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아르코창작기금 선정작
늘 수요일 아침과 점심은 아내와 함께했다. 아프기 전까지 건물 청소일을 하던 아내의 휴무일이 수요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침이면 아내는 밥을 하고 대원은 세탁기를 돌리며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주영도 그것을 아는 모양이었다. 다른 날은 늦었다며 길을 나서더라도 수요일이면 이른 아침 식사를 함께했다. 대신 집안일에 약간의 인사이동이 생겼다. 아내 몫의 일은 대원이, 대원 몫의 일은 주영이 도맡게 됐다. 처음에는 식사를 준비하는 일이 꽤 힘들었다. 대원의 볼멘소리에 주영도 종종 음식을 해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대원이 만류했다. 딸의 음식이 영 대원의 입에 맞지 않았다.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유행하는 레시피라며 해 주는 음식들이 족족 너무 맵거나 달기만 했다. 맛있게 먹지 못하면 하루가 즐겁지 않은 대원에게 맛없는 식사를 반복하는 것은 크나큰 고역이었다. 자식 잘못 키운 탓이려니 하고 어느 순간 요리는 전부 대원 몫이 됐다.
어제 모래내 시장에 내린 손님이 있어 대원도 차를 세우고 콩나물을 한 봉지 사 온 참이었다. 아내는 항상 빨래를 개는 대원에게 어떻게 하면 음식이 더 맛있어지는지 설명하곤 했다. 덕분에 특별히 요리를 즐겨하지 않던 대원도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해를 보내고 나니 제법 먹어 줄 만한 아침 식사를 만드는 정도에 이른 것이다. 먼저 콩나물국에 멸치 몇 마리를 넣는다. 머리와 내장은 골라내고 전자레인지에 조금 돌리면 비린 맛은 날아간다. 거기에 김치와 파 그리고 간장을 넣어 향만 내고 팔팔 끓인다. 그 뒤에는 가볍게 씻은 콩나물을 한 줌 넣고, 먹기 직전에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를 살짝 넣으면 완성이다. 마지막에 마늘과 고춧가루를 넣는 디테일은 아내가 가르쳐 준 것이었다. 맑은국에 다진 마늘을 오래 끓이면 텁텁해지고, 고춧가루는 김치를 넣었으니 넣지 않아도 되지만 빛깔이 예뻐지라고 넣는 것이라고 했다. 눈으로 음식을 둘러보며 침을 삼키는 것도 식사의 일부라던 아내는 늘 먹음직스럽게 음식을 내는 걸 좋아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파르르 끓여 낸 김치콩나물국을 식탁에 내려놓기 무섭게 빨래를 개던 주영이 식탁으로 와 앉았다.
사실 대원은 딸과 할 말이 별로 없었다. 그저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지거나 당장 부딪힌 일에 대해서 몇 마디 짧게 나눌 뿐이었다. 언젠가 이런 것이 내심 서운해 자신과는 왜 고민 같은 걸 나누지 않느냐고 물었다. 장난스럽게 묻자 주영 역시 흘리듯 대답했다. 아빠 우리 별로 안 친하잖아. 갑자기 왜 그래. 한집에 20년 넘게 같이 살았는데 왜 안 친하냐며 따져 물으려다 말았다. 현관을 지나 방으로 들어가는 주영을 붙잡을 수 없었다. 대원은 구체적으로 이십몇 년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도통 이십몇 년인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이게 다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늦게까지 일을 하느라 그런 것 아닌가 싶어 억울하기도 했다. 그저 돈을 버느라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고 말하기에는 마찬가지로 바빴던 아내 생각이 나 할 말이 없었다. 무엇보다 주영이 무어라고 반문하든 대꾸할 자신이 없었다. 속으로 아니와 그런데를 반복하던 대원은 심통이 났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버지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는 딸자식이 어디 있나. 교육을 잘못 시킨 것 같아 속이 상했다. 곧이어 속상함은 걱정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성격이 살갑지 못하고 쌀쌀맞아서야 시집이나 갈 수 있을까. 이제 대원이 주영에게 바라는 소원은 시집가서 잘 사는 것뿐이었다.
콩나물국을 훌훌 불어 한술 떴다. 뜨거운 것을 잘 먹는 주영은 이미 콩나물을 다 건져 먹은 뒤였다. 급히 밥을 먹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덩달아 쫓기는 기분이 든다. 국을 식히느라 정신없는 대원과 달리 주영의 그릇은 벌써 반쯤 빈 소리를 냈다. 오늘따라 주영이 더 빨리 밥을 먹는다고 생각했다. 대원은 주영의 출근을 돕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 그저 급한 일이 있는가 보다 하고 지레짐작할 뿐이었다. 식사를 끝낸 주영이 그릇을 옮기고 커피를 내왔다. 대원의 그릇도 거의 비어 가던 참이었다. 마지막 남은 콩나물국 국물을 한 번에 털어 넣으려고 국그릇을 흔들며 입으로 가져갔다.
아빠, 나 결혼하려고. 주말에 시간 되면 같이 보자. 식장은 알아보고 있는데 가능한 날짜가 몇 개 없어. 근데 가까운 때에 토요일 아침 타임이 비었지 뭐야. 운이 좋았지.
대원이 놀라 마시던 콩나물국을 잘못 삼키고 말았다. 하필이면 여남은 것을 털어 넣던 참이라 고춧가루가 가득한 국물이 코로 역류하고 말았다. 목과 코에 걸린 고춧가루 때문에 대원은 사레들린 기침을 해야 했다.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기침하고 나서야 겨우 잠긴 목소리로 화를 낼 수 있었다.
야! 너는 그런 소리를 무슨 아침 먹다 갑자기 하냐. 너 때문에 코에 고춧가루 들어갔잖아. 에이씨, 코 매워 죽겠네.
아침에 하지 언제 해. 우리 시간도 잘 안 맞는데. 결혼식 그거 다 형식이잖아. 그냥 다 맞춰 주는 데서 빨리하고 말려고. 아빠 딸 결혼식에 손잡고 들어가는 게 소원이라며.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큰일을 네 맘대로 결정하면 어떻게 해. 어떤 놈인 줄 알고 결혼을 하라, 말라 그래? 언제부터 만났는데.
7년 됐나. 엄마는 본 적 있어. 그니까 이번 주에 보여주겠다는 거잖아. 그리고 내 결혼인데 아빠가 하라, 마라 하는 게 왜 중요해?
당연히 중요하지. 7년? 그동안 왜 아빠한테 남자친구 있다고 말 안 했어.
안 물어봤잖아. 나 늦었다. 먼저 간다. 주말에 같이 저녁 먹자.
데려다줄게!
됐어. 늦어서 택시 탈게.
야! 너는 아빠가 택시 하는데….
주영은 대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망치듯 집을 나섰다. 대원은 어안이 벙벙했다. 상식적으로 순서가 잘못되어도 한참이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요즘 아이들이 결혼은 자기들 인생이라지만 이건 너무했다. 보통은 어른들에게 소개해 주고, 상견례도 하고, 날짜를 고르고 식장을 잡는 게 순리 아닌가 싶었다. 딸이 워낙 당당하게 나오니 대원은 오히려 자기가 너무 꽉 막힌 꼰대가 되었나 의심했다. 이러나저러나 찝찝함에 대원은 하루 종일 목이 까끌까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