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마음을 열고 아무에게나 나를 내어주었던 나, 이젠 그러지 않을래요.
성악설과 성선설. 혹시 어떤 쪽에 더 마음이 가시나요? 성선설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하다', 성악설은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 하나 더 있죠, 인간의 선과 악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후천적인 환경 등의 영향으로 달라진다는 '성무선악설'도 있습니다.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요. 저는 무의식적으로 성선설을 취하고 있었더라고요. 타인을 긍정적이고 신뢰하는 태도를 대체 어디서 배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의식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 보면, 아마도 사고가 발달하기 전 기간인 유년기에 어머니가 혹시 맹자를 읽으셨던 걸까요? (ㅋ..)
심지어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해 '저 사람도 착할 거야. 나도 선한 사람이니까. 끼리끼리잖아?'라는 생각에 선할 것이라 판단하고요. 열린 태도로 상대방의 긍정적인 면을 조명합니다. 타인이 선을 넘는 발언을 하거나 부정적인 행동을 해도 '에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겠지', 혹은 '환경이 바뀌면 괜찮아질 거야. 저 사람이 힘들어서 잠시 그런 것이겠지'하곤 합니다. 타인의 행동과 말을 검증하기보다는 알 수 없는 선한 믿음에 기반해 (상대방은 원하지도 않았는데) 그들에게 아주 큰 관대함을 발휘하죠.
사실, 성선설 자체를 믿는 것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믿음과 현실은 다릅니다. 하여, 성선설에 기반한 믿음이 오히려 저를 해치곤 했습니다. 팩트만 이야기하자면, 사람들은 항상 선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늘 선하게 행동하지도 않죠. 하지만 성선설에 입각해 '모든 사람들은 선하게 행동할 거야'라는 과도한 기대를 했던 저는, 그렇지 않은 현실에 매번 실망했습니다. 타인의 행동을 선의로 해석하는 습관 덕분에 실제로 누군가 무례한 행동을 하거나 배신과 같은 어마어마한 이벤트가 발생하면 큰 심리적 타격을 받았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원하지도 않고, 그렇게 봐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혼자 짝사랑하듯. 그들의 지나치게 좋은 면만 조명하고 기대치가 커지다 보니 애매한 상황이 많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들을 마음대로 좋게 바라본 저의 잘못. 결국 저를 해치더라구요. 그들은 나를 좋게 보지 않거나 내게 무례하면 상처가 컸습니다. 언제부턴가 충분히 보상받지 못했다는 감정이 쌓이게 되더군요. 결국 인간관계 전반에 불균형이 형성된 것을 포착했습니다.
심리학에 '사회적 교환 이론(social exchange theory)'이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사람들이 주고받는 상호작용의 이익과 비용을 평가하면서 해당 관계를 유지하거나 종료한다'는 이론인데요. 인간관계를 경제적인 거래 관계로 비유한다고 야박하게 "우 씨(?). 꼭 내가 준만큼 저 사람에게 받아야 한다!", 혹은 "준 것보다 더 받아야 한다!"라기보다는 '건강한 인간관계 유지 여부는 보상과 비용의 균형'에 따라 결정된다'라고 보는 게 더 바람직할 듯합니다.
사회적 교환 이론에서 나오는 보상(reward), 비용(cost), 두 가지 개념을 적용시켜 그동안 불균형한 관계를 자처해 스스로 불행하게 만들었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볼게요. 성선설에 입각해 친구, 지인, 심지어 낯선 사람까지. 타인을 쉽게 믿고 좋게 보는 덕분에 저는 그들에게 쉽게 마음을 열고 관계에 임했습니다. 덕분에 상대방을 알아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죠. '타인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보상'입니다. 하지만, 마음을 쉽게 열고 즐겁게 지내면서 문득 기대도 훌쩍 커지더라고요. 내가 그들을 좋게 보고 배려하는 만큼 상대방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 사람은 왜 내가 저 사람을 생각하는 만큼 생각도 말도 나에게 안 해주지?'하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성선설을 바탕으로 키워온 타인에 대한 높은 기대감. '내가 만인을 좋게 보고 행동한 만큼, 그들도 나에게 이렇게 하리라'라는 기대가 충족되지 못했을 때 느끼는 실망감과 상처는 감정적으로 탈탈탈 소진되게 만들더군요. 이렇게 지속적으로 실망하고 상처받으며 감적으로 소진된 경험은 '비용'입니다. 상처(비용)가 보상(즐거움)을 초과하니, 관계의 불균형이 터져 나오고 결국 큰 상처로 아예 번아웃이 되어버리게 됩니다. 쉽게 마음을 열어 상처받은 경험, 저만 있던 건 아니죠?ㅎㅎ
그래서 이제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기로 했습니다. 타인을 무작정 좋게 보는 것도 그만두기로 했어요. 이제는 타인의 행동과 말을 덤덤히 관찰하려고요. 오래된 우정도, 어제 만난 지인도. 앞으로는 근거 없는 신뢰와 믿음을 기반으로 좋게 바라보지 않을 겁니다. 그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고요.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보겠습니다. 새로운 사람이든, 오래된 사람이든 - 이 관계가 나에게 어떤 보상을 줄 것인지 잠시 멈춰 생각하려고요. 계산적으로 인간관계에 임하는 뉘앙스로 들리실 텐데요, 아닙니다. 뭐, 굳이 이야기하자면 이미 기존의 인간관계는 불균형으로 가득하기에, 불균형한 관계에서 벗어나 신중하게 관계를 새로 만들기 위한 첫 단계로 보시면 좋겠습니다.
