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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아현 Aug 18. 2023

대원의 소원 4

2023년 아르코창작기금 선정작


   4

   예매 내역을 받고 대원은 헤실헤실 웃었다. 콘서트는 두 달이나 기다려야 했지만 그날이 다가오는 내내 행복할 것 같았다. 어떤 노래를 할까? 콘서트에서는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부르기도 하던데, 이번엔 또 어떤 특별한 노래를 준비했을까? 대원은 새로운 무대를 두 눈으로 직접 볼 생각에 매일 신이 났다. 그러다 딸이 말한 주말이 덜컥 온 것이다. 여전히 마음 한구석은 흥에 취해 있는데, 별안간 딸이 결혼한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생각나 심란해지기를 반복했다. 딸에게는 결혼식 날 서울에 콘서트 보러 가야 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면이 상하는 것이 걱정이었고, 다 늙어 너무 주책이었다. 아버지란 사람이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에 가겠다고 결혼식장에서 먼저 빠져나가도 되겠냐고 질문을 하는 건 무책임해 보였다. 나름대로 첫 만남이라 정갈한 옷을 꺼내 입고 왔는데도 구김이 눈에 띄어 자꾸 옷을 당겨 폈다. 주영이 미리 아버지는 안 계신다고 주의를 준 참이었다. 대원 역시 행여 말실수할까 더 긴장했다.

   사위가 될 아이는 꽤 괜찮은 사람 같았다. 주영이 과묵하고 쌀쌀맞은 것에 비해 쾌활하고 다정해 보였다. 연신 접시에 음식을 덜어 주기도 했고, 가벼운 대화를 잘 끌어 나가는 아이였다. 덕분에 식사하는 동안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다만 두 사람이 너무 친구 같아 걱정되었다. 무릇 가족이란 서로 조금 어렵기도 하고 높이는 마음도 있어야 잘 지낼 수 있는 법이다. 너무 허물이 없으면 해서는 안 되는 말도 툭툭 나오기 마련이니까. 그러면 싸움이 잦아지고 마음의 골도 깊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대원은 딸이 결혼하겠다는 아이가 마음에 들면서도 내심 어딘가 찝찝했는데 도통 설명할 길이 없어 답답했다. 식사가 끝날 즈음에는 준비해 온 선물이 있다며 작은 종이가방을 건넸다. 아무런 무늬가 없는 상자에 든 것은 선글라스였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누가 쓰던 것 같아 가만 들여다보기만 하던 참이었다.

   이게 유명한 빈티지 샵에서 사 온 거예요. 엄청 비싼 명품인데 상태 좋은 게 나와서 제가 냉큼 샀어요. 하루 종일 운전하시니까 아무래도 해 많이 보시잖아요. 그게 눈에 많이 안 좋다더라고요. 그래서 선글라스 사 드리고 싶었는데 마침 알맞은 물건이 나왔지 뭐예요?

   나한테 먼저 물어보지. 우리 아빠 피카부야.

   피카부?

   새것만 좋아해. 반짝거리는 거. 선물 사는 줄 알았으면 미리 말해 줄걸.

   대원은 말이 빈티지지 중고 물품이라고 생각했다. 썩 내키지 않았는데 주영의 말에 대원은 약이 바짝 올랐다. 뭐? 피카부? 새것만 좋아해? 대원은 자신은 그런 속물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싶었다. 어쨌거나 명품이고, 자신을 생각해 고른 물건 아닌가. 선물은 고맙게 잘 쓰겠노라고 대답하며 딸애를 째려봤다. 아무리 그래도 이 자리에서 자신이 가장 큰 어른인데 놀림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상했다. 대원이 눈치를 줬지만 주영은 눈썹을 한 번 으쓱하고 말 뿐 별다른 대꾸가 없었다. 그래. 역시 가족끼리는 조금 어려움도 있고 불편함도 있어야 한다. 너무 친구 같으면 이렇게 서로 마음 상하게 말을 툭툭 내뱉기 마련이다. 대원은 어른으로서 따끔하게 한마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아빠. 식은 두 달쯤 뒤야. 4월 셋째 주 토요일. 잊어버리면 안 돼. 또 까먹고 일정 잡지 말고. 

   당연하지. 내가 뭐, 딸 결혼식 날짜도 헷갈리는 사람일까 봐?

