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아르코창작기금 선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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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은 조금 어지러웠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너무 긴장한 탓이었다. 손바닥에서는 자꾸만 땀이 나 주머니 속 손수건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무사히 발권도 마쳤고, 시간이 남아 사진도 한 장 찍었다. 남들처럼 포스터 앞에서 찍고 싶었는데 찍어 줄 사람이 없어 고민하던 참이었다. 혼자 머뭇대던 대원에게 누군가 선뜻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제안했다. 아주 감사한 일이었다. 덕분에 대원도 방금 받아 따끈한 티켓과 혹시 몰라 챙겨 온 앨범과 함께 공연 포스터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집으로 돌아가 자랑할 사진 한 장은 건졌지만, 들어오는 길에 콘서트장 입구에 있던 매대를 꼼꼼하게 구경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재희가 콘서트장에 가면 굿즈라는 것을 판다고 했는데…. 아슬아슬하게 도착하는 바람에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다음에도 올 기회가 생긴다면 꼭 여유롭게 와서 구경해야지. 속으로 다음을 기약하면서도 주변을 둘러볼 때마다 대원은 섭섭함을 감출 수 없었다. 굿즈를 이미 사서 가방에 넣는 사람들에게 콘서트가 끝나고 살 수 있는지 물었다. 애석하게도 이 굿즈는 인터넷으로 미리 구매하고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한편 다행이었다. 예약도 하지 않았는데 공연히 구매하겠다고 줄에 서 있다가 체면을 구길 뻔했다. 현장에서 판매하는 수량이 있다고도 했지만 말끝을 흐리는 걸 보니 재고가 별로 없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넘치게 준비해 재고가 쌓이면 곤란하겠지. 자리에 앉은 대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무대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나저나 저기 다 전자기기인데 안개는 물 아닌가? 공연하다 감전이라도 되면 어쩌려고 저렇게 대책 없이 물을 뿌려 둔 거야? 정말 이 나라는 안전불감증의 나라라고 생각했다. 그때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저기…. 여기 제 자리인데요. 대원은 땀이 비죽비죽 났다. 실수하지 않은 줄 알았는데 표와 자리의 숫자를 보니 자신이 한 칸 옆으로 가는 것이 맞았다. 미안한 내색을 하고 자리를 옮기면서 무심코 대원은 궁금증을 참지 못해 옆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아직 공연이 시작하기 전이었다.
근데 저거 안개…. 저렇게 전자기기가 많은데 위험한 거 아닌가요?
저거 안개 아니고 스모그에요. 그러니까 공연장에서 쓰는 연기 효과 그런 건데 괜찮아요. 위험한 거 아니에요.
안전한 거구나. 대원은 신기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 구석구석을 더 돌아봤다. 어둠 사이사이 가득한 기계. 아직 주인이 앉지 않은 악기들. 무대 위의 어둠 속에서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 누군가의 콘서트에 온 것은 처음이라서 모든 게 다 신기했다. 심호흡을 계속하며 가방 속 물건을 매만졌다. 종종 전주에서 콘서트가 열리면 다녀오곤 하는 동료 영환이 준 싸구려 응원봉이었다. 콘서트장 앞에 가면 파는 것인데 장윤정 전국투어 전주 콘서트에 다녀왔을 때 산 것이라고 했다. 한 번밖에 쓰지 않았으니 가져가라고 했다. 한 번뿐이 안 쓰긴 개뿔. 올라오는 기차에서 켜 봤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공연장에 앉은 사람들의 분위기가 사뭇 진지했다. 손에 응원봉이나 불빛이 나는 것은 없고 다들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대원은 가방 속 응원봉을 안 보이는 깊숙한 곳에 찔러 넣었다. 그러다 잊은 것이 생각나 핸드폰을 꺼내 딸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잘 가고 있지? 오늘 큰일 치렀다. 조심히, 건강히, 잘 다녀오거라.
희미하게 나오던 음악 소리가 잦아들고 공연장을 비추던 불빛도 완전히 사라졌다. 공연이 시작되려는 모양이었다. 일순간 조명이 환해지면서 연주가 시작됐다. 대원은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오기 전에 여러 번 되짚은 주의 사항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서서히 의자에 녹아내렸다. 숨을 어떻게 쉬었더라? 너무나 낯선 감각에 모든 행동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대원은 꼼짝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환한 무대 위를 바라봤다. 그러다 잠깐 생각한 것이라곤…. 이렇게 긴장해서 박자에 맞춰 박수나 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