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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Mar 20. 2016

일요일, 아빠가 엄마되는 날

"여보 결이 응가했어."

"그럼 기저귀 갈아줘."

"내가?"


6시 칼퇴근. 사용 연령 5세 이상 장난감은 5세 이상 아이를 둔 부모님이 같이 놀아 주라는 뜻이라고 말하는 멋진 아빠.


웅이 결이 아빠는 그런 사람입니다. 웅이는 '엄마랑 노는 게 재밌어 아빠랑 노는 게 재밌어?' 물어보면 주저 없이 아빠를 꼽습니다.  



저는 직업의 특성상 일요일에 출근합니다. 엄마가 없는 일요일, 웅이 결이는 '아빠+@'와 함께 지내지요. @는 주로 친할머니, 종종 이모네 혹은 고모네 가족입니다.  '아이들과 놀아주기'는 자신만만한 남편이지만 '아이들 돌보기'는 서툽니다. 혼자 2시간 이상 아이 둘을 돌본 적은 없거든요.


일요일이면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아이들 곁을 비워야 하니 남편 혼자는 역부족입니다. 그래서 일요일이 다가오면 누구한테 SOS할까 고민합니다.


"웅아, 엄마 일요일에 회사 가는데 누가 오면 좋겠어?"

"아무도 안 와도 되는데? 아빠 있잖아."


생각하지 못한 답에 무언가에 세게 얻어맞은 것 같습니다. 아빠만 있다는 건, 아빠가 '주양육자'라는 의미인데 아이들은 '주양육자' 아빠가 어색하지 않은가 봅니다. 전 남편을 항상 '부양육자'로만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그러고보니 남편도 이제 5년 차 아빠, 결이가 아직 어리긴 하지만 싫다 좋다 의사표현은 할 수 있으니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주양육자'의 역할 몇 가지만 익힌다면요.


남편이 가장 난감해 하는 건 '결이 응가 처리하기'입니다. 아이들이 응가를 하면 물로 씻어 줍니다. 웅이는 5살이니 씻기기 편한 자세를 취하지만 결이는 이제 19개월. 자세를 취할 리 없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습니다.


일단 물이 보이면 물놀이를 하겠다고 뛰어들지요. 그러니 결이가 움직이지 못하게, 하지만 불편하지는 않게, 옷을 적시지 않고, 깨끗하게 씻겨야 합니다.



제가 뒤처리 하는 걸 여러 번 봤을 텐데 남편은 결이가 응가를 할 때마다 "여보 결이 응가했어!" 부릅니다. 남편이 경험이 없으니 저도 하던 일 멈추고 달려갔지만, 이번엔 다릅니다. "당신이 씻겨줘. 나 지금 냉장고 정리하거든" "어..." 떨떠름하게 답한 남편이 결이를 안고 화장실에 들어갑니다. 이 자세 저 자세 시도해 보더니 "못하겠어. 그냥 옷 다 벗겨도 돼?" 합니다. "그래. 씻기기만 하면 되지 뭐"


화장실에서 "결아 다리를 벌려봐" "지금은 물장난하는 거 아니에요"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과정이야 어찌 됐건 결국은 결이는 깨끗해졌습니다.


두 번째는 결이 밥 먹이기. 웅이 밥은 남편, 결이 밥은 제가 먹이곤 했는데 지난주엔 일부러 남편에게 결이 밥을 먹이라고 했습니다. 웅이 밥을 먹일 땐 '밥 먹을 땐 장난하는 거 아니에요' 훈수만 두면 되니 나도 밥을 먹을 수 있는데 결이는 다릅니다.


