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신춘편지쇼에 떨어지고도 좋았다.

여성시대의 치유법

by 아이쿠

난 라디오를 자주 듣지는 않는다.

장시간 운전할 때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음악이 많이 나오는 프로를 듣는 정도다.

그런 내가 요즘 일주일에 3번은 꼭 듣는 라디오가 있다. 여성시대...

최장수 프로 중 하나라지만 내가 듣기 시작한 건 겨우 1~2년 전부터다.

출근이 늦는 남편 밥을 짓다 주방에 있는 라디오를 켰는데 마침 여성시대가 하고 있었다.

양희은 님의 걸걸하고 약간은 무뚝뚝한 목소리와 말투 그리고 호탕한 웃음, 서경석 님의 상냥한 목소리.

라랄랄라 라랄랄라 랄랄라~~ 듣는 이를 기분 좋게 하는 라디오 도입부.


이것저것 구성이 많은 알찬 프로이지만 내가 여성시대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청취자들 때문이다.

얼굴이 안 보이는 라디오라서일까? 익명이어서일까? 그들의 사연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인생 이야기가 있다. 같이 축하해주고 싶은 기쁜 일도 있지만 같이 울어주고 싶은 기가 막힌 사연도 많다.


여성시대를 듣기 시작할 때 즈음 나는 개인적으로 많은 슬픔과 분노와 절망이 내 마음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번갈아 요동을 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입 밖으로 모진 말을 쏟아낼 수 있을 정도로 가슴의 꽉 막힌 응어리를 풀지 못하고 있었다. 주변에 알고 지내는 사람은 많았지만 내 속을 다 끄집어 보이기에는 부끄러웠고 혹시나 뒷말이 두렵기도 했다. 어디 가서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그럴 용기는 또 없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를 난 그저 듣고만 있을 뿐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다. 나보다 극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인생 앞에서 난 겸손해지며 어쩌면 지금 내가 그들이 바라는 참으로 평온한 일상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 쏟아내고 친구에게 하소연을 해도 전혀 해소되지 않던 나의 답답함이었는데 그저 남들 이야기를 듣고만 있을 뿐인데... 난 단 한마디 안했는데.. 내 마음의 상처가 아물며 새살이 돋는 느낌이었다.

우연히 듣게 된 여성시대를 통해 나는 희망을 보았다. 그때부터였다. 우울한 일이 있으면 라디오를 켰다. 아침 9시 밥을 지으며 나는 상처 난 내 마음을 보듬었다.


얼마 전에는 불치병에 걸려 어떤 일상을 살아가는지를 담담하게 알려주는 50대의 사연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아이들을 다 키워놓고 아픈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라지만 10년 가까이 온 식구가 번갈아가며 환자를 돌보고 있으니 이제는 지칠 대로 지친다고 하였다.

아내는 섣불리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쏟아내야 다시 내일을 채울 수 있다고 했다.

듣는 내내 그들의 일상이 상상이 되어 얼마나 힘들까 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고 더 좋아질 상황은 없다는 말에는 한숨도 나오지 않았다. 건강함에 감사하며 그저 묵묵히 밥을 지을 뿐이었다.


며칠 전에는 울산 화재사건으로 순직한 20대 소방관 이야기였다.

아들 후배였다는 순직한 소방관. 이제는 고인이 된 그에게 보내는 선배 어머니의 편지에 가슴이 저미며 목이 메어 눈물이 났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난 또 그저 묵묵히 밥을 지을 뿐이었다.



여성시대의 올해 신춘편지쇼 주제는 가게였다.

나도 몇 년째 가게를 하고 있으니 에피소드는 차고 넘쳤다.

이번 주제는 나를 위한 것 같았다. 감동적인 한 개를 골라 접수했고 약간의 기대도 하였다. 기다리는 시간이 어찌나 길던지....


당선작 발표를 하는 첫날. 볼륨을 최대한 높이고 귀를 세우고 정신은 라디오에 둔 채 쌀을 씻었다.

"이번 신춘 편지쇼에는 2500편이 접수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리고 오늘은 두 편의 당선작을 발표하고 사연을 듣겠습니다. 첫 번째 당선작은!!"

첫 번째에도 두 번째에도 나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괜찮아 아직 몇 편 남았잖아' 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당선작의 편지를 읽어내려 갈수록 나는 내가 떨어졌구나를 직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편지 주인공에 감정이입이 되어 슬픔이 복받쳤다.

얼굴도 모르는 그들이 지금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왜 그럴까?? 스스로에게 물은 적이 있다.

내가 남의 불행을 보며 자기 위안을 얻는 그런 사람인 건가? 하고 조금은 부끄럽기도 했다.

하지만 아니다. 그들이 불행해서 내가 행복한 게 아니었다.

그들의 많은 이야기는 절망에서 시작되어 역경을 딛고 행복에 도달해서 기쁘다고 했다.

지금은 행복하다는 소식에 나도 같이 기쁜 걸로 보아 그들의 불행을 나의 행복의 발판으로 삼는 건 아니었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날 위로했던 거지?? 그건 바로 나만 불행한 줄 알았는데 우리도 힘들다는 말이었다.

지금은 희망이 없다 라고 결론짓는 사연들은 지금 끝이 안 보이는 삶을 살고 있지만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나도 알고 있었다. 내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그저 시간이 지나야 자연스레 그 끝이 보인다는 걸. 알면서도 답답함에 몸부림 치는 나였다.

그러니 나도 그만 몸부림치고 편지의 주인공들처럼 나의 하루를 살아내야겠구나 라는 다짐을 했다.

그들의 편지는 지금 니가 지고 있는 그 바윗돌. 나도 지고 있다. 힘들면 동무해 줄 테니 같이 나아가자 라고 달래는 듯 했고 그것 조금 짊어지고 힘들다 죽는소리하는 거냐며 징징대지말고 근력을 키우라고 야단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힐링이 되고 치유가 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평온해졌다. 평온한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다 보니 이제는 나도 희미한 빛이 보인다.

아직 저 멀리 있는 작은 쥐구멍 빛이지만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글은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며 담담하다. 하지만 듣는 이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들 곁에 대필해줄 작가가 있어서가 아니라 진심과 진정성 때문이었다.


나를 다독이는 시간이 지나면 같이 기쁨을 나누는 행복 바이러스 같은 사연들도 있다.

결혼을 앞둔 이야기. 수험생 아들에게 보내는 엄마의 따뜻한 편지는 같이 파이팅이라고 외치게 된다.

주변인들에게 시답지 않은 일로 상처 받는 사연자에게 "그러라고 그래"라고 쿨하게 말하는 양희은 님.

나도 모르게 "그래 그러라 그래"라고 따라 하며 같이 쿨해진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돌려 까기 하고 힘있는 목소리로 화이팅을 외치는 서경석 님의 말에 나도 모르게

풋 하고 웃게 된다.

사실, 다른 라디오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의 희로애락을 전하는 게 라디오니까.

그래도 난 조금 더 우리들의 삶을 깊이 있게 이야기하는 여성시대가 참 좋다.

여성시대 홈페이지에도 써 있더라. 삶의 무게 앞에 당당한 사람들..이라고.

오늘도 9시가 되면 랄랄랄라 라랄랄라 경쾌한 음악소리를 들으며 나는 밥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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