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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아현 Aug 18. 2023

대원의 소원 5-2

2023년 아르코창작기금 선정작

   아무래도 자식 결혼은 저도 처음이라 감정이 복받쳤나 봅니다. 다들 주례가 길면 지루하시지요? 짧게 끝내겠습니다. 다른 것을 특별히 바라지는 않고요. 부모 된 마음으로 무탈하게, 건강하게 잘 살기를 바랍니다. 가족이라는 게 한없이 편하기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조금은 서로 어렵기도 하고 그래야 존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친구이면서 동시에 조금 어려운 그런 사이 말입니다. 그런고로 서로 마음도 살피고 궁금도 하면서 그렇게 잘 살면 좋겠어요. 조금 모순적이지요? 그래도 별수 없지요. 에…. 사람이라는 게 어느 날은 한없이 상대 생각을 하다가도 결국에는 내 생각을 먼저 하게 돼요. 너무 친구 같은 가족으로 살다 보면 필요한 말을 더러 안 하게 됩니다. 인자 예를 들면은 이런 것이죠. 자주 안부도 묻고, 오늘은 어떻게 살았는지, 좋아하는 것이 생겼는지, 이번 계절에 가고 싶은 곳은 없는지, 먹고 싶은 것은 없는지. 이상하죠? 실은 친구를 만나면 종종 묻는 안부잖아요. 그런데 한집 사는 친구라고 생각하면 묻지 않게 됩니다. 왜 그런고 하니 어려울 때만 생각이 나게 돼요. 도움만 받고 싶고, 배려만 받고 싶어져요. 서로의 뒷배가 되어 줘야 하는데 각자 믿는 구석이 있는 사람들처럼 뻗대게 됩니다. 마음이 조금 어려운 것이 있어야 서로의 안색도 살피고 그런 것입니다. 서로 다정하게 살아야 오래 잘 살 수 있어요. 고로 아무래도 서로 조금 어려워야 합니다. 제 말 무슨 말인지 아시지요?

   한참 주례를 하던 대원은 손목을 흔들어 시계를 봤다. 어쩐지 하던 이야기가 계속해서 맴맴 도는 느낌이 들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주례로 이십 분이나 떠들어버린 것이었다. 미리 준비한 쪽지가 있었으나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에 손수건인 줄 알고 덥석 집는 바람에 물에 다 젖어버렸다. 얼추 좋은 이야기로 시간이나 때우고 내려올 참이었는데 혼자서 한참을 횡설수설 떠들어버린 것이다. 대원은 땀이 주룩 났다. 시계는 원래 예상한 시간보다 한참 벗어난 곳을 가리켰다. 계획이 틀어지자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결국 대원은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말로 주례를 마쳐야 했다.

   검은 머리가 파 뿌리…. 

   대원은 쫓기듯 단상에서 내려왔다. 감당할 수 없는 부끄러움에 가슴이 쿵쿵 뛰고 어쩔 줄 몰랐다. 이게 바라던 딸의 행복한 결혼식인지 생각할수록 장담하기 어려워 시선이 절로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데도 흘끗흘끗 시계를 보며 바짝 땀을 흘렸다. 야속하게도 사회자는 이런 대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꾸만 시간을 끌며 결혼식의 마무리를 방해했다. 식이 다 끝나고 덤덤한 주영과는 달리 한바탕 울어 젖힌 승호의 화장을 고치느라 사진을 찍는 시간마저 지체됐다. 승호는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슬펐을까. 사내자식이 말이야. 내가 더 울고 싶은데 참고 있구먼. 대원은 속으로 생각했다.

   여차저차 모든 식이 끝나고 대원은 웃는 낯으로 주영과 승호를 배웅했다. 대원이 생각하는 어른이란 적어도 이런 것이었다. 행사를 주관하고, 조금 덜그럭거리더라도 맡은 바를 마저 다 수행하고. 동시에 속이 복잡한 것이 어른이라고. 손목 안쪽까지 돌아간 오래된 시계를 흔들어 제자리에 놓았다. 생각한 것보다 한 시간이나 지나버렸지만 그래도 기차 시간에 아예 늦은 것은 아니었다. 혹시 몰라 넉넉하게 표를 끊어 둔 덕분이다. 지금 당장 택시를 탄다면 승산이 있었다. 챙겨 온 여분의 옷에 예매 내역이 든 봉투를 챙겨 기차를 타기만 하면 되었다. 이럴 줄 알고 영환에게 식이 끝나면 역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해 두었다. 예식장을 서둘러 벗어나 주차장에 보이는 영환의 차로 뛰어들었다. 달리는 택시 안에서 바쁘게 옷을 갈아입었다. 나름 깔끔한 옷을 챙겨 온다고 챙겼는데 하필 전부 부스럭대는 재질의 등산복이었다. 꼭 속이 시끄러운 날은 모든 것이 쉴 새 없이 시끄럽고야 만다. 한참 옷을 추스르느라 번잡한 소리를 내던 대원은 마지막으로 안주머니에 봉투가 잘 들었는지 확인했다. 그런데 전주역 도착을 10분 남짓 남겨 두고 길이 엄청막혔다. 아뿔싸. 대원이 생각하지 못한 변수가 하나 더 추가된 셈이었다. 대원은 차에서 내려 플랫폼까지 뛰기로 했다. 갈아입은 옷은 영환에게 맡겨 두고 챙겨 온 배낭을 단단히 고쳐 멨다. 지금이야말로 대원에게 행운이 필요한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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