결이는 요즘 혼자 밥 먹는 연습 중입니다. 결이가 밥을 떠서 입에 가져갔을 때 재빨리 반찬도 하나 입에 넣어줘야 하고, 혼자 국을 뜨면 국물이 흐르지 않게 숟가락 수평을, 결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잡아줘야 합니다. 결이 밥을 먹인 첫날, 남편은 본인 국이 다 식을 때까지 한 수저도 들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은 우는 아이 달래기. 웅이랑 결이가 놀다가 다치면 남편은 우는 아이를 안고 "아프겠다. 엄마한테 가자" 저에게 넘겨줬습니다. 아빠 품에선 작게 울었던 아이도 제 품에는 크게 울며 달래 달라고 호소하지요. 결이가 넘어져 울었을 때 남편에게 "당신이 달래 봐. 꼭 안고 토닥토닥하면 되" 했습니다. 결이는 아빠 품에서도 울음을 잘 그쳤습니다.


아빠 혼자 아이들을 돌 볼 수 있게 하려는 제 의도를, 남편은 모릅니다. 말하면 괜히 겁부터 먹을 것 같아 스리슬쩍 시작했습니다.


이제 남편은 어색하긴 하지만 결이 응가 기저귀를 갈 줄 알고 오래 걸리긴 하지만 밥을 먹일 수 있습니다. 웅이 책을 읽어주며 결이를 재울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일요일 출근을 앞두고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여보, 이번 일요일엔 그냥 당신 혼자 애들이랑 있는 거 어때?"

"나 혼자?"

"응. 밥이랑 간식 다 준비하고 갈게. 밥 꺼내서 먹이기만 하면 돼. 큰 문제없을 것 같은데?"

"... 괜찮을까?"


경험이 없어서 불안한 거지요. 못하진 않을 겁니다. 사실 저도 '정말 괜찮을까?' 싶지만 남편을 믿기로 했습니다.


인류학자 '새라 블래퍼 허디'의 주장에 따르면 지금 남편에게 필요한 건 '아기와 단 둘이 보내는 시간'입니다.


여자들도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무엇을 할지를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여자들은 갓 태어난 아기와 단 둘이 보내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해 학습을 한다. 그래서 여자들은 아기가 필요로 하는 바를 남자들보다 빨리 알아차리게 된다. 남자들은 아기와 단 둘이 보내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기 때문에 여자들처럼 자신감을 가지고 유능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시간과 경험이 작은 차이를 큰 것으로 만든다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사회과학자들은 이제 막 부모가 된 사람들의 반응 시간을 측정해봤다. 앙앙 우는 아기의 소리를 녹음해서 들려주자 엄마들과 아빠들 모두 곧바로 반응했다. 하지만 아이가 약간 짜증이 난 경우에는 엄마들이 약간 더 빨리 반응했다.

허디는 "사람의 남녀는 반응 시간의 차이가 아주 미미합니다. 아빠도 반응하는 능력이 있지만 엄마의 역치(자극에 대해 반응하기 시작하는 지점)가 약간 낮은 것뿐입니다. 이 상태에서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될까요? 아기가 보채면 엄마가 아기를 안아 올려 진정시켜줍니다. 아기는 엄마에게 익숙해지죠. 엄마가 없을 때는 아빠가 와서 아기를 안아주겠지만, 아기는 아빠에게는 그만큼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진정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아빠는 '애가 엄마를 원하는데 왜 내가 안아줘야 해?'라고 생각하기 시작해요.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가 약간 휘어있다'라고 표현했는데 그건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의 차이는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점점 커지는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오늘 남편은 아이 둘과 9시간을 보냈습니다. 제가 회사에 있는 동안 결이는 응가를 했고, 웅이 결이 남편은 점심도 먹었고, 놀이터도 다녀왔다고 합니다.


웅이에게 오늘 어땠냐고 물으니 "재밌었어"  큰 소리로 대답하네요. 한나절 동안 아이 둘을 돌본 남편도 긴장했겠지만, 저 또한 긴장한 하루였습니다. 남편의 다크서클은 깊어졌지만, 오늘 남편은 '주양육자'로 하루를 쌓았습니다. 앞으로 남편이 쌓아갈 하루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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