사람에 대한 판단, '좋다, 선하다, 나쁘다, 악하다'와 같은 판단은 근거 없는 나의 생각일 뿐입니다. 이런 생각은 이제 한편으로 치우고,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맺거나 기존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갈 때, 보상이 없는 관계를 피하겠습니다. 연락을 늘 제가 했다면 이제는 더이상 먼저 연락하지 않을 것이고, 상대가 나를 배려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거리를 둘 것입니다. 먼저 연락하고 상대방을 지나치게 배려하며 감정적으로 소모되었던 경험(비용)을 조금 줄일 거예요. 상호 존중이 느껴지는 말과 행동, 고마움의 표현과 같은 최소한의 보상이 없는 관계에 더 이상 에너지와 열정을 쏟아붓지 않겠습니다. 과도하게 노력하지 않아도 유지되는 관계, 느슨한 연대라고 해야 할까요? 스스로 소진되면서까지 노력하지 않을 거고요. 나와 가치관이 맞으며 서로의 비용과 보상을 존중하는 관계를 선택하겠습니다. 건강한 관계는 주고 받는 (give-take) 균형에서 성립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스스로를 위해 허들을 만드려고 합니다. 처음부터 전적인 신뢰를 퍼주기보다는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바라보고, 관찰하고. 일관성이 있는지 지켜보며 신뢰를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처음부터 기본점수 100점을 주던 과거는 끝났습니다. (참말로.. 매우 후한 점수를 남발하고 다녔네요.) 이제는 0부터 100점을 저와 소통하며 신뢰를 만들어 나가야 할 거예요. 이제까지 전력을 다한 진심, 소진될 정도로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는 내려놓아도 되지 않을까요? 내려놓아서 관계가 끊긴다면 그건 거기까지인 시절인연이겠죠.
"잠깐만요. 내가 이렇게까지 노력했으니, 그래도 노력이 아까운데 이 관계는 유지되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겁니다. 이는 과거의 노력에 대한 집착입니다. 과거의 투자를 떠안으려는 심리적 편향으로, 경제용어로는 '매몰비용 오류'입니다. 주식에 대한 투자로 비유하면 더 와닿을까요? (굳이 손절이나 익절에 대한 비유는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이미 지난 긴긴 세월동안 상대방에 대한 진심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증명했어요. 그만합시다. 대신, 현재의 가치와 에너지, 지금 눈에 보이는 것으로 관계를 평가하자고요. 더 이상 노력하지 마세요. 이전처럼 노력하면 에너지가 크게 소모되어 지금보다 더 큰 인간관계에 대한 환멸감이 올 수 있어요. 대신, 관찰합시다.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큰 관심을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대치도 낮추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선한 의도로, 혹은 나처럼 giver일리가 만무합니다. 어쩌면 taker가 더 많은 생태계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현실적인 기대를 가지려고 합니다. 상대의 반응에도 초점을 두지 말아야겠죠. 상대가 연락하지 않는 것에 대한 화, 괘씸함은 사실 내가 상대의 반응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반응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오히려 현명할겁니다.
마지막으로, 감정적인 경계를 설정하겠습니다. 모든 관계에 허들을 설치할 거예요. 신뢰가 쌓여 어떤 사람을 선하게 보게 되었지만, 그 사람에게 또 지나친 기대를 하면 괴로워지는 것은 제 자신이니까요. 신뢰가 쌓여 함께 건강하게 주고받는 관계의 사람들은 듬뿍 사랑하겠지만, 그들이 나에게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즉 예외는 언제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일종의 감정적 경계를 만들려고요. 역시 저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마지막으로 잘 안 되겠지만, 사람 보는 눈 좀 키우려고요. 37년 동안 뒤통수 맞고 살아 온 성선설론자. 그래도 37년의 인간관계 데이터를 바탕으로 상대방의 진정성과 신뢰성은 판단할 줄 압니다. 현실을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아니면 아닌 것을 인정하고 인간관계를 콤팩트하게 만드는 것도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더불어 그동안 소진되고 상처를 반복해온 스스로를 먼저 돌보려고 해요. 혼자 애쓰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무엇이든 마음을 위로하는 활동을 할거에요. 스쳐지나가는 타인도 자존감 up되도록 상대방을 우선순위로 느끼게 해주었어요. 그로 인해 유지되었던 관계, 이제는 정리하려고 합니다. 저의 우선순위는 이제 그들이 아니라 저 자신입니다. 현실적이고 균형 잡힌 기대를 더하는 방식으로.
이제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