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선아. 갈치를 그렇게 먹으면 버리는 게 너무 많잖냐!! 아깝게"
"가시 발라 먹기 힘드니까 그냥 이렇게 먹을래"
"가시나 말도 안 듣네"
엄마는 갈치를 자주 구워준다.
갈색이 돌게 튀기듯 구운 갈치를 나는 양옆을 다 떼어내고
삐져나온 가시를 두 손으로 붙잡고 갈비 뜯듯이 살을 발라 먹었다.
이렇게 먹자면 버려지는 살이 많은데 엄마는 그게 아까워
잔소리를 하며 버려지는 그 살을 엄마 그릇으로 가져가 먹었고 엄마도 못 먹는 잔가시들은 물만밥과 함께 메리의 차지였다.
까다로운 아빠 입맛을 맞추기 위해 엄마는 참으로 다양한 음식들을 차려냈다.
간자미 무침, 홍어무침, 조기구이, 갈치구이, 서대 미역국, 동태국, 매생이 굴국 등등 이 많은 생선요리 중 내가 유일하게 먹는 건 비린내가 적은 갈치구이다.
그리고 갈치만큼 좋아한 바닷 재료는 꼬막과 낙지다.
피를 머금도록 살짝 데쳐낸 꼬막은 간이 잘 배어있어 양념 없이 먹어도 뒷맛이 짭짤하다.
간장에 다진 쪽파를 넣고 만든 양념장을 꼬막, 밥과 비벼 먹는 꼬막 비빔밥은 제일 좋아하는 비빔밥 중 하나다.
헌데 꼬막을 먹을 땐 꼬막살 사이에 뻘이 들어있지는 않는지 잘 확인해야 한다.
지난번엔 뭣 모르고 꼬막을 한입 쏘옥 먹었다가 한동안 석유냄새 같은 뻘냄새가 입안을 맴돌아 영 찝찝했다.
대나무 끝에 넣은 낙지머리를 시작으로 다리까지 돌돌 말아 간장 양념을 묻힌 낙지호롱은 석쇠에 올려 참숯불에 굽는다.
술안주로도 참 좋은 음식이기에 아빠가 좋아했고 그래서 엄마는 부지런히도 낙지를 돌돌 말았다.
숯불에 구워지는 동안 우리는 숯불 주변에 둘러앉아 낙지가 잘 익을 때까지 눈이 빠져라 쳐다보느라 내 눈이 빨갛게 익을 판이다.
살짝 탄 듯 잘 익은 낙지를 들고 부들부들한 다리부터 입속에 넣어 돌돌 돌려가며 먹어야 제맛이다.
바삭하게 구운 김을 손으로 잘게 부숴 물과 고춧가루 볶은 깨와 참기름을 넣어 간 맞춘 해우국(김냉국)은 여름철 오이냉국보다 고소하고 시원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냉국이다.
겨울이면 구운 김에 막 한 따뜻한 흰밥을 올리고 양념간장, 봄철이면 달래 양념장을 올려 싸먹으면 다른 반찬 없이
밥 두 그릇은 먹을 만큼 내 입맛에 딱이었다.
엄마는 사계절 내내 맛있는 밥상을 차려내었지만
특히나 겨울이면 농사일이 없어 한가하다며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자주 해주었다.
그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가 팥죽이다.
밀가루를 반죽해 두껍고 긴 국수를 뽑아내 팥죽을 쑤어
설탕 한 숟가락 아니 두 숟가락 넣어 먹으면 어찌나 달큼한지.
난 콩국수의 콩이 입안을 꺼끌거리는게 싫었지만
이상하게 팥죽의 텁텁한 맛은 마음에 들었다.
동글동글 찹쌀 새알을 넣은 동짓죽도 맛있지만
팥죽이야말로 면 사이사이 낀 팥으로 팥의 풍미를 더 느낄 수 있다.
다른 반찬도 필요 없이 김 한 장 붙여 먹는 짭짤한 찰밥과
음료수처럼 곁들이는 시원한 싱건지(동치미).
가을에 따 새빨갛게 익을 때를 기다려 껍질째 먹는 대봉.
아궁이 군불에 구운 고구마는 자주 먹는 겨울 간식이다.
물론 싱건지와 함께.
이렇듯 엄마의 정성으로 차려진 풍성한 밥상덕에 추운 겨울이 더 기다려진다.
엄마의 손이 바빠질 계절이 다가 오고 있다. 내 입도 쉼없이 바빠질 그 계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