   호언장담을 하고서 날짜를 세는 순간 대원은 머리가 핑 돌았다. 안 그래도 음식이 조금씩 나와 뭘 먹은 것 같지도 않더니만 별안간 속이 꽉 막혔다. 먹은 것 없이 체기를 느끼자 미간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재수가 없으려 해도 이렇게 없을 수 없다. 그날은 다름 아닌 예은 님의 콘서트 날이었다.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데. 물론 대원이 기다려온 날이라는 것은 두 행사 모두를 일컫는 표현이다. 딸의 결혼식도, 콘서트도 오매불망 기다려온 것인데 두 개의 행사 일정이 겹치다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따끔하게 한마디 할 생각만 하다가 딸의 말에 무심코 당연히 된다고 말해버렸다. 대원은 더 이상 체면을 구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날짜를 바꿀 수는 없겠느냐고 물어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 순간에는 너무나 당황해 어떻게 상황을 조율하면 좋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마를 훔치니 땀이 잔뜩 배어 나왔다. 엄지로 손끝을 문지르자 흥건한 땀 때문에 손이 미끄러졌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불현듯 아내가 해 준 말이 떠올랐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땀을 닦고 물을 한 잔 마시면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대원은 물을 가득 삼키고 나서야 주영에게 물었다.

   식은 몇 시야?

   아마 자리 뺀 사람들도 너무 이른 시간이라 뺀 것 같아. 10시 예식이야. 그래도 토요일이면 좋은 요일인데 왜 뺐대?

   대원은 다시 깊은 수심에 잠겼다. 오히려 이른 시간이라 다행인가 싶기도 했다. 애매하게 오후 시간대였으면 꼼짝없이 사면초가인 꼴이 될 뻔했으니까. 아무래도 혼주인 자신이 오래 머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요즘 결혼식은 짧게들 하지 않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친구 자식들 결혼식에 가서 주례를 듣다가 나와 밥만 먹고 온 기억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남들 결혼하는 거 끝까지 좀 보고 올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후회해서 될 일은 또 없다. 대원은 분주하게 타임라인을 생각해야 했다. 10시 예식이니까 하객들 맞이하고, 식 올리고, 사진 찍고, 흩어지고. 못해도 오후 2시면 일정이 다 끝날 테다. 그러고 나서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고. 그리고 용산역에서 콘서트장까지 가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서울에서 뭐 대단히 움직여야 지하철로 한 시간이 더 걸리겠나 싶었다. 전주에서 용산까지 1시간 반, 서울에서 넉넉히 1시간 반. 그리고 대망의 콘서트는 8시다. 그렇게 이동한다고 생각하면 제법 여유 있는 동선이었다. 그러고 보니 폐백도 하나? 요즘 시대가 어느 땐데 대추 물고 어쩌고를 할까? 대원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재차 물었다. 마음이 끝없이 조급했다.

   폐백도 하니?

   안 그래도 아빠한테 그거 물어보려고. 폐백 해야 하나? 어른들은 하는 걸 좋아하신다는데…. 승호 어머니도 그거 굳이 안 해도 된다고 하셔서 아빠 의견은 어떤가 싶네.

   그런 거 다 허례허식이다. 세상이 바뀌지 않았니. 해 봐야 괜히 예식장에 머무는 시간 길어지고 고생만 하지. 고로 식은 간결하게 끝내고 너네 놀러 가. 주례도 내가 봐주마. 어머니도 한번 뵈어야지. 자네 집이 어딘가?

   함양입니다. 경남 함양.

   남원 옆이고만. 내가 차가 있으니까 조만간에 날 잡아서 다 같이 가자고. 옛날에나 재 넘어가는 곳이지 요즘에는 고속도로가 잘되어 있어서 가기 어렵지 않으니까.

   가만 사위 될 아이 이름이 승호였나? 정신이 없어 이런 것까지 잊어버리다니. 대원은 자신의 경황없음에 당황했다. 어쨌든 폐백도 없고, 주례도 대원이 보는 것으로 밀고 나갔다. 대원이 가능한 선에서 시간을 줄여 나가려면 최대한 많은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진땀이 나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역시 큰 기쁨을 모두 누리려면 그에 따른 대가도 무거운 법이다. 꼬인 실타래가 조금은 풀린 것 같았다. 끝없이 아득했다가 얼굴에 비치는 한 줄기 햇살을 느꼈다. 놀라 얹혔던 속이 풀렸다. 대원은 집에 돌아가 컵라면이나 하나 더 끓여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만 자리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기가 쭉 빨려 온몸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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