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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아현 Aug 18. 2023

대원의 소원 3-1

2023년 아르코창작기금 선정작


   3

   저마다의 세계는 들여다보기 전까지 깊이를 전혀 가늠할 수 없다. 정보의 수준이 그저 검색창에 ‘안예은’이라고만 검색해 보는 것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나누는 대화는 훨씬 다양하고 깊이 있었다. 처음 카페에 가입하고 글이나 댓글을 너무 많이 달지 말라던 재희의 걱정은 기우였다. 뭘 쓸 시간은 없고 게시판마다 글을 눌러 보며 구경하기 바빴다. 이것저것 아는 것이 많아지니 검색하기도 훨씬 쉬워졌다. 유튜브도 들어가 영상도 보았고, 찾다 보니 예은 님이 트위터라는 것을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건 또 어떻게 볼 수 있담. 대원은 아무래도 재희를 또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인 〈야화〉의 뮤직비디오가 있는 것을 보았다. 가사가 애달파 좋아하던 노래였다. 대원이 예은 님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가사 때문이다. 가사를 음미하고 있자면 저마다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머릿속에 들어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 주는 것 같았다. 노래 속 장면을 상상하는 일은 빈 차로 적적하게 도로를 오가는 대원에게 최고의 오락거리 중 하나였다. 뮤직비디오를 보던 대원의 귀가 점점 빨개졌다. 그러고는 민망하고 머쓱한 얼굴로 대화를 나눴던 한 손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대원은 그제야 그 손님이 지었던 미묘하고 복잡한 표정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예은 님을 잘 아는 손님이었다. 연달아 노래가 나오자 손님은 알은체를 했다. 〈파아란〉 다음에 〈야화〉가 나오던 참이었다. 배경이 되는 만화와 영화가 있다고 했는데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 대원은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영화도, 만화도 요즘 친구들이 좋아하는 것 아닌가. 무엇보다 대원은 필요할 때 보고 싶은 것을 골라 보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손님은 어딘가 놀라고 의뭉스러운 웃음을 하고 있었는데 도통 대원이 모르는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유튜브에 검색하면 이런저런 주제곡을 부른 뮤직비디오가 많이 있다고 알려 줬다. 〈야화〉는 유명 만화의 주제곡이고, 〈파아란〉은 영화 〈불한당〉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노래라는데 통 저세상 말들이었다. 중간중간 대원이 한 번에 알아듣기 어려운 말들이 섞여 있었는데 영어인 것 같기도 하고 한글인 것 같기도 한 단어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말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핸드폰으로 보는 만화를 무어라 했는데 그새 까먹어 따로 검색하지 못했다. 그러다 손님이 내려버려 다른 단어는 무슨 뜻인지 아예 말도 붙이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때는 주영이 가입해 준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노래만 겨우 듣는 수준이어서 더 찾아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발표된 모든 노래를 하나씩 듣고 익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찰 때였다. 차마 뮤직비디오를 다 보지 못하고 핸드폰을 덮어 놓았다. 대원은 영문도 모른 채 가슴이 두근대는 것을 느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다음 가사를 생각하며 영상을 보던 참이었는데 딸이 방에서 나와 거실을 어슬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꾸만 귀가 영상 속 음악보다 거실에서 나는 소리를 듣기 위해 움직였다. 자신도 모르게 영상과 방문을 번갈아 흘끔대는 것을 알아채고서야 핸드폰을 저만치 밀어 놓았다. 심장이 관자놀이와 귀에서 큰 북소리를 내고 머리는 멍해져서 몽롱했다. 오랜만에 울렁이는 긴장감을 느꼈다. 자신이 잘못 이해한 것일 수 있으니 나중에 다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잠들기는 또 아쉬워서 차라리 영화를 보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홍연〉의 모티브라는 〈왕의 남자〉는 예전에 명절 특선영화로 본 적이 있었다. 다른 하나가 뭐였더라. 설경구가 나오는 것이라고 했는데. 침대 모서리로 밀려났던 핸드폰을 들어 아는 것을 모두 검색창에 적었다. 그제야 영화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제목은 〈불한당〉. 사람들이 노래와 영화를 함께 두고 이것저것 써 둔 게시물들이 많았다. 영화를 보고 나면 하나씩 눌러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방을 나섰다. 이제 검색은 대원에게 별일 아닌 것이 됐지만 핸드폰으로 할 줄 아는 것은 여전히 그것뿐이었다. 결국 영화 포스터를 핸드폰 화면에 크게 띄우고 주영의 방문을 두드렸다. 포스터를 보여주며 영화를 어디에서 볼 수 있는지 묻자 주영이 어이없다는 듯 대원을 올려다봤다. 핸드폰에서 검색하던 주영이 갑자기 물었다. 오래전에 개봉한 영화를 왜 갑자기 찾느냐는 것이었다. 대원은 무턱대고 영환이 떠올랐다. 심심할 때 보기 좋은 영화라고 했는데 마침 심심해서 볼 생각이라고 둘러댔다. 그냥 좋아하는 노래의 배경이라고 이야기해도 될 텐데 저도 모르게 거짓말이 불쑥 튀어나와 난감했다. 공연히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통에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그것이 어딘가 모르게 부끄러워 대원의 시선은 자꾸만 다른 곳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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