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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메리 크리스마스

by 아이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심을 기뻐하며..."

또 기도하네. 아까도 했던 것 같은데..

"아기 예수님이 오심으로 저희들에게 구원의 길이.."

아.... 길다.... 목사님은 왜 이렇게 말이 많을까? 선물은 대체 언제 주는 거야..

"추운 이 계절에 어려운 이웃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옵시고.."

선물은 뭘까? 인형? 책? 이왕이면 장난감이면 좋겠다..



우리 학교 옆에는 작은 교회가 있다.

목사님은 선교를 하기 위해 몇 년 전 이 산골까지 내려와 터를 잡았다.

목사님의 세 아이들도 우리와 같이 학교를 다니니 모두 친구로 지내고 있다.


목사님 부부는 착한 분들이었지만 산골마을에서 선교 활동은 쉽지 않아 보였다.

집집마다 제사를 지내고 정월대보름엔 당산제를 지내는 시골 마을에서 조상을 안 모시며 하나님에게 기도를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나 바쁜 농사철에 새벽예배와 주일예배는 한가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교회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었으니 텅텅 빈 예배당은 목사님 가족만의 기도 공간이었다.


그러나 교회가 빛을 발하는 때가 두 번 있었으니

하나는 천국의 맛을 보게 하는 사모님의 카스테라였다.

소풍과 같은 특별한 학교 행사가 있거나 마을 잔치가 있으면

사모님은 항상 집에서 카스테라를 아주 많이 만들어 오셨다.

부드럽고 달콤한 카스테라는 우리뿐 아니라 어른들도 한입 베어 물면 엄지가 저절로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그래서 목사 사모님이 아니라 카스테라 사모님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다른 하나는 크리스마스다.

티비에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외칠 때마다 저 사람들은

왜 우리 강아지 메리를 저리도 찾나 라는 생각만 들뿐

나와는 상관없는 도시 사람들만의 잔치라는 생각을 했다.

헌데 교회에 오면 간식도 먹고 선물도 받으며 크리스마스를 즐겁게 보낼 수 있단다.


이 즐거운 소식과 동시에 나는 고민이 생겼다.

'평소에 한 번도 가지 않는 교회를 선물 준다고 일 년에 딱 한 번!! 크리스마스에만 가면 목사님 얼굴 보기가 너무 민망하고 부끄러운데.... 아 그래도 선물을 준다는데...?'


한참을 고민하는 내가 무색하게 동네 언니 오빠들과 친구들이 25일이면 당연히 교회를 간다며 나서니 나도 자연스레 아침부터 이 먼길을 따라와 지금 여기 예배당에 앉아있다.

그리고 이 예배당에 쑥스럽게 앉아 있는 사람은 나뿐만은 아니었다.

윗동네 수진이도 옆동네 쌍둥이도 모두 이곳에서 어색한 기도를 하고 있으니 평소 썰렁했던 예배당이 빽빽한 콩나물시루처럼 아이들로 가득 찼다.


그런데! 교회에 오면 바로 선물을 주는 줄 알았는데

아까부터 목사님이 기도를 하고는 또 무슨 연설을 하신다.

옆에서 듣던 사모님은 가끔씩 할렐루야를 외치는데 그 모습이 너무 어색해 나 혼자 수줍어 얼굴이 빨개졌다.


"끝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목사님의 말에 사모님이 눈을 감고 두 손을 맞잡으시길래 나도 따라 눈을 감았다.

기도 중간에 몇 번 실눈을 떠보아도 기도가 끝날 줄을 모르니 다리까지 저려온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나는 직감적으로 기도가 끝났다는 걸 느끼고 질끈 감았던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는 깍지 끼고 기도드렸던 두 손을 떼어내 꿇은 무릎에 땀을 한번 닦고는 다시 얌전하게 무릎 위에 펼쳐놓았다.

이제 난 진짜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 모든 준비를 마쳤다.


선물을 줄 거라는 기대와 달리 목사님 부부와 아이들이 요구르트와 초코파이 등등의 과자를 나눠주며 크리스마스 노래를 틀어주었다.

신나는 노래와 내 앞에 놓인 간식들로 인해 절로 흥이 났다.

수진이 종국이 경진이 혜진이 진규 모두가 동그랗게 둘러앉아 초코파이를 먹으니 오늘은 참으로 행복한 날이다.

간식을 나눠주는 목사님도 하루 종일 웃는 걸로 보아 나만큼 행본한듯하다.


드디어 목사님이 선물 꾸러미를 들고 나타나니 하루 종일 아니 몇 날 며칠을 기다리던 그 순간이 왔다.

영구의 달릴까 말까 노래에 맞춰 목사님이 아이들에게 선물을 줄까 말까 하는 장난을 치니 받는 이는 애가 탈지 몰라도 보는 우리는 눈물이 찔끔 나도록 웃는다.



알록달록 종이 포장지로 포장한 선물을 손에 받아 든 나는

무슨 선물인지 가늠하기 위해 손으로 눌러보며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푹신푹신한 게 장갑일까? 목도리? 모자?

내 생각대로 털장갑이다.

어쩜 이리 내손에 꼭 맞는지. 냇가에서 썰매 탈 때 껴야지.

비록 내가 원한 장난감은 아니었으나 산타모자를 쓴 목사님의 공짜 선물에 함박웃음이 나왔다.

이게 바로 메리 크리스마스구나.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모두가 받은 선물을 꺼내 보이며 자랑을 했다.

연필과 노트, 털모자와 목도리를 자랑하는데 그중 최고의 부러움을 산 이는 장난감을 받은 아이다.

우리는 그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우와"를 외쳐대다 급기야 내 선물과 바꾸자며 꼬셔보기도 한다.

꼬셔질 리가 있나. 꼬실수록 더 품 안에 들어가 안 나오는 장난감이다.


집에 도착하니 메리가 꼬리를 흔들며 나와 진규를 반겼다.

"메리야!! 이것 봐!! 나 선물 받았다."

손에 낀 장갑을 자랑하며 메리 밥그릇을 메리 코 앞까지 밀어주었다.

"메리야!! 너도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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