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얼마 전 결혼한 회사 후배와 점심을 먹었답니다. 후배는 결혼하니 청소 빨래 매끼 식사 챙기기 등 신경써야 할 일이 너무 많아져서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다네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허허. 그럴 수 있지’라고 반응하는 남편이 이번엔 좀 다른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결혼하니 힘든 점이 많다고? 아이를 낳아봐야 진짜 힘든게 뭔지 알지. 지금이 행복한거니 많이 즐겨.”
웃음이 났습니다. 연애부터 지금까지 12년간 투정 한 번 부린 적 없는 남편이거든요. 결혼해서 좋다, 아이들이 있어 행복하다고 하더니 힘들긴 힘들었나 봅니다. 그러고보니 제가 육아휴직을 했을 때는 아침밥도 차려주고 남편 퇴근시간에 맞춰 아이 안고 마중도 나가고 알콩달콩했는데 요즘은 그런 재미도 줄었습니다.
퇴근하면 아이들부터 돌보느라, 쌓인 집안일하느라 남편은 뒷전입니다. 제가 아이들을 돌볼 때 남편이 집안일, 제가 집안일할 때는 남편이 아이들을 돌보니 저도 남편에게 뒷전입니다.
외국도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기 어려운 건 비슷한가봅니다. 2007년 미국심리학회(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3%가 가족 부양의 책임이 업무에 영향을 미친다고 대답했습니다. 당연하지요. 책임질 일이, 해야 할 일이 많아졌는데 하루는 여전히 24시간이고 내 몸은 하나인걸요.
그러다보니 내가 무능력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많습니다. 다른 부모들은 일도 잘하고 아이도 잘 키우는 것 같은데 말이죠.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아이를 둔 맞벌이 부부가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을 성공적으로 맞추려면 5가지를 포기해야 한다고 합니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도움을 구하는게 어색하고 자존심 상할 수도 있지만 아이를 키우다보면 누구나 도움이 필요합니다. 특히 맞벌이를 할 경우 갑자기 아이가 아프거나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는 주변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아이와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옆집 아이 엄마와 등하원을 분담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아이들 등원을 시키고 하원은 옆집 엄마가, 혹은 옆집 엄마가 등원을 내가 하원을 시키는 식으로요. 도움을 받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주저없이 도와준다면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일과 육아의 균형을 맞춘다는 것은 일과 육아를 정확히 이등분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이에게 좀 더 집중해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회사에 좀 더 시간을 투자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일과 가정사이의 균형을 잘 잡는다는 것은 균형을 융통성있게 움직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원칙은 정해두고 때로는 일에, 때로는 육아에 좀 더 집중한다는 것이죠. 물론 어느 한 쪽에 치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주 체크해야 합니다.
비행 중 위급상황이 발생하면 내가 먼저 구명조끼와 산소 마스크를 착용한 뒤 가족을 도우라는 안내방송이 나옵니다. 일상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너무 지쳐있을 때는 누구도 돌볼 수 없습니다. 기사는 “나를 위한 시간을 1분도 낼 수 없다고 느껴질 때가 진정 나만의 시간이 필요한 때”라고 말합니다.
성공적인 맞벌이 부부는 나만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가지는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네다. 기사는 잠이나 휴식도 중요하지만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운동은 건강은 물론 일과 가정 사이에 균형을 잡는데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답니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잘 맞추는 부모들은 아이의 행복을 최우선에 두지 않습니다. 책임감있는 아이로 키워 책임감있는 어른으로 자라는 것을 중요시한다네요. 그들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집안일을 분배합니다. ‘방정리 좀 해!’라고 소리치거나 잔소리하는 대신 각자의 방은 각자 정리하는 원칙을 세우고 아이에게 가르치는 식으로요.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어느정도 자랄때까지는 파트타임 근무를 원합니다. 탄력근무제를 원하는 부모도 많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아이를 내가 직접 키우지 못해, 풀타임으로 일하느라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적어서 많은 부모들이 죄책감을 갖습니다. 일과 가정 사이에 균형을 잘 맞춘 부모는 ‘일하지 않으면 좋을텐데’ 아쉬워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순간에 더 집중하고 더 에너지를 쏟는다고 합니다.
이런 종류의 글을 보면 눈 번뜩이며 클릭했다가 '뭐야, 다 아는 거잖아. 누가 몰라서 못하나' 삐죽거리며 창을 닫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좀 다릅니다. 너도나도 옆집 아줌마도, 친구도, 전문가도, 죄책감을 버리라고 합니다. 아이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부터 챙기라고 합니다. 눈 번뜩이며 클릭할 때마다 같은 말입니다. 귀딱지가 앉았습니다.
퇴근하자마자 달려드는 아이들에게 '엄마 밥 먹고 놀자'는 말이 나오지 않아 꼬르륵 소리 무시하고 놀아주다가 체력이 딸려 짜증낸 게 생각납니다. 오늘도 '회사에서 이~~만큼 일 했으니 집에서도 아이들하고 이~~만큼 놀아야지' 이상한 논리로 일과 가정을 50:50으로 맞추려 노력했습니다. 70:30 인 날도, 30:70인 날도 있을 겁니다. 전반적으로 50:50이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밥 먹고 더 힘내서 놀아주면 아이도 이해해주지 않겠습니까. 자, 이제 다 아는 거라면, 육아서 덮고 실천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저녁에 밥 먹기가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