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 힘주고 진심을 담지 않기, 그저 친절한 것만으로도 괜찮아요
매사에 오롯이 힘준 결과는 번아웃이었습니다. 모든 일에 하나하나 진심을 담으니 당연히 에너지가 소진될 수밖에요. 사실, 바보 같게 보실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저와 비슷한 줄 알았습니다.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앞모습과 뒷모습이 똑같고, 타인도 나와 같이 매사에 진심과 온 마음을 다한다고 생각했어요.
사회생활을 하고 나서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었어요. 하지만 저는 늘 진심을 담은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누가 뭐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어떤 이유나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진심을 담지 않은 친절은 가식이라고 생각했어요. '진실되지 않은 친절을 행하지 않는 게 맞다'는 이상한 고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승무원을 준비하기 위한 일환으로 영화관 아르바이트 할 때에도 늘 온 마음을 다했습니다. 홍보대행사에서 AE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해서도 고객사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무언가 문제 해결이 더뎌지면 진심으로 죄송했습니다. 모든 말과 행동에는 진심이 담겨있었죠. 그러다 보니 다들 앞뒤가 같은 사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평판을 얻으려고 이렇게 매사에 진심을 담고 투명하게 행동해 온 것은 아닙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모름지기 친절은 진심이 뒷받침될 때 더 빛난다고 생각했고, 제가 정의하는 친절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그 뿐입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이렇게 소진되었습니다. 온 마음으로 모든 고마움, 감사함, 죄송함, 기쁨, 슬픔을 오롯이 보여주고, 공감하고, 표현하다 보니 '사회적 자아'와 '제 자신'의 건강한 분리가 필요할 때도 그러지 못해 정신적 에너지가 소진된 것이죠.
맞아요. 모든 일에 진심을 담을 필요는 없습니다. 저를 보세요. 지난 37년 동안 매사에 진심을 담은 친절을 행한 결과, 번아웃으로 산산조각 나 버렸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정신과 신체 에너지를 조절하기 위해 늘 진심을 담아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거 아세요? 의외로 사람들은 내가 아무리 진실된 마음으로 그들을 대했다고 해도 잘 모릅니다. 진실되지 않은 마음으로 대해도 잘 모르기도 하고요.
그러니, 앞으로 사람들에게 진심 없이 대충 하라는 그런 극단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소중한 나의 에너지 조절을 위해, 사회적 위치와 역할에 따라 행동과 말, 에너지를 조절하는 게 어떨까요. 심리학에 '사회적 역할 이론(Role theory)'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회적 역할 이론은 사람이 특정 상황이나 사회적 맥락에서 기대되는 행동(역할)을 수행한다는 이론입니다. 사회적 위치와 역할에 따라 행동을 조정하고, 이러한 역할이 인간관계와 행동을 형성하죠.
진심을 담지 않은 행동을 해도 인간관계를 맺거나 사회생활을 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사회적 역할 이론에서는 '역할 거리(role distance)'라는 개념이 있는데요. 이를 적용해 보면 우리는 개인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친절을 단순히 사회적 역할 수행의 일환으로 여겨도 됩니다. 즉, 사회생활을 하며 행하는 친절에 나의 진실된 마음을 담지 않아도 됩니다. 진심을 담지 않으니, 감정적으로 과도하게 몰입하지 않음으로써 관계를 좀 더 건강하게 관리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제가 베푼 친절 중 하나는, 바로 고민 들어주기였습니다. (오해 마세요. 앞으로도 저는 제가 돕고 싶거나 아끼는 사람이라 생각되면 고민을 들어주고, 원하시면 해결책도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며 공감하고 저의 일처럼 생각할 예정입니다.) 다만, 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진심을 좀 덜어내려고 합니다. 과도하게 몰입해서 번아웃이 된 만큼, 에너지를 조절하며 친절을 베푼다는 이야기입니다. 진심으로 공감하며 원하는 조언과 도움을 제공해서 감정적으로 지치고 스트레스받은 지난 37년을 좀 바꾸고 싶어요.
