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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쿠 May 07. 2021

18.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

극으로 치닫는 부부싸움을 끝낸 사람은 누구일지...??


엄마는 손이 빠르다.

다른 사람이 배추 2~3개를 심는 동안 엄마는 3~4개를 심는다.

세심함은 좀 떨어지지만 그 속도는 남에게 뒤쳐지는 법이 없는 일꾼 중의 일꾼이다.

아빠는 엄마처럼 손이 빠르지 않지만 일의 정확성과 세심함에서는 월등히 앞선다.

엄마가 배추 3~4개를 심고 있으면 아빠는 1개를 심으며 바람에 날릴까 비에 쓰러질까 꾹꾹 눌러주는

과정을 아주 오랫동안 꼼꼼하게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엄마는 속이 터져 꼭 한마디를 한다.

"오메 그 배추 당신 손에 눌려 죽겄소!! 오메 나 차라리 안 보면 안 봤지 저 꼴은 못 보겄네"

"자네처럼 하다가는 바람 불면 배추 뽑혀 날아가겄네. 뭣이든 빨리 한다고 좋단가!!"

아빠도 잔소리하는 엄마가 못마땅해 반격했다.



"어따 벌써 6시네. 이제 그만 하고 집에 가세. "

아빠는 시계를 보더니 연장을 챙기기 시작했다.

"아직 날이 밝은디 뭔 일을 벌써 끝내?? 당신 꼬랑은 일이 하나도 안되어 있는디?? 응?? 진짜 지금 간다고??"

엄마는 혹시나 일을 더 할까 싶어 아빠를 자극하지만 아빠는 그저 집에 갈 생각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아빠 따라 집에 돌아온 엄마는 일복도 갈아입지 못하고 저녁 준비를 하느라 정개(부엌)에서 바쁜데 아빠는 대충 손을 씻고 평상에 누워 책을 펼쳤다.


아빠의 취미이자 특기는 독서. 산골에 사는 농부이지만 늘 책을 가까이했다.

아빠의 책은 아주 두꺼운 빨간색 표지 위에 한문이 세로로 써져 있었다.

책 내용도 한글과 한문이 섞여 세로로 써져 있는데 나는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를 모르겠다.

책장에는 그 빨간 표지의 책이 수십 권 꽂혀 있었고 아빠는 그 책을 읽고 또 읽고 또 읽었다.

아마 오늘도 마저 읽기 위해 빨리 왔을 것이다.


내가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으면 엄마는

"오메오메 우리 지선이 공부하냐?? 잘한다 잘해"라고 좋아하며 내 등을 토닥였다.

하지만 아빠의 독서를 반기지는 않았다. 오히려 꼴 보기 싫어할 때가 많았다.

"지금 책이 문제요?? 얼른얼른 내 일을 도와야제!!"

아빠가 못마땅해 가끔씩은 미운 소리도 했다. 특히 책에 빠져 차려준 밥도 안 먹을 때면

"차려준 밥도 안 먹고 저놈의 책만 보고 있네. 워메 속에서 천불이 나 죽겄네잉!!"

라며 괜히 도구통(절구통)을 찍어대며 속풀이를 했다.


그날도 오자마자 책만 보는 아빠가 꼴 보기 싫었는지

"아야 길섭아!! 그놈의 책 좀 쩌리 치워버려라??!!"라는 반말로 6살 많은 아빠를 도발했다.

"뭣이 어쩌고 어째?? 허허이 길섭이?? 길섭이?? 내가 니 친구냐?" 아빠가 참을리 없다.

화가 난 아빠는 눈썹을 지렁이 기듯이 꿈틀거리며 침을 튀기며 엄마를 향해 소리쳤다.

"그래 길섭이라고 했다. 뭣이 잘못됐냐?" 엄마도 지지 않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워메 내가 못살겄네 못살겄어. 그놈의 책이 밥을 멕여줘.일을 해줘?? 저 뭉둥이 같은 책 꼴도 보기 싫네."

"아야 일 할 것 다 하고 와서 책 잠깐 본 것이 뭐가 그렇게 잘못되었다고 이 난리냐?? 어??"

아빠도 분하고 억울하다며 따졌다.

"일을 다해?? 염병할놈의 책을 볼라고 일도 하다 왔제!! 내가 못살지 못살아!! 저런 똥 멍청이랑은 못살아!!"

엄마는 당신이랑은 더 이상은 못살겠다며 가방을 싸기 시작했고 아빠는 짐 싸는 엄마를 보며  당황했지만

말리거나 달래지는 않았다. 나는 엄마가 진짜 집을 나갈까 싶어 아빠 한번 엄마 한번 쳐다보며 울기 시작했고

진규도 나를 따라 울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때 5살 막내 진용이는 조용히 쇠고기 라면 박스를 가져오더니 자기 옷 몇 개와 엄마가 일할 때 입는 몸빼를

박스에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엄마 나랑 같이 가. 누나 형아 말고 나만 데려가. 내가 엄마 옷도 챙겼어"라고 귓속말을 하였다.

그제야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챈 나와 진규는

"야 너 뭐야?? 왜 너만 데려가?? 엄마 나도 데려가"라고 울부짖으며 뒤늦게 뺏간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아빠는 코웃음을 친다는 것이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고 입술을 꽉 깨물고 있던 엄마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박장대소했다.

"니들이 나 없이 살겄냐?? 니 아빠 믿고는 살도 못해!! 엄마나 있어야 사람 구실 하제"

엄마는 매달리는 우릴 보며 왠지 흐뭇해했다.

그리고선 싸던 짐가방을 한쪽으로 밀어내면서 "오메 내 새끼들"하며 우릴 안았다. 그 모습을 보던 아빠는

"어따 아주 생쇼들을 한다 쇼를 해. 얼른 밥이나 차려. 배고파 죽겄네" 라며 호통쳤지만 눈썹부터 입꼬리까지

웃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한가한 겨울에 책을 읽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엄마는 틈만 나면 그날 막내의 처세술에 감탄을 하며 말할 때마다 눈물을 찔끔할 정도로 혼자 웃었다...

나는 그저 울기만 했는데 막내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나보다 낫다.

막내 덕에 엄마 아빠의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로 끝이 났으니 칭찬받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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