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vs 아가씨, 구분하는 법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한 선배가 어깨를 툭 칩니다.
"OO씨는 아이 낳기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 변한게 없어."
"무슨 말씀을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으로 애엄마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선배는 고개를 저으며 '진짜 똑같다'고 강조합니다. 애엄마 티가 나지 않다니 괜히 기분은 좋습니다만, 엄마가 되고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뀐게 사실입니다. 하나하나 따져볼까요.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하던 날, 신발장을 열었습니다. 열 켤레 넘는 구두 가운데 신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여자의 자존심' 7cm 하이힐을 고집했는데 두 아이의 엄마가 되니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단 높은 굽을 신으면 허리가 아픕니다. 또 웅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출근해야 하는데, 웅이는 가끔 안아달라고 합니다. 7cm 굽을 신고 웅이를 안았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상상만으로도 아찔합니다.
웅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가면 그 순간부터 뜀박질입니다. 아침 출근길 1분은 1시간처럼 써야 회사에 지각하지 않습니다. 7cm 하이힐 신고 뜀박질 할 수는 없습니다. 운동화를 신고 출근할 수는 없으니 최대한 굽이 낮은 구두를 고릅니다.
흰 블라우스에 펜슬라인 치마. 아이를 낳기 전 좋아했던 출근 복장입니다. 결이를 낳고 복직하던 날, 선후배 동료들께 인사드릴 생각에 같은 복장을 차려 입었습니다. 결이에게 '엄마 회사 다녀올게' 인사하는데 결이가 울기 시작합니다. 안아서 달래고 돌아섰는데 새하얀 블라우스가 결이의 눈물 콧물 침 범벅입니다. 구김없이 다짐질해서 입었는데, 회사에 도착하기도 전에 주름이 잔뜩 잡혔습니다.
그 날 이후로 흰 블라우스는 포기했습니다. 아이를 안아도 구겨지지 않는 니트, 아이의 콧물 침을 받아내도 티가 나지 않는 무채색 계열 옷만 눈에 들어옵니다. 시간이 없을 땐 상의 하의 따로 챙기기 귀찮습니다. 한번에 쓱 입을 수 있는 원피스가 좋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니트 원피스'를 입었습니다.
대학시절 사진을 보면 헤어스타일이 비슷합니다. 긴생머리 혹은 긴 웨이브입니다. 머리를 감고 예쁘게 빗고 드라이까지 해야 완성되는 헤어스타일이죠.
애엄마가 되니 머리만 감을 수 있으면 감지덕지입니다. 매일 아침 아이들이 깨기 전 후다닥 머리를 감고 화장을 합니다. 머리를 말려볼까 싶어 헤어드라이어를 켜는 순간, 윙 소리에 아이들이 깹니다. '무소음 드라이어'가 '합리적인 가격'에 출시되지 않는 한 아침 드라이는 그림의 떡입니다.
드라이를 하지 않으면 삐죽삐죽 뻗치는 생머리는 안녕, 머리를 감고 툭툭 털면 되는 곱슬머리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너무 길어도, 너무 짧아도 안됩니다. 길면 머리가 마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혹시 머리를 감지 못한 날엔 묶어야 하거든요(-.-v). 미용실에 가면 '묶을 수 있는 길이로 잘라 주세요'가 고정 멘트입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출근하다보니 출근길 준비물이 많습니다. 아이 가방은 기본이고 매주 월요일은 실내화가방과 낮잠이불가방, 특별활동이 있는 날은 특별활동가방도 챙겨야 합니다. 짐은 모두 한 손에 들어야 합니다. 다른 한 손은 아이 손을 잡아야 하니까요.
아이를 낳기 전에는 토트백 숄더백을 좋아했는데 엄마가 되니 두 손이 자유로울 수 있는 백팩이나 크로스백을 선호합니다.
니트원피스에 플랫슈즈, 크로스백을 좋아하는 아가씨도 많을 겁니다. 그런데 손은 다릅니다.
대학시절 한 교수님은 "화장은 안해도 손관리는 한다"고 하셨습니다. 얼굴은 남들이 보는 영역이지만 손은 내가 보는 영역이기 때문이라면서요. 아침에 화장 한 번 하면 거울을 봐야 내 얼굴을 보는데, 손은 수시로 보면서 기분을 전환할 수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저도 손관리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경제적인 부담이 있어 자주 하지는 못했지만 우울하거나 스트레스 심하게 받은 날 네일케어를 받으면 기분이 풀리곤 했습니다.
애엄마가 되니 그것도 사치입니다. 요리하고 기저귀 갈고 수시로 손을 씻다보니 네일케어를 받아봤자 이틀을 넘기지 못합니다. 긴 손톱은 보기엔 예쁘지만 아이를 다룰 땐 무기입니다. 그래서 매니큐어는 커녕 손톱이 자라기 무섭게 바짝바짝 자릅니다.
큰 결심하고 네일 케어를 받아도 손에 베인 주부냄새는 쉽게 가시지 않습니다. 파 송송 썰고 마늘 다지고 된장양념해서 나물을 무치고... 비누로 손을 여러 번 씻어도 냄새는 어쩔 수 없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손에 얼굴을 부비다가 '엄마 손에서 마늘 냄새 나. 손 씻어야겠어'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그게 엄마 냄새야' 하셨죠. 아가씨들은 풍길 수 없는 손냄새입니다.
출퇴근길 지하철에 타면 휴대전화를 꺼냅니다. 아이가 없을 땐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도 하고 페이스북 싸이월드를 돌아다니며 근황도 남기고 댓글도 달았죠.
웅이 결이 엄마인 저도 지하철에선 휴대전화를 꺼냅니다. 그리고 모바일 장보기앱을 실행합니다. *마트앱에서 장을 보고, 웅이 운동화를 주문하고, 결이 기저귀를 주문합니다. 가장 친한 친구 휴대전화 번호는 기억나지 않지만 신용카드 번호는 카드사별로 다 외우고 있습니다. 장바구니를 채우고 청구할인되는 카드로 결제를 합니다.
부모가 된다는 건 우주가 바뀌는 것 같습니다. 내 한몸만 생각하면 그만이었는데 이젠 물 한모금을 마실 때도 아이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멈칫하게 됩니다.
겉모습이야 마음 먹으면 다시 아가씨 시절로 돌아갈 수 있지만, 모든 순간의 기준이 나에서 엄마로 바뀐 건 돌이킬 수 없을 겁니다. 엄.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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