간단한 공감, 지나친 개입과 몰입 없는 말과 표현으로도 충분히 인간관계는 유지되고 잘 흘러갈 수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스스로 소진되지 않는 선상에서 '그럴 수 있죠. 힘들었겠군요. 다들 비슷하게 겪더라고요."정도의 위로만 건네주어도 충분히 상대방에게 위로를 전할 수 있어요. 감정 소진을 막기 위해 사회적으로 통용된 역할, 기대된 역할만 수행하면 됩니다. 감사함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큰 관심이나 사랑, 좋은 일들이 일어나 감사하는 상황에서도 적당히 마음의 거리를 유지한 채, 순간에 그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건네는 정도에 그쳐보는 게 어떨까요.
매사에 진심을 다하지 않아도, 감정을 담지 않아도 인생은 잘 흘러갑니다. 진심을 담지 않았다고 해서 당신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어요. 오히려 진심을 적당히 담았기 때문에, 혹은 그냥 그 현상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면 관계에 대한 기대치도 낮아지고, 불필요한 실망도 줄어들게 됩니다. 슥슥 쓰다보니, 제가 소진된 원인은 사실, 진심을 담아 표현하고 시간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 상대방에 대한 큰 실망감과 배신감에 대한 상처가 컸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즉, 내가 진심을 표현했고. 너에게 나의 진심을 주었으니, 너도 진심으로 화답해야 하지 않겠니-와 같은 일종의 기대심리가 컸고, 그런 기대심리가 충족되지 않은 것에 대한 허무함과 절망감으로 인해 스스로 연소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업무적 관계, 오랜 시간 알아온 인간관계, 친구관계에서도 너무 진심을 담지 말자고요, 나를 위해서. 업무적인 관계에서는 '사회생활을 하는 나의 자아'를 불러내서 단순히 업무에 대한 친절과 공감 정도를 적당히 유지해도 괜찮습니다. 내가 하는 일에는 진심을 담아도 되지만, 사람에게는 적당한 거리와 'no진심'도 괜찮습니다.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는 이제 더 이상 상대방의 상황과 감정에 지나치게 몰입하지 말고, 그냥 그런가 보다 - 하고 듣고 관련된 역할 수행(친구로서의 기본적인 역할 등)만 하면 됩니다. 친구에게 진심과 공감을 보여주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친구라는 이유로 하나하나 다 몰입해 주고 공감해 주면 에너지가 거덜 나니, 친구의 역할 수행 관점에서 적당히 선을 지키자고요. 친구라고 무조건 공감하거나 진심을 담아야 하는건 아니잖아요. 다시한 번 말씀드리지만, 나의 진심, 친구는 잘 알지도 못하고 알더라도 까먹습니다. 인생 길어요. 어떻게 될지 모르니, 진심을 늘 담기보다는 내가 힘들 때, 에너지가 없을 땐 굳이 진실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렇게 친절의 기준, 진실한 모습의 기준과 한계를 정하면 과도한 에너지 소모를 피하고 어쩌면 좀 더 건강한 인간관계를 만들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지난 37년보다는 조금 덜 상처받을 거라 생각합니다. 도울 수 없는 상황에서도 굳이 '나는 앞 뒤가 같고, 진실한 사람이니까 어떻게 해서든 이 사람을 도와야 해'라며, 나의 있는 것 없는 것 퍼부으며 크게 자신을 소진시키지 말고, 도울 수 없는 것은 이제 도울 수 없다고 말해봅시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진심을 덜 담는 것, 도와줄 수 없는 사실 그대로 이야기해도 상대방은 이해해요. 이해 못하면 그냥 거기에서 끝나는 시절인연이니 연연해 하지 맙시다. 인간관계, 아시잖아요. 내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네, 37년 동안 관성처럼 매사에 진심을 담아 온 말과 행동양식이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감정소진을 줄이고 기대치를 낮춰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스스로의 에너지를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시도입니다. 적절한 거리두기. 적절한 관계 유지를 위해 진심을 담지 말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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