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아르코창작기금 선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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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운행을 시작하기에 앞서 대원이 가장 먼저 듣는 노래는 〈출항〉이다. 택시 일이라는 것이 그렇다. 비슷한 시간에 출근해 비슷한 시간에 퇴근하고, 늘 비슷한 길을 돌지만 나머지의 모든 것은 미터기를 켜면서 새로 시작된다. 어제의 일이 오늘도 반복될까 걱정하지 않는다. 어제 막히던 길이 여전히 막힐지는 모를 일이다. 택시 안이라는 테두리를 제하고서는 늘 새로 시작하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의 것들은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기에 이만한 노래가 없다. 게다가 오늘은 대원에게 아주 중요한 날이었다. 긴장되는 마음에 차가 데워지는 동안 연신 손을 비볐다. 때마침 동료 기사인 영환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 오늘 점심 어떻게 해.
거기 중앙시장 백반집 어때.
좋지. 오늘 밥은 자네가 사는 걸로 해.
이 사람아. 당연히 사지. 모양 빠지게 뭘 그런 걸 말로 해. 손님 탄다. 이따 봐.
버스 정류장에서 손을 흔드는 사람을 보고 택시를 멈춰 세웠다. 대원은 속으로 일찍 나와 있으면 버스도 안 놓치고 돈도 아꼈을 거라고 흉을 봤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세상일이 어디 마음대로 되는 것이 있나. 그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고. 하물며 자주 늦장을 부리는 손님이 있어 대원도 그런대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 아닌가. 손님의 목적지를 듣고 미터기를 켜며 손님의 안색을 살폈다. 말을 걸어도 되는지 아닌지 살피기 위해서였다. 대원은 원래 말이 많다거나 속으로 구시렁거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성격이 변한 것은 택시를 업으로 삼은 탓이다. 택시 안에 갇혀 운전만 계속하고 있으니 입이 심심한 것은 당연했다. 가끔 위험하게 끼어드는 차들을 향해 욕지기를 내뱉는 것이 전부인 날도 있었다. 그런 날에는 신경이 날카로워져 내지 않아도 낼 짜증까지 내고 만다. 그러다 언젠가 화장실 거울에서 마주한 자기 얼굴을 보고 놀랐다. 점점 고약해지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늙어서 주름이야 생긴다지만 너무 볼썽사나웠다. 이게 다 말을 안 하고 참은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손님을 태우면 안부를 묻곤 했다. 그렇다고 아무 손님에게나 마구 말을 걸었다가는 곤란을 면치 못한다.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는데 작은 택시 안에서 접할 수 있는 최신 정보라고는 라디오에서 떠드는 몇몇 사연뿐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김장하고 온 손님을 태운 적이 있다. 손님은 김장이 끝나고 몸이 힘들어 병원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돕는 손은 없고 먹는 입만 있어 서럽더라며 투덜댔다. 그나마 도우러 나온 아들은 귀신같이 시어머니가 데리고 들어가버렸다며 말을 쉬지 않았다. 미처 손님의 안색을 살피지 못했던 대원은 그저 좋게 손님의 마음을 풀어 주고 싶었다. 내 가족들 입에 들어가는 것이니 힘들어도 보람차지 않겠냐고. 손님이 손맛이 좋으신가 보다고. 혹시 아들이 손댔다가 1년 먹을 김치 맛이 이상해지면 어쩌냐고. 잘하는 사람이 잘하는 거 하면 되는 것 아니겠냐고 말하곤 사람 좋게 웃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쉬지 않고 말하던 손님이 어느 순간 대꾸가 없었다. 그제야 대원은 손님의 얼굴을 봤다. 드문드문 하얗게 센 머리, 연신 주무르고 있는 손목, 무채색의 겉옷 상의. 하염없이 창밖을 내다보는 그의 시선은 아무것에도 머무르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며 창에 고개를 기대고 들리지도 않을 만큼 작게 숨을 쉬고 있었다. 대원은 그제야 택시 안에 희미하게 퍼진 액젓 냄새를 맡았다. 이후로는 웃음을 거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어라 수습하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했다. 손님은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겨우 한마디 건넸다.
나라고 날 때부터 그런 걸 다 잘했겠어요. 하물며 자식 입에 들어가는 게 싫기야 하겠어요. 그냥…. 가끔 그 모든 게 너무 하염없어서…. 이런 제 속이 너무 좁은가 봐요.
정보값이 없는 상대와 개인적이면서 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런 실수가 반복되기 마련이다. 이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자 대원은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여전히 택시 안에서의 생활은 너무나 외로웠고 적적했다. 그래서 날씨나 최근 스포츠 뉴스에서 본 소식 따위로 말을 걸기 시작했다. 틈틈이 룸미러로 손님의 안색을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미간에 화를 심어 두고 뽑지 않는 사람,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 고돼 보이는 손님에게는 구태여 말을 걸지 않았다. 안예은 씨를 좋아하고 나서는 조금 더 수월했다. 손님이 말할 기분이 아니라면 좋아하는 노래를 골라 들으면 되었고, 손님이 안예은 씨를 알고 있다거나 노래를 알고 있다면 그에 대해 실컷 이야기하면 됐다. 어떤 노래가 왜 좋은지 말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고 만다. 그러면 한 바퀴라도 더 돌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심정이기도 했다. 그렇게 손님이 떠나면 좋아하는 것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 떠드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너무 늦게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 손님들이 있다. 몹시 화가 나 있거나 지쳐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말이 없는 손님들. 때때로 룸미러를 통해 대원과 눈을 마주치며 간단한 반응은 하면서도 별다른 대꾸는 없는 손님들. 그런 손님들이 탑승하면 대원은 요즘 애들 말로 영업이란 것을 시작한다. 오늘은 운 좋게도 중앙시장 가까이 가는 손님을 태웠다. 서신동에서 노송동까지 가는 길이라면 노래 한 곡으로 이야기하기 충분한 거리다. 영업에는 역시 가장 유명한 노래가 좋다. 가장 유명한 〈홍연〉을 틀고 말을 걸면 열에 둘은 대원에게 먼저 말을 건넨다. 그게 아니라면 대원이 그냥 하려던 말을 하면 된다. 조금 더 멀리 간다면 〈창귀〉나 〈쥐〉를 틀어 주며 곡의 배경이 되는 옛날이야기를 해 주면 다들 흥미롭게 듣곤 했다. 다만 비가 와 우중충하거나 밤에 듣기는 조금 무서운 노래라서 〈윤무〉나 〈상사화〉로 대체하기도 했다. 상황에 따라 이런저런 레퍼토리를 시도해 봤는데 다른 노래보다는 역시 옛날이야기가 섞인 두 노래가 가장 반응이 좋았다. 오늘 손님은 통 대꾸가 없었다. 게다가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대로변에서 내리고 말았다. 대원은 너무 자기만 말했나 싶어 손님이 사라지는 골목을 잠시 바라봤다. 금방 영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차, 오늘은 중요한 약속이 있는 날. 대원은 분주하게 핸들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