 부동산 버블 붕괴의 영향으로 미국 경제가 침체되면서 소비자들은 커피에 소비하던 돈을 줄이기 시작했다. 또한, ‘맥도날드(McDonald’s)’와 ‘던킨 도너츠(Dunkin Donuts)’ 같은 경쟁 체인 업체들이 스타벅스 사보다 비교적 저렴한 커피를 출시하면서 스타벅스사는 매출에 위기를 맞게 되었다.


2009년에 스타벅스 커피 컴퍼니는 인스턴트 미세 분말(Microground) 커피인 스타벅스 비아 레디 브루(Starbucks VIA Ready Brew)를 출시했고, 충전식 지급 카드인 ‘스타벅스 카드(Starbucks Card)’와 ‘스타벅스 로열티 프로그램(Starbucks Royalty Program, 온라인에 스타벅스 카드를 등록하면 새 회원에게 5달러짜리 무료쿠폰을 제공함)’을 도입했으나 장기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그 해 매출은 6%가 떨어졌다. 그 결과 하워드 슐츠는 커피뿐만 아니라 요거트, 베이커리 등의 푸드(Food) 분야와 분말커피 및 주스 등의 음료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스타벅스의 가루 커피’VIA’

오늘날 아무 회사도 스타벅스보다 더 많은 장소들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커피 음료를 팔지 않는다. 2012년까지 스타벅스는 전 세계 39개국에서 17,600개 이상의 지점들을 포함하도록 자라났으며 그 시가 총액은 3백 5십 6억 달러 가치에 있었다.

 

2014년까지 스타벅스는 전 세계적으로 21,000개 이상의 지점들을 가졌으며 시가 총액이 6백억 달러였다. 2018년 6월 초순에 슐츠는 다시 자신이 스타벅스의 의장으로서 물러날 것을 공고하고 물러난다.


거의 매일 도심지의 한가운데에서 당신이 만나게 되는 이 브랜드를 만든 사람은 슐츠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시리즈를 통해서도 우리는 수많은 창업자가 아니면서도 현재의 거대한 글로벌 기업으로 일으켜 세우는데 공을 가진 이들이 중간에 합류하는 형태를 수차례 보아왔다. 슐츠는 대학도 운동 특기생으로 갈 정도로 공부과의 인물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미 세 친구가 만든 브랜드에 눈독을 들이고 그 안에 들어갔지만, 자신이 보았던 꿈을 설명해도 이해해주지 않아 결국 그대로 나와 자신이 직접 새로운 커피 전문점을 차려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 내에 유명해진 프랜차이즈를 만들었고, 결국엔 스타벅스라는 오리지널 브랜드마저 병합하게 되면서 자신의 꿈을 이루게 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그가 나스닥에 회사를 상장하고 탄탄대로를 겪은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2000년에 한 번, 2018년에 한 번 최고 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나 전문 경영자에게 회사를 맡겼다. 하지만, 회사가 위기를 맞을 때마다 그는 다시 돌아와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며칠 전 외신에서 그가 다시 돌아왔음을 알렸다. 그전의 존슨 CEO의 대타로 다시 들어서는 것이다. 물론 장기 집권을 위함은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긋고 적당한 후임자를 찾을 때까지 만이라고 밝히면서 말이다.


미국 경제의 위기사태 당시에서는 600군데의 매장을 과감하게 폐점하고 직원들을 대거 해고하는 일도 아무렇지 않게 결정할 정도로 그는 냉정하고 회사 경영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왔다. 그렇게 했기에 글로벌 기업의 CEO로 인정받을 수 있었고, 2020년 대선을 앞두고서는 바이든의 대항마로까지 생각되며 미국 대선주자로 언급되며 고민할 정도의 거물이 되었다.


스타벅스를 볼 때마다 이상을 가지고 작게 시작했던 비전문가 세 친구와 그것에서 자신의 꿈을 발견하고 올인하여 확실하게 그 꿈을 다져나갔다. 잘못된 선택으로 여러 실패가 그의 꿈을 좌절시킬 만도 했지만, 그는 자신이 전면에 나서 모든 것을 직접 처리하고 극복해나갔다. 자신의 이상이 명확하여 이탈리아식으로 모두 만들었지만, 캐나다에서 그것이 부담스럽고 먹히지 않는다고 하자, 바로 전략을 수정하여 편안한 패턴으로 바꾸었다. 

즉, 그는 불변 고정의 신념은 가지고 있되, 변형 가능한 임기응변의 마케팅 전략의 전문가라는 특징을 확실하게 살려갔던 것이다. 커피 전문점 본연의 모습을 잃어 가게수만 늘리고 경영악화를 초래한 전임 CEO의 방식을 바로 수정하면서도 커피뿐만이 아니라 주스음료나 요구르트까지 메뉴를 자연스럽게 확장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원두커피전문점과는 거리가 있을 것 같은 캡슐커피 전문업체인 그린마운틴 커피사(Green Mountain Coffee Roasters, Inc.)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캡슐커피머신 브랜드 ‘큐리그(Keurig)’용 캡슐커피인 ‘스타벅스 K-컵(Starbucks K-Cups)’을 출시하는 과감한 변용은 그의 스타일을 그대로 보여준다.


당신은 당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어디까지 모든 것을 쏟아보았는가? 당신이 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 당신이 평범한 회사원이라고는 하지만, 슐츠를 비롯한 대단하다는 CEO들도 한때는 누군가의 회사에서 일개 회사원이었다. 그들과 당신의 가장 큰 차이는, 그들은 자신의 꿈이 포텐셜을 가지고 터트려질 때에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꿈만 가지고 창업을 하겠다고 하여 인생을 말아먹는 철딱서니 없는 사람들도 숱하게 많다.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 될 필요는 없겠지만,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면서 계속 뭔가 주저하고 언젠가 짤릴지 몰라서 안절부절못하며 그저 첵 바퀴 돌 듯이 사는 것은 어떻게 좋게 봐주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대목이 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싶다면 그만한 노력과 공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슐츠가 그러하였고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기어코 성공을 이루고 말았던 이 시리즈의 수많은 이들이 그러하였다. 슐츠가 처음부터 자신이 원했던 창업을 했더라면 오히려 지금의 스타벅스를 이뤄냈을까는 의문이다. 슐츠가 스타벅스를 만나고 그 안에서 자신의 꿈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자신이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을 통해 확신을 가지고 바로 독립하여 자기 스타일을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도 아니고, 도박도 아니었다. 그는 충분한 계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전문가였다.


당신이 당신의 분야에서 혹은 지금 당신이 하는 일과 다르지만, 당신이 반드시 해보고 싶어 하던 꿈과 연결되어 그 분야에 끊임없이 노력하고 설사 실패하거나 슐츠처럼 뜻이 맞지 않아 쫓겨나는 한이 있더라도 그 실패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오늘 슐츠의 이야기를 통해 발견하였기를 바란다.


당신의 삶이, 당신의 꿈이 먼지에 덮여 그 빛을 잃어가지 않길, 그리고 그 반짝거림을 당신이 결코 망각하지 말고 별을 따라가는 마음으로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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