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진아 이거 정답은 뭐야?"
나는 선생님에게 들리지 않도록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비록 아직까지 침을 흘리는 경진이지만 착하고 똑똑해서 나의 물음에 차근차근 대답을 해준다.
지금의 담임 선생님은 새로 오신 나이 든 선생님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우리 선생님은 수업을 잘 안 한다...
아침에 교실에 오면 선생님 자리에 앉아 두발을 쭉 펴서 책상에 올려놓은 채 신문을 읽기 시작한다.
신문을 읽는 동안은 입안에 뭘 넣고 한참을 오물오물하다 입안에 거슬리는 어떤 작은 물질들을 퉤퉤 하며 뱉어내는 걸 반복한다.
선생님이 신문을 보거나 책을 읽으며 때우는 그 수업시간이 우리에겐 자습시간이다.
자습을 시작할 때면 항상 "공부하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질문해라"라는 말을 했으나 우린 배운 것이 없으니 무얼 아는지 무얼 모르는지 스스로도 파악이 힘든 지경이다.
1학년에는 한글을 떼느라 혼난 적이 많았고
2학년에는 시계 보기를 못하여 선생님한테 엉덩이를 맞고
3학년에는 체육만 잘하는 나였지만 선생님들이 수업을 안 하지는 않았다.
혼나면서도 선생님이 좋아 선생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았는데 어쩐 일인지 지금 담임 선생님은 무섭기만 하고 정이 가질 않는다.
똑똑한 경진이는 교과서와 전과를 펴놓고 잘도 푸는 문제를
나는 아무리 보아도 모르겠다.
선생님한테 물어보자니 무서워 경진이에게 물어볼 수밖에...
착한 경진이는 자기도 모르는 문제는 선생님에게 물어봐 우리에게 가르쳐주니 우리에겐 경진이가 선생님과 같은 존재다.
지루한 자습 시간에 조금이라도 떠들면 우리는 운동장을 돌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벌을 받았다.
어느 날은 자를 세워 손등을 때리기도 했고 또 어느 날은 책상 위에 올라가 무릎 꿇고 앉아 한참 동안 팔을 들고 있었다.
지난번에는 다리가 너무 저리고 팔이 끊어질 듯 아파 이대로 그냥 쓰러져버릴까도 생각했지만 내 바로 옆에 도시락을 얹어 놓은 난로가 있어 차마 쓰러지지 못하고 이를 악물고 참았다.
어느 수업시간에는 도시락을 데워주던 그 난로 땔감을 찾아 학교 뒷산을 올라야 했다.
개구쟁이 동훈이, 순둥이 경진이와 종국이, 말괄량이 수진이와 나는 학교에만 오면 쥐 죽은 듯 조용히 자습만 해야 하는 일상이 계속되었다. 숨이 막혔다.
차라리 땔감을 찾아 학교 뒷산을 오르는 게 속 편했다.
그런 선생님을 동네 사람들은 깍듯이 모셨다.
선생님이 가정방문이라도 하는 날에는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음식을 하여 술과 함께 차려내었다.
그 모습이 보기 불편해 엄마에게 선생님 흉을 보았지만 엄마는 언제나 "지선이 니가 잘못했으니까 혼났겠지."
라는 말로 선생님 편을 들었다.
계속된 나의 고발에 속이 상하기도 한 엄마였으나
굳이 아빠에게 말을 전하지는 않았다.
아빠가 혹시나 선생님에게 따져 들어 일이 커질까 봐 걱정되어서다.
선생님은 이토록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하늘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므로 지금의 상태를 해결할 방법은 없다.
그저 선생님이 빨리 우리 학교를 떠나거나 내가 떠날 수밖에..
헌데 선생님은 올해 왔으니 앞으로 몇 년은 더 여기에 있을 것이다..
둘 다 떠날 수 없으니 결국 참고 견디는 수밖에...
다행히 곧 겨울 방학이다.
내년엔 우리 담임 선생님이 안 되겠지....
이렇게 힘든 자습을 더 이상 안 해도 되겠지...
방학을 손꼽아 기다리는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